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78화
278화
"이브라힘 이맘께서 이런 곳까지 오신 줄은 몰랐는데 놀랍군요."
알카에다 조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정중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마른 몸에 짙은 눈매.
상당히 성깔 있어 보이는 인상이다.
머리에는 카피에라 불리는 하얀 스카프를 둘렀다.
다른 세 사람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남자가 무리를 이끄는 사람으로 보였다.
"날 알고 있나?"
"이브라힘 이맘님을 모르면 이곳 사람이 아니죠."
태도는 정중했지만 은연중 몸에 살기가 흘렀다.
자신을 존중하는 듯 대하고는 있지만 사실 매우 잔인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과찬이군. 그런데 이 마을에는 무슨 일인가?"
"이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곳 마을 인근에 미군이 와있다고 하더군요."
"나도 방금 들었네."
"알라를 섬기는 무슬림으로서 당연히 성전의 기치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내가 한손을 하늘을 향해 들었다가 내렸다.
두 눈이 이글거렸다.
무슬림으로서 성전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어리석은 원리주의자 놈들.'
이브라힘은 겉으로는 온화한 표정을 지었지만 깊은 속에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 위대한 알라시여. 이들은 대체 언제까지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지혜로운 말씀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해석하는 것을 언제까지 참고 보아야 합니까?'
이브라힘은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 알라를 위한 거룩한 분노를 느꼈다.
이들은 항상 자신들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자들이었다.
다른 해석과 다른 이야기는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이런 이들이 알라의 말씀을 곡해하고 선량한 무슬림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
"당연히 이맘께서도 이들이 성전에 참여하는 것을 격려하시겠지요?"
사내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브라힘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세 명의 알카에다들이 들고 있던 소총을 넌지시 보였다.
병기를 든 그들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언제든 쏠 수 있다는 듯 두 눈에 힘을 주며 이브라힘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여기가 내가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겠군.'
이브라힘은 건물 한쪽 구석에 겁에 질려 앉아 있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미래가 창창한 젊은 청년들이다.
이브라힘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생명이란 알라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 중 하나가 아닌가?
인류는 알라의 창조물 중 알라의 신성에 가장 맞닿아 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 자체로 존귀한 것을 마치 하찮은 것이라도 되는 양 손쉽게 던져버리도록 강요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이야말로 알라의 가장 큰 대적들이 아닌가.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이브라힘은 몇 번이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뻔했다.
"음? 이 여인은 혹시 임신 중인 건가?"
이브라힘은 한쪽에 조심스럽게 앉아 손으로 배를 가리고 있는 여인을 보았다.
아직 겉으로 드러나게 표시가 나지는 않았지만 이브라힘은 여인의 몸짓과 행태로 보아 임신을 의심했다.
"맞습니다. 이맘. 아이샤는 임신 중입니다."
여인의 옆에 앉아 있던 청년이 급히 말했다.
"혹시 자네 부인인가?"
"아닙니다. 제 사촌의 부인입니다. 사촌은 지금 수도에 돈을 벌러 갔습니다."
"음, 그렇군."
이브라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샤… 아이샤… 참으로 축복받은 인생이 아닌가?"
날카로운 인상의 알카에다 사내가 마을 청년들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아이샤의 이름은 충실한 인생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세 번째 부인의 이름이 바로 아이샤다.
알카에다 사내는 마을 청년들에게 그런 사실을 상기시키는 듯 아이샤의 이름을 거론했다.
"아이샤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세 번째 부인의 이름이죠."
"……?"
알카에다 사내가 이브라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샤, 그대가 성전을 위해 바치는 생명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요. 그만큼 천국에서의 보상도 클 것은 당연한 일이지."
부르르…….
알카에다 사내의 말에 이브라힘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임산부임을 알면서도 폭탄 테러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임산부이기에 더욱 미군을 방심시키기 좋을 것이다.
알카에다의 테러 계획에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자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임신했기에 더욱 아이샤를 골랐으리라.
"아이샤, 이분의 말씀이 맞아. 우린 성전을 위해 알라께 택해진 거야."
마을 청년 중 하나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 청년은 성전을 위해 자신의 목숨쯤 언제든지 바칠 수 있다는 듯 결연한 표정이었다.
'이런…이런…….'
이브라힘은 안타까움과 분노, 허탈함이 동시에 엄습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무슬림들이 이 청년과 똑같이 자신의 목숨을 헛되이 소모시켰던가?
그리고 그 결과는 얼마나 많은 분노와 미움과 저주를 불러왔던가?
그것은 전쟁과 죽음의 확장이었다.
원한과 분쟁, 끝없는 싸움.
그것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온 인류가 모두 알라의 자녀들인 것을.
대체 어느 부모가 자식들끼리 끝없이 싸우고 죽이는 것을 원하겠는가.
그 끝에는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닌 공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하하, 그래. 잘 알고 있군. 자네들은 모두 알라께 부름을 받은 것이네."
알카에다 사내가 마을 청년의 말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맘, 거룩한 성전에 참전하는 이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한마디 해주세요."
사내가 웃음을 터트리며 이브라힘에게 말했다.
그의 두 눈은 먼저를 획책하듯이 번들거렸다.
세 명의 알카에다 조직원들은 연신 강압적인 기운을 풍기며 이브라힘을 바라보았다.
'흐흐, 이브라힘이 이곳에 오다니 아주 좋은 기회야.'
알카에다 사내 연신 머리를 굴리며 생각했다.
이브라힘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큰 영향력을 가진 이맘이다.
이런 사람이 자신들의 편에 서서 성전을 독려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앞으로 알카에다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이브라힘을 존경하는 많은 무슬림들이 존재했다.
앞으로 이들을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 이브라힘, 무엇을 기다리시는 겁니까? 어서 거룩한 알라의 말씀을 주십시오."
"거룩한 알라의 말씀이라……."
이브라힘이 자신을 노려보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돌아보았다.
헛된 말을 내뱉기만 하면 알라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표정이었다.
다시 마을 청년들을 바라보았다.
알카에다처럼 이미 머리에 독기가 들어간 청년을 제외하면 모두 겁에 질린 표정이다.
왜 아니겠는가.
알카에다가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총을 쥐고 싸우라는 것이 아니었다.
순진한 마을 청년들인 것처럼 미군에게 접근해서 폭탄조끼를 끼고 자폭하라는 것이었다.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싸움에 내보내는 것이다.
천천히 마을 청년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펴보던 이브라힘은 마음을 굳혔다.
"알라의 말씀이요."
이브라힘이 마침내 크게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빛에는 뭔가 장엄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목숨쯤은 도외시한 듯한 표정이다.
알카에다 사내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깐, 이맘님."
이브라힘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거겠죠?"
"물론이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알고 있네."
이브라힘의 단호한 표정에 알카에다 사내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흠, 내 말을 잘 알아들었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알카에다 사내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고개 짓을 했다.
그러자 부하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들고 있던 소총을 살짝 눈에 보이지 않게 이브라힘 쪽을 향했다.
이브라힘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죽고 사는 것은 알라에게 달려 있는 것.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알라의 자녀들이여. 충실한 알라의 종들이여. 경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소."
이브라힘이 말했다.
마을의 청년들은 두려워하면서도 이브라힘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지상에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는 선한 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
"모든 사람을 살해하는 것과 같으며……."
철컥!
알카에다 조직원들의 소총이 그들의 팔에 들렸다.
"누군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이브라힘은 어느새 자신을 향해 총구를 돌리고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꾸란 5장 32절 말씀.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악마의 종들아!"
이브라힘이 총구를 든 사내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익…! 이맘.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요?!"
"살고 죽는 것은 그대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알라께 달려 있는 것인즉."
이브라힘이 손가락 하나를 하늘을 향해 쳐들었다.
"만일 오늘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을 것이며, 살아야 한다면 살 것이다."
"흥, 그대가 감히!"
알카에다 사내가 분노에 찬 음성을 발했다.
"내가 그대를 죽이지 못할 것 같소?"
"마음대로 하시게."
"흥!"
알카에다 사내가 부하들을 향해 손을 쳐들었다.
그러자 그들이 총구를 들어 이브라힘을 겨누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압바스는 이브라힘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알카에다의 중간 간부였다.
이곳에서 갑자기 유명한 이맘인 이브라힘을 만나 잠깐이지만 그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자가 자신들의 반대편에 섰다는 것이 알려졌다면 좋을 것이 없었다.
차라리 자신들이 죽이고 미군이 죽였다고 소문을 퍼트린다면 사람들의 분노가 미군을 향할 것이다.
압바스가 손을 내려 이브라힘을 죽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건물 문이 열렸다.
"압쌀라무 알라이쿰(그대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잔득 긴장해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를 향했다.
"……?"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이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만나기 힘든 동양인이었다.
"…와알라이쿰 앗살람(당신에게도 알라의 평안이 있기를)"
모두가 당혹해 있는 가운데 이브라힘이 인사말에 반응했다.
"그런데 그대는 누구요?"
이브라힘이 낯선 이방인에게 물었다.
모두의 얼굴이 강혁의 입을 향했다.
"나는… 알라께서 여러분에게 보낸 예언자 존 강입니다."
"……?"
강혁을 바라보는 모든 이의 얼굴에 기이한 표정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괴상한 소리를 한 사람을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핫? 핫하하하하!"
압바스가 허리에 손을 대고 웃었다.
총을 들고 있던 알카에다 조직원들도 큭큭하고 웃었다.
"어디서 머리가 이상한 동양인이 길을 잃은 모양이군."
압바스가 웃음을 지으며 부하 중 한 명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짓을 받은 부하가 총을 강혁을 향해 겨누었다.
압바스의 눈짓은 그냥 쏴 죽이라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이브라힘을 죽이려고 긴장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 때문에 분위기가 산만해진 것이 기분 나빴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