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49화
249화
킨 박사의 신병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에 강혁은 전율했다.
회귀 전의 역사를 통해 킨 박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작전을 기획하고 박정철에게 그와 가족들을 포섭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압둘 카디르 킨은 98년 파키스탄이 핵실험에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문제는 그가 파키스탄 당국의 허락없이 리비아, 이란, 북한에 핵기술을 팔아 넘기다는 사실이다.
킨이 해당 국가에 넘긴 것은 고농축 우라늄제조에 필요한 원심분리기와 핵개발 기술이었다.
2004년 킨은 그 사실을 국영방송에 나와 고백하고 이후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게 된다.
이미 조국을 위해 핵무기 개발을 성공시킨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왜 리비아, 이란, 북한에 관련 기술을 팔아 넘긴 것일까?
강혁은 그 점에 주목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지만 핵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면 결코 큰돈이 아니지."
킨 박사와 그 가족은 비밀리에 제3국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곳에서 성형 수술을 받은 후, 완전히 신분을 세탁하고 네덜란드로 가게 된다.
그곳에 고농축 우라늄제조에 필요한 원심분리기를 만들 강혁의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강혁은 대한민국 정부에 핵개발 기술과 원심분리기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파키스탄이 그랬던 것처럼 핵실험에 성공해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 강혁의 구상이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원대한 그림을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한 셈이었다.
"후후, 북한이나 리비아 그리고 이란에서는 엄청 당혹스러워 하겠군."
강혁은 미소를 흘렸다.
원래 킨은 세 나라에 핵기술과 장비를 넘길 생각이었다.
이미 비밀리에 세 나라의 정보기관과 접촉을 시도 중이었다.
그런데 강혁이 엄청난 금액의 돈으로 킨을 포섭해 버린 것이다.
앞으로 남은 평생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돈을 약속했기에 킨은 가족과 함께 강혁의 품으로 온 것이다.
앞으로 두고두고 남북간에 큰 골칫거리가 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이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 셈이었다.
"스티브, 이제 그만 돌아가지."
"예, 회장님."
강혁은 태운 거대한 리무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는 강혁은 하루하루 지내는 나라나 도시가 달라지기 일수였다.
오늘은 미국이지만 내일은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새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뉴욕에 있을 생각이었다.
"올해는 정말 바쁜 한 해가 되겠군."
이동 중인 차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강혁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평화롭기만 한 뉴욕 거리가 앞으로 몇 개월 후면 아수라장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9.11 테러가 일어나는 해였다.
그 때문에 박정철과 정보팀은 정신없이 바쁜 한해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현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의 조지아 부스 대통령이었다.
민주당 정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이유로 조지아 대통령은 강혁을 꺼려했다.
공화당의 실세 중의 하나인 윌슨 의원이 여러 차례 조언을 했지만 조지아 대통령은 듣지 않았다.
왠지 이유 없이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강혁은 그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역사를 바꾸어 왔는데 9.11은 안 되는 건가?'
강혁은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앞으로 몇 년은 더 걸리게 될 전세계 기후변화 협정을 맺기 위한 발걸음을 뗀 날이다.
회귀 전 역사에서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전 지구적 협약은 2016년에야 체결되었다.
세상에 파리기후변화협정이라고 알려진 협약이다.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전 지구적 합의안이 마련된 것이다.
이 협약은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체택해서 함께 노력하자고 합의한 최초의 기념비적인 협약이었다.
파리협약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도 아래에서 억제하고,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강혁의 기억 속 역사에서 이 일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처럼 여겨졌다.
왜냐햐면 세계 각국에서 노력은 했지만 변화를 위한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대로 흘러갔다면 전지구적 종말이 다가오는 것은 불가피해 보일 지경이었다.
게다가 파리 협정은 여전히 몇 개 국가가 참여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은 한 번은 탈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일까지 있었다.
다시 그런 역사가 반복되면 어쩌면 인류에게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다.
강혁은 그렇게 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갈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 인생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복수가 다였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인류 전체를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미래를 알고 있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운이 너무 좋았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지 올해로 2년째였다.
엄청난 부와 힘이 자신에게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10년 이내에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아랍의 왕족이라 해도 강혁과 비교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강혁은 그럴수록 더 책임이 느껴졌다.
일종의 메시아 신드롬이라고 할까?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는 것이다.
하지만 강혁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핵과 9.11과 기후협약이라? 나도 참 바쁘게 살아가는군.
강혁은 입맛을 다셨다.
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하필 조지아 대통령이 자신을 멀리했다.
강혁은 회귀 전의 역사를 떠올렸다.
9.11테러로 희생당한 사람들.
그리고 그 후의 미국과 세계정세.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모두가 암울한 것뿐이었다.
2001년 9.11이후로 세계는 테러와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세계 각국에 퍼지는 공포와 증오.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자들.
강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나 녹록치 않은 것이 없었다.
"만리장성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던가?"
강혁은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일단 조지아 대통령부터 어떻게 해야겠어."
민주당에 협력했다며 자신을 멀리하는 조지아 대통령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 난감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할 생각이었다.
차 창 밖으로 화려한 뉴욕의 거리가 지나갔다.
강혁은 다시 다른 생각에 잠겨 하염없이 거리를 바라보았다.
* * *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님, 윌슨 의원님이 오셨습니다.
비서의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 들려왔다.
조지아 대통령은 인터폰 버튼을 누르며 대답했다.
"들어오시라고 해요."
조지아 부스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리며 윌슨 의원이 들어오자 먼저 다가가며 친근하게 한 손으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윌슨 의원님, 어쩐 일이십니까? 참, 댁의 예쁜 따님은 요즘도 활약이 대단하더군요."
조지아가 딸의 이야기를 거론하자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나누던 윌슨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뭐, 아직 멀었어요."
"하하, 무슨 소리세요. 안젤라 윌슨 검사의 활약은 여기 워싱턴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인데요."
조지아 부스 대통령의 말대로 요즘 안젤라는 연일 방송을 타고 있었다.
뉴욕의 마약 조직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러시아 조직을 소탕해서 모두 감옥에 보낸 것이다.
"이번 뉴욕 시장 선거에 공화당 대표로 나가 보는 건 어떨까요?"
"흠흠,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통령님."
윌슨은 조지아 부스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현 시장인 줄리아나는 최근 지지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한 번 승부를 걸어 볼만하다는 말이 워싱턴 정가에서 회자 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조지아 부스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통령인 조지아 부스로서도 공화당의 텃주 대감인 윌슨 상원의원은 귀한 손님이었다.
이번에 자신이 대통령으로 뽑힐 수 있었던 데에는 윌슨 의원의 도움이 컸다.
자신이 공화당의 후보로 입후보 했을 때, 제일 먼저 전화를 준 의원이 윌슨 상원의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조지아는 의아했다.
평소 윌슨 상원의원이 자신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줄 몰랐던 것이다.
오히려 애송이인 주제에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인이 되었다고 평가할 줄 알았다.
사실 당시에는 공화당 안에서도 대부분 뒤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자 다른 의원들도 자신을 다시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후 후보 경선에서 자신이 공화당 후보로 당선되는데 윌슨의 도움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 이렇게 환하게 맞이하는 것이다.
"아, 그 전에 차라도 한 잔 하시죠."
"좋지요. 어디 백악관 커피 맛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죠. 하하하."
"실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윌슨 의원님."
잠시 후 두 사람 앞에 향기로운 원두커피가 놓여졌다.
"흐흠, 이건… 콜롬비아 산인가요?"
"맞습니다. 의원님도 여기 걸 좋아하시죠?"
대통령의 말에 윌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아 대통령이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비서실에 커피를 주문한 것이다.
두 사람은 커피 잔을 들고 입가에 가져갔다.
백악관 집무실 안에 향기로운 커피향이 가득 찼다.
'역시 대접이 다르구만. 존의 말을 듣기를 잘했지.'
윌슨은 후보 경선 때의 일을 떠올렸다.
당시 윌슨은 사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후광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조지아 부스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는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후보 경선에서는 다른 후보를 지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결정을 뒤바꾼 것은 강혁이 한 조언 때문이었다.
'다음 대통령은 공화당에서 나오는데 아버지가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됩니다.'
강혁이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바로 현 대통령인 조지아 부스.
그의 아버지 조지아 워커 부스는 미국의 제 41대 대통령이었다.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몰아낸 사막의 폭풍 작전을 성공시킨 사람이었다.
'존, 그 말이 정말인가?'
'윌슨 의원님, 이번 선거에서는 조지아 부스 쪽에 거십시오.'
'……!'
강혁의 조언대로 윌슨은 후보 경선 초기부터 조지아 부스를 지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화당에 대선 승리라는 달콤한 과실을 가져다주었고 말이다.
그 후, 윌슨의 공화당 내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조지아 대통령이 윌슨 상원 의원을 얼마나 존중하고 배려하는지는 워싱턴 정가에서 유명할 정도였다.
윌슨으로서는 강혁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가지 않아 일어났다.
그것은 조지아 대통령이 강혁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 윌슨이 조지아 부스 대통령에게 강혁에 대한 말을 꺼냈을 때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았다.
"예?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래를 보는 사람이 있다고요?"
마치 어떻게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미국의 대통령에게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여기까지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이기에 윌슨도 아무렇지 않았다.
문제는 그 후로 다양한 실례와 증언을 통해 강혁의 능력을 알려준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