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36화
#236화
이들은 일진회의 끄나풀이 된 다른 국정원 요원들과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군사 독재 정권에 부역했던 이들로서, 현 정권에 반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참. 물어볼게 있습니다."
"뭔가요? 강 회장님."
"두 분을 죽이려고 찾아왔던 사내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눈치던데요?"
강혁의 말에 이상수와 신동철은 눈을 마주쳤다.
"강 선생님. 그 친구래, 진짜 위험한 친구래요."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빨리 여길 피해야 합니다. 그 친구가 오면……."
"하하, 걱정 마십시오. 그 친구. 저희한테 잡혔으니까요."
"그…그래요?"
강혁의 말에 두 사람은 저어기 놀랐다.
그들이 작전에 실패하거나 신원이 알려질 위험에 처하게 되면 찾아오는 죽음의 천사.
그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솜씨를 가진 자가 있었다.
코드명 블랙엔젤.
언제부턴가 그들 사이에서 알려진 이 이름은 그야말로 죽음의 사신과 같은 이름이었다.
강혁 회장을 국정원 요원이 사찰했다고 알려지면 엄청난 파장이 일 수 밖에 없었다.
정권이 커다란 치명상을 입을 일이었다.
결국 국정원을 비롯해서 검, 경 수사기관이 전체가 사활을 걸고 수사에 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일진회를 비롯해서 신상현과 최영혜에게까지 일이 미칠 수 있었다.
결국 꼬리를 자르려 최고의 블랙요원을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지난 번 납치 사건에 연류 된 자들 모두가 국정원 비밀 시설에서 처리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범하게 국정원 비밀 시설에 쳐 들어갈 수 있는 존재.
임무를 완수하고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는 존재.
블랙엔젤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자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붙잡혔다는 말에 의심이 들었다.
"인상착의를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강혁은 두 사람에게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잠시 침묵하던 중 이상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는 그 자에 대해 그렇게 많을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렇습네다. 다만 코드명이 블랙엔젤이라는 것만 알지요."
"블랙엔젤?"
"우리들 정보요원들 사이에 조금씩 퍼져나간 이름입니다."
"호오!"
"사실 정식 코드명인지조차 모릅니다."
"……?"
"이 친구 말이 사실입네다. 회장님. 저희들이 일부러 거짓부렁하는 것은 아닙네다."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범상한 친구는 아닌 것 같더군요."
강혁은 두 사람과 대화를 마치고 방을 나갔다.
"그런데 정말 그 친구 맞을까?"
이상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우릴 없애려고 했다면 그 친구를 보내지 누굴 보내겠어?"
신동철이 이상수를 향해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사실 녹록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이 아무나 보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강 회장의 부하에게 잡힌 것이라 특히나 더 그랬을 것이다.
"그 친구가 잡히다니? 믿기지 않는군."
"믿기지 않는 건 오히려 강 회장 아닌가?"
"아, 하긴. 그랬지?"
다시 표준말을 구사하며 신동철이 머리를 끄덕였다.
미국에서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이런 싸움 실력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두 사람은 상대로 믿기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상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가 멋도 모르고, 벌집에 고개를 들이 밀었던 거야."
"풋, 정말 그렇군."
신동철은 이상수의 말에 십분 공감했다.
두 사람에게는 감시 임무를 맡기면서 강혁의 이전 신분에 대해 정보가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강혁이 젊은 시절 707특임대 소속이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사실 알았다고 해도 강혁을 두려워할 만큼 녹록한 자들이 아니었다.
707특임대 소속 군인들을 상대해도 밀리지 않을 능력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맞닥뜨린 강혁은 두 사람의 상상을 훌쩍 웃도는 능력자였다.
그러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
"그건 그렇고. 누가 블랙엔젤을 잡은 거지?"
신동철이 물었다.
이것은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글…쎄, 강회장이 했을 리는 없고."
"그…야 그렇겠지. 회장이 직접 이런 일에 나설 리가……."
두 사람은 갑자기 서로 침묵을 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에…이. 그럴 리가……."
"하하, 그…그렇겠지?"
이상수와 신동철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경호원을 한 사람도 대동하지 않고 자신들을 만나러 와서 단번에 제압하지 않았던가?
그런 실력과 배짱이라면 회장이라는 신분 뒤에 숨지 않고 직접 상대했을 가능성이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오랜 정보 요원 생활을 거치면서 그런 케이스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 * *
강혁은 정부와 태우 그룹과의 1차 협상을 마쳤다.
일단 태우 전자를 비롯해서 몇몇 기업들을 골든 그룹에서 정식 인수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같은 결단을 국내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강혁이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는 태우 그룹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채권단은 상당 부분 빚을 탕감해주기도 했다.
정재계와 국민 여론은 이 같은 결정에 대해 큰 박수로 화답했다.
다만 이번 협상에 포함되지 않은 계열사들은 똥줄이 탔다.
특히나 대표적인 곳이 강성 노조로 유명한 태우 자동차와 중공업이었다.
처음 강혁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앞장서서 에스코트했던 박시형 사장은 안절부절이었다.
자신을 태우 중공업 사장이 아니라 조선 사장이라고 소개했던 것도 그나마 조선이 잘나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인수에 조선마저 포함되지 못했다.
회사를 조각내서라도 매각하거나 인수 대상에 포함되기를 기대했던 박시형 사장은 좌절하고 있었다.
"젠장, 이를 어쩌지?"
사장실에 앉아 인수 결정에 대해 환영하는 기사를 보고 있던 박 사장은 머리를 잡아 뜯고 있었다.
그때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인터폰에서 콜이 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사장님, 노조에서 대표단이 찾아 왔습니다."
"그 사람들이?"
박시형 사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비서에게 말했다.
"다들 들어오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평소 노조라면 질색을 했던 박시형이었다.
세간에도 태우 중공업의 노사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박시형이 노조 대표단을 사장실로 부른 것이다.
평소 같으면 자리에 없다고 생 깠을 박시형이었다.
잠시 후, 노조 대표들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모두들 혈색이 좋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태우 그룹이 부도난 이후로, 정부와 채권단이 빚을 독촉해오고 있었다.
유력한 인수 업체인 골든 그룹이 나서면서 기사회생 하는가 했는데, 인수 대상에서 빠졌지 않은가?
"어서들 오세요."
대표단들은 박시형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다급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사장님,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노조 대표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박시형에게 물었다.
"글쎄요. 이대로라면 결국 회사를 폐쇄하게 될지도……."
박 사장의 말에 노조 간부들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사, 사장님.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노조 대표가 말하자 옆에서 간부들도 한마디씩 더 얹었다.
"강 회장님은 대체 왜 인수 대상에서 우리 회사는 뺀 겁니까?"
"우리 회사가 지금이야 좀 어렵지만 조선도 탄탄하고, 곧 다시 정상 영업이 될 건데……."
"그런 설명을 드린 겁니까?"
노조 대표와 간부들이 하는 말들을 조용히 듣고 있던 박시형 사장은 대충 말이 끝나자 말자 쏘아붙였다.
"이보시오. 노조 대표라는 사람들이 왜 강 회장님이 우리 회사를 인수대상에서 뺐는지 모른단 말입니까?"
"……?"
"왜. 왜 빼신 겁니까?"
"휴우?"
박시형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좀 알아봤습니다."
박시형은 노조 대표들을 향해서 골든 그룹의 사풍에 대해 자신이 들을 것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그래요?"
박시형 사장이 '오피스 클리어링'이란 단어를 말해주며 실제 있었던 사례들을 알려주었다.
"그…그러면 회사 직원이 욕 좀 들어먹었다고 전 사원이 함께 항의를 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도 회장님이 앞장서서 그랬다고 하더군요."
"캬? 거 미국에서 엄청나게 성공한 분이라 생각하는 것이 뭔가 다르기는 다르네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박시형이 이번에는 회사 청소부였던 사람의 보험을 직원들과 똑같이 들어주었던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그…그러면 회장님이 직접 병원까지 찾아가서 청소부 직원을 망신 준 그 접수원을 혼내줬다는 말인가요?"
노조 간부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동화라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하아……."
노조 간부 중 하나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 회사라면 자신도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태우 그룹에서 인수가 결정 난 계열사 직원들은 정말 복 받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휴, 참. 꿈같은 이야기네요."
"그런 회사가 다 있다니?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네. 허허."
한참을 노조 대표들은 강혁의 이야기로 화제를 삼았다.
그러다 노조 대표가 다시 박 사장에게 물었다.
"하, 사장님, 이번에 인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정말 복 받은 거네요."
"그럼요. 복 받은 거죠."
"그러면 대체 왜 우리 회사는 인수가 안 된 겁니까?"
노조 대표의 말에 모든 간부들도 박 사장의 입으로 시선이 향했다.
그러고 보니 그 이유를 말하겠다고 하고서는 화제를 이쪽으로 이끈 것이다.
"그게 이유입니다."
"……?"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강혁 회장님이 우리 회사를 제외한 이유를……."
박 사장의 말에 노조 대표들을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간부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왜, 뭐 좀 알겠어?"
옆 사람이 물었다.
"이봐, 우리 말고도 태우 자동차도 인수 대상에서 빠졌잖아."
"그…그래서?"
"거기나 우리나 유명한 게 뭐야?"
"……!"
"노사 관계가 안 좋기로 유명한 회사지."
노조 대표인 이덕수 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게 우리 잘못입니까? 사측 잘못은 없어요?"
이덕수 위원장의 말에 당장 간부들 중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우리도 잘한 것은 없잖아?"
"뭐야? 너 말 다했어?"
갑자기 노조 간부들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났다.
"거? 조용히 좀 해."
이 위원장이 소란을 피우는 간부를 향해 화를 냈다.
"지금은 우리끼지 싸울 때가 아니야."
"맞습니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지요."
박 사장이 위원장의 말을 받았다.
"박 사장님,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꺼낼 때는 뭔가 생각이 있는 거겠죠?"
간부들을 진정시킨 이 위원장이 박 사장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예, 위원장님. 우리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박 사장이 위원장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