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39화
239화
#63장 사신법
"이걸로 빚은 갚았다."
장건후의 눈빛이 서늘했다.
쓰러진 강혁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본 박정철의 몸이 움찔했다.
그때 그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올렸다.
이규철이었다.
"저건 끝장을 내려는 눈빛입니다."
"알고 있지만 회장님을 좀 더 믿어 보세요."
"하지만……."
박정철은 아직도 여유로운 이규철을 보고 항변하려했다.
"센터장님!"
신소희가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강혁의 모습이 보였다.
"상당히 매서운 맛이군."
강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몸을 터는 모습을 보며 장건후는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천비각을 맞고 일어났다고?'
못해도 갈비뼈 몇 대는 나갔을 타격이었다.
부러진 갈비뼈가 그대로 폐를 찔러 그대로 두면 죽게 되는 것이 천비각이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말짱해 보였다.
장건후는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음, 좀 불편하기는 하군."
말은 그렇게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모습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이 놈도 괴물이었군.'
뿌드득, 뿌드득.
장건후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뼈마디가 울리는 소리가 장내를 어지럽혔다.
'엄청난 공격이었어. 자칫 잘못했으면 나도 그대로 당했겠지.'
강혁은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허리가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비틀렸다.
주먹이 날아온다고 생각하고 더킹으로 피한 순간 허리부근이 노출되었다.
그 순간 발차기가 기묘한 각도에서 날아와 좌측 갈비뼈를 그대로 강타했다.
아무리 단련을 해도 단련이 안되는 위치를 그대로 직격한 것이다.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된 공격이었다.
열이면 열.
당할 수 밖에 없는 일격이었다.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거라는 걸 예측하고, 아니 상대의 행동을 유도했다고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해서, 급소를 드러내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드러난 급소를 향해 예측하기 어려운 공격을 가한 것이다.
옛 무림에서는 이렇게 정교하고 교묘하게 설계된 공격을 절초라고 불렀다.
강혁 역시 조금 전에는 속절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강혁은 그 순간 본능적으로 호흡법을 사용해 온 몸의 내압을 높였다.
폐에 가득찬 공기를 한 순간에 내쉬며 몸의 내압을 높이는 강체술을 사용한 것이다.
강혁은 일순간 일으킨 내기를 타격을 당한 부위로 보내며 몸의 일부를 철덩이처럼 강화시켰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피를 토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수술방으로 직행해야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공격이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군. 설마 조금 전의 공격을 견딜 줄은 몰랐어."
장건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인정하지. 조금 전에 펼친 공격은 정말 일품이군. 그것도 양아버지에게 배웠나?"
"맞아, 그런 게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한 번 더 받아볼 텐가?"
"그런 게 더 남아 있단 말이지?"
장건후의 말에 강혁은 솔직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군."
강혁은 두 눈을 살짝 더 크게 떴다.
아버지에게 가전으로 내려오는 무공 외에 이렇게 강혁을 놀라게 한 것 처음이었다.
강혁은 양 손을 천천히 쳐들더니 장건후를 겨누었다.
그러자 장건후의 눈빛이 일변했다.
저어기 놀란 표정이었다.
"자, 난 준비됐네."
장건후는 일견 자신도 모르게 강혁의 담대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이내 눈빛이 바뀌었다.
적수를 눈 앞에 둔 늑대의 눈빛이었다.
"그럼 목을 물어 뜯어 볼까?"
탕!
바닥을 치는 소리와 함께 장건후의 일격이 다시 강혁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조금 전과 똑같은 한 수였다.
강혁은 처음 더킹으로 장건후의 일격을 피했었다.
그때 옆구리의 허점을 드러냈고 그대로 일격을 당했었던 것이다.
'자, 이번에는 어떻게 할거냐?'
장건후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확실히 노리고 한 것이다.
조금 전과 똑같은 공격이라니?
열이면 열 당황할 것이 틀림없었다.
상대방에게 노림수가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하, 이거 환장하겠군.'
똑같이 피한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공격할까?
아니면 이번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격할까?
강혁은 다시 고개를 흔들어 어깨 위로 주먹을 흘렸다.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리가 꺽이더니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조금 전 공격했던 그 자리였다.
강혁은 반사적으로 팔을 움직여 막아갔다.
그때 장건후의 입가가 비릿하게 꿈틀거렸다.
마지막 순간 갑자기 장건후의 발이 다른 각도로 다시 꺽였다.
정말로 갑작스러워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꺄―악!
스크린을 통해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비명을 지렀다.
장건후의 발차기가 강혁의 이마 옆 관자놀이 즉, 태양혈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는 부위였다.
"회장님!"
박정철이 소리쳤다.
콰―앙―
강렬한 타격음이 장내에 울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리에 쓰러진 것은 장건후였다.
장건후는 1여미터 날아가 복부를 손으로 감싸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강혁의 주먹에 일격을 허용한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휘유― 십년 감수했습니다."
박정철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하아,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피하신거죠?"
신소희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 우리 회장님을 다들 아직 너무 모른다니까?"
이규철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정도로 조금 전의 움직임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조금 전 장건후의 발차기는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장건후의 발차기가 각도를 바꾸기 전부터 이미 강혁의 앞발은 보법을 밟고 있었다.
사신법!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반격을 가하는 방법이었다.
이마 옆 관자놀이를 향해 장건후의 발이 날아올 때, 강혁의 몸은 이미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장건후는 허공을 친 것이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강혁에게 복부를 강타 당했다.
장건후가 바닥으로 1미터 가량 미끄러지며 배를 한손으로 감싸 안은 이유였다.
얼굴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쓰러진 것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고 다시 돌진해 들어왔다.
"이번에도 날 쓰러뜨린다면 네 수하가 되어 주지."
"그 말…잊지 않았으면 좋겠군."
두 번이나 당했다는 생각에서인가 달려드는 장건후의 모습에는 굉장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일격에 끝을 내겠다는 듯 무서운 기세로 강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익!
강렬한 오른 손 훅이 강혁의 관자놀이를 덮쳤다.
강혁이 몸을 숙이며 피하자 뒷발이 전갈처럼 날아들며 강혁의 정수리를 쳤다.
콰―앙!
강혁은 가까스로 양 손을 교차하며 막아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정수리를 친 뒷발이 마치 연체동물이라도 되는 양, 다시 무릎치기로 변화해 덮쳐온 것이다.
강혁은 할 수 없이 일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장건후의 연속적인 공격이 쉴 새 없이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강혁은 장건후의 공격을 받으며 뼈가 깎여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만큼 한방 한방의 공격이 뼈가 시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 실려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끝을 내주지!'
장건후의 눈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회…장님."
박정철은 자신도 모르게 이규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규철도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이번에는 위험해 보입니다."
박정철이 다급하게 말했다.
"회장님을 믿으세요."
"하지만 이 실장님."
이규철이 미소를 띠우며 박정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억지로 웃고 있는 것이 누구나 알 정도였다.
"회장님을 믿어주세요. 센터장님."
"……"
이규철의 말에 박정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에 땀을 쥐면서까지 이규철은 강혁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도 강혁을 믿어야했다.
박정철은 다시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는 두 사람의 결투를 바라보았다.
한 번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면서부터 강혁은 전혀 반격의 기회를 찾지 못했다.
연속되는 공격은 쉴새없이 강혁의 급소를 공략해왔다.
한 번이라도 허용하면 그대로 끝장이 나는 곳들이었다.
강혁은 양 팔과 다리를 이용해서 타격을 받아내거나 흘렸다.
하지만 서서히 방어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장건후의 공격에 허벅지를 그대로 얻어맞고 한쪽 무릎을 꿇은 것이다.
순간 그의 눈빛에 살기가 흘렀다.
그리고 그대로 강혁의 목을 향해 사신의 낫같은 발차기가 날아갔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내야겠다는 듯 발차기에 온 몸의 기운을 모두 실어 보냈다.
일격을 허용한다면 그 자리에서 목이 꺾여 죽을 정도의 발차기였다.
"아―앗!"
상황실의 누군가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호선을 그리며 발차기가 허공에서 강혁의 목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모두가 얼어붙은 듯 몸을 움직이지 못한 순간.
강혁의 앞발이 몸쪽 방향으로 일보 움직였다.
콰―아앙!
가죽 북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장건후의 몸이 뒤로 날아가더니 벽에 부딪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장건후는 바닥에 엎드린 그대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저거…조금 전에 하신 거랑 같은거죠?"
신소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강혁은 처음 장건후를 쓰러드렸을 때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처음과 달리 완전히 기절했다는 점이 달랐다.
스크린 속의 강혁은 장건후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사―신―법."
이규철이 조용히 읊조렸다.
"……?"
이규철의 말에 신소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규철이 가볍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죽을 사, 몸 신. 사신법(死身法)."
"저게 사신법인가요?"
신소희의 말에 이규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뒷발에 중심을 주면 앞발이 가볍다.
강혁이 구사한 사신법은 특이하게도 앞발을 몸 쪽 방향으로 한보 이동한다.
그리고 뒷발이 바깥으로 빠지면서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반격한다.
일종의 카운터인 것이다.
'상대가 전신의 힘을 모두 써서 치려고 할 때, 거기에 틈이 생긴다.'
'몸의 모든 에너지가 모여 권에 실릴 때, 몸은 비게 된다.'
강혁은 아버지로부터 가르침 받은 사신법의 구결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리고 장건후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희미하게 숨소리가 느껴졌다.
"휴우, 죽이지는 않았군."
강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이번 대결은 확률이 반반이었다.
무공만을 놓고 보자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혁에게는 절대기억능력이 존재했다.
장건후의 공격을 받으면서 발축의 움직임, 몸의 각도와 호흡. 그리고 습관까지 알아내버렸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무서운 능력은 장건후의 공격을 미리 읽을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마지막 순간 장건후의 일격을 피하고 반격을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름이 무섭네요. 죽을 사자에 몸 신이라면 몸을 죽인다는 건가요?"
"하하, 원래는 버릴 사에 몸 신자를 써서 사신법(捨身法)인데 죽을 사자를 붙여서 불리기도 하지."
"왜요?"
"저 기술을 창시한 사람이 손만 쓰면 사람이 죽었다더군."
"예?"
이규철의 말에 신소희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정말이야. 회장님에게 물어봐."
이규철은 웃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