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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58화 (258/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58화

258화

#68장 예언자

워싱턴 덜레스 국제 공항 관제탑.

"지금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이 공항으로 긴급회항하고 있습니다."

항공 관제사가 급히 자신의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뭐라고? 대체 무슨 일이야?"

"조정간을 잡은 사람은 기장이 아니라고 합니다."

"맙소사. 마크, 자리를 비켜주게."

워싱턴 덜레스 국제 공항의 항공 관제를 총괄하는 크리스 워너는 아침부터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로 정신이 없었다.

벌써 두 대의 여객기가 공중 납치 당해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들과 같은 업계의 관계자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뉴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긴급회항이라니?

여기는 백악관과 국회가 있는 워싱턴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덜레스 공항의 크리스 워너요. 지금 조정하는 사람은 누구십니까?"

통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관제소의 말에 이규철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이 비행기를 탄 승객입니다. 제임스 리라고 해요. 이곳에 테러 시도가 있었소."

"맙소사! 현재 상황을 말해봐요."

"승객들이 힘을 합쳐 테러리스트는 잡았지만 기장과 부기장이 모두 죽었어요."

"당신은 괜찮나요?"

"나는 괜찮소. 곧 공항에 진입할 텐데 도와줘요."

이규철의 말에 크리스 워너는 비상사태라는 것을 직감했다.

"좋아요.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들으세요."

크리스 워너는 부하직원들에게 당장 활주로를 비우고, 소방차와 의료차를 비상대기 시키라고 지시했다.

이제부터 200여 명의 목숨이 자신과 제임스 리라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었다.

"제임스 씨, 혹시 비행경력이 있습니까?"

"공교롭게도 지난 반 년 간 비행기 조정 훈련을 받았소. 하지만 이런 큰 비행기는 처음이라……."

이규철의 말에 크리스 워너와 옆에서 통신을 듣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약간의 안도감이 흘렀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아닌 셈이다.

희망과 가능성이 엿보였다.

"좋아요. 제임스 씨. 우리 둘이 한 번 해봅시다."

크리스 워너는 이번 판에 자신의 경력이 걸려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고도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 조정간을 자동항법장치로 돌리세요. 그리고……."

이규철은 크리스 워너의 지시를 따라 하나하나 시행하기 시작했다.

*     *     *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

제럴드 장군이 전화기에 대고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안보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이 제럴드 장군을 바라보았다.

제럴드 장군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더니 고개를 돌려 조지아 대통령에게 말했다.

"대통령님, 실버 울프 팀이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하고 비행기를 공항으로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제럴드 장군의 말에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다.

"그게 사실입니까? 제럴드 장군."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조지아 대통령은 제럴드 장군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마터면 자신의 손으로 죄없는 200여명의 미국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 했기 때문이다.

조지아 대통령은 진심으로 강혁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의 명령에 의해 여객기에 미사일을 발사시켰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만해도 끔직했다.

솔직히 말해서 조지아 대통령은 그 일을 생각만 하며 토할 것 같았다.

절대로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자국 국민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대통령이라니?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악명이 될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생각만 해도 구토가 일어났다.

'평생을 두고 감사해도 모자랄 일이야.'

조지아 대통령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     *     *

"지금이야. 당겨요."

크리스 워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규철은 그의 말을 따라 즉시 랜딩 기어를 당겼다.

그러자 비행기 하단에서 바퀴가 빠져나왔다.

털컹. 털커덩.

비행기가 몇 번의 진동과 함께 공항 활주로에 육중한 몸을 내렸다.

마지막까지 덜레스 공항의 관제사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끝까지 긴장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활주로에 랜딩을 성공시킨 이규철은 서서히 속도를 줄여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기를 멈추자 공항 관제탑에 있던 모든 관제사와 관계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장면은 그대로 백악관에서도 볼 수 있었다.

뒤늦게 덜레스 공항으로 영상 장비를 갖춘 헬기가 날아갔고, 실시간으로 백악관으로 중계가 된 것이다.

여객기가 활주로에 착륙하자 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관제탑과 마찬가지로 환호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객기가 멈추었을 때는 백악관 지하 벙크 안이 온통 환호의 도가니였다.

그때 다시 한번 조지아 대통령에게 연락장교가 전화기를 건네었다.

"국방성의 커튼 장군입니다. 대통령님."

조지아 대통령은 열띤 표정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커튼 장군."

―대통령님, 존 강 회장이 대통령님께 드릴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어서, 어서 바꿔 주시오."

―예, 대통령님.

이미 조지아 대통령의 태도는 크게 바뀌어 있었다.

전화기를 받은 조지아 대통령은 다시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누구도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연락장교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의 이런 지시에 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의아했지만 특급 보안 상황이라 생각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C.I.A와 F.B.I 국장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는지 말이다.

직전까지 실버 울프에 대한 감사와 조사를 담당했던 F.B.I 국장은 대략 난감했다.

하지만 오히려 C.I.A 국장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사실 새로운 행정부에서 C.I.A 국장으로 임명된 칼슨 굿맨은 강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전임자에게 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직접 확인까지 했었다.

게다가 이번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도 현장 직원들이 수집한 정보들은 테러가 임박해 있다는 상당한 징후들이 존재했다.

비록 테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본토에 테러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대통령에게 직접 직보했지만 조지아 대통령과 행정부 각료들은 그리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통상적인 대비외에 특별한 조치는 어떤 것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든 차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정보당국의 책임자로서 착잡했다.

비록 다른 대책은 없었다고 해도, 그동안 미국 안보를 위해 구축해 놓았던 시스템은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규모 테러에 무방비한 상태였다는 것이 오늘 드러난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결코 이전과 똑같지 않을 거야.'

칼슨 굿맨은 입맛이 썼다.

냉전이 종결되고, 세계는 오랫동안 평화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칼슨 굿맨은 새로운 화약의 냄새를 맡았다.

적에게 당한 미국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상처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미국은 전쟁에 돌입하는 건가?'

칼슨 굿맨은 아마도 강혁과 통화하고 있을 대통령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대통령님.

"존 회장, 고맙소. 우리 국민들을 대신해서 감사드리오."

―아닙니다. 대통령님. 해야 할 일을 한 거지요.

"아니오. 내 개인적으로도 존 회장에게는 정말이지… 너무 고맙구려. 하마터면……."

조지아 대통령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제럴드 장군이 자신에게 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려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200여명의 승객이 타고 있는 자국의 민간 항공기를 미사일 두 발로 격추시키라는 명령을 말이다.

"하마터면 자국 국민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뻔했소."

조지아 대통령은 말을 하면서도 등골이 서늘했다.

그런 오명은 가능하다면 절대 남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상황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만일 미사일 발사를 명령하지 않았다면 정반대로 겁쟁이 대통령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때문에 미국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이 테러당하도록 내버려둔 대통령 말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하아, 존 회장."

―예, 대통령님.

"앞으로 존 회장이 하는 말은 그게 무엇이든 절대 허튼소리로 치부하지 않겠소. 내 하나님께 맹세하지."

―대통령님.

"윌슨 의원과 전임인 클링튼 대통령께서 그렇게나 존 회장의 말을 들으라고 조언했는데……."

―…….

"내가 면목이 없구려."

―사실……쉬이 믿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죠. 게다가 전대미문의 테러 계획이었고요.

"……."

―대통령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강혁의 말에 조지아 대통령은 여전히 자책이 되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위안은 되었다.

"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구려. 하지만 내 실수임에는 틀림이 없소."

조지아 대통령은 책임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언론에 결코 알려질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래, 혹시 내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는 거요? 무슨 일로 전화를 하신 겁니까?"

―예, 오늘 더 이상의 새로운 테러는 없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연락을 취한 겁니다.

"그래요?"

강혁의 말에 조지아 대통령은 크게 기뻐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만해도 이미 미국의 역사 가운데 존재하지 않았던 대사건이었다.

뉴욕의 상징인 쌍둥이 빌딩이 테러를 당하고, 미국 국방성의 남쪽 건물이 불탔다.

이미 미국의 자존심은 크게 훼손되었다.

그런데 더 이상의 공격은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군. 전화를 줘서 고맙소. 앞으로는 언제든 연락을 주시오. 내 개인 번호를 알려드리죠."

사실 강혁은 대통령의 개인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윌슨 의원이 알려 준 것이다.

하지만 조지아 대통령 본인이 알려준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측근들과 가까운 정치인 몇 명만이 알고 있는 번호를 알려준 후 조지아 대통령이 말했다.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존 회장의 전화라면 그게 언제라고 해도 받겠소."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조지아 대통령의 말에 강혁은 넌지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비록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그나마 원 역사와 비교하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적은 희생을 치렀다.

아쉬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희생으로 끝낸 것이 다행스러웠다.

특히나 이규철이 비행기 테러를 막아낸 것만은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원래의 역사에서 그 비행기는 워싱턴으로 날아가다가 도중에 추락했다.

여객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수는 없지만 승객들이 테러리스트와 격투를 벌인 정황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 중 누구도 살지 못했다.

그대로 갔다면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이 목표였을지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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