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53화
253화
"……!"
줄리아나의 표정이 썩은 토마토처럼 변했다.
안젤라의 말을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전화 제보 하나로 이 많은 인원을 움직였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시장님."
"미쳤구만?"
줄리아나 시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쌍둥이 빌딩에 입주해있는 회사와 사무실 근무 인원 전체가 대피 중이었다.
이곳 빌딩에 입점해있는 고급 식당과 쇼핑센타 직원들도 엄청난 수였다.
이들 식당들은 오늘 장사를 위해 아침부터 준비해서 점심 때 손님들을 받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오늘 점심 장사를 모두 망치는 셈이다.
만일 안젤라가 받았다는 제보 전화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엄청난 질타가 쏟아질 것이 뻔했다.
'허허, 이것 참. 웃어야할 일인지 울어야할 일인지.'
자신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유력후보인 안젤라가 이번 일로 타격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줄리아나는 재빨리 머리 속으로 정치적 계산이 섰다.
"만일 자네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책임질 각오는 된 거겠지?"
줄리아나 시장은 짐짓 무서운 표정으로 안젤라를 노려 보았다.
"물론입니다. 시장님."
안젤라의 표정은 단호했다.
정말 단순한 전화 제보에 불과한 것이 맞는지 순간 의심스러워졌다.
'뭐야? 정말 따로 특별한 증거가 발견된 것이 아닌 거 맞아?'
줄리아나 시장은 순간 당혹했다.
조금 전 줄리아나 시장은 안젤라에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아침 일찍 쌍둥이 빌딩에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제보의 신빙성을 담보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줄리아나는 너무나 황당했다.
증거를 담보할 수 없는 제보를 받고 이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하고, 빌딩에서 근무하는 사람 모두를 대피시킨 것이다.
만일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다면 안젤라의 정치적 생명은 끝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확신에 찬 단호한 표정이라니?
순간 정말로 테러가 일어나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로 이번 테러 제보에 따로 신빙성 있는 증거가 없는 것이 맞나?"
"안타깝게도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테러 시도가 있을 겁니다. 시장님."
"그, 그래?"
안젤라의 말에 줄리아나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줄리아나 시장은 여전히 그녀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테러가 일어난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대피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정치인은 말을 아껴야 하는 법이다.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뭐, 알았네. 이번 일은 자네가 전적으로 책임지기로 했으니 말이야."
줄리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비켰다.
그가 물러나자 안젤라 주변으로 이번 대피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실무자가 나타났다.
"안젤라 검사장님, 두 빌딩에 있는 인원들 전원을 대피시켰습니다."
"그래요? 혹시 남아 있는 사람은 없나요?"
"지금 맨 위층에서부터 전수 조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남아 있는 인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안젤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뉴욕시경의 특수기동대 대장 제임스 타워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지금 몇 시나 됐죠?"
안젤라가 물었다.
"잠시만요… 어디보자 8시30분이군요."
제임스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그렇군요. 고마워요. 제임스 대장님."
"아닙니다."
제임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제임스 타워는 안젤라에게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사실 뉴욕에 사는 대다수의 미혼남자들은 안젤라에게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이번 일로 안면을 트게 되어 제임스는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로서도 일말의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은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뉴욕의 대테러 대책을 맡고 있는 경찰 특수 부대로서 말이다.
하지만 그도 이번 일에 따른 정치적 부담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쌍둥이 빌딩은 뉴욕에서 가장 거대하고 큰 빌딩 중 하나이다.
뉴욕의 명소 중의 하나라 이곳에 입주해 있는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대피로 이들 회사가 일제히 일손을 멈추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만일 이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니 아무도 다치지 않는 다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일이 이대로 해프닝으로 끝나면 그 여파는 상상을 불허했다.
모든 미디어가 나서서 그녀를 물어 뜯을 것이다.
"…괜찮겠습니까? 검사님?"
제임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안젤라를 바라보자 그녀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었다.
"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어요."
"그… 그래요?"
제임스는 그녀의 얼굴 표정에서 뭔가 확고한 고집같은 것을 느꼈다.
뭘까? 그녀를 이 정도로 확신하게 만드는 것은?
제임스는 마음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다.
* * *
"시장님, 어떻게 됐습니까?"
상당히 거구의 체격에 배가 살짝 나온 50대 후반의 백인 남성이 줄리아나 시장이 다가오자 물었다.
그의 주변에는 비슷한 연배에 경륜이 우러나오는 백인 남성 둘이 함께 서 있었다.
입고 있는 고급스런 정장과 구두를 보면 세 사람 모두 상당한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게 참……."
줄리아나는 백인 남성에게 다가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맥케인 회장님."
"……?"
"안젤라 검사장이 아무래도 내년 시장 선거를 앞두고 마음이 앞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시장님."
맥케인의 오른쪽에 서 있는 중후한 표정의 백인 남성이 물었다.
"그게… 아침에 받은 전화 제보 때문에 이 사단을 벌이고 있는데 아무래도 증거도 없이 움직인 모양입니다."
"……?"
줄리아나 시장의 말에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우리 모두 시간을 분초로 쓰는 사람들입니다."
"알고 말고요. 회장님."
세 사람은 모두 쌍둥이 빌딩에 입주해있는 기업의 회장들이었다.
"이건 용납할 수 없어. 명백한 검찰청의 폭주야."
멕케인이 잔뜩 뿔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유감입니다. 회장님."
"당신이 시장이잖소. 어서 모두 철수시키세요. 우리가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는지 아시오?"
"알고 있습니다. 로건 회장님. 하지만 이 건은 제 권한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줄리아나 시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검찰청에 테러 제보가 와서 제보를 받은 기관장이 움직인 것이다.
아직 수사 중인 사항이라 시장이 함부로 나서기 어려웠다.
"끄응, 그럼 대체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거요."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죠. 제보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면 바로 움직이실 수 있을 겁니다."
"허, 이해할 수 없군. 증거도 없이 이 많은 사람들을 빌딩에서 내쫓다니. 이건 명백한 업무 방해죄야."
"과잉 수사에 업무방해."
"이건 말도 안돼. 내 친구들을 모두 움직여서 내년 선거에서 박살을 내주겠어."
로건 회장과 매케인 등이 돌아가며 씩씩거렸다.
줄리아나는 표정 관리를 하며 속으로 신나했다.
'그래주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로건, 그리고 맥케인 씨.'
한창 인기 절정인 안젤라지만 이번 일이 어그러지면 내년 선거는 그대로 자신의 승리로 굳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줄리아나는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경쟁자가 알아서 넘어지지 않는가?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인기 좀 있다고 이건 아니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왼쪽의 더글라스 회장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더글라스는 정치계에 친구가 많은 사람이었다.
"안젤라 검사가 아무래도 자기 아버지를 믿고 이런 짓을 벌이는 모양인데…흥, 두고 보라지."
'흐흐흐, 갈수록 태산이군. 안젤라. 이걸 어떻게 수습할까? 볼만하군 그래.'
줄리아나 시장은 더글라스 회장의 말에 입가가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자신은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아무튼 유감입니다. 시장으로서 사과드리죠."
"아니 이게 어디 시장님이 사과할 일입니까? 다 안젤라 저것이 기고만장해서 벌리는 일이죠."
로건 회장의 말이 점점 과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 전까지는 검사장이란 말을 붙여주고 있었는데 이제는 호칭도 사라지고 없었다.
"엇! 저기 방송국까지 왔군."
"그렇군요."
멕케인 회장의 말에 고개를 돌아보니 과연 방송국 카메라가 와있었다.
하긴 언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한참 회사에 출근할 시간에 빌딩에 있던 사람들 전원을 퇴거 조치 하는 대형 사건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 이유가 테러 징후를 포착했기 때문에 건물 내 사람들을 긴급 대피시킨 것이었다.
"흐흐, 이건 뭐 해보기도 전에 끝났군."
"예? 뭐라고요?"
"아니, 아닙니다. 멕케인 회장님."
줄리아나가 급히 말했다.
* * *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뭐라고? 테러 징후로 인한 긴급대피?"
조지아 부스 대통령은 비서실장의 말에 깜짝 놀랐다.
"예, 대통령님. 지금 뉴욕시경의 경찰특공대가 쌍둥이 빌딩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답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F.B.I국장이나 C.I.A에서 보고된 건 없었잖아?"
"그것이 오늘 아침에 뉴욕 검찰청에 제보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뭐야? 어떤 제본데?"
"오늘 오전에 쌍둥이 빌딩에 테러가 있을 거라는 전화 제보였습니다."
"신빙성은 있는 건가?"
"확인 중인 모양입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대통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 CNN에서 현장을 방송하고 있다니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장 TV를 켜게."
대통령의 말에 집무실에 있는 TV가 켜지고 CNN중계가 떴다.
화면에는 이른 아침 출근길에 쌍둥이 빌딩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쌍둥이 빌딩에서 퇴거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제보를 받고 저러는거지?"
대통령이 황당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비서실장이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님, 안젤라 검사장의 말로는 존 회장이 한 제보라고 합니다."
"뭐, 뭐야? 존 회장이라면 그 영매쟁이 존 강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대체 무슨 짓이야? 아빠랑 딸이 다같이 날 엿먹이려는건가?"
비서실장의 말에 조지아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냈다.
"대체 어떻게 된 사람들이기에 그 사람 말이라면 뭐든지 곧이 곧대로 믿는거야?"
조지아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이 거론하는 사람이 공화당의 실세인 윌슨 가문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윌슨 상원의원과 그 딸 안젤라 윌슨은 모두 공화당의 중요 인사들이었다.
특히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공화당은 뉴욕 시장 탈환을 벼르고 있었다.
안젤라 검사장은 누구보다도 그 역할에 적역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 당사자가 일을 친 것이다.
"안젤라 검사장은 지금 어디에 있나?"
"현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기 보이네요."
마침 CNN 방송 영상에 안젤라 윌슨의 모습이 보였다.
가을 코트를 입고 현장을 진두 지휘하는 안젤라 윌슨의 모습은 한마디로 그림이 되었다.
"쯧, 스스로 경력을 망치다니."
조지아 부스는 기가 막혔다.
국가 안보의 최일선에 있는 C.I.A와 F.B.I
양쪽 모두 오늘 아침 쌍둥이 빌딩에 테러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두 거대 정보부처의 수장이 알지 못하는 테러 징후를 대체 일개 기업 회장이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