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51화
251화
#66장 나비 효과
투투투투투―
강렬한 헬기음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협곡 위로 무장 헬기 한 대가 착륙을 시도했다.
나무를 보기 힘든 황량한 황토색 협곡에는 군복을 입은 북부동맹군이 헬기가 착륙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헬기가 내리자 그 안에서 야전군복을 입은 박정철이 알파팀 요원들과 함께 내렸다.
"당신이 실버 울프의 스티븐 팍인가요?"
스티븐 팍은 박정철의 영어 이름이다.
박정철은 자신을 찾는 남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제가 스티븐 팍입니다."
"환영하오. 형제여."
북부동맹군 군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박정철을 향해 양 팔을 크게 벌리며 포옹했다.
박정철의 방문을 크게 환영하는 제스쳐였다.
그럴 만도 했다.
골든 그룹을 통해 현재 판지시르 계곡에 여러 지원이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현재 탈레반이 정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 탈레반을 지원하고 있는 곳은 파키스탄과 미국이었다.
탈레반에 대항해 전쟁을 벌리고 있는 북부동맹은 인접한 러시아과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런 차에 비밀리에 골든 그룹 산하의 실버 울프가 북부동맹군을 방문한 것이다.
"내 이름은 카르발이라고 하오. 마슈드 장군님의 부관이죠."
군복을 입은 사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카르발, 반갑습니다. 마슈드 장군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하하, 걱정 마시오. 안그래도 당신이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계시오."
카르발의 말에 박정철은 내심 안도했다.
혹시나 지원만 받고 자신을 만나지 않으면 어쩌나 했던 것이다.
"그럼 날 따라 오시오."
카르발의 말에 박정철은 그를 따라 나섰다.
알파팀 요원들도 그의 뒤를 따르자 주변의 병사들이 막아섰다.
"괜찮아, 여기서 대기해."
박정철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최요한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류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걱정말고, 다녀와요. 대장."
박정철은 카르발을 따라 나섰다.
북부동맹군은 판지시르를 거점으로 모여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반군이다.
아니 사실 5,6년 전만 해도 지금의 북부동맹군이 정부군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96년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공격하자 마슈드가 정부요인들을 호위하여 카불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북부동맹군을 결성하고 고향인 판지시르에 거점을 마련한 것이다.
현재 이곳은 탈레반 정부군에 반기를 든 자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판지시르는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깊은 협곡으로 둘러 쌓인 천혜의 요새였다.
과거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에도 유일하게 함락 하지 못했던 지역이었다.
탈레반이 정부를 구성한 지금도 이곳은 탈레반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흐마드 샤 마슈드는 이곳 판지시르에 모여든 반군들의 구심점이었다.
강혁은 마슈드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회귀 전의 역사에서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마슈드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이면서도 다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사람이었다.
그가 지배하고 있는 판지시르는 탈레반이 다스리는 다른 지역과는 판이하게 다른 곳이었다.
탈레반과 전쟁을 치루고 있는 지금에도 마슈드는 이곳에 살고 있는 국민들을 세심하게 돌보고 있었다.
이곳에는 수도와 전기시설.
이슬람식 남녀공학 초등학교.
12개의 의원(醫院), 그리고 외과 수술도 가능한 세 개의 종합병원이 있었다.
소련과의 전쟁 중에도 마슈드가 다스리던 이곳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유일하게 살 만한 지역이었다.
그런 그가 죽지않고 살아서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후의 역사는 강혁이 알고 있는 역사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 모두의 영웅인 마슈드라면 그를 중심으로 국가가 뭉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군이 10년을 주둔하면서 엄청난 예산을 투자했는데도 불구하고, 탈레반에게 너무도 쉽게 나라를 뺏긴 전철을 밟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만일 마슈드가 암살 당하지 않았다면?
9.11 테러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현재 북부동맹군은 수도 카불 근처까지 진격하고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있는 탈레반이 수도를 뺏기고 퇴각할지도 몰랐다.
그가 9월 9일에 암살당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의 죽음 이틀 후.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 본토에 대규모 테러공격을 자행했다.
알 카에다의 거점인 아프가니스탄이 북부동맹군의 손에 넘어갔다면 감히 그런 공격을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 센터장님. 마슈드를 암살 위협에서부터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장님.'
강혁과의 대화 이후, 박정철은 긴급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몇 차례나 판지시르를 찾았다.
처음에는 낯선 이방인인 그를 의심하고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카불 입성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북부동맹군의 사령관인 마슈드를 만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판지시르에 골든 그룹의 엄청난 물량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휴, 드디어 오늘 마슈드를 만나는 건가?'
박정철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이틀 후면 9월 9일이었다.
즉, 앞으로 이틀 후, 마슈드가 암살당하는 것이다.
박정철은 어떻게든 그가 암살당하기 전에 만나 암살을 미연에 방지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집무실 가까이로 걸어갈 때였다.
박정철의 눈에 현지에서 보기 어려운 차량 한 대를 보았다.
"아, 오늘 스티븐을 만나기 전에 해외 기자들을 만나기로 하셨답니다."
"기자요?"
"원래는 이틀 후에 인터뷰가 잡혀 있었는데, 스티븐과 약속이 생기면서 오늘 함께 잡았어요."
"그게 혹시 외신 기자입니까?"
박정철이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맞아요. 그런데 왜?"
카르발이 의아한 표정으로 박정철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한 발의 총성이 집무실 안에서 들려왔다.
탕―
박정철과 카르발은 깜짝 놀라 집무실을 향해 달려갔다.
카르발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두 사람이 다가갈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외국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박정철과 카르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신들?"
카르발이 의혹스런 표정으로 두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눴다.
박정철이 집무실 안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마슈드가 쓰러져 있어요."
카르발이 깜짝 놀라며 집무실 안을 바라볼 때 외신 기자 중 한명이 카르발을 향해 총을 들었다.
탕―탕―
풀썩. 풀썩.
총을 겨누던 외신기자 둘이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졌다.
박정철이었다.
몸에 숨겨두었던 총을 꺼내어 속사로 쏜 것이다.
카르발은 힐끗 박정철을 바라본 후 집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슈드 장군님!"
마슈드의 복부 한복판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카르발―"
"장군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내가 순진했어. 카메라에 총을 숨겼더군."
박정철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카메라를 들고 살폈다.
"셔트를 누르면 총알이 발사되게 되어 있군요."
"장군님. 의료진을 부르겠습니다."
"난… 이미 늦었어. 그보다 군대를……."
마슈드는 뭔가 더 말하려다가 그만 정신을 잃어 버렸다.
"장군님!"
카르발이 소리쳤다.
박정철은 다급히 다가가 그의 목에 손가락을 갖다되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어. 기절한 것 뿐이야. 하지만 이대로 피를 더 흘리면 늦어!"
"어, 어쩌죠?"
"헬기로 모셔 갑시다. 다행히 응급 치료를 할 장비도 있어요."
박정철의 말에 카르발은 마슈드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일어나 급히 혈기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뭐라고요? 마슈드가 긴급 수술 중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다행히 판지시르에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있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이곳 시설로는 회복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를 보낼 테니 가까운 유럽의 우리 병원에서 수술시켜요. 반드시 살려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강혁과의 통화를 마친 박정철은 긴급 후송 작전에 돌입했다.
탈레반 측에서 2차 공격을 할 수 있었기에 비밀리에 마슈드를 이송해야 했다.
그리고 탈레반 측에 한가지 소문이 흘렀다.
판지시르의 사자 마슈드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수도 카불에서는 탈레반 군의 함성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수도 인근까지 진격했던 북부동맹군은 전투를 멈추고 더 이상의 진격을 감행하지 않았다.
* * *
"응? 뭐라고? 존, 그게 무슨 말이야?"
안젤라는 강혁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은 내가 하는 말이 믿기지 않겠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어. 안젤라. 제발 날 믿어줘.
강혁의 말에 안젤라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안젤라는 자신의 집으로 걸려온 강혁의 전화를 받고 기뻐했다.
오랜만의 통화였다.
사업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강혁이라 만나기가 싶지 않았던 것이다.
때로는 자신이 바빠서 강혁이 시간을 내어도 만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매일 새벽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안젤라는 이미 아침을 간단히 먹고 잠시후 사무실로 출발할 생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강혁의 전화가 걸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들떠서 강혁과 대화를 나누던 안젤라는 얼마가지 않아 깜짝 놀랐다.
"뭐라고, 쌍둥이 빌딩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켜야 한다고?"
―맞아, 안젤라. 그것도 지금 당장.
안젤라는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각은 오전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존,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앞으로 정확히 76분 후에 아메리카 항공 11편이 쌍둥이 빌딩 북쪽 타워에 부딪힐 거야.
"……!"
―그리고 17분 후인 9시5분에 남쪽 타워에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남쪽 타워에 부딪혀.
"오 마이 갓."
안젤라는 강혁의 말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충돌이 발생하고 빌딩이 화재에 휩싸이게 된 지 1시간 42분만에…….
"……?"
―110층짜리 빌딩 두 개가 모두 붕괴 되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게 돼. 안젤라.
"……!"
강혁의 말에 안젤라는 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했다.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안젤라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납치 사건 때도 강혁은 F.B.I에게 마치 눈 앞에서 본 듯이 납치된 장소를 알려줬다는 것을.
그때도 강혁의 말을 믿기 어려웠던 사람들 앞에서 강혁은 마치 마술사라도 되는 듯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수사관들에게 어디를 어떻게 수색하면 되는지 알려주고 자신도 함께 그 장소로 출발했다.
그리고…….
안젤라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자신을 인질로 잡고 있던 납치범 앞에서 강혁이 했던 말들을…….
강혁은 놀랍게도 납치범 본인 외에는 누구도 모르는 그의 과거사를 폭로했다.
자신을 인질로 잡고 의기양양하게 경찰들을 위협하던 납치범은 강혁의 말에 얼마나 당혹해했던가?
강혁이 납치범의 숨기고 싶은 과거사를 폭로하자 납치범은 그만 당황해서 허점을 노출했다.
만일 당일 강혁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랬다면 자신의 목숨도 그날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알았어. 존. 내가 뭘 하면돼?"
안젤라의 단단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