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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73화 (273/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73화

273화

택시 한 대가 인적이 없는 허름한 맨션형 건물 앞에 섰다.

운전사가 내리더니 좌우를 살피고는 뒷좌석에 쓰러져 있는 여자를 들쳐 업고 나왔다.

다시 한 번 지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 앞에 차 한 대가 섰다.

"아이린, 로렌이 끌려간 건물 내부 구조를 보여줘."

[예, 마스터.]

강혁의 차량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네비게이션 화면에 갑자기 건물 내부 투시도가 떴다.

겉으로 보기에는 올해 태우전자가 출시해서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차량용 GPS 단말기였다.

2000년 미국은 GPS를 민간에 전면 개방했다.

강혁은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산하 연구소에 기술 개발을 지시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태우전자를 인수하자 말자 신제품으로 2001년 올해 출시한 것이다.

타 전자 회사의 기술력을 한참 뛰어넘은 이 신상품은 전세계를 강타 중이었다.

강혁은 회귀 전의 기억을 살려 이 단말기가 게임기로도 전용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아이가 있는 집은 반드시 GPS 단말기를 구입하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현재 태우전자의 주가는 단숨에 시장에서 상한가를 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중이었다.

강혁이 인수하기 전 부도 위기에 몰렸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강혁의 지시로 개조된 이 단말기는 단순한 전자지도가 아니었다.

타인이 알면 기절초풍할 정도로 훨씬 다양한 기능을 가진 물건이었다.

한편 내부 구조를 확인한 강혁은 다시 물었다.

"몇 명이나 있지?"

[건물 내부를 투시하려면 미국 상공에 있는 타이탄3 위성을 이용해야 해요.]

"허가한다."

[승인 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스터.]

잠시 후, 단말기 화면에 건물 내부가 투사되어 나타났다.

"건물 안에 몇 명이나 있지?"

[모두 6명입니다.]

"좋아, 그럼 가볼까?"

강혁은 문을 열고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조금 전 차량에 부착되어 있는 단말기가 들려 있었다.

잠시 후 강혁은 건물 앞에 다가섰다.

단말기에 건물 입구에 서 있던 사람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들어가세요.]

귓가에 아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혁은 바로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와 벽쪽으로 바싹 다가와 붙었다.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요.]

강혁은 아이린의 말대로 재빨리 움직여 왼쪽 벽으로 돌아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세요.]

아이린의 말대로 강혁은 벽쪽에 보이는 위쪽에 작은 창이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질구레한 물건을 보관하는 작은 창고였다.

강혁이 들어간 직후 사람 하나가 그곳을 지나갔다.

간발의 차였다.

[지금 나와요.]

강혁은 바로 문을 열고 창고에서 나왔다.

그리고 단말기 위에 건물 투시도를 따라 표시된 빨간색 화실표대로 이동했다.

[멈춰요.]

강혁이 몸을 멈추자 곧 사람 하나가 복도를 지나갔다.

[지금이에요.]

강혁은 재빨리 지나간 사람의 등 뒤를 지나 복도를 지나쳤다.

*     *     *

"정신이 드나? 로렌?"

낯선 남자의 음성이 귓가를 울렸다.

실비아 로렌은 가늘게 눈을 떴다.

그녀의 시야에 검붉은 피부에 턱에 수염을 기른 아랍인이 보였다.

"누구?"

로렌은 눈을 뜨다가 화들짝 놀랐다.

눈 앞에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 아흐마드."

"흐흐, 날 아는가보군."

아흐마드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

로렌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아흐마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였다.

성전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자기 자식이라도 가차 없이 죽일 자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자, 로렌. 죽기 전에 알고 있는 건 뭐든 우리에게 알려줘야겠어."

"……!"

로렌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그래, 그 얼굴이 보고 싶었어."

"으으. 그냥 죽여줘요."

로렌은 죽음을 호소했다.

"안 돼지. 안 돼. 그건 너무 간단하잖아?"

"크흐흑. 제… 발……."

로렌은 공포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기 때문이다.

알카에다는 결코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단순히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로렌은 몸을 떨었다.

"자, 그럼. 말해봐. 로렌."

"……?"

"혹시 알아? 조금이라도 고통을 감해줄지?"

부르르르르.

아흐마드의 손길에 로렌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거미가 지나가는 듯한 느낌에 로렌은 몸이 떨렸다.

"로렌, 존 강을 만난 적이 있나?"

아흐마드의 말에 로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좋아, 그는 어떤 자지?"

"알…알라께서 선택한 예, 예언자님이에요. 아흐마드."

"후, 예언자라?"

아흐마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래서 이교도 출신이란……."

"정… 정말이에요. 아흐마드."

"그래, 좋아. 로렌. 대체 존 강이란 자가 어떻게 했기에 예언자라는 생각이 든거지?"

"그… 그 사람은 알라께서 주신 계시를 가지고 있어요."

"계시?"

"미… 미래를 알고 있어요."

"……?"

아흐마드가 눈살을 지푸렸다.

"이런, 이런… 그래서 그가 예언자다?"

"알… 알고 있었어요."

"……?"

아흐마드의 얼굴빛이 변했다.

알카에다 수뇌부는 이번 테러 사건에 대해 절반의 성공에 만족해야 했다.

그 이유로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지금도 알카에다에서는 내부의 배신자 문제로 서로를 의심하며 분열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아흐마드는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하고 있는 자였다.

"계속 말해봐. 그가 무엇을 알고 있었지?"

"9… 9월 11일이 원래 계획된 날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아흐마드가 갑자기 로렌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 바람에 로렌은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허―억!"

"그가 알고 있었다고?"

로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 직접 들었어요. 그… 그만… 숨… 숨이……."

아흐마드는 로렌을 노려보다 목덜미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로렌은 겨우 숨통이 트여 숨을 몰아쉬었다.

"알고 있었다고?"

아흐마드는 고개를 돌리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원래 계획된 테러일이 일주일이나 연기된 것은 다름 아닌 한 사람때문이었다.

판지시르의 사자, 아흐마드 샤 마슈드.

그가 이끄는 북부동맹군은 수도 카불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 테러 기지를 두고 있던 알카에다는 그에 대한 암살 모의를 계획했다.

방송국 기자로 위장한 알카에다 대원이 그를 방송장비에 숨겨둔 총으로 암살하는 계획이었다.

이것은 실제로 시도되었고, 암살은 성공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판지시르에서 북부동맹군 총 사령관인 마슈드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외부에 흘러나가지 않았다.

암살 요원 역시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기에 알카에다 수뇌부는 암살 성공여부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그의 죽음을 확인하는데 다시 5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이틀 후, 9월 18일 화요일.

판지시르의 사자 마슈드의 죽음이 확인된 후 알카에다는 마침내 작전을 결행했다.

원래의 계획에서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테러는 계획대로 진행되었지만 성공한 것은 일부에 불과했다.

사망자도 애초에 계획했던 것에 비교하면 적은 수에 불과했다.

미국정치의 심장부인 워싱턴은 건들지도 못했다.

경제 수도 뉴욕의 쌍둥이 빌딩과 군사력의 상징인 펜타곤 건물 한쪽을 무너뜨리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이것만 해도 굉장한 성과였다.

단 한 번도 본토를 공격당하지 않았던 미국이 화들짝 놀랐다.

하늘 끝까지 닿았던 미국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냉전이 끝나고 지구촌 유일의 슈퍼 파워.

모든 나라를 자신의 발 아래로 보던 오만한 미국.

그들의 자존심에 큰 생채기를 낸 것이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중동의 테러리스트들 손에 말이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무 번 라덴은 당혹하고 있었다.

자신의 계획했던 서구 문명과 아랍 세계의 충돌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오만하기 그지 없던 미국의 수장 조지아 대통령.

독실한 우파 기독교인인 그의 입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더 화해의 메시지가 나온 것이다.

원래 그의 성격대로라면 세계를 미국과 동맹 그리고 적으로 나누어 놓을 메시지가 나올 터였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위대한 성전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그것이 오사무와 알케에다가 계획한 것이었다.

테러의 시대.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 없는 새로운 냉전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다.

오사무와 알카에다 수뇌부는 크게 당혹했다.

하나로 똘똘 뭉쳤어야 할 아랍 세계가 둘로 나뉘고 있었다.

아니 한쪽으로 급격하게 몰리고 있는 중이었다.

테러와 테러 세력들을 축출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모든 중동의 크고 작은 테러 조직들이 각국에서 색출되고 추방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이 존 강 때문이었나?"

아흐마드는 뿌드득 이를 갈았다.

"누군가 그 놈과 내통한 자가 있어."

"내통한 게 아니에요. 아흐마드."

아흐마드는 로렌의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또 그 예언자 소리인가?"

"존 강 회장은 정말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요."

"풋!"

아흐마드는 콧웃음을 치더니 다시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예언자 양반은 이번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모양이군."

"……?"

로렌의 얼굴이 다시 두려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아니면 널 별로 중요시하지 않은 모양이지?"

아흐마드는 로렌에게 다가서며 두툼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응? 진짜 예언자라면 왜 널 이렇게 내버려두는 거지?"

"……."

"지금쯤 널 구하러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흐마드는 그녀를 비웃었다.

"네 말이 맞다면 예언자는 널 버린 것이 되는군."

아흐마드의 말에 로렌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로렌, 로렌. 이래서 어리섞은 이교도출신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

"이교도인이 예언자일 리가 없잖아? 알라께서 그런 자를 선택하신다고? 말도 안 되는……."

아흐마드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로렌은 갑자기 입을 다문 아흐마드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얼굴에 기이한 표정이 담겨 있었다.

"놀란 모양이군."

"당… 당신은?"

탕!

갑자기 강혁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어깨 위로 올려 총을 쏘았다.

털썩.

아흐마드는 강혁의 뒤에 나타난 자신의 부하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눈이 커졌다.

눈 앞의 사내는 어떻게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갑자기 나타난 자신의 부하를 쏜 것일까?

"자, 당신도 총을 꺼내서 땅에 던져."

"……?"

"당신 허리 춤 뒤에 숨겨둔 콜드1911 말이야."

"……!"

아흐마드는 강혁의 말대로 허리 춤 뒤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발목에 숨겨둔 총도 꺼내서 던져."

꿀꺽.

아흐마드는 절로 목구멍으로 침을 삼켰다.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도 강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권총을 쥔 손을 어깨 위로 올려 총을 쏠 뿐이었다.

그런데도 귀신처럼 부하들이 나타난 시점에 총을 쏘았다.

털썩하는 두 번의 소리와 함께 부하 둘이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예… 예언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흐마드는 강혁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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