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76화
276화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낡고 자그마한 예배당 건물 바깥에서 망을 보듯 서 있다.
희끈거리는 머리에 가운을 입은 초로의 남자가 예배당 건물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도 검은 양복의 사내들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은색 안경테에 오래된 성경책 하나를 손에 쥔 남자는 조용히 예배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앞으로 들어선 남자의 눈에 낯익은 인물이 기다란 예배당 의자에 앉아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에 조지아 대통령은 기도를 멈추고 일어섰다.
"내가 방해가 되었나요? 프레지던트?"
"린드버그 목사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하하, 나야 항상 잘 지내지. 그런데 무슨 일이지? 대통령 업무로 바쁠 텐데 여기까지 찾아오고 말이야."
"목사님."
조지아 대통령은 린드버그 목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린드버그 목사는 조지아 대통령에게는 은인과도 같은 사람 중 하나였다.
조지아 대통령은 젊은 시절 한때, 술과 마약으로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린드버그 목사는 그런 그가 방황을 끝내고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중 하나였다.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도 린드버그 목사는 조지아에게 있어 조언을 구하는 영적 스승이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조지아."
린드버그 목사는 대통령을 이름으로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다.
조지아 역시 그런 목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이렇듯 언제나 아무런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사이였다.
"제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만난 것 같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지?"
린드버그 목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라니?
조지아 대통령은 그동안 강혁과 있었던 이야기를 린드버그 목사에게 들려주었다.
"맙소사!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놀라운 이야기로군."
"모두 사실입니다. 전임 대통령과 저 모두 똑똑히 겪은 일입니다."
"……!"
린드버그 목사는 조지아 대통령의 말에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21세기에 성경 속의 선지자가 부활했다는 말이 아닌가?
"만일…만일 제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존 회장의 말을 믿었더라면 무고한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조지아 대통령은 참회하는 심정으로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의 말 속에는 진한 회한과 괴로움이 묻어 있었다.
"……조지아."
"모두 제 잘못입니다. 그분들은 제가 죽인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조지아 대통령은 체통도 잊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의 가슴 속에는 후회로 가득했다.
집권 초기.
전 정권의 유력 인사들이 모두 입을 모아 강혁의 말을 믿으라고 했었다.
심지어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공화당의 윌슨 의원조차 강하게 그를 천거했다.
그때 자신이 조금이라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9.18테러는 조기에 방지하고 희생자들을 살릴 수 있었다.
국방부 건물이 파괴되고, 뉴욕의 상징인 쌍둥이 빌딩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지아 대통령의 마음은 자책으로 가득했다.
"제가 교만했습니다. 목사님이 가장 경계한 것이 교만과 자만심이었는데… 모두 제 잘못입니다."
"……조지아."
"그뿐만이 아닙니다. 목사님."
"……?"
지금까지 들은 말 만해도 놀라자빠질 일이었다.
전임 대통령의 재선과 득표율을 예언하고 정확히 맞추었다.
거기다 그 유명한 섹스 스캔들까지 예견하고 클링턴에게 경고까지 했다니.
거기까지는 그렇다치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9.18테러를 예언했다.
수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 갈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것을 미리 알고 희생을 최소한으로 막았다니?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고 한다.
"존 회장이 다시 한 번 미국을 구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또 테러가 있었나?"
린드버그 목사의 말에 조지아 대통령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이번 전쟁은 어쩌면 제2의 베트남 전쟁이 될 뻔했는데……."
조지아 대통령은 이번 일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반드시 할 수 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미국 본토가 공격받은 최초의 사건.
비록 이슬람 진영을 향해 화해의 손을 내밀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번 더욱 전쟁은 피해 갈 수 없었다.
미국의 심장부에 테러를 자행한 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다.
탈레반 정권은 그런 그들을 숨겨주고 비호하는 세력이었다.
알카에다와 탈레반 정권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미국 국민들은 결코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전쟁.
그렇다면 전쟁을 하면 되지 않는가.
누군가는 의문을 품으며 그렇게 물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냐고?
아메리카 합중국의 대통령.
서방 세계를 이끄는 자유 진영의 총사령관.
냉전이 종식되기 전 미국 대통령은 유일무이하게 그런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구 소련이 몰락한 지금.
지구상의 유일한 슈퍼 파워인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친다?
어른이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닌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애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찬찬히 살펴보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분명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국토의 대부분이 평지보다 산지로 이루어진 나라.
국민 대다수가 목축업과 농업에 종사하고 국민 대부분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나라.
이것이 겉으로 보이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지구상의 최빈국 중 하나로 누가보아도 약소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의외의 사실이 보인다.
역사상 어떤 강대국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던 곳.
강대국들의 무덤.
이것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의 진면목이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대한 영토를 소유했던 몽골조차도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는 소련 역시 군사들을 물리고 패퇴했지 않았던가?
미국이라고 다를까.
하물며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몽골 제국과 소련 같은 전제 국가나 독재 정권과는 달랐다.
언론과 국민들이 언제든 정부에 등을 돌려 반전 여론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였다.
자칫 전쟁이 길어지고, 천문학적인 혈세와 미국인의 의미 없는 죽음이 이어진다면?
베트남전 이상으로 치욕적인 상처를 입고 물러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탈레반은 비록 정권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전력을 보전해서 산으로 숨어들 것이다.
그리고 게릴라전을 펼쳐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한 정권이 무너질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주둔시킬 수는 없었다.
잘못하면 모래 지옥처럼 한도 끝도 없이 미국의 혈세가 아프가니스탄에 소모될 수 있었다.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전쟁.
그것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진실이었다.
조지아 대통령으로서는 진퇴양난에 빠져든 시점.
말 그대로 외통수였다.
그런데 그 순간.
존 강 회장이 동아줄을 내려주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겠나?"
린드버그 목사의 말에 조지아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린드버그 목사는 조지아 대통령이 해주는 이야기에 순식간에 흠뻑 빠져들었다.
성경 속 선지자들처럼 미래를 예언하고, 왕에게 적절한 조언을 한다.
그리고 그 말이 백발백중 적중한다.
사욕을 위해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과 무관한 일에도 자신을 희생한다.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이 성경의 선지자가 했던 일과 일치하지 않는가?
"조지아,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사자가 아닌가."
"예, 목사님. 존 강 회장은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이심이 틀림없습니다."
조지아 대통령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 * *
"와아아! 마슈드! 마슈드!"
병사들은 한 손에 총을 들고 끊임없이 소리를 질렀다.
다시 총구들 든 북부동맹군의 전사들이 재개된 탈레반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다.
불패의 장군 마슈드가 그들에게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증명한 일전이었다.
마슈드 장군은 자신을 향해 연호하는 병사들을 향해 양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환호성으로 가득하던 전장의 고함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형제들이여!"
"마슈드!"
"내 형제들이여!"
"마슈드!"
"오늘 그대들은 용감히 싸웠다. 마치 전장 위의 사자처럼, 폭풍을 이끄는 신들처럼."
"와아아아!"
"그대들의 용맹함은 알라께서도 칭찬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와아아! 마슈드 장군 만세!"
"형제들이여!"
"마슈드 장군님, 이게 다 장군님 덕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마슈드! 마슈드!"
병사들이 환호할 때 마슈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대들은 이번 승리 때문에 나를 향해 환호하는가? 그렇다면 그 환호는 잠시 접어두게."
"……?"
병사들은 마슈드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승리는 오랜만에 맛본 값진 승리였다.
게다가 상대의 주력 부대 중 하나를 격파한 것이라 그 의미도 깊었다.
게다가 이번 승리의 일등 공신이 마슈드가 짠 기발한 작전 지시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마슈드 장군님, 이번 승리가 장군님 덕분이라는 것을 우리 중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형제여, 알라께 맹세코 그렇지 않네!"
마슈드는 굳은 표정을 하고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
마슈드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알라께 맹세하자 병사들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누구 덕이라는 겁니까?"
"이번 승리는 물론 열심히 사자처럼 용맹하게 싸운 그대들이 가장 찬사를 받아야겠지. 하지만……."
"……?"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본인은 바로 위대한 알라의 예언자님이시네."
웅성웅성.
마슈드의 말에 장내는 일시에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알라의 예언자?"
"예언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예언자라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인물.
탈레반에게는 끝도 없는 두려움을 안겨주는 전쟁 영웅.
아흐마드 샤 마슈드.
판지시르의 사자.
그가 북부동맹군을 이끌고 다시 전장에 섰다.
이 사실은 그를 상대해야 하는 탈레반 전사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심지어 그가 지옥에서 부활했다는 소리까지 떠도는 상황이었다.
북부동맹군 모두가 존경하고 흠모하는 단 한 사람.
그가 알라의 예언자를 언급하자 모두들 혼란에 빠졌다.
"알라께 맹세코……."
마슈드는 웅성거리며 당혹해하는 병사들을 향해 엄숙한 표정으로 손가락 하나를 높이 쳐들었다.
"…그분은 위대하신 알라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예언자이시네."
"……!"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작전도 모두 그분께서 내게 알려 주신 것이네."
"……!"
마슈드 장군의 말에 모두는 깜짝 놀랐다.
모든 것이 귀신같이 척척 맞아 들어간 작전이었다.
상대 군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정확한 예측을 바탕으로 대승을 거들 수 있었다.
"예언자께서 우리를 도우셨다는 겁니까?"
군중 속의 누군가가 소리쳐 물었다.
마슈드는 소리가 터져 나온 쪽을 바라보며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알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우와아아!
마슈드의 외침에 누군가가 동조하자 군중은 일제히 따라 외치며 열광했다.
알라께서 우리와 함께한다.
알라의 예언자가 우리를 돕는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오늘의 대승은 놀라운 일이기는 했다.
그렇게 북부동맹군 사이에 알라의 예언자에 대한 소문이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