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41화
241화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침대에 누워있는 장건후에게 강혁이 물었다.
"하아, 그건 내 쪽에서 물어야 할 것 같은데?"
"……."
짐짓 장건후는 입술을 이죽거리며 강혁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강혁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띠었다.
장건후의 눈빛에서 그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많이 바빠질 거야."
강혁이 말했다.
"뭐, 공짜로 부려 먹을 생각만 아니라면 상관없지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강혁이 그의 침대 위로 몇 개의 통장을 던졌다.
장건후는 강혁을 힐끗 바라보고는 통장을 열어보았다.
"휘유, 이거 동그라미가 몇 개야?"
장건후는 통장에 찍혀있는 숫자를 확인하고는 휫파람을 불었다.
"마음에 드나?"
"뭐, 그럭저럭."
"앞으로 할 일이 적지 않을 거야."
"흠, 보수는 만족하지만. 난 따분한 일은 질색인데."
장건후의 말에 강혁은 슬쩍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하지."
"흐흐, 기대되는군. 그래서 무슨 일을 시킬 거지?"
장건후가 이죽거리며 기세 좋게 말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몸을 움직일 태세다.
"뭐, 급할 건 없어."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돼?"
강혁은 장건후의 독촉에 슬쩍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쪽에 포섭된 블랙요원들을 찾아 주면 좋겠군."
"그러지."
강혁의 말에 별달리 고민하는 척도 하지 않았다.
블랙요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고도로 훈련받은 암살자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건후는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블랙요원들 하나같이 일당백의 전사들이라고 하던데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군."
"ㅤㅋㅡㅅ, 그 정도야. 나한테는 일도 아니지. 다만 내 양아버지 알지?"
"치천사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블랙요원이었다고 들었네."
"나 말고도 제자들이 몇 있지."
"……!"
"나보다는 한 수 아래지만 다른 블랙요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녀석들이지."
"그들도 일진회에 합류했나?"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키워졌어."
"……?"
"양아버지가 은퇴할 때 진 빚이 있다더군."
장건후는 강혁에게 양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으음, 그렇다면 국정원에서 찾아온 정체불명의 사내의 지시로 요원을 훈련시켜줬단 말이군."
"맞아, 아버지도 그리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결국은 그렇게 해주었지."
"자네는 어떻게 일진회에 합류하게 된 건가?"
"…훈련시킨 자들을 다시 돌려보낼 때 나도 그 길로 아버지 곁을 떠났지."
"……!"
"할 줄 아는 게 소매치기 아니면 그것였으니. 결국 나도 그길로 가게 된거지."
"그쪽에서 스카우트 한건가?"
"그런 셈이지."
"흐흠."
강혁은 장건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국정원 내에 일진회의 세력이 뿌리를 내린 것은 오랜 역사였다.
이대로 국정원 내에 있는 변절자들을 그대로 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강혁은 반드시 그들을 뿌리 뽑을 생각이었다.
김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그들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생길 수 있었다.
'먼저 그들의 손과 발을 잘라야해. 그렇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도 모래 위에 쌓는 성일뿐이야.'
강혁은 장건후를 향해 말했다.
"원하는 뭐든지 서포트 해주지. 이 일에 최선을 다해주게."
강혁의 말에 장건후는 씨익 웃었다.
"시작부터 나름 재미있는 일이군. 앞으로도 계속 날 즐겁게 해달라구. 회장님."
"그럼, 부탁하네."
강혁은 장건후의 말에 든든함을 느끼며 병원을 나섰다.
* * *
"참담하기 그지 없군요."
국정원 원장 최길룡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야. 자네 책임이 아니네."
김 대통령은 자책하는 최길룡을 위로했다.
최강수 대통령의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내려오던 세력이었다.
한순간에 이들을 일소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동안 국정원 개혁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선은 이들의 손발을 잘라야 한다는 강 회장의 말은 분명 맞는 말입니다."
최길룡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블랙 요원이란 자들이 그렇게 위험한 자들인가?"
"그렇습니다. 만일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대통령님의 목숨도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으음."
국정원장의 말에 김 대통령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어렵게 이루어진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외환위기라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아래서 숨죽이고 있지만 경제사정이 나아진다면?
지금의 위기 상황이 진정되고, 국가 경제가 안정기에 접어들게 된다면?
오랜 세월 군사독재정권에 야합하여 단물을 빨아왔던 세력이 다시 준동할 수 있었다.
만일 그들과 국가조직 각계에 숨어 있는 야합세력들이 힘을 합친다면?
언제든 힘들게 이뤄낸 민주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민주 정권이 등장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던가?
김 대통령은 반드시 자신이 재임하는 동안 국가 조직에 암약하고 있는 이들을 발본색원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군부 내의 사조직인 하나회는 전임 대통령이 과감한 인사조치로 처리한 상태였다.
다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만일 자신이 암살당하고 비상사태가 벌어진다면 그것도 완전히 믿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이런 중차대한 일을 강 회장에게 의지해야 하다니."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최길룡이 다시 한 번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현재 상태에서는 국정원 내부 인물은 누구도 믿기 어려웠다.
섣불리 이들에게 국정원 내 사조직의 처리를 맡긴다면 사전에 정보가 샐 우려가 컸다.
그렇기에 이번 일은 전적으로 강 혁에게 일의 처리를 맡기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최 국장과 김 대통령은 최대한 협조해주기로 했다.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소. 그러니 일일이 사과할 필요는 없소. 최 원장."
김 대통령의 말에 최 원장은 그저 죄송할 뿐이었다.
* * *
강혁은 태우 그룹 본사 빌딩에 있는 회장실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결재해야 할 서류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항상 국내에 잔류하여 업무를 볼 수 없는 강혁으로서는 초반에 회사의 틀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규철 선배님과 그 친구가 잘 해내야 할 텐데."
강혁은 사인을 한 서류철을 내려놓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능하면 자신이 직접 그들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은 이제 거대 그룹의 수장이었다.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수십만 명에 달했다.
이제는 함부로 몸을 굴릴 처지가 아닌 것이다.
이미 장건후와 치룬 일전으로 수없이 많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이리나에게는 엄청난 후폭풍이 있었다.
강혁은 몇 차례나 이리나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
다시는 그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맹세하고서야 겨우 이리나는 화를 풀었다.
강혁은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할 수 없지. 다들 걱정하는데 무작정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
강혁은 다시 서류의 산에 머리를 처박았다.
하루라도 빨리 회사가 다시 본 괘도에 오르려면 해야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한참 서류에 몰두하던 강혁이 다시 고개를 처들었다.
"그건 그렇고. 또 다른 작전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군."
강혁은 회장실 밖으로 나있는 서울의 밤 풍경을 감상하며 손을 턱에 괴었다.
신상현의 저택.
"그래, 지난 번에 본 손해를 만회할 방법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미륵불님."
40대 중반의 남자가 고개를 처박은 채로 말하고 있었다.
"한 번 들어나 보지."
신상현의 말에 그제서야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이번 정보는 정확합니다."
"흥, 지난 번에도 들었던 이야기로군."
"죄, 죄송합니다. 미륵불님.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정보입니다."
"말해봐."
"애플이라고 아십니까?"
"애플?"
모를 리가 없다.
회귀 전 애플과 삼강은 전 세계의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던 두 회사였다.
엄청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터라 신상현이 모를 수가 없는 회사다.
"그 회사에서 엄청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신제품?"
"정확한 것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줄 제품이라고 합니다."
신상현은 남자의 말을 듣는 순간 그가 무엇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이폰!'
삼강이 후발 주자로 뛰어들어 애플의 아성을 넘어섰지만 애플의 영향력은 심대했다.
시장을 개척한 기업으로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애플은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리드했다.
"지금은 비롯 예전의 기세를 못보여주고 주춤하고 있지만 신제품이 발표되면……."
"주가가 크게 상승하겠지."
신상현의 말에 남자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미륵불님."
"그래서, 자네는 그 정보를 어떻게 알게 된 건가?"
신상현은 신기하다는 듯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제가 별달리 투자의 신이라고 불렸겠습니까?"
남자의 말에 신상현은 피식 웃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확실히 이런 쪽 정보에 대해 많은 소스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도 신상현은 남자의 정보가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플에 투자를 하자는 건가?"
"그렇습니다. 지금 애플 주식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이 투자의 적기인 셈이죠."
"그렇긴 하지."
신상현은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회귀 전의 역사를 생각해봐도 애플에 대한 투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투자할 만한 곳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흠, 말해보게."
애플을 시작으로 사내는 신상현에게 투자할만한 곳에 대한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로 신상현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신상현은 회귀 전 거의 걷혀 지내다시피 했던 과거와 아직 어렸던 나이.
두 가지 요소 때문에 현 시점에서 세계 경제의 움직임에 대해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했다.
단지 대략적인 흐름만은 알고 있었는데, 사내가 하는 말들이 모두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맞아 떨어졌다.
신상현은 어느 순간부터 사내가 하는 말에 푹 빠져들었다.
이미 엄청난 자금을 지니고 있지만, 돈이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따르는 자들 앞에서 지난번의 실패를 만회할 필요도 있었다.
'흐흐, 알고 보니 꽤 쓸 만한 작자군.'
신상현의 두 눈이 빛났다.
지난번에는 크게 실패했지만 강혁의 공작에 모르고 당한 것일 뿐, 실력은 충분히 훌륭한 자였다.
'앞으로 내가 세울 제국에 좋은 금고지기가 될지도 모르겠군.'
쉴 새 없이 앞으로 투자해야 할 회사들에 대해 설명하는 사내를 신상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