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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84화 (284/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84화

284화

"어…어떻게?"

압둘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강혁은 말없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역…역시 알라께서 보내신 예언자란 말인가……?"

압둘은 극도의 혼란에 빠진 얼굴이었다.

"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알둘의 말투가 공손해졌다.

"후후, 무엇을 말인가?"

"……?"

"자네가 언제 오는지 알고 있었던 것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자네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건가?"

압둘은 강혁의 말에 아예 무릎을 꿇었다.

"둘 모두입니다. 예언자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둠을 틈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곳을 찾았다.

자신이 데리고 왔던 부하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눈앞의 이 동양인은 자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오사무만이 알고 있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고 있다.

게다가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강혁은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입가에 고소를 머금었다.

눈앞의 남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라진 제 3왕자 아지즈 빈 압둘 라흐만이었다.

낮에 자신을 저격하려는 일련의 무리들을 발견한 후 강혁은 그들을 몰살시키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이린의 안면 인식 시스템을 통해 자신을 저격하려는 무리의 대장이 누구인지 알자 생각을 바꿨다.

아지즈 빈 압둘 라흐만.

그를 이용한다면 알카에다만이 아니라 아랍 전체에 걸쳐 자신을 알릴 수 있었다.

강혁은 현 사우디 국왕의 중간 이름과 완전히 같은 이름을 가진 제 3왕자가 국왕이 가장 아끼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국왕과 왕가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총망 받던 왕자에서 이름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만일 그가 오사무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알카에다에 합류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현 국왕의 뒤를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이 될 사람은 다름 아닌 아지즈일지도 몰랐다.

아니 강혁은 그를 만난 이 순간 다름 아닌 그를 미래의 국왕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지즈, 아니, 압둘. 그대는 어째서 미래의 국왕이 아닌 테러리스트의 길을 걸었는가?"

강혁이 아지즈가 아니라 압둘이라 불렀을 때 압둘은 그야말로 눈앞의 남자가 모르는 것은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질문조차 자신을 향한 일종의 시험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예언자시여. 이 종은 본시 왕가의 일원으로 태어나 평생을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압둘 아니 아지즈는 강혁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감히 알라의 예언자인 강혁 앞에서 한 치의 거짓도 말할 수 없었다.

"……놀고먹기만 하던 저에게 오사무의 말은 하나하나가 영혼을 두드리는 말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던 강혁은 압둘이 사실은 매우 순수한 영혼을 지닌 사내라고 느꼈다.

그는 왕자로 태어나 평생을 호의호식해 왔다.

그런데 오사무는 그런 그에게 평범한 아랍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때 아지즈가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단지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구 사회에서 받는 모멸감은 상상이상이었다.

아지즈는 고통 받는 아랍인들에 대한 동정 이상으로 그들을 괴롭히는 서구 사회에 큰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지즈의 개화는 자신의 이름과 왕자의 신분을 버리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사무를 따라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런 사연이 있었기에 오사무는 다른 누구보다도 아지즈 아니 압둘을 옆에 두고 신뢰했던 것이다.

"아지즈, 아니, 압둘이여."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그대의 깨달음은 원래 틀린 것이 아니었다."

"……!"

"하지만 시작에서 조금의 다름이 끝에 가서는 크게 차이가 나게 되는 법."

"……?"

강혁은 아지즈, 아니 압둘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제가 틀렸다는 말씀입니까?"

"그대와 그대가 속한 무리의 방법은 단지 서로를 더 증오하게 만들 뿐."

"……"

"증오와 전쟁은 결코 알라의 방법이 아니네."

"……!"

"그대는 알라께서 원하신다면 하루아침에라도 모든 서구 문명을 멸망시키고 흔적도 없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

"그런데 오랫동안 참으시며 인내하고 기다리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건……."

"서양인이든, 아랍인이든 모두가 사실은 알라의 자녀인 것을.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사랑하는 그런 것은 없다네."

"……!"

알라의 예언자라 믿어 의심치 않는 강혁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하나가 충격적이었다.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사랑하는 그런 것은 없다고?'

"오히려 알라께서는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시지."

"……!"

"그대는 미국 대통령이 한 연설을 듣지 못했는가?"

"서…설마?"

압둘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알라의 말씀을 듣고 바로 회개했다네."

"……!"

"하지만 알카에다만은 그렇지 않았지."

"그 말씀은, 미국 대통령이 알라의 계시를 들었다는 말씀입니까?"

압둘의 목소리가 크게 떨리고 있었다.

"알라께서는 누구에게든 말씀하신다네."

"……!"

"이제 내가 그대에게 묻겠네."

강혁이 말을 이었다.

"진실한 알라의 제자는 누구인가?"

"예……?"

"알라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르는 자이겠는가, 아니면 그 말을 부인하고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겠는가?"

쿵!

폐부를 찌르는 통렬한 말이었다.

압둘은 조지아 대통령이 했던 연설을 떠올렸다.

그의 연설은 오사마나 자신이 기대했던 그런 연설이 아니었다.

서구 문명과 아랍 문명의 대충돌.

제 3차 세계대전의 서막.

자신들의 테러 직후 전 세계 언론들이 떠들썩하게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조지아 대통령의 연설은 그런 예측을 완전히 불식시켰다.

오만한 제국 미국이 분노를 표하기 이전에 오히려 먼저 사과를 했던 것이다.

사실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냉전이 해체되고 유일한 슈퍼파워로 남은 미국이었다.

세계 1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군사력.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도 이길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규모와 파괴력.

그러니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

오사무와 압둘이 예견한 것은 오만한 미국이 자신을 따르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로 줄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상당수 국가들이 크게 마음이 상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은 미국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에 서게 될 것이었다.

겉으로는 미국을 따르는 척하더라도 말이다.

드러나지 않게 자신들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을 향한 끝없는 증오심을 바탕으로.

실제로 회귀 전의 역사는 오사무나 압둘의 생각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현 현실은 그들의 기대를 크게 빗겨갔다.

아랍 국가들 전체가 오히려 자신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알라의 계시가 있었고, 그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니?

압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다시 묻겠네? 누구인가? 여전히 증오를 획책하는 그대들인가? 아니면 회개하고 돌이킨 미국 대통령인가?"

"……!"

충격, 충격이었다.

누구보다도 알라의 충실한 제자라고 생각했던 자신들이 사실은 반역자였다니?

그리고 알라와 아랍의 적이라고 생각한 미국 대통령이 오히려 그분의 제자라니?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이지 않는가?

"누구인가? 압둘!"

"미…미국 대통령입니다."

압둘은 회한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쿵! 쿵! 쿵!

압둘이 머리를 땅에 세차게 박기 시작했다.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모든 것이 어리석은 저의 불찰입니다."

어느덧 압둘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눈물은 피눈물이었다.

어리석은 자신에 대한 회한과 질책의 눈물이었다.

"압둘이여. 만일 자네가 지금이라도 잘못을 깨닫고 돌이킨다면 자비의 주께서는 다시 그대를 품에 받아들이실 것이네."

"크흐흐흑, 예언자님……."

압둘은 강혁의 발등이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압둘, 아니 아지즈. 그대는 이제 다시 그대의 이름을 찾도록 하게."

"예언자님."

"그것이 알라의 뜻이네."

"알겠습니다. 예언자님."

강혁은 눈물로 회개하는 아지즈에게 앞으로 그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지시했다.

그리고 이 날의 일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아니, 알카에다의 운명과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았다.

*     *     *

한 달 후.

"마슈드 장군 만세!"

"판지시르의 사자 만세!"

위풍도 당당하게 북부연맹군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로 입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판지시르의 사자 아흐마드 샤 마슈드가 있었다.

수도 카불에 살고 있는 모든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탈레반 정권에 의해 억압받았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슈드를 환영했다.

미군보다 북부연맹군이 먼저 수도를 탈환하자 미국도 크게 놀라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원정군 사령관도 자신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속도로 북부연맹군이 탈레반군을 물리치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하, 역시 마슈드 장군은 명불허전이시군요."

원정군 사령관 리차드 미셀 장군이 함께 차량에 올라 연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마슈드 장군을 향해 말했다.

시민들은 그런 리차드 미셀 장군에게도 미군 만세라며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이게 제 힘만으로 된 것이겠습니까? 미군의 도움도 적지 않았지요."

마슈드 장군이 겸양의 표시를 하자 미셀 장군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무슨 말씀을 저희야 말로 마슈드 장군과 북부동맹군이 아니었다면 이런 빠른 승리는 생각도 못했을 거요."

실제로 미셀 장군의 예상보다 2배나 빠른 입성이었다.

게다가 각지에서 탈레반군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전쟁은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참, 장군님, 오사무 번 라덴을 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음, 장군님도 들으셨군요. 그렇습니다."

미셀 장군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이번 전쟁의 목적이나 다름이 없었던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무 번 라덴의 체포 소식에 본국에서도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사실은 저희가 한 일은 없었습니다."

"……?"

"그 수하들이 오사무를 잡아서 왔더군요."

"그래요?"

마슈드는 미셀의 말에 깜짝 놀랐다.

"오사무의 부하들은 충성심이 남다르다고 들었는데?"

"하하, 그것도 옛말입니다."

리차드 미셀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긴… 우리에겐 예언자님이 계시니까요."

마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탈레반 군이 탈영병이 속출하고 여기저기서 항복을 선언하고 나오는 것은 북부연맹군과 미군의 영향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정신적인 바탕이 되는 근간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알라의 예언자.

강혁에 대한 소문은 일파만파 전 아프가니스탄에 퍼져나갔다.

탈레반 정권의 아래에서 위까지 모두가 예언자의 존재와 그가 전파하는 계시에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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