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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82화 (282/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82화

#282화

한 무리의 아랍인들이 아프간의 험준한 산지를 넘고 있었다.

이들을 이끄는 자들은 압둘이었다.

오사무의 최측근이자 경호원인 압둘은 알카에다 대원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자들로 팀을 꾸렸다.

이들은 하나같이 오사무 번 라덴을 위해서라면 헌신짝처럼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압둘은 이들을 이끌고 강혁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알려진 마지막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예언자라고? 난 그 따위 것은 믿지 않아. 틀림없이 미군이 그놈과 장난을 친 거겠지.'

미국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했던 압둘은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본 영상 속의 기적을 압둘은 강혁이 미국과 짜고 친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영상 속의 일은 압둘의 상식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마 현 시대에 이미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발명되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리고 그 인공지능이 이미 미국의 모든 정부기관과 군대를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강혁은 사실상 미군의 모든 자산을 마음대로 사용하고도 일체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미국 정부가 모든 보안 시스템을 골든 그룹에게 맡겼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엄청난 일이었다.

소련이 몰락한 지금 미국은 유일무이한 슈퍼 파워였다.

중국이 한창 떠오르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은 미국의 상대가 아니었다.

어쩌면 현 시점에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슈퍼 파워는 미국이 아니라 강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인공 지능 아이린의 능력과 기능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미국의 모든 정부 기관과 군대, 기업의 보안벽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학습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 세계인이 사용하고 있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방대한 데이터.

아이린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압둘과 그를 따르는 알카에다 전사들은 자신들이 상대하려고 하는 자가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     *     *

"알라를 찬양하라! 예언자님, 제 자식인데 부디 축복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강혁이 방문한 촌락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너도 나도 강혁에게 자식들을 축복해 달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강혁에게 몰려왔다.

"하하, 여기 줄을 서도록 하세요."

강혁이 웃으며 말하자 마을 촌장이 모여든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줄을 서도록 도왔다.

시장통처럼 북적거리던 곳이 곧 정돈되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강혁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리 페르시아어로 축복 기도를 내렸다.

아프간 인구의 80% 이상이 할 줄 아는 이 언어는 이 지역이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분이었음을 나타낸다.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이고 이슬람교도들이라 아랍어에 익숙하지만 이들은 다리 페르시아어에 더 친숙하다.

그런데 다리 페르시아어를 모르는 강혁이 어떻게 아프간 촌락의 사람들에게 토착민 언어로 축복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이 모든 일은 인공지능 아이린이 강혁의 귓가로 말해주는 음성을 절대기억능력자인 강혁이 그대로 흉내 내어 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랜 훈련과 노력을 통해 강혁은 자신의 절대기억능력을 언어를 익히는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강혁이 다리 페르시아어를 배운 적은 없었다.

지금은 아이린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아이린이 통역을 해주기도 하고 절대기억능력의 버프에 힘입어 강혁은 서서히 다리 페르시아어를 익히고 있었다.

강혁이 약간은 어색하지만 토착 아프간어로 소통하는 점은 적지 않은 효과를 발휘했다.

대다수 시골 촌민들인 이들이 강혁은 더욱 살갑게 느낀다는 점이다.

얼굴색만 보면 낯선 이방인이지만 말이 통하는 하나만으로도 그들에게는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오! 예언자님. 감사합니다."

시골 마을 촌민들은 이들은 사람됨이 하나같이 순박하고 단순했다.

이적을 보여준 예언자가 자신들의 자식들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해준 것에 대해 너무나 고마워했다.

그렇게 한 사람씩 축복 기도를 해주고 있을 때였다.

―마스터, 저격수가 마스터의 머리를 조준했습니다.

아이린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미 강혁은 아이린을 통해 인근 야산에 한 무리의 무장병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강혁의 머리 위 30km 상공에는 다목적용 드론이 날고 있었다.

실버울프 팀에서 보낸 것으로 강혁의 신변을 걱정한 승호와 이규철이 강력하게 밀어붙인 물건이었다.

강혁 역시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에 허락했다.

아이린은 아프간 상공에 떠 있는 미군의 첩보 위성을 통해 해당 드론을 원격 제어하고 있었다.

이미 위성과 드론을 통해 해당 병력의 이동을 감지하고 있었기에 강혁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목적은 역시나 강혁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역시 그랬나?'

이미 강혁은 알카에다 조직원이었던 자들을 통해 오사무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이번 병력은 바로 오사무 번 라덴이 있던 곳에서 출발한 자들이었다.

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는지 궁금했던 강혁은 그동안은 이들을 내버려 두고 있었던 것이다.

―제거하겠습니다.

아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혁은 고개를 끄덕여 승인하려고 했다.

명령만 내리면 드론에서 저들이 숨어 있는 곳을 향해 미사일이 날아갈 것이다.

단 한 방이 모두를 몰살시킬 수 있는 위력이었다.

*     *     *

"조준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저격수가 압둘을 향해 말했다.

아프간의 많은 촌락들이 사방으로 작은 산들과 언덕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서 압둘 역시 야산 중턱에서 나무 숲 사이로 강혁과 마을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망원경을 통해 압둘은 강혁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강혁은 압둘이 생각했던 것 같은 무도한 이방인이 아닌 듯이 보였다.

'오사무님은 아직도 페르시아 어를 배우지 않고 있지.'

아프간의 산지에 숨어 살며 지금까지 탈레반 정권의 비호 하에 테러리스트를 육성해왔다.

하지만 탈레반 정부군과의 의사소통은 지금까지 항상 아랍어나 영어를 사용해왔다.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다리 페르시아어는 배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는 이란이 이란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었다.

둘은 형제 관계에 있는 언어로 서로 소통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닮아 있다.

그렇기에 오사무와 알카에다 조직원들과 이들 아프간인들 사이에는 서로 은연중 적대하는 부분이 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본다면 다 같은 아랍인들이 아니냐고 의아해 할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란과 아랍인은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다른 민족이다.

같은 언어와 종교를 가진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이란은 아리안 족으로 국명 자체가 아리안 족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생김새나 골격도 유럽인들과 흡사하다.

아랍인들은 사막 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서남아시아의 셈족과 북아프리카의 햄족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비해 이란인들은 농경 생활을 하였고, 사고방식과 생활 문화가 아랍인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란과 아랍은 서로 사이가 좋았던 적이 거의 없다.

이란은 항상 고대 페르시아의 부활을 꿈꿔왔고, 아랍인들은 이슬람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었다.

서로 여러 개의 나라로 갈라져 있는 아랍국의 연합을 통해 이슬람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것이다.

이란은 서로 부족 간에 흩어져 양이나 키우던 아랍인들이 종교로 뭉쳐 탄생한 이슬람 제국의 등장이후로 억압을 받아왔다.

그런 입장이라 이슬람 제국의 부활을 결코 반기지 않았다.

아랍인들 역시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 시절 억압받은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니 이란과 아랍 사이에 사이가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사무와 알카에다가 탈레반 정권의 비호를 받으면서도 페르시아어를 배울 생각이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압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진정한 범 이슬람 세계의 통합을 위해서라면 좀 더 포용적인 마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페르시아 어를 한다고? 그것도 이란 페르시아어가 아니라 다리 페르시아어를?'

갑자기 압둘의 머릿속으로 동영상 속의 모습이 떠올랐다.

"압둘 님, 저격 준비가 끝났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부하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압둘은 손을 높이 들었다.

그때였다.

마을 청년 한 명이 강혁과 촌장을 향해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하만?"

"촌장님, 결국 마을 우물이……."

하만이라 불린 청년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이거 큰일이군."

촌장이 시름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강혁의 앞에 길게 늘어서 있던 사람들도 청년의 말을 듣고 동요했다.

"이봐 뭐라는 거야?"

"못 들었어? 결국 우물 물이 말랐대."

"뭐? 어이쿠, 이를 어째."

"휴, 내일부터는 옆 마을까지 가야겠군."

"거기서도 물을 못 구하면?"

"그…그렇기야 하겠나?"

"그건 모르는 거야."

마을 사람들이 야단법석이었다.

촌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큰일이군. 우물 물이 마르다니."

그의 주름진 얼굴에 깊은 시름이 새겨졌다.

마을에서 기르고 있는 가축들에게도 물은 필수적이었다.

잘못하면 마을의 경제가 하루아침에 파탄지경에 빠지게 되는 것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이보게, 촌장."

"아, 예언자님. 죄송합니다. 하찮은 일로 행사를 방해했군요."

"아닐세. 그보다 마을의 우물 물이 메말랐다고?"

"그게… 참 큰일이 났습니다."

촌장이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속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앞장서게. 촌장."

"예?"

"우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겠나?"

강혁이 미소를 띠며 촌장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뭔가 모를 광채가 강혁의 얼굴을 감싸는 듯했다.

"예…예언자님."

잠시 멍한 표정으로 강혁을 바라보던 촌장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예! 제가 모시겠습니다."

촌장이 앞장서자 강혁이 뒤를 따랐다.

주변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을 주민들도 크게 놀라며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순식간에 긴 행렬이 생겨났다.

촌장과 강혁의 뒤를 따르는 마을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예언자가 자신들이 마을 우물로 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엄청난 기대감과 호기심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어떻게 할까요? 압둘님."

"잠시 기다린다."

"하지만……."

"명령은 절대적이다."

"……."

압둘의 말에 저격수가 입을 닫았다.

명령을 조금이라도 어길 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저격수는 잘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압둘님."

"이동한다."

압둘의 명령에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병력들이 일시에 몸을 움직였다.

마을 우물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조금 전 자신들이 목숨이 경각에 달아 있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저격수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는 순간 그의 목숨은 날아갔을 것이다.

드론을 통해 저격수와 압둘의 대화를 감청하고 있던 강혁이 즉각 공격 명령을 내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격 시도를 멈춘 것 같습니다.

아이린의 말을 들으며 강혁은 태연하게 마을 촌장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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