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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57화 (257/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57화

257화

승객들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너도나도 안전벨트를 매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 사이 조금 전 기장실에서 나왔던 백인 남성과 흑인 남성을 향해 동양인이 외쳤다.

"톰, 해리슨 무슨 일인지 확인해봐."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던 두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장실을 향했다.

두 사람은 금세 기장실 문 앞까지 당도했다.

백인 남성이 흑인 남성과 눈빛을 교환하자 흑인 남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인 남성이 총을 꺼내어 엄호 동작을 취하자 흑인 남성이 재빨리 기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했다.

해리슨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말자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그의 뒤를 이어 톰도 총을 겨누고 사방을 살폈다.

하지만 기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일을 저지르고 사라진 것이다.

"…이런?"

톰은 기장실 안의 상황을 살피고는 난감한 표정을 취했다.

해리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장과 부기장 모두 목덜미에 칼을 찔러 죽은 상태였다.

"맙소사! 잘못하면 내년 오늘이 내 기일이 되겠는데?"

"그렇게 둘 순 없지. 당장 팀장님을 불러."

톰이 죽은 기장을 밀치고는 자리에 앉았다.

톰이 말에 해리슨이 몸을 돌릴 때 이미 이규철 팀장이 기장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누구 짓이지?"

"모르겠어요. 이미 우리 둘이 들어왔을 때는 이런 상태였어요."

해리슨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팀장님, 조정 할 줄 아세요?"

"휴,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있었지."

"……?"

"톰, 자리를 바꾸자."

이규철의 말에 톰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기장 자리로 옮겼다.

"하아- 후욱!"

이규철은 조정간을 잡고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다행히 지난 반 년간 이규철은 비행 조정사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비상 사태에서 비행기를 조정해 착륙시키는 랜딩 훈련을 지속적으로 훈련했다.

하지만 지금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었다.

자신이 조그만 판단미스로 수백 명의 목숨이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선배님, 어려운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규철은 반 년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제 목숨은 이미 그 날 회장님께 맡겼습니다.'

이규철은 자신을 향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 강혁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지난 반년간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회장님이 본 미래처럼 이 사람들이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이규철은 비행기 조정간을 굳게 잡고는 인근 공항을 향해 비행기의 항로를 조정했다.

사실 오늘 긴급히 팀을 꾸려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그야말로 천우신조였다.

새벽 무렵에서야 강혁이 비행기에 탑승해야한다고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이만한 팀이 구성된 것도 그야말로 행운이 따랐다고 말할 수 있었다.

강혁은 팀원들을 소집하고 간발의 차이로 비행기에 탑승시킬 수 있었다.

그나마 지난 일주일 동안 비상대기를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강혁은 가능하면 테러가 일어날 수 있을 만한 모든 비행기에 팀원들을 탑승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문제가 된 것은 미국 정부였다.

정권을 잡은 후, 강혁을 멀리한 조지아 부스 대통령이 실버 울프에 대해 대대적인 감사를 진행시킨 것이다.

민간 군사 기관인 실버 울프가 미국 정부의 눈을 피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조사가 벌어졌다.

그것이 하필이면 테러가 일어날 시점에 벌어진 일이었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9.11 테러를 막기 위해 별도의 팀들을 꾸려서 철저히 대비하고 있던 강혁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결국 외부에 알려져 있는 조직은 단 한팀도 이번에 출동하지 못했다.

오늘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들은 미국 행정부의 눈을 피해 겨우 빼돌린 사람들이었다.

이들이라도 비행기에 탑승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하늘이 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감사에 나선 미국 정부 조직의 감시는 집요한 것이었다.

시쳇말로 실버 울프를 탈탈 털었다고 할 수 있었다.

역사에 만일이라는 것은 불필요한 말일지 모르지만 만일 미국 행정부의 집요한 감사가 없었다면?

아니 애초에 윌슨 의원이나 클링튼 대통령이 강혁에 대해 조지아 대통령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그랬다면 희생을 더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테러를 막기 위해 노력한 일들이 오히려 테러를 막을 수 없게 만든 셈이니 말이다.

강혁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노력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역사의 변곡점인 셈이었다.

어렴풋이 강혁도 느끼고는 있었다.

최선을 다해 역사를 바꾸어도 결국에는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삼양 백화점 사건이 그랬고, 이번 테러 역시 그랬다.

그렇게 보면 자신이 역사를 바꾸는 일 조차 어쩌면 정해진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어떤 우주적인 의지의 도구로 자신이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강혁이 어떤 생각인지 알지 못하는 이규철은 어떻게 해서든 은인인 강혁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강혁에게 연락이 왔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팀원들을 데리고 비행기에 올라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규철은 추락하는 비행기와 200명의 승객들을 데리고 목숨을 건 비행에 나서고 있었다.

"대통령님, 지금 한 대의 비행기가 국회 의사당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강혁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대통령에게 제복을 입은 장교 한 명이 급하게 다가와 연락을 전했다.

"존 회장, 지금 여객기 한 대가 국회의사당 쪽으로 날아가고 있다는데……".

"그 여객기입니다."

"……?"

"지금 비행기 안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이 승객과 기장을 인질로 잡고 자살 테러를 감행 중입니다."

"맙… 맙소사!"

강혁의 말에 조지아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이 맞다면 미국은 엄청난 인명 피해와 함께 국가적인 위신이 추락할 일이었다.

이미 여객기 한 대가 국방성으로 날아와 충돌했지 않은가?

비록 간발의 차이로 국방성에 있던 사람들은 대피할 수 있었지만 비행기에 탄 승객들은 살아 날 수 없었다.

대통령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미 합참의장인 제럴드 장군이 대통령에게 다가왔다.

"대통령님."

"제럴드 장군."

"연락 받으셨겠지만 이대로 10여 분 후면 여객기가 국회의사당에 충돌할 겁니다."

"……으음."

"지금 인근 해안에서 정박 중인 항모에서 전투기 두 대를 출동시켰습니다."

"……?"

"명령을 내리시면 공중에서 격추시키겠습니다."

"……!"

충격적인 말이었다.

미국 국민들 200여명이 타고 있는 민간 항공기였다.

그것을 전투기에서 쏜 미사일로 폭파시키겠다니?

하지만 그대로 두면 미국 정치의 상징인 의사당이 파괴된다.

"힘드시겠지만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제럴드 장군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지아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귀에 대고 있던 위성 전화기를 툭하고 내려놓았다.

"장군, 참으로 잔인한 결정을 요구하는구려? 지금 내게 자국민을 학살하라는 것이요?"

"그대로 두면 승객들의 목숨도 잃지만 미국의 상징도 파괴됩니다."

"……."

조지아 부스 대통령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힘겹게 입을 뗐다.

"현재 의사당에 사람들은 대피시켰소?"

"아시겠지만 회기 중이라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피 명령을 내렸으니……".

"알겠소. 그대로 진행하시오."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제럴드 장군이 목례를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조지아 대통령은 긴 한숨을 쉬고는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존 회장 미안하오. 힘든 결정을 해야 해서 말이오."

"저도 들었습니다. 대통령님. 작전을 멈춰 주십시오. 미사일을 발사해서는 안 됩니다."

"미안하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그게 아니라 비행기 안에는 제가 보낸 작전팀이 투입되었습니다. 비행기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뭐라고?"

"미사일 명령을 멈춰 주십시오."

"……!"

조지아 대통령은 고개를 돌려 작전실을 돌아보았다.

제럴드 장군이 긴 원탁회의장으로 다가가 전화기를 드는 것이 보였다.

조지아 대통령은 몸을 날렸다.

그리고 원탁회의장으로 달려가 소리쳤다.

"멈춰요! 멈춰요. 제럴드 장군. 작전을 취소하오."

전화기를 들고 미사일 격추를 명령을 내리려던 제럴드 장군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통령님, 이대로 두면 국회의사당이……".

"작전팀이 투입되었소. 비행기를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하고 비행기를 탈취할거요."

"…….!"

대통령이 상황을 설명하고 있을 때 전화기를 들고 있던 제럴드 장군의 귀로 전투기 조정사가 물었다.

"흰독수리, 여기는 레드. 명령을 내려달라."

"레드, 작전을 취소한다. 다시 말한다 작전을 취소한다."

"여기는 레드. 알겠다. 오버."

"레드 팀은 그대로 상공에서 대기하라."

"알겠다. 흰독수리."

제럴드 장군과 통신 중이던 맥케이 중령은 한숨을 돌렸다.

조금 전 그의 손가락은 사이드 와인드 미사일 발사대를 쥐고 있었다.

엄지를 내리는 순간 미사일은 200여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기를 향해 날아갔을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죄 없는 승객 200여명을 죽여야 할 상황에 놓였던 멕케이 중령은 다시 대기 상태로 돌입했다.

그리고 불안한 눈으로 레이더에 잡혀 있는 여객기를 바라보았다.

"대통령님, 어디의 팀이 들어간 겁니까?"

제럴드 장군이 물었다.

이때에는 이미 지하 뱅커의 상황실에 C.I.A와 F.B.I 국장도 자리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육,해,공군의 장군들과 이들 국장들은 모두 일제히 누가 보낸 팀인지 서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자 제럴드 장군이 대통령에게 물은 것이다.

"아마도 실버 울프인 것 같소."

"실버 울프라면?"

제럴드 장군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F.B.I 국장이 대답했다.

"골든 그룹의 계열사로 민간 군사 기업입니다."

"골든 그룹? 존 강 회장의 골든 그룹 말이오?"

"그렇습니다."

제럴드 장군이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민간군사기업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국방성과 함께 일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제럴드 장군은 민주당 정권 시절에는 요직에 있지 않아서 강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민간군사기업에서 어떻게 알고 작전팀을 보낸 거죠?"

안보 회의에 참석해 있는 고위급 인물 중 하나가 물었다.

"내가 승인했소."

모두가 영문을 몰라 서로를 바라볼 때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이오?"

"여러분들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기밀이오. 그렇게만 알고 있으시오."

조지아 대통령의 말에 모두는 의아했지만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전대미문의 테러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희망섞인 소식이었다.

자신들은 모르는 뭔가가 있는가보다 생각하고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존 회장, 내가 잘못했소. 부디 우리 국민들을 구해주시오.

조지아 대통령은 자신이 강혁을 멀리하고 감사를 지시한 일을 뼈에 사무치게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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