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33화
#233화
"으윽, 여기가 어디지?"
강혁의 차량을 뒤쫓던 국정원 요원 이상수는 정신이 들자 주변을 살폈다.
자신의 옆에는 동료인 신동철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의자에 묶여 있었는데 신동철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주변을 돌아보자 자신들이 있는 장소가 텅 빈 사무실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얼굴에 헬멧을 쓴 사람이 들어왔다.
"정신이 들었나?"
"당, 당신 누구요?"
이상수는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에 공포심을 드러냈다.
"누굴 것 같나?"
"살…살려 주십시오. 돈, 돈이라면 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서도 연기인가?"
"무…무슨 말씀이신지?"
헬멧을 쓴 남자가 이상수의 눈 앞에서 권총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한국에서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무…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저는 처음 보는 물건입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이상수는 벌벌 떨며 눈앞의 사내에게 빌었다.
헬멧을 쓴 남자는 결국 씩 웃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헬멧 사내가 나가자 정신을 잃고 있던 사내가 갑자기 번쩍 두 눈을 떴다.
"역시 강 회장 쪽 사람인가?"
"그런 모양이야."
조금 전까지 울상을 짓던 사내는 어디로 갔는지 아주 침착한 표정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신동철의 말에 이상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글쎄, 그보다 문제는 우리가 잡혔다는 거지."
"……."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자신들은 이미 국정원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불법적인 활동을 하다가 잡힌 것이다.
게다가 국정원 요원이 일개 사조직을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국가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일이었다.
"처리 당할 거야."
신동철이 말했다.
"그 전에 달아나면 돼."
이상수의 말에 신동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텅 빈 사무실에 남아 있는 가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군."
"끄응?"
이상수가 의자 채로 힘들게 엉덩이를 쳐들었다.
그리고는 벽으로 다가가 온 몸으로 부딪쳤다.
쾅?쾅?!
온 몸이 부서져라 벽에 부딪히자 의자가 부서졌다.
이상수는 묶인 팔을 풀고는 신동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입고 있던 잠바의 지퍼 쪽에 손을 올리더니 가느다란 철제 톱을 꺼냈다.
잠시 후, 신동철은 묶여 있던 팔을 풀고 손으로 매만졌다.
철제 톱으로 묶여 있던 팔을 푼 것이다.
신동철은 창가로 다가갔다.
이곳이 어디인지 위치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밖을 내다보니 산기슭이 보였다.
자신들이 있는 곳은 서울 외곽이었다.
이상수는 신동철이 밖을 살펴보는 사이 사무실 문 쪽으로 다가가 귀를 갖다 대고 누가 오는지 살폈다.
"여긴 서울 외곽의 교외로군."
"고문이라도 할 생각이었을까?"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하늘을 올려다 본 신동철은 이미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릴 처리하려고 누굴 보냈을 것 같아?"
"글쎄, 별로 알고 싶지 않군."
이상수는 발뒤꿈치로 바닥을 찼다.
구두 뒷굽이 열렸다.
이상수는 거기에서 미니 사이즈의 권총을 꺼냈다.
신동철 역시 똑같이 구두 뒷굽에 숨겨둔 미니멀 권총을 꺼냈다.
"그럼, 나가 볼까?"
이상수의 말에 신동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탕!
이상수의 손에서 발사된 총알이 문손잡이를 대번에 부서뜨렸다.
"나가자!"
이상수가 밖으로 나서며 외쳤다.
두 사람은 사무실을 나서며 총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양쪽 통로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찰나 복도 양쪽 끝에서 이상한 장비를 걸친 사내가 걸어 나왔다.
"……?"
두 사람은 모두 섬찟 놀랐다.
양쪽 복도 끝에 나타난 사람은 상반신에 방탄 효과가 있는 프로텍터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총구를 지닌 총을 자신을 향해 겨누었다.
"엇!"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총을 겨누어 상대에게 쏘았다.
탕?탕?!
미니멀 총이라 원래도 파괴력이 작았다.
총알은 프로텍터의 방호력을 뚫지 못하고, 튕겨버렸다.
푸?앙!
기묘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구경의 총에서 고무총이 날아가 두 사람의 복부에 박혔다.
퍼?어억?
두 사람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어떻게 보십니까?"
"흠, 신형 프로텍터가 실전에서 사용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군요."
강혁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박정철이 보여준 녹화 영상을 보고 있었다.
박정철은 상황 센터에 있었다.
두 사람은 화상으로 서로 대화하고 있었다.
"고무총은 살상력은 없지만 상대를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박정철의 말에 강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살상 무력화 병기로 경찰특공대 등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무기였다.
"생각지도 못하게 신병기를 테스트할 기회가 되었네요. 그보다 과연 나타날까요?"
"틀림없이 나타날 겁니다."
박정철이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강혁은 박정철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박정철은 원래 국정원 해외 작전팀 팀장이었다.
현장에서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던 작전도 수없이 성공시켰던 레전드가 아닌가?
그라면 블랙요원들과도 접점이 있었을 것이다.
"블랙요원이라?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진 자들인가요?"
강혁의 말에 박정철은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나라 대통령이라 할 지라도 암살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자들입니다."
"……."
"침입, 암살. 폭발, 은신이 주특기인 놈들입니다."
"……."
"적으로 돌리게 된다면 정말 무서운 놈들이죠."
"그런데 제가 그런 놈들을 적으로 돌리게 됐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박정철은 전혀 말을 돌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과장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군요."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경호를 강화해야할 지도 모르겠군.'
박정철은 한국으로 들어오겠다는 강혁을 마지막까지 반대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가 그렇게까지 반대한 이유에는 신상현이 블랙요원들 중 일부를 포섭했다는 정보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대단한 놈들이라면 과연 순순히 우리에게 잡힐까요?"
강혁의 말에 박정철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무리 용맹한 호랑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에게 잡히는 법이죠."
"……."
"결국 개인의 무력보다 중요한 것은 전술이고, 팀워크입니다. 저는 저희 팀을 믿습니다."
박정철의 말에 강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내일 일기예보에 아침부터 비라고 되어 있을 정도로 짙은 구름이 달을 가리고 있었다.
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
산기슭에 드문드문 집들이 들어서 있는 곳이었다.
거주민들이 텃밭을 가꾸기도 할 정도로 공터가 많이 있었다.
그런 곳을 모자를 눌러쓴 한 사내가 무심한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사내는 경사진 길을 올라 커다란 철문 앞에 섰다.
철문의 오른 쪽 벽에 한성 정신 병원이란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철문 너머에 커다란 병원 건물이 보였다.
이곳은 이미 오래 전에 폐쇄된 정신 병원이었다.
사내가 철문에 손을 갖다 됐지만 문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한쪽이 쇠사슬로 칭칭 묶여 있었다.
사내는 어둠 속에서 씨익 웃었다.
철문 너머로 오래된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자신이 처리해야할 자들이 저 건물에 있었다.
국정원 요원들의 몸속에 박아둔 GPS 신호기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빠드득. 빠드득.
손가락을 움직이자 마디에서 소리가 울렸다.
'함정일까?'
장건후는 슬며시 광대뼈가 올라갔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이곳으로 유인했다.
누굴까?
철문 너머로 보이는 폐건물이 갑자기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어쩌면 오랜만에 손맛을 단단히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삐?익? 삑!
장건후는 자신도 모르게 작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서 병원 건물 담벼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뒤로 몇 걸음 물러 선 후 다다닥 달려 바닥을 차고 올랐다.
파악? 팍?
바닥과 벽을 한 번씩 찬 후 그의 몸은 2미터가 넘는 담벼락의 맨 위 꼭대기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놀라운 신체능력이었다.
장건후는 담벼락을 훌쩍 뛰어 넘어 병원 건물 마당으로 들어섰다.
타?악!
바닥에 몸을 내려서 장건후는 주변을 살폈다.
병원 건물 한쪽 구석에 오래 된 CCTV 카메라가 보였다.
피슛?
품속에서 꺼낸 소음기가 달린 총으로 카메라를 박살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놈이 사라졌습니다."
CCTV카메라로 장건후를 감시하고 있던 모니터 요원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남쪽 건물 왼쪽 계단! 카메라가 꺼졌습니다."
다른 요원이 장건후의 행적을 파악하고 외쳤다.
장건후는 이동 중 카메라를 발견하는 족족 파괴시키고 있었다.
"음, 꽤 하는군."
박정철이 말했다.
"다들 괜찮을까요?"
신소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박정철을 바라보았다.
"으음. 괜찮을 거야."
박정철이 대답했다.
자신 있게 말했지만 상대 블랙요원의 능력은 사실 미지수였다.
이번 작전은 자신이 예전에 알고 있는 블랙요원의 평균적인 능력을 토대로 이뤄졌다.
만일 지금 적으로 맞닥뜨린 자가 만일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또 그런 자가 있을까?'
박정철은 예전 자신이 알고 있던 전설적인 블랙요원을 떠올렸다.
'치천사'
천사들 중 가장 높은 계급을 가진 천사를 일컫는 말로 한 전설적인 블랙요원의 코드명이기도 했다.
치천사로 불렸던 사내는 어느 날 홀연히 국정원과의 연락을 끊고 스스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박정철은 딱 한 번 그 남자와 작전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자신의 눈으로 목도했던 사내의 능력은 인간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초인.
인간을 초월한 초인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수준의 사내였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사내가 또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걱정 마. 괜찮을 거야."
박정철은 신소희의 어깨를 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 팀장님."
그런 박정철의 모습에 신소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챙그랑?
창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건물 안으로 누군가가 뛰어 들어왔다.
사내는 복도를 구르는 동시에 몸을 펼치며 총구에서 불을 뿜었다.
퓨슉? 퓨슉?
사람의 비명 소리가 두 번 울리는 동시에 복도의 전등이 부서졌다.
"동쪽 건물 2층이에요. 카메라 파괴됐습니다."
모니터 요원이 소리쳤다.
"실버 울프 대원 두 명 부상."
대형 스크린이 우리 측 대원의 사진과 함께 생체신호가 잡혔다.
"신형 프로텍터가 잘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모니터 요원 중 한명이 말했다.
박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혁의 첨단무기 연구소에서 새로 개발한 가벼우면서도 성능이 좋은 방탄복이었다.
마치 21세기 병사들이나 입을 것 같은 스타일의 장비였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실버울프 대원들은 모두 이 장비를 입고 있었다.
"놈을 남쪽 건물로 몰아!"
박정철이 소리쳤다.
"전 대원 침입자는 동쪽 건물 2층 계단 쪽에서 오른쪽 복도로 이동했다."
신소희가 재빨리 현재 상황을 대원들에게 전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