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32화
#232화
앞으로 2년 후, 알 카에다의 공격으로 미국은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2001년 9월11일.
이 날 이후로 세계는 영원히 바뀌게 되었다.
―미국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당시 대통령인 조지 부스 대통령에게 건네진 이 메시지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최선을 다해 막아야지. 하지만…….'
강혁은 불현듯 자신이 막지 못했던 삼양 백화점 붕괴 사건을 떠올랐다.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며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도리질을 쳤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자신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얼핏 당시 일을 생각하자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의식이 끌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아, 안 돼.'
필사적으로 정신을 동여맨 강혁은 의식이 당시의 현장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콜, 콜럭― 콜럭―"
코 끝으로 분진 가루를 들이 마셨던 기억에 강혁은 수없이 기침을 했다.
"휴… 하!"
겨우 현실 세계로 의식을 끌어올린 강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힐튼 호텔에서 내려다 보이는 밤의 전경은 아름다웠다.
'그런 참혹한 일이 다시 일어나게 해서는 안돼.'
강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9.11테러를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이 9.11테러를 막게 된다면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 걱정이 된 것이다.
당시의 사건은 세계사적으로 너무나 막대한 영향을 주는 대사건이었다.
'나비효과.'
강혁이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와 너무 달라져 더 이상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혁은 도리질쳤다.
자신이 아는 미래가 사라질지라도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외면하거나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사실 강혁이 막 회귀했을 무렵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자신의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니었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
아니 자신이 감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삼양 백화점 사건을 막지 못했던 일.
당시의 참상을 눈 앞에서 보았던 일들이 강혁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게다가 지금은 나름 인맥도 있고, 강대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번만 해도 회귀 전 알 카에다가 일으켰던 테러 사건을 막지 않았는가?
강혁은 9.11테러도 어쩌면 막을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만해도 강혁은 몰랐다.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났어야 할 테러를 막아냄으로서 발생하게 된 나비효과를 말이다.
* * *
다음 날.
강혁은 수행원을 이끌고 태우 그룹의 계열사 실사에 나섰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태우 전자였다.
앞으로 이곳에서부터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강혁은 이미 관련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골든 그룹의 IT연구소에는 매일같이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구글과 페이스북을 만든 세르게이와 최승호의 명성이 그들을 골든그룹으로 불러 모은 것이다.
이들에게 강혁은 스마트폰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있었다.
태우 전자를 본격적으로 인수하고 나면 몇 년 안에 강혁은 스마트폰을 출시할 생각이었다.
'이미 상당수의 기술 개발이 끝났다. 몇 가지 문제만 더 해결하고 나면…….'
태우 전자의 가전 생산 공장을 둘러보며 강혁은 두 눈을 빛냈다.
언젠가 이곳에서 전 세계로 수출될 스마트폰이 생산되는 광경이 상상되었던 것이다.
'흐흠, 승호에게 전화해 봐야겠군. 스마트폰 프로젝트가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말이야.'
강혁은 한참 미국에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승호를 떠올렸다.
아마도 최승호는 미국에서 가장 바쁜 CEO중 하나일 것이다.
강혁이 여러자기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최승호를 임명했기 때문이다.
강혁이 가장 믿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비밀 프로젝트 상당수가 최승호의 손에서 움직였다.
―강 회장이 지금 막 공장을 나섰습니다.
―알았다.
누가 봐도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보이는 40대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작업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태우 전자 공장 직원이었다.
강혁 회장 일행이 실사를 마치고, 자신의 곁을 지나가자 소형마이크로 누군가에게 연락한 것이다.
강혁 일행이 차에 올라 탄 후, 이동하자 공장 인근에 주차하고 있던 차량 하나가 움직였다.
멀리서 강혁 일행의 뒤를 은밀히 쫓기 시작했다.
강혁의 차를 운전하고 있는 스티브는 백밀러로 뒤를 쓸적 살펴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스티브의 치아를 본 강혁이 웃으며 말했다.
"따라 붙었나 보지?"
"예, 지겹지도 않은지 매일 같이 그러는군요."
"그래도 차량을 바꿔주는 신경은 쓰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강혁의 말에 스티브가 웃었다.
"휴, 회장님. 저는 아직도 걱정이에요. 저들이 갑자기 회장님을 공격하기라도 한다면……."
이리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이리나, 너무 걱정하지마. 그래서 다들 날 지켜주고 있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사고라는 게 불시에 일어나는 거잖아요."
이리나의 우려섞인 목소리에 강혁은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어찌보면 회귀한 후,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돌봐준 사람이 이리나였다.
그런 그녀의 염려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리나, 걱정 되겠지만 조금만 참아줘. 내가 이러는 것도 날 노리는 자들을 알아내기 위한 거니까."
"……."
강혁의 말에 이리나는 걱정과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알겠어요, 회장님. 하지만 위험해지면 바로 그만두세요."
"걱정 마, 이리나. 회장님께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내가 바로 납치해서 안전한 곳에 가둬 둘테니까."
"꼭 좀 부탁해요. 스티브."
스티브의 말에 이리나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하하, 스티브 덕에 강제 휴가를 당하게 생겼군 그래."
"하하,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이리나한테 약한 거 알죠?"
"그래, 알았네. 알았어."
강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때 그의 귓가로 박정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박 팀장.
―회장님, 며칠 동안 놈들을 추적했지만 기다리던 놈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음.
강혁은 박정철의 말에 낮은 침음성을 지었다.
박정철이 말하는 기다리는 놈들이란 지난 번 납치 사건에 등장한 블랙요원이었다.
강혁이 국정원에 넘긴 자들을 처리한 자들의 정체는 국정원의 블랙요원으로 추정되었다.
그들은 모두 국가에서 오랜 세월 키워온 최고의 요원들로 그 정체를 아는 자는 극소수였다.
이들 중 누가 일진회의 끄나풀이 되었는지 알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들이 가진 능력이라면 언제든 김현중 대통령이 암살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국정원은 암살 사건이 일어난 당시 블랙요원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당일의 행적을 이미 조사했다.
문제는 모든 블랙요원들이 당일 사건이 일어난 장소 근처에도 간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알리바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믿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렇다고 국정원에 블랙요원의 신상을 알려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블랙요원의 신상은 담당자를 제외하고는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었다.
그만큼 국가 안보에 중요한 사람들이라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원한다면 얼마든지 당일 행적을 조작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이들이 가진 신분의 특성상, 행적을 조사한 사람들 자체도 극소수에 불가했기 때문이다.
교차 점검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강혁과 박정철은 국정원쪽의 조사결과를 완전히 믿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그들을 끌어내려면 좀 자극적인 일을 벌여야 할 것 같습니다.
―흠, 지난 번에 의논하신 그건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블랙요원들을 끌어내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어렵다고 느낀 것이다.
"알겠습니다. 시행하세요."
"예, 회장님."
강혁이 탄 차가 교차로를 지나 태우 그룹 본사 건물로 향했다.
차량이 교차로를 지나자 상황실 센터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고 있던 신소희가 붉은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차량이 지난 후 갑자기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었다.
그 바람에 뒤를 따르던 국정원 차량이 신호에 걸려 버렸다.
"……이런."
"걱정 마. 저 방향이라면 거기로 가는 걸 테니깐."
"하긴 그렇겠지."
강혁의 차량 뒤를 국정원 요원들이 탄 차량이 신호에 걸려 멈춘 사이 그 옆을 한 대의 오토바이가 다가왔다.
치이익!
"뭐야?"
검은 색 슈트에 헬멧을 쓴 자가 차창에 스프레이를 뿌리자 하얀분말이 차창에 묻으며 굳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헬멘을 쓴 자가 창을 치자 구멍이 뚫렸다.
그곳에 동그란 구체가 떨어지더니 하얀 가스가 순식간에 두 사람을 기절시켰다.
그러자 차량의 반대쪽에서 대기하던 차량에서 사람이 내리더니 두 사람을 끌어내린 후 차량에 태웠다.
그리고 차량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이 올라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신호가 바뀌자 차량은 강혁의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 * *
"아이고, 고맙네."
"뭘요. 김씨 할머니. 또 고장 나면 불러주세요."
"그래, 고마워. 장씨."
장씨라 불린 남자가 파란색 가방 안에 도구를 주섬주섬 넣었다.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는 말에 옆집에 살고 있는 장씨가 고쳐준 것이다.
"아이고, 세상 여자들 눈이 씌었지. 우리 장씨 같은 남자를 못 알아보고."
김씨 할머니의 말에 장씨는 사람 좋은 표정을 지었다.
띵동~ 띵동~
장씨가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할머니, 일 나가봐야 겠어요."
"그래? 이번엔 며칠 있다가 오는가?"
"글쎄요.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네요."
"그려? 그럼 어서 다녀와. 오면 내가 막걸리하고 파전 준비해 놓을테니까."
"아이쿠, 감사혀유―"
"하하, 그리 좋아? 사투리 나오네."
"히히."
장씨는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어여 다녀와~"
"예―"
장씨는 도구가 든 파란색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집을 나섰다.
장씨가 향한 곳은 지하철이었다.
지하철을 탄 후 장씨가 향한 곳은 서울역이었다.
서울역에서 내린 장씨는 공공사물함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장씨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호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로 사물함을 열었다.
사물함 안에는 커다란 가방이 하나 들어 있었다.
가방을 어깨에 울러 맨 장씨는 사물함을 닫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누군가가 장씨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장씨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은 인적이 그리 많지 않은 골목이었다.
장씨의 뒤를 쫓는 사람이 하나씩 둘씩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씨는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장씨가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 어때?"
"……?"
장씨의 뒤에는 이미 대여섯 명 가량의 불량해 보이는 청년들이 서 있었다.
모두는 갑작스런 장씨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인적도 거의 없고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모르겠지?"
사람 좋아 보이는 어리숙한 아저씨는 온대간대 없었다.
잠시 후, 장씨는 모자로 옷을 툭툭 치고는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의 청바지에는 살짝 피가 묻어 있었다.
장씨가 빠져나온 골목에는 온 몸에 피칠을 한 청년들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깨에 둘러 맨 가방 안에는 보통 작전에 나갈 때 사용할 각종 병기와 공작금이 들어 있었다.
이번 일은 그리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씨, 아니, 장건후는 모든 일에 신중한 사람이었다.
빠드득. 빠드득.
걸음을 옮기며 장건후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뼈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