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81화 (281/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81화

281화

#74장 아프간의 예언자

백악관으로부터 아프간 미군 수뇌부에 은밀히 하나의 전갈이 날아갔다.

동영상에 대한 함구와 함께 강 혁에 대한 특급 보안이 걸린 것이다.

드론을 직접 조정했던 공군 조종사부터 드론 팀의 관리자까지 서약서 작성과 보안 심사가 들어갔다.

이번 일에 대해 일절 외부에 발설하지 못하도록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그와 함께 탈레반 군대에는 은밀히 하나의 동영상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동영상에는 아랍 전통 복장을 입은 한 동양인이 허공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잠시 후 동양인과 한 무리의 사람들을 향해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양인이 손가락질 하나로 날아오는 미사일의 궤도를 바꿔버렸다.

커다란 폭음과 함께 멍한 얼굴로 폭발이 일어난 산기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흙더미가 떨어졌다.

가까스로 살아난 마을 사람들과 총을 들고 있는 자들이 기적을 발휘한 동양인을 향해 알라를 찬양하며 경배를 올렸다.

이 영상을 본 사람들마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적.

영상 속의 모습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게다가 이 영상을 찍은 것은 탈레반 정찰대라고 한다.

탈레반 군 중에는 영상에 나오는 마을 청년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탈레반 군에는 알라의 예언자가 북부동맹군을 돕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이 연전연패하는 이유가 바로 이 알라의 예언자 때문이라는 소문이었다.

그런데 소문으로만 돌던 알라의 예언자가 실제로 이적을 발휘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 영상은 안 그래도 사기가 떨어진 탈레반 군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     *     *

"무슨 소리야?"

탈레반 정권의 수장 하미드는 국방장관의 말에 쌍심지를 켰다.

"그…그게…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동양인이 기적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기, 기적?"

"그…그렇습니다."

국방장관은 그동안 하미드에게 비밀로 했던 영상을 보여주었다.

탈레반 군 사이에 돌고 있는 영상의 원본이었다.

사실 탈레반 국방장관은 이 영상을 감추려고 했다.

하미드에게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정찰병 중 누군가가 영상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영상은 순식간에 탈레반 군 사이에 퍼져버렸다.

이제 와서 감추는 것이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말도 안 돼! 뭔가 속임수가 있는 거 아냐?"

하미드가 화를 내며 쏘아 붙였다.

"그게… 저희도 확인했지만 영상에 손을 댄 흔적은 없습니다."

"……!"

"게다가……."

"게다가?"

"영상 속 장면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

"아무래도 알라의 예언자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국방장관의 말에 하미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     *     *

"이봐, 압둘 너 그거 봤어?"

한 병사가 주변을 살짝 살피더니 함께 보초를 쓰는 병사에게 은밀히 물었다.

압둘이라 불린 병사 역시 주변을 경계하는 듯하더니 이내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한, 그 동영상 말이지?"

라이한 역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휴, 이제 어쩌지?"

라이한이 압둘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모두 같은 동네 출신으로 함께 자란 죽마고유였다.

"어쩌긴 여기 있다간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압둘의 말에 라이한이 화들짝 놀랐다.

"그건 안 돼. 고향에서 아니샤가 날 기다리고 있다고!"

아니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동네 처녀로 라이한의 약혼녀였다.

"너도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시잖아!"

"쉿, 조용히 해. 라이한."

압둘이 주변을 살피며 라이한의 입을 막았다.

"웁… 압…압둘."

"난 오늘 밤 여길 탈출할 거야."

"뭐? 그…그럼 탈영한다는 거야?"

압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럼 나도 갈래."

라이한의 말에 압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대신 내 말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해.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죽어."

"알, 알았어. 압둘."

두 사람은 그 후 새벽이 오길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경계망을 넘어 부대를 탈출했다.

동영상이 돈 후, 이런 식으로 탈레반 군대를 탈영하는 군사들이 각지에서 속출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알카에다 역시 비슷했다.

"오사무님."

"뭐야? 아지즈."

자신의 측근에게 오사무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아지즈 빈 압둘 라흐만.

사우디 태생인 이 남자는 아랍 전통을 따라 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전혀 믿지 못하는 오사무 번 다렌도 신기하게도 이 남자만은 신뢰했다.

"그 이름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군요."

"음, 그렇군. 미안하네."

오사무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 남자는 압둘이라 불렸다.

워낙 흔한 이름이다.

시장에서 압둘이라 외치면 뒤로 돌아볼 사람이 한둘이 아닌 이름이었다.

풀네임 중 아지즈란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알카에다에서 오사무 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오사무님."

한숨을 내뱉은 오사무가 손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요즘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어서 그래."

오사무가 짜증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예언자 때문에 그러십니까?"

"누구겠어? 그런 동양인이 감히 예언자를 사칭하다니! 당장 죽여 버려야겠어."

오사무의 말에 아지즈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도 탈주하던 조직원 한 명을 잡아 죽이고 오는 중이었습니다."

"끄응."

오사무가 신음성을 흘렸다.

사태는 마을에서 일어난 기적의 현장을 목격한 자들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소문에 대해 오사무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한참 늦은 후였다.

이미 아프간에 있는 알카에다 조직의 상당수가 동요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동영상까지 유포되자 날마다 탈영병이 생기고 있었다.

"오사무님, 당장 팀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설마 자네가?"

"지금은 믿을 만한 자들이 적습니다."

"음, 그렇다고는 해도 자네가 직접 나서는 건 너무……."

"오사무님, 저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널 믿지 못해서 이러는 거 같아?"

오사무가 짐짓 화를 냈다.

그러자 아지즈가 얼굴의 표정을 풀며 피식 웃었다.

"제 목숨을 걱정 마십시오. 이미 알라를 위해 바친 몸."

"……."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만 아지즈. 그런 말은 그만해."

오사무가 아지즈에게 달려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넌 여기서 죽을 사내가 아니야."

"오사무님."

"난 약속했어. 널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겠다고."

오사무의 말에 아지즈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약속을 아직 기억하고 계셨군요."

"당연하지. 내가 어떻게 그걸 잊겠어."

오사무가 자신을 바라보는 아지즈를 향해 입가에 고소를 지었다.

"그럼 절 보내주십시오."

"아지즈?"

아지즈가 몸을 뒤로 빼자 오사무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졌다.

"이제와 부모님께 돌아갈 생각 따위 오래 전에 버렸습니다."

"아지즈."

"그 이름은 그만 부르십시오."

"미…미안하네. 압둘."

오사무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이름은 압둘입니다. 아지즈가 아니라."

사내의 말에 오사무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예언자를 사칭하는 자의 목을 가지고 돌아오죠."

압둘이 문을 열고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오사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지즈, 무사히 돌아오게. 그래야 내 원대한 계획이 이뤄질 테니깐 말이야.'

아지즈 빈 압둘 라흐만.

사내가 버린 이 이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제 3왕자와 같은 이름이었다.

*     *     *

"형, 성공하긴 했지만 얼마나 무모한 일을 한 건지는 아시는 거죠?"

최승호가 짐짓 화를 내며 강혁에게 핀잔을 주고 있었다.

"승호야. 넌 걱정을 사서 한다니까."

"아닙니다. 이번 일은 승호의 말이 맞습니다. 회장님."

"선, 선배님……."

이규철까지 최승호의 말을 두둔하자 강혁은 잠시 수세에 몰렸다.

지금 강혁은 아프간 모처에서 위성을 통해 골든 그룹의 회의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번 기적은 인공지능 아이린이 미군의 전자 장비를 원격으로 조정한 것이다.

이번 원격 조정에는 여러 가지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그래서 골든그룹 계열사의 사장이며 최고 기술 이사인 최승호가 사후 검토를 맡은 것이다.

하지만 아이린이 전달한 데이터를 확인한 승호는 화부터 내고 있었다.

"회장님은 정말 목숨이 몇 개라도 있으신 줄 아는 겁니까?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이신 겁니까?"

"하하, 다들 너무 걱정이 지나치다니까요. 이번 일은 아이린의 성능과 가능성을 알아 볼 수 있는 획기적인……."

콰앙!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커다랗게 났다.

그리고 누군가가 화면 앞으로 쑥 나타났다.

"이…이리나?"

"회―장님~!"

날카로운 소프라노 소리가 강혁의 귀를 때렸다.

그리고 10분간 잔소리가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태연하던 강혁도 이리나에게는 쩔쩔 맸다.

강혁은 이리나의 잔소리를 듣는 와중에 최승호와 이규철에게 눈치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젠장, 절대 비밀로 하라고 했잖아?'

'글쎄요. 전 기억에 없는데요.'

무언의 눈초리에 슬그머니 모른 척 빼는 최승호였지만 그 속을 모를 리 없었다.

이리나에게 알린 것은 최승호나 이규철, 아니, 둘 모두였다.

자신의 눈초리에 둘 모두 고개를 슬며시 돌린 것이다.

"알…알았어. 이리나,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지."

10분간 계속되는 이리나의 성화에 결국은 굴복하는 강혁이었다.

화만 내는 것이 아니라 눈물까지 흘려대니 강혁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흑, 정말이죠. 회장님. 거짓말이면 저 이번 일을 다른 분들에게도 알려드릴 거예요."

"뭐, 뭐라고?"

강혁은 이리나의 말에 깜짝 놀랐다.

"다…다른 사람들이라면 설마?"

"그 설마 맞아요. 안젤라 씨와, 천려시 두 분에게 모두 알려드릴 테니 각오하시라고요."

강혁은 이리나의 협박 아닌 협박에 할 말을 잊었다.

"큼, 큼. 아무튼 제가 확인한 바로는 기술적인 버그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그제야 슬그머니 다시 화면 앞에 나타난 최승호를 향해 강혁은 쌍심지를 치켜세웠지만 이미 한참 늦은 뒤였다.

이리나가 방을 빠져나간 후였던 것이다.

"이 녀석아, 그런 말을 왜 이제야 하는 거야?"

"그야 앞으로 또 이런 무모한 짓은 못하도록 하려는 거죠."

최승호가 능글맞은 얼굴로 말했다.

"크, 순진했던 승호는 어디로 가고. 능구렁이 한 마리가 내 앞에 있는 것 같노."

"쩝, 저 아직 순진한 승호 맞고요. 이번에는 형이 절! 대! 잘못했으니까. 사과는 안 할 거예요."

최승호의 단호한 태도에 강혁은 한숨을 쉬었다.

다들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거라 뭐라 더 할 말도 없었다.

"흐흐, 이번에는 회장님이 양보 하셔야겠네요. 다들 회장님이 걱정 되서 그러는 거잖아요."

이규철이 입가에 고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혁은 그런 이규철이 얄미웠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후훗, 다들… 고마워요.'

가슴 한편으로 따뜻한 감정이 흘렀다.

회귀 이후.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