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89화 (289/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89화

289화

#76장 평화로 가는 길

시진풍을 위한 연회는 화려하면서도 매우 극진했다.

중국의 2인자이자 미래의 주석이 될 가능성이 높은 시진풍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연회가 진행되는 도중 김정일은 시진풍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 다시없을 기회라고 할 수 있었으니, 김정일은 어떻게든 시진풍의 환심을 사려 최선을 다했다.

"하하하, 북중 간의 관계는 그야말로 순망치한의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정일의 너스레에 시진풍이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우리 양국은 앞으로도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하하하."

"그런데 국방위원장 동지, 내가 베이징에서 재미있는 말을 들었는데 말이요."

"……?"

김정일은 시진풍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평양이 또다시 위험한 장난감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 돌고 있소."

"……!"

김정일은 시진풍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요?"

"베이징에서 무슨 말이 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전혀 사실 무근입니다."

"흐흠."

시진풍은 김정일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

"뭐, 일단은 알겠소."

시진풍이 의뭉스런 표정으로 입가에 술을 가져갔다.

'이런 젠장.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여기까지 온 것도 핵개발 프로그램 때문이었나?'

북한은 김일성 시대부터 핵무기 보유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시도해왔다.

다만 핵개발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 진행해왔던 여러 가지 시도들이 물거품 되면서 지지부진한 상황이기는 했다.

그런데 김정일은 알고 있을까?

원 역사에서 파키스탄의 칸 박사에게 북한은 십여 개의 원심분리기를 받아 핵개발에 엄청난 진전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강혁이 칸 박사를 파키스탄에서 빼돌리면서 북한의 야심찬 계획은 큰 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강혁은 시진풍을 움직여 북한의 핵개발을 원천 봉쇄하려 하고 있었다.

"하하, 총서기 동지, 저희가 그럴 이유가 있겠습니까? 의심을 푸시지요."

시진풍이 자신의 해명에도 의뭉스런 표정을 짓자 김정일이 해명에 나섰다.

"그야 모를 일이죠. 핵개발은 사실 김일성 주석 시대부터 해 온 일 아니오? 심지어 유언까지 했다는데……."

"……!"

시진풍의 말에 김일성의 눈이 커졌다.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김일성이 죽으면서 남겼다는 유훈에는 중국을 믿지 말고, 반드시 핵개발을 성공시키라는 말이 있었다.

내용의 민감성 때문에 외부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시진풍이 그것을 거론한 것이다.

김정일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무…무슨 말씀을…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헛소문을 떠들어 된 모양인데……."

"하하, 이봐요. 김 위원장. 우리 솔직해집시다."

시진풍이 가는 미소를 지며 김정일을 응시했다.

꾸울꺽.

의미심장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진풍의 눈빛에 김정일은 목젖 너머로 침을 삼켰다.

"뭐, 끝까지 모른 척하시겠다면 그것도 좋소. 대신 핵개발은 절대로 안 되오."

"……."

"그렇게 하는 것이 앞으로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오."

"으음."

뭔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에 김정일은 엄청 당황했다.

그렇다고 눈앞에서 사실을 시인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자자, 이제 얼굴 푸시오. 핵 문제만 아니면 우리가 얼굴 붉힐 일이야 있겠소이까. 하하하."

"하하…하."

사실 김정일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았다.

아직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이 폐기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진행이 되고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원역사라면 평창리에 핵 시설이 들어서고, 조지아 정권 하에서 엄청난 파열음이 일었을 사안이지만 말이다.

강혁이 파키스탄의 칸 박사를 회유하는데 성공하면서 북한의 핵개발은 멈춰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2년 전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전 세계의 관심 속에서 평양은 남쪽의 김 대통령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바야흐로 남북 간에 화해무드가 조성된 것이다.

미국 역시 클린튼 정권 하였기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다.

문제는 민주당에서 공화당 정권으로 바뀌면서 벌어졌다.

초기 강혁을 멀리했던 조지아 정권은 북한에 대해 강경 일변도로 나갔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화해무드가 1년을 채 못간 배경이었다.

여기에 9.18테러까지.

비록 원역사와 같이 악의 축 운운하며 북한을 때리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움직임에 불안감이 싹튼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조지아 대통령과 워싱턴 쪽이 어느 순간부터 북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 상황에서 2002년으로 해가 바뀌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 북한이 뭔가를 하기에는 대외환경이 어중간한 해였다.

확실한 화해무드도 그렇다고 냉전 무드도 아닌.

그런 상황에서 시진풍이 방북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 위원장 동지도 경제 개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소만……."

시진풍이 드디어 화재를 돌리자 김정일도 한숨 돌리며 기꺼운 표정으로 대화에 나섰다.

"상해를 방문했을 때 내래 정말 놀랐지요.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더만요."

"하하, 하긴. 상하이의 스카이라인은 해마다 바뀌고 있으니 놀라긴 했을 거요."

"우리 시 총서기께서도 푸젠성 시절부터 경제통으로 이름나신 분이 아닙니까? 부디 우리 공화국을 위해 한마디 조언 좀 해주시지요. 하하하."

반은 시진풍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기 위한 것이지만 반쯤은 진심이었다.

지금 세계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똑같이 사회주의 혁명을 경험했고, 사회주의 종주국임을 주장하던 소련과 중국도 개혁개방 노선으로 갈아탔다.

두 나라는 지금 이전과는 달리 경제 개발을 지상 목표로 삼고 내달리고 있었다.

이전처럼 전 세계 인민들의 해방을 위한 공산화 투쟁 따위는 땅바닥에 내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옆 나라인 북한이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전에는 큰 차이가 없었던 생활수준이 해마다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던 것이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가열 차게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만 뒤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하,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우린 형제 국가 아니겠습니까? 다 같이 잘 살게 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시진풍은 중국의 경제 개발 과정을 나름 상세하게 김정일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한참 설명을 듣던 김정일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미국과의 화해가 중요한 문제가 되겠군요."

"그렇지요. 소련이 그랬고, 우리 중화민국이 그랬던 것처럼 공화국도 그렇게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요."

"하지만 우릴 미국 놈들이 믿어줘야 말이지요."

김정일이 마땅찮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우리 중국을 따라서 베트남도 개혁개방에 나서고 있어요. 직접 전쟁까지 치른 나라가 말이오."

"……으음."

"두고 보시오. 베트남도 엄청난 기세로 발전하게 될 테니."

"……."

시진풍의 말을 듣고 보니 김정일의 속은 더욱 타들어갔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자신들만 뒤처질 것이 뻔했던 것이다.

시진풍은 그 속을 뻔히 안다는 듯이 김정일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 김 위원장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은데 어떻소. 만나볼 생각이 있소?"

"……그게 누굽니까?"

김정일이 의아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시진풍은 천천히 강혁에 대해 김정일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사전에 강혁과 충분히 의논을 해놓은 이야기였다.

강혁에 대해서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줄지 말이다.

의논 도중에 시진풍은 몰랐던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바로 이번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승기를 잡았던 것도 사실을 강혁의 개입 덕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흐흐흐, 이 친구 놀라는 것 좀 봐.'

시진풍은 자신의 이야기에 갈수록 변해가는 김정일의 표정을 바라보며 속으로 웃었다.

"세, 세상에, 그…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지금 조지아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 전의 클링튼 대통령도 그 친구에게 큰 도움을 받았지."

김정일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했다.

듣자하니 미래를 보는 천인에게 두 미국 대통령이 큰 도움을 입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눈앞의 이 남자도 그렇다는 뜻일까?

"그…그럼 설마……?"

김정일의 얼굴에는 당신도? 라는 뜻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시진풍은 부인하지 않았다.

"나도 그 친구와 인연이 되어 지금은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오."

"……!"

김정일의 표정은 더욱 볼만하게 변해갔다.

설마하니 풍운아라 불리며 중국 정계의 핵으로 떠오른 시진풍까지 도움을 받았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이 얼굴에 뻔히 드러나고 있었다.

"껄껄껄!"

시진풍이 입가에 가져갔던 술잔을 테며 크게 웃었다.

"내 무엇을 숨기겠소. 그렇소이다. 내 강 동생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푸젠성 부서기직에 만족하고 살았을 거요."

"……!"

점입가경!

그 말이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2명의 미국 대통령만이 아니라 중국의 제 2인자에게까지 그토록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시진풍의 말대로 강혁이란 자가 미래를 본다는 말인가?

"휴우… 시 총서기 동지가 눈앞에서 직접 한 말이 아니라면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군요."

"하하하. 하긴, 그렇지요."

시진풍은 김정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거 아시오?"

"……?"

여기까지도 놀라운데 뭔가 더 할 말이 있다는 것인가?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어렵지만 미국이 아프간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것도 사실은 그 친구 덕분이라오."

"……!"

끔뻑끔뻑.

김정일은 시진풍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눈만 끔뻑거렸다.

*     *     *

대한민국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김 대통령은 비서실장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강 회장이 김정일 국장위원장의 초정을 받고 평양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

얼마 전 중국의 총서기 자리에 오른 시진풍이 방북을 했다.

중국의 2인자가 평양을 직접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일이라 한국에서도 큰 관심사였다.

그런데 방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정일이 강혁을 초대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혹시 강 회장의 입김이 들어간 걸까?"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은 고개를 꺄웃거렸다.

"설마 그렇겠습니까? 하지만 이상하기는 하군요."

"시진풍이 강 회장을 어떻게 아는 거지?"

김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은 아는 것이 없어 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강 회장 이 친구 알면 알수록 놀라게 하는군. 당장 국정원에 지시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지시해요."

"예, 대통령님."

비서실장이 밖으로 나가자 김 대통령은 바로 강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강혁이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하하, 강 회장. 나야 잘 지내지요.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있더군요."

강혁은 김 대통령이 오랜만에 자신에게 전화를 건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하하, 놀라셨나보군요.

"안 놀랄 수가 있나?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요? 왜 북쪽에서 강 회장을 초청한 거요?"

―뭐, 별일 아닙니다. 대통령께서 기껏 이뤄놓은 화해무드가 지지부진해지는 것이 아쉬워서 말입니다.

"음, 정말 그 뿐인 거요?"

―…….

대통령의 말에 강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다시 말을 이었다.

―조국을 위해서 제가 뭔가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

김 대통령의 얼굴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