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40화
#240화
"응? 선배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강혁이 상황실로 돌아오자 신소희가 대뜸 사신법에 대해 물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회장님."
이규철이 머리를 끄적이며 말했다.
"뭐, 미안할 것까지야. 사신법의 연원은 그리 큰 비밀도 아니라서."
이규철의 말에 강혁은 손사래를 쳤다.
사신법의 연원은 딱히 비밀이 아니였다.
창시자가 상당히 유명세를 타면서 그의 독문절기는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뭐가 궁금한건데요?"
"사신법을 창안한 사람이 손만 대면 사람이 죽어서 죽을 사자를 붙인 사신법이라는 말이 사실인가요?"
신소희의 말에 강혁이 빙긋이 웃었다.
"그렇다고 전해 들었어요."
"자세히 말씀 좀 해주세요."
신소희의 말에 모두들 강혁을 주목했다.
다들 조금 전의 격투를 화면으로 지켜보았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강혁이 단숨에 전황을 바꿔버리고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을 목도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사신법은 청말민초 시기 중국 창주 사람인 신창 이서문이 말년에 만들었다고 하는 득의기입니다."
모두는 강혁의 말에 쫑긋 귀를 기울였다.
이서문은 강혁이 익힌 삼대 무공 중 하나인 팔극권으로 근대에 중국에서 크게 이름을 떨친 사람이다.
청나라가 무너 지고 근대 국가가 형성되던 혼란의 시기.
이서문은 중국 각지에서 수많은 실전을 겪으며 역대 최강의 무술가라는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실전에서 증명된 그의 명성은 제자들에게까지 이어졌다.
그의 제자들이 당대 중국 최고 권력자들의 보디가드가 된 것이다.
이서문의 첫째 제자인 곽전각은 청황조가 망하고, 만주국이 세워졌을 때 부의의 경호실장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제자인 유운초는 대만으로 물러난 장개석의 경호원 훈련 교관이 되었다.
근대 중국 무림 최강의 고수로 이름을 날린 이서문의 두 제자 모두가 비슷한 운명을 겪은 것이다.
"이서문이 유명해진 것은 상대하는 사람들을 단 일수에 죽음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죠."
"사람이 주먹 한 방에 실제로 죽었다는 말인가요?"
신소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아마 사실일 겁니다."
"……!"
강혁이 과장없이 담담히 말하자 신소희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렇게 확신하시는 이유가 있겠군요."
박정철이 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강혁은 박정철의 말에 고소를 머금었다.
확실히 강혁은 이서문에 대한 옛 고사가 사실일 거라고 믿는 이유가 있었다.
"맞습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일거라 믿는 이유가 있죠."
"그게 뭔가요?"
신소희가 눈을 초롱초롱 뜨며 물었다.
강혁은 그런 신소희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배어 나왔다.
뭔가가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강혁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제가 사신법을 사용해 봤기 때문이죠."
강혁의 말에 모두들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에도 보셨다시피 단 한 방에 늑대같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친구가 넉다운하지 않던가요?"
"……!"
"만일 제가 마지막 순간 힘을 빼지 않았더라면 저 친구도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강혁의 말은 단순했지만 큰 울림이 있었다.
확실히 자신들이 본 장건후는 죽을지언정 꺾이지 않을 정도의 정신력이 있는 친구였다.
아마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덤벼들었을 터였다.
"대체 사신법이 뭐길래 갑자기 사람이 정신줄을 놓는 건가요?"
신소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 신소희를 향해 강혁이 담담히 대답했다.
"복싱 좋아하나요?"
"아, 아버지 때문에 한번씩 본 적이 있어요."
"후후, 그래요? 그럼 카운터펀치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음… 들어 본 적은 있는 것 같아요."
"사신법은 일종의 카운터펀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워요."
"……?"
"카운터에 맞으면 이쪽에서 가한 힘에 내 쪽에서 더해진 충격이 가해지는 거죠."
"……!"
―그리고 온 몸의 에너지가 손 끝에 몰리는 순간 몸 쪽은 에너지가 텅 비게 된다.
―순간적으로 에너지가 텅 빈 몸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거지.
강혁은 마지막 말은 입 안에 삼켰다.
사신법의 중요한 요결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신법의 중요한 비결은 상대의 공격을 미리 잃어내는 감각과 함께 신기막측한 보법에 있었다.
찰나의 순간.
앞발이 몸 안쪽으로 한발 움직이며 상대의 공격을 피한다.
그와 동시에 뒷발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면서 상대의 몸통을 치는 것이다.
에너지가 텅 빈 몸통에 강맹한 일격을 가하면 상대는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었다.
"찰나의 순간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허를 찔린 상대는 죽거나 기절하는 거죠……."
"하아!"
몇 가지 설명은 빠졌지만 신소희는 대충 알아들은 눈치였다.
"카운터라?"
이규철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
"카운터는 상대의 공격 시기나 방향, 호흡, 여러 가지를 읽어야하는 고급 기술인데 말이에요."
이규철의 말에 강혁은 그저 빙긋이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복싱이 주특기 중 하나인 이규철이라 카운터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몇 라운드나 계속되는 복싱 경기와 승부가 짧은 순간에 끝나는 전장은 달랐다.
일류의 카운터 복서들은 회가 거듭되는 라운드 중 상대의 공격 타이밍을 읽어 낸다.
하지만 그런 짓을 전장에서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강혁에게는 절대기억능력이란 치트키가 있었다.
이제 앞으로도 장건후가 강혁을 이길 일은 없었다.
강혁은 장건후의 모든 것을 읽어 냈기 때문이다.
발의 각도, 어깨의 움직임, 공격을 가하기 전의 습관과 얼굴 표정까지.
강혁은 이제 얼굴에서 잡히는 주름 방향과 어깨 움직임만으로 어떤 기술을 사용할지도 예측할 수 있었다.
'후훗, 할아버지나 이서문처럼은 아니지만 나도 나름 사신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셈이지.'
강혁은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사신법을 익힐 때의 일을 떠올렸다.
* * *
아버지가 여러 번 설명을 하고, 실기를 선보여도 강혁은 좀처럼 사신법을 구사할 수 없었다.
혼자서 연습할 때는 간단히 해내지만 실제 대련을 할 때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몇 차례나 아버지의 공격에 엉덩방아를 찧던 강혁이 물었다.
"아버지, 대체 이놈의 사신법은 진짜 가능하기나 한 겁니까?"
"응? 당연히 가능하지 이놈아. 애비가 하는 걸 봤잖아?"
"아, 그거야. 아버지는 저하고 오래 스파링을 해서 제가 언제 공격하는지를 아시는 거잖아요."
"뭐? 넌 내가 겨우 그런 걸로 사신법을 사용한다고 생각한 거냐?"
"그럼요? 어떻게 하신 건데요?"
강혁은 자신의 아버지가 틀림없이 자신의 공격 패턴을 읽고 사신법을 구사한다고 생각했다.
"헛 참, 이 녀석이."
강혁의 아버지는 기가 차다는 눈으로 고등학생인 강혁을 바라보았다.
"이놈아, 그럼 네 말마따나 처음 만난 상대한테는 어떻게 사신법을 사용하냐?"
"그러니까요. 이건 애초에 쓸데없는 엉터리 기술이라니까요!"
콰―앙!
말이 마치자마자 아버지의 알밤이 이마를 강타했다.
"아야얏― 왜 때려요?"
"어이쿠, 이것도 못피하는 걸 보면 네 말마따나 네 놈이 사신법을 사용하기는 글렀다."
"이―쉬― 내 말이 그 말이에요."
"흥, 네 놈이 못한다고 다른 사람도 못하랴?"
강혁의 아버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수건을 꺼내 와서는 눈을 가렸다.
"어? 뭐하시는 겁니까?"
"입 닥치고, 덤벼봐!"
"헛 참, 저한테 맞으시고 복수하시면 안 됩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덤벼. 내가 사신법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마."
강혁은 아버지의 객기에 코웃음을 쳤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저 괴물같은 아버지한테 제대로 한 방 맥일 기회인 것이다.
"그럼, 갑니다."
"흥―"
강혁의 아버지는 한차례 코웃음을 친 후, 신중히 양 팔을 뻗었다.
콰당탕―
"어이쿠!"
강혁은 그만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녀석아, 이래도 안 믿을 거냐?"
"에이―씨, 우연이에요. 우연."
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다시 덤벼들었다.
콰당탕―
이번에도 제대로 걸렸다.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분명한 아버지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자신이 공격하는 순간 사신법을 구사했다.
이번에도 제대로 얻어맞고는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다.
"흥, 이놈아. 엄살 그만 부리고 어여 더 덤벼봐."
"우이씨― 내가 한 방은 때리고 만다."
하지만 그 후로도 수없이 얻어맞고 말았다.
마치 자신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차라리 보인다면 페인트를 섞어서 혼동을 주겠지만 눈을 가린 사람에게는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수없이 엉덩방아를 찧은 끝에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강혁은 수건을 벗어던지고 희희낙락거리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끌끌, 녀석아. 이게 바로 청경이라는 거다."
"청경?"
"네 놈이 움직일 때 공기의 움직임이 먼저 내 살결에 닿는다."
"……?"
"그걸 느낄 수 있으면 눈을 감아도 네 놈이 공격이 허인지 실인지 정도야 간파할 수 있지."
강혁은 아버지의 말에 기가 막혀 했다.
대체 사람이 어떻게 공기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눈을 감고도 자신의 공격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카운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상대가 날리는 공격에 허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아버지의 말처럼 공기의 흐름을 피부가 느낄 수 있다면?
공격이 몸에 닿기 전에 허실을 파악하고 카운터를 날릴 수 있을 것이다.
강혁은 그때 정말 놀란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 전에도 괴물처럼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날은 진짜 괴물 보듯이 아버지를 봤다.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이눔아, 지금껏 보지 않았냐? 가능해―"
아버지는 그렇게 툭 말을 던지고는 마당을 벗어나 거실로 가버렸다.
강혁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마당에 앉아 있었다.
* * *
지금까지도 강혁은 아버지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절대 기억 능력의 도움으로 흉내 정도는 내게 된 셈이다.
공기의 흐름을 피부로 느껴 상대의 공격의 허실을 파악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지만 말이다.
강혁은 부하들과의 담소 중에 떠오른 옛 기억에 잠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하아, 정말 내가 졌단 말이지?"
장건후는 병원 침대에서 깨어났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병실 앞에 그 흔한 경호원 하나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려면 얼마든지 가라는 듯 자신을 방치하듯이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또 자존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이대로 떠나버리면 절대로 찾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대결 전에 강혁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젠장, 망할 자식!"
강혁을 떠올리자 장건후는 화가 났다.
지금도 마지막 일격을 가하던 순간만 기억이 났다.
대체 어떻게 자신이 강혁에게 당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강혁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인다고 생각한 순간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 할 수 없지."
장건후는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진 이상 일구이언을 할 마음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