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46화
246화
윌 가에 대대적인 한풍이 몰아쳤다.
천정부지로 치솟아 오르던 IT기업의 주가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직원 네다섯 명에 불과하던 기업을 일약 업계의 스타 기업으로 떠오르던 IT업계였다.
사람들은 닷컴이란 글자만 붙어도 묻지마 투자를 하곤 했다.
하루 아침에 몇십 배가 주가가 급등하는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미친 광풍이 마침내 멎은 것이다.
업계를 선도하던 애플을 비롯해서 다수의 기업들이 타격을 입었다.
구글과 페이스북으로 승승장구하던 강혁의 회사 역시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하지만 이미 이런 사태를 예상했던 강혁은 주가 하락에 배팅했다.
공매도와 인버스 펀드에 대대적인 자금을 풀었기 때문에 골든 타워는 이번에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하루아침에 주가 총액 10조가 사라진 구글과 페이스북의 주가 하락이 아무런 충격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윌가에서는 이번에도 골든 타워가 대박을 터트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IT버블이 터지면서 초상집이 된 업계에서 유일하게 웃은 기업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실제로 강혁은 이번 사태로 오히려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고 있었다.
그야말로 잭팟을 터트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신상현도 있었다.
와장창!
벽면에 유리잔이 부딪히며 박살이 났다.
하지만 아무도 신상현을 제지하지 않았다.
시중을 드는 백발의 노 집사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많은 돈이 모두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게 말이 돼?"
신상현이 가진 힘 중 하나는 바로 자금력이었다.
강혁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엄청난 자금력으로 조직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그 자금력에 큰 금이 간 것이다.
아직 남아 있는 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자금의 90%나 되는 돈이 모두 날아갔다.
신상현은 분통이 터져서 미칠 지경이었다.
처음 주가가 하락할 때 재빨리 손절했더라면 이런 지경에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회귀 전 미래에서 보았던 회사들의 장래를 믿었다.
틀림없이 대박이 터질거라 기대하던 종목들이 버블과 함께 모두다 하한가를 쳤지만 말이다.
매일 매일 주가가 끝을 모르고 하락하는 중에도 신상현은 매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적으로 매수에 들어갔다.
언젠가 주식이 반전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말렸지만 신상현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신상현을 따라 많은 일진회 회원들이 함께 투자에 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상현이 투자한 회사 중 하나가 부도가 나버렸다.
IT버블로 인한 타격을 견디지 못해 그만 회사가 아예 망해 버린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신상현은 믿기지 않았다.
삼강의 전무였던 자신이 그 기업의 CEO를 직접 만나보기까지 했었다.
미래에 인텔과 함께 업계를 양분했던 회사가 망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급히 사람을 보내 사태의 진상을 조사시킨 신상현은 조사보고서를 잃고 망연자실했다.
회사의 CEO가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CEO가 바뀌어 있었다.
원래 전무였던 사람이 현재의 CEO였고, 전 사장은 이미 회사를 팔고 이직한 후였다.
믿기지 않는 사실에 좀 더 조사를 진행하자 전 사장이 이직한 회사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회사의 이름은 놀랍게도 골든 테크노.
골든 그룹의 자회사였다.
강혁이 회사의 핵심 브레인인 전 사장과 연구원들을 이미 빼돌려 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사실을 깨닫게된 신상현은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그만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신상현은 그후 자신이 투자한 모든 회사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그랬더니 단 하나의 회사도 빠짐없이 강혁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실을 알게 된 신상현은 눈 앞이 깜깜해졌다.
이미 자신이 가진 자금의 90%를 투자한 후였다.
그런데 그 회사들이 모두 이미 자신이 알고 있던 회귀 전의 회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미래에 회사를 키울 기술과 연구원들은 이미 모두 강혁의 회사로 넘어간 상태였다.
도저히 회생할 가망성이 없는 껍데기만 남은 회사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동안 쏟아 부은 돈을 회수할 가망성이 사라진 것이다.
"끄으응, 이제 와서 돈을 회수하라고 할 수도 없고."
신상현은 자신을 따라 돈을 투자한 일진회 회원들을 떠올렸다.
이대로라면 조직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 일은 우리만 알고 있어야 해."
"알겠습니다. 도련님. 하지만 이미 부도난 회사가 있어서……."
"그곳에 투자한 자들이 누구지?"
"제법 됩니다."
노집사는 신상현에게 명단을 내밀었다.
"이학규 전 대법원장과 박지수 전 감사원장이 문제로군."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자들이 아닙니다. 조직 내에서도 입김이 센 자들이라."
"시간 끝 것 없어 오늘 밤 안에 처리해."
신상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방해가 되는 자들은 죽음으로 입막음하겠다는 것이다.
"내부에는 반발이 있지 않을까요?"
"국정원에서 움직이고 있는 중이야. 그들에게 조직의 기밀을 누설하려 했다고 해."
"알겠습니다. 도련님."
국정원에서 비밀리에 일진회를 조사 중이라는 소문이 조직 내에 쭉 퍼지고 있었다.
실제로 국정원 요원과 접척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 국정원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사실로 보고 있었다.
사실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국정원 내에 내부인이 있는 일진회에 그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다만 신상현 측에서는 그만큼 비밀리에 수사 중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국정원장이 그저 연막만 피우고 있을 뿐 어떤 요원도 실제로 움직이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소문만으로도 일진회 측에서 활동이 크게 위축된 것은 사실이었다.
신상현의 지시로 국정원 내부의 일진회 사람들은 일체의 다른 활동을 멈추어야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조사하려는 자들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총력을 집중했다.
그러는 동안 강혁은 자신의 부하들을 시켜 외부의 일진회 조직을 색출하는데 주력했다.
다른 한편으로 국정원장 최길룡은 덤으로 내부의 수상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일진회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신들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말이다.
"도련님, 잃어버린 돈은 다시 회수하기 어렵습니다."
"……."
"이참에 삼강의 후계자로 확실히 못을 박으시는 것이……."
노집사의 말에 신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야. 이번 주말 오랜만에 그곳을 방문해야겠군."
"준비해두겠습니다."
노집사가 말했다.
비록 최영혜가 관리하던 돈 상당수를 잃었지만 아직도 그들에게는 비장의 수가 남아 있었다.
바로 삼강 그룹이다.
장남이 미국에서 사고로 죽은 후, 남아있는 삼강의 유일한 후계자가 바로 신상현이었다.
비록 그동안 가지고 있는 자금의 90%를 잃었다고 해도, 만일 삼강그룹을 삼킬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충분히 만회가 가능했다.
삼강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지금도 강력했지만 앞으로 세계를 주름잡는 회사가 되면서 더욱 커진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그 힘이 서서히 약화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신상현은 최영혜를 이용해서 그 문제도 해결할 생각이었다.
개돼지들이 아무리 짖어 되어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강고한 제국.
그리고 자신은 그 제국의 황제가 되는 것이다.
"강 형사님. 이번에는 확실히 제가 한방 크게 먹었군요."
신상현이 입술을 이죽거리며 말했다.
얼굴은 아직 앳된 미소년이었지만 마치 성인이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은 기괴한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걸로 제가 무너질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일그러진 얼굴의 음영 속에 미소년의 껍질 속에 숨어 있는 괴물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신상현은 결정을 내리자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뭐라고요?"
강혁은 전화를 받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일진회 소속으로 파악하고 있던 전직 감사원장과 대법원 판사가 연이어 사고사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서다.
"누군지는 몰라도 프로가 한 솜씨입니다. 증거가 일체 남지 않았어요."
박정철의 말에 강혁이 물었다.
"신상현이 한 짓이라면 대체 왜 이들을 죽인 걸까요?"
"지금 조사 중입니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알아봐 주세요."
"예, 회장님."
강혁은 박정철의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어쩐지 신상현이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모두 일진회 내에서도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일제 시대때에 일본에 부역한 댓가로 일군 엄청난 재산과 그 후 자식들을 공부시켜 지금까지 엘리트로 살아왔다.
대법원장과 감사원장을 지내면서 법조계에 일구어 놓은 인맥도 상당했다.
이들이 일진회 내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한날 한시에 사고로 죽었다?
일진회 내에서도 이상하게 여길 것이 분명했다.
"왜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일까?"
강혁으로서도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신상현은 자신이 놓은 덫에 완벽히 걸려들었다.
엄청난 자금을 껍데기만 남은 회사에 쏟아 부은 것이다.
순식간에 물경 10조에 달하는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신상현이 성급한 행동을 하고 있는데에는 그 사라진 돈이 이유일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 그렇다면 이제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군."
강혁은 회장실에서 씨익 웃었다.
이번 사건이 신상현과 일진회가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신호탄같았기 때문이다.
"당장에는 공포로 조직을 장악할 수 있겠지만… 그게 과연 언제까지 갈까?"
강혁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손에 잡힐 듯 분명했다.
이번 일은 신상현 혼자서 투자한 것이 아니었다.
일진회쪽 사람들 역시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다.
지금까지 신상현의 말을 따라서 엄청난 거금을 벌어들였던 그들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말을 따라 투자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강혁도 직접 확인했다.
그러니 이번 사건으로 그들 역시 엄청난 돈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무너질 것이다.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갔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고 했던가?"
강혁은 누구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조용히 읊조렸다.
"신상현이 투자한 회사들에 대한 내부정보를 흘리도록 해."
"알, 알겠습니다. 회장님."
전화를 받는 상대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그런데 저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이번 일을 끝내면 미국으로 떠나. 경호원도 붙여주지."
"감, 감사합니다. 회장님."
전화기 너머의 사내는 연신 몸을 굽신거렸다.
그는 얼마 전 신상현에게 투자 정보를 알려주었던 전 청와대 경제 수석이었다.
자신의 정보대로 투자한 신상현이 엄청난 돈을 잃었다는 사실을 안 사내는 망연자실했다.
신상현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때 강혁이 그에게 접근했다.
목숨을 지켜주는 대신 자신을 위해 일하라고 포섭한 것이다.
사내는 목숨을 지켜주겠다는 말에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