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34화
#234화
"대기 해! 놈이 온다."
실버 울프 팀원들은 고글을 끼고, 어둠 속에서 복도를 열화상 캠으로 보고 있었다.
복도 한쪽은 화재 시 대피 차단막을 내려 통로를 막아 놓은 상태였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통로를 막아 놓은 차단막이 가볍게 날아갔다.
치이익?
차단막이 날아가는 동시에 실버울프 대원들 앞에 연막탄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복도 통로에 연기가 자욱해졌다.
"온다!"
조장의 외침과 함께 실버울프대원들은 연기로 가득한 통로를 향해 총알을 난사했다.
타타타타타?
어둠 속에서 총탄이 만들어내는 불꽃이 난무했다.
"그만!"
전면을 향해 총알을 난사한 실버울프팀은 조장의 외침에 총격을 멈추었다.
조장이 손짓으로 지시하자 두 명의 대원이 일어나 앞으로 전진 했다.
침입자가 쓰러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10여 미터 가량 앞으로 전진 했을 때였다.
바닥에서 갑자기 한 인영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퓨숙? 퓨숙?
실버울프 대원 한 사람의 어깨를 짚고, 공중돌기를 하며 등 뒤로 사격을 가해 두 대원을 쓰러뜨렸다.
연기가 자욱해 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이지 않았다.
"케일, 바이런 무슨 일이야? 대답해!"
"제길? 당했다. 사격해!"
타타타타타타타?
전면을 향해 다시 일제 사격이 이뤄졌다.
그때 어둠과 연기를 뚫고 갑자기 한 인영이 불쑥 나타났다.
침입자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침입자를 벽을 달려오고 있었다.
"우왓!"
총구를 돌리려는 순간 침입자는 몸을 날려 허공에서 총을 난사했다.
퓨숫? 퓨숙? 퓨숙?
순식간에 세 사람의 울프 대원이 쓰러졌다.
탓?
세 사람을 쓰러뜨린 침입자는 그들의 등 뒤로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씨익?
입가를 끌어 올린 침입자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통로를 달렸다.
"2조가 아무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상황통제실에서 모니터 요원이 소리쳤다.
조금 전까지 상황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이미 망가져 더 이상 어떤 영상도 보이지 않았다.
대단한 솜씨였다.
박정철은 자신도 모르게 손아귀에 땀이 났다.
'치천사!'
영상 속에서 모자를 눌러쓴 사내의 움직임은 옛 친구의 움직임을 연상시켰다.
설마하니 그 치천사일까?
박정철은 고개를 내저었다.
치천사는 스스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조금 전 영상 속에서 보았던 움직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블랙요원의 수준을 훨씬 상회했다.
'완전 무장한 실버 울프팀 대원 5명을 한순간에 순살 시켰다.'
'블랙요원이라고 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치천사가 아니라면? 그의 제자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박정철은 자신의 생각을 부인했다.
하지만 영상 속의 움직임은 분명 현역 시절의 치천사를 연상시키는 몸놀림이었다.
여러 가지 엇갈린 정보들이 박정철의 생각을 어지럽혔다.
"상황실. 3조입니다. 저희가 막겠습니다."
대형 스크린으로 3조 조장의 말이 들려왔다.
"조심해. 2조가 모두 당한 것 같다."
"알겠습니다."
3조 조장이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들었겠지만 2조가 당했다. 동쪽 게이트는 우리가 막는다."
"알겠습니다."
"2조 친구들 복수를 하죠."
"오케이? 그럼 가자."
실버울프 대원들은 즉시 이동했다.
* * *
"시작됐군."
이상수가 말했다.
"……."
"그 친구일까?"
"만일 그렇다면 내년 오늘은 우리 제삿날이겠지."
신동철의 말에 이상수가 암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
신동철은 이상수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 말을 인정한다는 듯이.
두 사람은 사형선고가 떨어지기라도 한 듯이 암담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를 상황실에서 박정철도 듣고 있었다.
"침입자에 대해 저 두 사람이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인데요?"
"그렇군."
신소희의 말에 박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볼 가치가 있어."
박정철은 귀에 있는 통신기를 눌렀다.
그리고 누군가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퓨쉭? 퓨쉭? 퓨쉭?
털석.
끝까지 저항하던 3조의 마지막 대원이 복부에 맞고 쓰러졌다.
모자를 눌러 쓴 사내는 마치 게임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괴…괴물."
3조 조장 로버가 쓰러지며 말했다.
"괴물이라?"
피식거리며 장건후는 복도를 걸어갔다.
지금까지 자신의 총에 죽어가던 사람들이 늘상 하던 말이었다.
자신을 향해 공포심을 품은 채 죽어가던 자들이 마지막으로 되뇌던 말들.
'괴물.'
하지만 장건후는 알고 있었다.
진짜 괴물을.
그리고 자신은 그 괴물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는 사실도.
"저긴가?"
눈앞에 마지막 코너가 나타났다.
저기를 지나치면 오늘 자신이 처리해야 할 목표가 나타난다.
몸속에 이식해 놓은 GPS추적기의 신호가 벽 너머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장건후가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눈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자들과 같은 복장과 장비를 갖춘 남자였다.
장건후는 총을 들어 쏘았다.
푸슈?
"……!"
총알이 빗나갔다.
사내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상체를 튼 것이다.
탕?
자신의 총알을 피한 사내도 곧바로 자신을 향해 총을 쏘았다.
휘익!
장건후도 상체를 흔들며 총알을 피했다.
이번에는 사내도 적이 놀라는 듯했다.
푸슛?
타앙?
곧바로 반격이 번갈아 가며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마다 두 사람 모두 간발의 차이로 총알을 피했다.
푸슛?
장건후가 이번에는 갑자기 총구를 아래로 내려 사내의 다리를 노렸다.
그러자 마치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총알을 피해 다리를 들며 총을 쏘았다.
타앙!
두 사람은 숨 쉬지도 않고 연속해서 총을 쏘고 피하고, 다시 쏘는 것을 반복했다.
거의 접근한 상태에서 순식간에 대여섯 발의 총을 쏜 것이다.
퓨숫?
타앙?
두 사람은 동시에 총을 쏜 직후 권총을 손에서 놓아버리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권총의 실탄이 떨어졌던 것이다.
원래라면 재빨리 탄창을 갈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탄창을 갈려고 시도하는 순간 상대의 공격에 급소를 강타당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권총을 떨어뜨리고 동시에 서로의 급소를 향해 주먹과 발을 날린 것이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서너합을 주고받았다.
강렬하고 재빠른 타격이 서로의 목숨을 단번에 뺏어버릴 급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타앗? 탓?
주먹과 주먹, 팔과 팔, 발차기와 발차기.
순식간에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치명적인 공격들을 주고받았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네요. 저 이규철 전무님과 맞상대를 하다니요?"
신소희가 스크린 앞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대결에 놀라며 말했다.
"블랙요원이란 다 저런 사람들인가요?"
"아니, 저 놈이 특출난 거야."
박정철이 말했다.
혼자서 실버 울프 3개 조를 박살냈다.
저들 대부분이 특수부대 출신이었고, 놀라운 실력을 보유한 자들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단 한 명에게 제압당한 것이다.
다행히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프로텍터를 입고 있기에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손에 당한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실버울프팀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의 에이스 중 한명인 이규철과 일대일 격투에서 밀리지 않았다.
이규철은 한국 육군 사상 최고의 전투력을 인정받은 전설적인 군인이었다.
그런 사람과 상대해서 조금도 밀리지 않는 것이다.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믿어지지 않는군요. 저 이규철 선배님을 상대로?
"회장님?"
?박 팀장님. 수고 많으십니다.
박정철은 귀에 있는 통신기를 통해 강혁의 목소리와 함께 자동차 엔진소리를 들었다.
"회장님, 어디 십니까?"
?하하, 감이 좋으시군요. 병원 앞입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말하면 절 막으실 것 같아서요.
"위험합니다."
?걱정 마세요.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습니다.
?……!
차에서 내린 강혁은 블랙슈트와 최신형 프로텍터를 입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강혁은 병원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그 모습이 평소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던 빠르기가 아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엄청난 속도로 병원 마당을 가로 질렀다.
"정문으로 가십시오.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이미 막아서는 것은 늦었다는 것을 안 박정철이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회장님."
?알겠습니다. 박 팀장님.
강혁이 병원 정문에 도착하자 자동으로 문이 덜컥하고 열렸다.
강혁은 열린 문을 통해 건물 앞으로 들어갔다.
도처에 매캐한 화약 냄새가 진동을 했다.
조금 전까지 이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럼, 그 친구를 만나러 가볼까?"
강혁은 본관 엘리베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 * *
파앙?
주먹이 벽을 가격했다.
그러자 주먹 모양으로 벽이 파였다.
이규철의 주먹이 간발이 차이로 벽을 친 것이다.
장건후는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공격을 피했다.
"제법 하는군."
씨?익!
장건후는 이규철을 보고 웃었다.
그리고 오른손 관수로 두 눈을 찔러갔다.
휘릭!
이규철은 허리를 뒤로 젖혀 관수를 피했다.
엄청난 속도로 눈을 향해 날아드는 손가락을 피하자 낭심을 향해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하나같이 살기가 충만한 기술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어지면 그 것으로 끝이었다.
퍼억!
무언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낭심을 올려찬 발차기를 향해 이규철이 발바닥을 갖다 댄 것이다.
발목에 타격을 받으며 장건후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서로 맞닥뜨린 후 장건후의 움직임이 처음으로 멈춘 순간이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승패의 팽팽한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휘릭? 퍽!
순식간에 허공에 살짝 몸을 띄운 이규철의 발차기가 안면에 직격했다.
장건후는 팔을 들어 발차기를 맞았지만 이미 몸의 균형이 흔들렸다.
그 순간 이규철의 주먹이 안면과 상체를 향해 쇄도했다.
퍼, 퍼벅, 퍽?
장건후는 상체를 흔들며 이규철의 주먹을 패링하거나 어깨 위로 흘렸다.
하지만 모든 주먹을 피할 수는 없었다.
몇 개의 펀치가 몸에 적중했다.
승부의 흐름이 이규철 쪽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이규철의 펀치는 장건후에게 엄청난 충격을 전해주고 있었다.
한방 한방에 몸이 흔들렸다.
'벽에 구멍을 내더라니.'
정건후는 다시 한번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주먹을 회피했다.
그 순간 옆구리를 향해 통렬한 샤벨 훅이 날아들었다.
그대로 주먹을 허용했다가는 갈비뼈가 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미 피할 수 있는 타이밍은 아니었다.
얼굴을 향한 주먹을 피할 때 상체가 뒤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끝났군.'
이규철은 장건후의 옆구리를 향해 회심의 주먹을 날렸다.
퍼, 퍽?
두 개의 둔탁한 타격음이 연이어 들렸다.
이규철은 턱을 부여잡고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규철의 상체를 꿰뚫어 버릴 정도로 통렬한 펀치가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 때였다.
장건후는 상체를 뒤로 당긴 그대로 맴을 돌았다.
그리고 그의 양발이 환상처럼 움직였다.
첫 번째 발이 이규철의 샤벨 훅을 차올리는 순간, 다음 발이 이규철의 턱을 날려버렸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