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83화
283화
"여깁니다. 예언자님."
촌장이 안내해 준 마을 우물은 정말 물이 메말라 있었다.
강혁은 한번 우물을 응시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라면 정말 마을은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촌장을 따라 우물 앞에 온 마을 사람들은 모두 크게 망연자실했다.
당장 물이 없으면 집에서 기르는 가축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생명도 위급했다.
"인근에 있는 마을까지 가려면 여기서 산을 몇 개를 넘어야 합니다."
"그렇군."
강혁은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삶의 노곤함과 힘든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 있는 얼굴들이었다.
강혁이 얼굴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그리고 양 손을 들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땅에 엎드렸다.
강혁이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작은 목소리로 알라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강혁이 눈을 뜨고는 양손을 내렸다.
그리고 마을 촌장을 바라보았다.
"촌장, 마을 청년들에게 땅을 팔 도구를 들고 내 지시를 따르라고 하게."
"알, 알겠습니다. 예언자님."
강혁의 말에 촌장을 깜짝 놀랐으나 이내 마을 청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잠시 후 건장한 청년 몇이 도구를 들고 모였다.
"모두 나를 따라오게."
강혁이 마을 청년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즉시 몸을 움직여 어딘가로 향했다.
마을 청년들이 그 뒤를 따르자 마을 사람들이 다시 그 뒤를 따랐다.
그러자 긴 행렬이 생겨났고, 그 행렬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늘어났다.
소문을 듣고 집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몰려 든 것이다.
강혁은 처음 방문한 마을을 마치 자기 집 앞마당인 듯 능숙하게 움직였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기라도 하는 듯이 마을 지리에 능숙했다.
촌장을 비롯해서 모두가 그 점을 깨닫고 수군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물이 어디있는지도 몰랐던 사람인데?"
"마을에서 한 십 년은 같이 살았다고 해도 믿겠는데?"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강혁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길을 걸었다.
잠시 후, 강혁은 마을을 둘러싼 한 야산의 초입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서서 말했다.
"여기를 파면 물이 나올 겁니다."
강혁의 말에 도구를 들고 뒤를 따르던 청년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곳에서 물이 흘러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지점이었다.
"뭣들 하는 건가! 어서 땅을 파지 않고!"
촌장이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청년들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예, 예. 촌장님."
쿵! 쿵!
삽과 곡괭이가 연신 움직이며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 * *
"조준했습니다."
알카에다 저격수가 압둘에게 말했다.
이들은 강혁과 마을 사람들이 움직인 위치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야산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지금의 위치는 이전보다 훨씬 저격하기 용이한 장소였다.
저격수의 말을 들은 압둘은 바로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모두의 눈이 압둘의 입만 바라보았다.
이들 모두는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마을의 생명줄인 우물 물이 메말랐다.
아프간 산지에 정착해 사는 마을에서 우물은 말 그대로 생명줄이었다.
우물이 이대로 마르고 다시 물을 구하지 못하면 최후에는 마을을 버리고 떠나야 할 수도 있었다.
수십 년간 삶의 터전이었던 곳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중동에서 살았던 이들도 물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게다가 이곳 아프간에서 테러 훈련을 받으며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 모두는 마을에 닥친 위기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양인 가짜 예언자가 하늘을 향해 양손을 높이 들었다.
마치 알라에게 기도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뜨고는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마을 청년들에게 땅을 파라고 지시했다.
혹시 여기를 파면 물이 나오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저 가짜 예언자의 말이 맞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물이 나온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지금 당장 저 자를 저격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혹시 알라께서 보내신 예언자를 살해하게 되는 걸까?
각양각색의 생각들이 알카에다 조직원들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오사무 번 라덴을 신처럼 신봉하는 골수 조직원들이었다.
많은 조직원들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이들만은 믿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압둘이 이들을 고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들의 마음속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압둘이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압둘은 조용히 손 하나를 들었다.
그러자 저격수가 손을 방아쇠에 올려놓았다.
손이 떨어지면 손가락에 힘을 주어 당길 것이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주변의 조직원들이 숨을 죽였다.
그들의 눈동자는 뭔가 모를 불안으로 흔들렸다.
"좀 더 지켜보지."
갑작스런 말이었다.
저격수는 곧 손가락을 방아쇠에서 떼 놓았다.
모두들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새로운 우물을 파고 있는 청년들과 강혁에게도 향했다.
쾅! 콰앙!
땅을 파내려가기 시작한지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이미 마을 청년들의 키보다 더 큰 구멍이 파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 사람들과 청년들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쯤이면 촉촉하게 땅이 젖어 와야 하는데."
"그렇지. 그래야지."
"아무래도 헛수고 같아."
땅을 파내려가던 청년들이 수군거렸다.
처음에는 그들도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예언자라 불리며 이웃 마을에 엄청난 이적을 발휘했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들도 소문으로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지만 실제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잘 아는 지인들이었다.
그들의 전하는 말을 듣고는 자신도 정말 예언자가 나타났구나하고 놀라워했다.
그래서 오늘도 어쩌면 새로운 기적을 볼지도 모른다며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파내려 왔는데도 물이 뿜어져 나올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마을 사람들도 눈치를 채고는 실망한 눈치다.
실망감에 땅을 내리치는 곡괭이에도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제일 빨리 눈치챈 것은 마을 촌장이었다.
사실 마을 촌장도 더 이상 땅을 파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촌장은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기대를 했던 것이다.
만일 예언자란 사람의 말대로 여기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마을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현실은 암울했다.
'역시 가짜 예언자였나? 내가 너무 소문을 믿은 모양이군.'
촌장은 고개를 돌려 강혁을 바라보았다.
"저기 예언자님, 아무래도……."
"촌장,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하지만… 여기까지 팠는데도 아무런……."
쾅, 쾅!
"억!"
곡괭이를 내리치던 청년이 새된 소리를 지르며 곡괭이를 놓쳤다.
"이런! 이거 아무래도 바위 같은데?"
"맞아, 이건 안 돼. 우리들 힘으로는……."
후드득!
바람에 옷자락이 떨리는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구멍 안으로 뛰어들었다.
강혁이었다.
"이제 다 왔습니다. 이 바위는 제가 처리하죠."
"아, 하지만……."
청년은 말리려고 했다.
조금 전 하산이 시도했다가 손에 부상을 입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강혁은 곡괭이들 들고 다가서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로 곡괭이를 높이 쳐들었다.
"안 돼요. 예언자님! 다칩니다!"
마을 청년이 말리려던 찰나였다.
곡괭이가 아래로 꽝하고 떨어졌다.
쩌―쩌어억!
우려와 달리 단단해 보이던 암석에 큰 구멍이 나는 것과 동시에 금이 가며 벌어졌다.
'세, 세상에 얼마나 힘이 세면……?'
청년은 깜짝 놀랐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암석을 한번에 깨부순 것이다.
콰―콰앙!
강혁이 다시 한 번 곡괭이를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내리 꽂았다.
퍼―어엉!
소리가 이상하다고 싶은 순간 갑자기 물줄기가 솟구쳤다.
파―아아아앙!
"물! 물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마을 사람들이 구멍 속에서 쏟아 오르는 물줄기를 보고는 모두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물이다. 물이야!"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강혁과 마을 청년들은 줄을 타고 구멍 위로 올라왔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강혁을 향해 환호했다.
"오! 알라를 찬양하라! 예언자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강혁을 에워싼 마을 사람들은 연신 알라를 찬양하며 강혁에게 감사를 표했다.
마을 촌장을 비롯해 모두는 자신들의 눈앞에서 알라의 예언자가 펼친 기적을 본 것이라 생각했다.
감동의 눈물로 하늘을 향해 양 손을 올리더니 땅에 몸을 엎드리며 기도문을 외웠다.
"세…세상에… 이럴 수가?"
저격수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구멍 안으로 동양인이 뛰어 내리더니 얼마 후, 한줄기 세찬 물줄기가 구멍에서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진…진짜 예언자님이신 건가?"
조직원 중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못했다.
그저 망연자실할 따름이었다.
"이…이제 어떻게 할까요?"
자신들의 상관인 압둘을 향해 누군가 물었다.
압둘은 오사무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자였다.
그리고 이 중 누구보다도 오사무를 신뢰했다.
'이…이럴 수가…….'
누구보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인 압둘은 크게 흔들렸다.
원리주의 이슬람교도로서 그는 알라의 그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그런데 눈앞에 스스로를 알라의 예언자라 부르는 자가 나타났다.
두 번씩이나 이적을 발현하면서 말이다.
정말로 저 이방인이 알라가 보내신 사자란 말인가?
압둘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였다.
그의 두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잡혔다.
마을 촌장을 향해 이야기하던 동양인이 갑자기 몸을 돌려 산 중턱을 향해 시선을 돌린 것이다.
'서…설마… 우리가 노출된 건가?'
하지만 사람의 시야로는 이곳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지금도 자신들은 정찰 장비 등을 이용해 멀리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강혁은 정확히 자신들이 숨어 있는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혁이 뭔가를 말했다.
'말…말도 안 돼!'
압둘은 입을 크게 벌렸다.
정찰 장비로 강혁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압둘은 다시 한번 반복하는 강혁의 입모양을 보고 놀랐다.
'대…대체…어떻게 안 거지?'
털썩!
압둘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버렸다.
* * *
자정이 넘은 저녁.
강혁은 자던 몸을 일으켜 문으로 다가갔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예언자님?"
잠에서 깬 촌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촌장, 깼나? 미안하군."
"아닙니다. 예언자님."
"촌장은 어서 자게. 나는 손님을 만나야겠네."
"……?"
강혁은 빙그레 촌장을 향해 웃은 후, 문을 열고 촌장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어둠 속을 향해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 강혁을 향해 다가왔다.
"기다리고 있었네. 압둘. 아니, 아지즈 빈 압둘 라흐만."
"……!"
아지즈 빈 압둘 라흐만의 두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