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47화
247화
#65장 4년 후
삼강 그룹 신철호 회장의 저택.
"그래, 석준이 앞으로 된 주식을 네게 넘겨달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아버님.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해두는 것이 주주들 입장에서도 좋지 않겠습니까?"
신상현은 삼강 그룹 회장인 신철호를 향해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나이지만 신상현의 말은 상당히 조리가 있었다.
일면 천진난만한 모습도 엿보였지만 태도에는 전혀 주눅들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자세나 태도에서 언듯언 듯 번접할 수 없는 기품까지 엿보였다.
이제 겨우 중학생에 불과한 나이와 사촌집을 전전하고 심지어 보육원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였다.
게다가 신철호는 그동안 기라성같은 회사의 중역들도 자기 앞에서 기에 눌리는 모습들을 보아왔다.
세상 천지에 어느 누가 삼강의 주인 신철호 앞에서 이리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말했단 말인가?
신철호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여태 그런 사람을 몇 명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눈 앞의 아이가 그랬다.
당당히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 보며 응당 자신의 것이어야 할 것이라며 권리를 주장한다.
신철호는 자신도 모르게 씩하고 웃었다.
마음에 든 것이다.
―그래, 제국의 후계자가 데려면 적어도 이런 배포는 있어야지.
어차피 물려 줘야 할 회사였다.
아직 자신이 정정하니 앞으로 10년은 끄덕 없지만 후계 구도는 미리 확실히 해두는 것이 나았다.
괜시리 딴 생각을 먹는 자들이 나타나기 전에 말이다.
다만 현재 신상현은 최영혜의 양자였다.
성도 바뀌어 신상현이 아니라 최상현이다.
"네 양어머니께는 말씀드렸느냐?"
"예, 어머니께서는 쾌히 동의하셨습니다."
"흐흠, 그렇다는 말이지."
지난 달 보궐 선거에서 대한국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최영혜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었다.
아직 정치 경력은 일천하지만 벌써부터 그를 다음 대선의 유력 후보로 꼽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최강수 대통령의 후광 효과로 그 밑으로 수많은 정치인들이 몰려들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의 피붙이가 그런 사람의 양아들이라니?
게다가 자신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최영혜가 그리 끔직히 아낀다고 하지 않는가?
비록 법적으로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지만 그건 그리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피붙이인 것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이미 친자 확인에 대한 것은 철저히 검증이 끝났다.
신상현은 분명히 자신의 아들이었다.
다만 그 사실을 공포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자신의 기대대로 최영혜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면?
틀림없이 이 사실을 가지고 물어뜯는 자들이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외적으로는 최대한 숨기는 것이 좋았다.
일단은 큰 아들의 주식을 양도하면서 최측근에게만 공개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알았다. 그건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지."
"그럼, 형님의 주식은 제게 이전해주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처리하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아버님."
신철호가 허락을 하자 신상현은 흉중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삼강의 늙은 괴물 신철호가 모르는 사실이 한가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신상현이 이미 삼강의 최대 주주 중 한사람이라는 사실 말이다.
신철호와 신석준을 제외하면 신상현이 한국인 중에서는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 신석준의 주식이 더해진다면?
신철호를 넘어서는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된다.
물론 신철호에게는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우호지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니 섣불리 그를 경영에서 배제하려고 해서는 역풍이 불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신상현에게는 아직 나이라는 핸디캡이 존재했다.
그러니 이대로 몇 년간은 얌전히 숨을 죽이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최영혜를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강혁이 날고 긴다고 해도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적수는 없게 된다.
한순간의 실수로 강혁의 덫에 걸려 그동안 모아놓았던 자금을 잃어버리고, 조직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삼강과 대한민국 정부 두 가지를 얻는 순간 모든 것이 뒤바뀌게 될 것이다.
신철호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신상현은 차에 올라탔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무슨 일이지?"
전화기 너머로 음산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샤크 박광수였다.
―보스, 김일환이 강혁과 통화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김일환은 전 청와대 수석으로 이번에 자신에게 투자 정보를 알려준 사람이다.
"역시 그랬군."
신상현은 입가를 이죽거렸다.
"그래 통화 내용은 확인했나?"
―이번에 투자한 회사들에 대한 정보를 조직에 뿌리려 했습니다.
"뭐야?"
박광수의 말에 신상현은 불을 뿜듯한 분노를 표했다.
"정보를 뿌리기 전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놈을 잡아서 처리해!"
―예, 보스.
신상현의 지시에 박광수는 전화를 끊으며 입가에 음소를 피웠다.
"오랜만에 피를 보겠군."
전화를 끊은 박광수는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담배를 입가에 가져가 물었다.
"뭐라고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희가 막았어야 했는데 그 전에 급습을 당했습니다."
뿌드득―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꽉쥐었다.
작전이 실패해서가 아니었다.
비록 부패한 인물이지만 신상현의 손에 누군가 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장일환 경제 특보와 같은 수법입니다."
"그렇군요."
안타까운 한숨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장일완 경제 특보는 골든 그룹의 가짜 투자 정보를 신상현에게 빼돌린 사람이었다.
저수지에서 자살한 것으로 언론에는 발표되었지만 신상현에게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무래도 회장님과 통화한 직후 당한 것 같습니다."
"아뇨, 그 친구가 조금만 더 빨리 우리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게 안타깝군요."
강혁은 입맛이 썼다.
하루만 더 빨리 전 청와대 수석 김창완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제안을 받은 후 김창완은 이리저리 고민하던 사이에 그만 신상현의 마수에 걸린 것이다.
"뭐, 신상현으로서는 시간을 번 것에 불과합니다. 어차피 얼마 안가 일이 터질테니까요."
강혁의 말 그대로였다.
지금도 신상현과 일진회가 투자한 주식들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신기술 개발을 통해 주가가 극적으로 반등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 기술을 개발할 개발자와 앞으로 떡상할 기술들을 모두 강혁이 빼돌린 이후이니 말이다.
"그리고 신상현이 삼강의 신철호 회장을 만난 것 같습니다."
"그래요?"
강혁은 박정철의 말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금세 이해했다.
"아무래도 주식을 넘겨 받을 생각인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흐흠, 재미있게 됐군요."
삼강 회장 신철호의 맏아들 신석준은 현재 미국에서 버젓이 살아 있었다.
사고로 위장당해 죽을 위기에 처한 신석준을 강혁이 구해주고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죽음을 전제로 이전된 주식은 당사자가 살아 돌아오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신상현의 눈 앞에 신석준이 살아돌아오면 무슨 일이 생길까?
게다가 강혁과 솔라스, 그 외 해외자본들이 소유하고 있는 삼강의 주식이 더해지면?
신상현이 삼강을 삼키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강혁은 신상현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강혁의 마음 속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일진회!
지금 신상현이 사라진다고 해도 대한민국을 갉아 먹는 암세포같은 일진회는 살아 남을 것이다.
게다가 전면에 등장한 최영혜를 이용해서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장악하려 할 것이 뻔했다.
신상현이 사라져도 제2, 제3의 신상현이 등장한다는 뜻이었다.
'때를 기다려야 하는 건가?'
지금 삼강이라는 디딤돌을 거둬버리면 신상현은 일진회 내부의 불만세력에 잡아먹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강혁 개인의 원수는 갚을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는 계속 암울하게 흘러가게 된다.
회귀 전 역사 보다 더 강력해진 최영혜의 정치적 팬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강혁은 마음 속이 복잡해졌다.
지금이라면 일진회 내부에서 신상현에 대한 불만세력들이 등장하는 족족 신상현이 제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부의 결속이 보이지 않게 금이 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피와 공포로 통치하는 조직은 반듯이 분열하게 된다.
지금이 신상현이 하고 있는 행동이 딱 그런 행동이었다.
지금 당장은 몇 명에 불과해도 앞으로 자신들이 큰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에 눈 앞에서 대들지는 못한다고 해도 불만은 쌓일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 강혁이 조금씩 불씨를 당겨준다면?
신상현은 강혁이 손을 대지 않아도 스스로 일진회 내부를 정리하려 들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조직을 붕괴시켜나간다면?
"아쉽지만 아무래도 하늘이 네게 시간을 남겨 준 것 같군. 신상현."
빠드득―
손아귀에서 뼈소리가 났다.
그만큼 강하게 손을 쥔 것이다.
'좀 더 기다려보지. 하지만 그리 오래는 아닐 것이다. 신상현.'
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았다.
사람들이 활기차게 거리를 걷고, 자동차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경제가 다시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얼굴에도 회색이 다시 살아나 있었다.
강혁은 신상현에 대한 복수를 좀 더 미루기로 했다.
그의 급소가 바로 눈 앞에 보였다.
그렇기에 지금 그를 노리지 않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하지만 개인의 복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회귀 직전이라면 생각지도 않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리에 오른 강혁은 처음 회귀 당시와는 이미 다른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거물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어떻게 진행되는냐에 따라서 역사의 향방이 바뀔 정도다.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했다.
강혁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하염없이 창밖의 거리 풍경을 바라보았다.
* * *
4년 후 뉴욕.
"존 회장님, 이쪽입니다."
강혁은 자신을 부르는 경호원의 목소리를 따라 이동했다.
주변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자신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오늘은 유엔 총회가 있는 날이다.
강혁은 기후 변화를 위한 유엔 협약과 관련된 회의에 기조 연설자로서 초대를 받았다.
세계 최초로 전기 자동차를 생산 회사를 설립하고, 매년 20%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골든 자동차 회사의 회장이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동안 강혁의 주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 골든 그룹은 스마트폰과 전기 자동차 판매의 호조에 힘입어 일약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어 있었다.
마이크로 소프트 사를 세 배 이상 능가하는 규모의 매출을 해마다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구글과 페이스북의 성장세만 하더라도 마이크로 소프트사를 맹렬하게 따라잡고 있었다.
여기에 전 세계에 광풍처럼 몰아친 스마트폰의 빅히트와 전기자동차의 성장세는 여기에 날개를 달았다.
포브스지가 발표하는 세계 부자 순위에서 작년부터 기업인 중 1위를 차지했다.
앞으로 이 순위가 10년 동안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앞으로 10년 후에는 남미의 독재자와 아라비아의 왕족들을 포함해도 강혁이 1위를 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한마디로 앞으로 10년 후, 지구 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강혁이 될 것이라는 소리였다.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록펠러의 재림이라는 평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발끈하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골든 그룹의 회사원들이다.
그들은 노조를 탄압하고, 자기 회사 직원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던 록펠러와 강혁이 비교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보다 회사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강혁 회장이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