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90화
#290화
"뭐라고요? 월드컵이 끝날 무렵 북한의 군사적 도발?"
김 대통령은 강혁의 말에 깜짝 놀랐다.
설마 지금처럼 북한과의 화해무드가 조성된 시기에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김 대통령은 배신감에 부르르 팔을 떨었다.
―우리 쪽 사상자의 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적은 배로 당했지만.
"…으음."
강혁의 말에 김 대통령은 짧게 신음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 말을 하는 상대는 강혁이다.
지금까지 그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미국 대통령이 정권이 바뀌어도 강혁의 조언을 중요하게 여기겠는가?
국정원의 조사와 미국 대사의 말을 들어보면 9.18테러도 강혁이 예견했던 일이라고 했다.
지금의 조지아 대통령이 강혁의 말을 신의 말처럼 듣는 이유도 당시의 일이 큰 계기가 됐다지 않는가?
심지어 이번 아프간 전쟁의 판도마저 강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김 대통령으로서는 강혁이 지금 한 말을 허투로 들을 수 없었다.
"막을 수는 없는 겁니까?"
김 대통령이 진심을 담아 물었다.
아무리 이겼다고는 군복무 중인 젊은 장병들이 몇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막을 수 있다면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대통령님, 지금 우리 쪽 함정의 교전 수칙을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여야합니다.
"……!"
회귀 전 역사에서 우리가 북한 측 함정에게 선제공격을 당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이 5단계 교전 수칙이었다.
사건 발생 후 이 5단계 교전 수칙은 3단계로 줄어 들었다.
그래서 강혁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선제적으로 교전 수칙을 줄이려는 거였다.
"3단계로 줄이면 막을 수 있는 겁니까?"
―제가 본 미래에서처럼 기습 공격을 당할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
대통령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갑자기 5단계 교전 수칙을 3단계로 줄인다?
게다가 북한과의 화해무드가 조성되어 있는 시기에?
뭔가 북한의 도발 징후를 포착한 것이 아닌가하는 언론의 질문이 있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정치적인 유불리가 잠시 대통령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대통령님. 이 일은 대통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겁니다.
갑자기 강혁의 말이 생각에 잠긴 김 대통령의 상념을 깨웠다.
"알겠습니다. 강 회장. 당장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해 교전 수칙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대통령의 음성에 강혁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조지아 대통령의 실수가 김 대통령에게 타산지석이 된 것이리라.
김 대통령은 9.18 테러를 막을 수 있었던 조지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감사는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우리가 더 해야 할 준비는 없습니까?
대통령의 말에 강혁은 기꺼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월드컵 시기에 일어나는 것은 분명하니 몇 가지 더 예방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혁은 자신이 생각해 둔 바를 하나하나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
―음, 알겠습니다. 해군 참모총장을 불러 철저하게 대비를 해두겠습니다.
대통령의 어조는 매우 단호했다.
단 한 사람의 희생도 없도록 하겠다는 결의가 엿보였다.
'9.18 때와는 다르군. 꽤 협조적이야.'
미국에는 안 된 말이지만 당시의 일이 꽤나 김 대통령에게 충격인 모양이다.
하긴. 세계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벌어진 엄청난 규모의 테러였다.
그 일을 심지어 막을 수도 있었다니 김 대통령으로서는 생각해 둔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강혁은 김 대통령이 예전보다 더 자신의 말을 신뢰하게 되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역시 지금이 적기인 것 같군. 신상현과 그 무리를 박살내기에 말이야.'
강혁은 신상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가 기울어져가는 균형을 무너트리려고 모험수를 강행하고 있다는 징후를 포착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우리 국민들이 큰 희생을 치르게 될 시도들이었다.
그런 일들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강혁은 신상현과 그 무리들을 이번 기회에 아예 뿌리를 뽑아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강 회장, 이번에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것도 그 일 때문입니까?
대통령의 말에 강혁은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일도 막아야겠지만, 우리 후손에게는 분단의 아픔을 더 이상 겪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
김 대통령은 강혁의 말에 크게 놀랐다.
설마 통일을 염두에 두고 강혁이 움직이고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그렇다면… 강 회장. 우리 민족이 드디어…….
강혁이 가진 힘을 알고 있는 김 대통령이 뭔가 말하려고 하자 강혁이 말렸다.
"언젠가는 그런 미래를 볼 수 있도록 한 힘을 보태보려는 것뿐입니다. 대통령님."
―……아!
강혁의 말에 김 대통령은 벅차오던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쌓여 가면 언젠가는 그런 날을 맞이할 수 있겠지요. 희망을 가집시다. 대통령님."
―……그래요. 강 회장. 허허, 그래요. 희망을 가져야죠. 그렇고말고요.
김 대통령은 강 혁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록 그런 미래를 살지는 못했지만 그런 미래가 오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대통령님.'
강혁은 그 후로도 김 대통령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시진풍과의 관계를 묻는 대통령에게 넌지시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암시를 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지만 최대한 시기를 늦출 생각이었다.
숨겨둔 카드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 말이다.
* * *
공항 활주로에 강혁의 자가용 비행기가 미끈한 동체를 뽐내며 서 있었다.
잠시 후, 리무진 자동차가 비행기 앞에 서자 그 안에서 강혁이 내렸다.
그리고 강혁의 수행원들이 뒤를 이어 강혁을 따라 비행기에 올랐다.
"회장님, 아무래도 신상현이 움직일 모양입니다."
비행기에 오른 강혁에게 이번 방북에 함께한 이규철이 다가와 말했다.
"어느 쪽이죠?"
"노 장관과 이 대표 모두 노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음, 아무래도 이번에 승부를 낼 모양이군요."
강혁은 이규철의 말에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두드렸다.
"그런데 이 대표를 노리는 건 이해가 가지만 왜 노 장관을 목표로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규철의 말에 강혁은 입가에 지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야 이번 대선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대통령이 될 사람이거든요.'
지금 노 장관은 여권 내에서도 비주류였다.
과연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최영혜를 이번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자 하는 신상현이 공격 목표로 삼은 이유가 의문인 것이다.
"후후, 글쎄. 이유가 뭘까요?"
"설마 이번 대선에서 노 장관이 대통령이 되는 겁니까?"
이규철의 말에 강혁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하, 제가 회장님을 따라다닌 지도 제법 오래 되지 않았습니까? 신상현 그 친구가 회장님만 못해도 어느 정도 신기가 있다고 하셨고요."
이규철의 너스레에 강혁도 고개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맞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노 장관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해진 순리입니다. 하지만……."
"……?"
"신상현 그 자는 자신의 사욕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인간입니다."
"……!"
신상현은 올해 19살에 불과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규철 같은 사람의 눈에는 아직 어린아이.
하지만 이규철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 껍데기 안에 어떤 인간이 들어 있는지.
'감청 자료를 받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 살인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 연쇄살인마의 영혼이라니!'
살인자의 본능을 가진 놀라울 정도로 영악한 아이.
강혁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신기가 있어서 미래를 보는 아이.
이것이 이규철이 알고 있는 신상현이었다.
회귀했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상당수 진실에 부합한 이해다.
아직도 강혁이 신상현을 부르는 호칭이 어른을 대하는 듯 하는 점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규철은 그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역시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험하겠군요."
대한국당의 당 대표인 이회수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김 대통령과 일전을 벌인 야당의 유력 후보다.
이번에도 최영혜가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되려면 이회수 대표를 넘어서야 했다.
비록 최영혜의 인기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이회수 대표에 비해 당 조직에서 밀렸다.
여기에 이번 대선의 승리자가 된다는 노 장관까지.
신상현이라면 방해가 되는 존재는 그 사람이 누구든 가만히 두지 않을 인간이었다.
"두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부터 24시간 감시를 붙이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참, 그리고 그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강혁의 물음에 이규철의 눈이 반짝였다.
"모든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터트리기만 하면 됩니다."
"음,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수고했어요. 그것만 있으면……."
"신상현, 그 친구. 그리고 최영혜까지. 모두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이규철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 * *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친구가 대체 왜?"
"그게 저도 황당합니다. 자살이라니… 일단 경찰 조사를 기다려봐야겠지만 너무 이상합니다. 대표님."
이회수는 비서실장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막역한 친구이자 정치 후원자인 박인배 사장이 새벽에 자택에서 미안하다고 적힌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알기로 박인배 사장이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몇 달 후면 아들이 장래를 약속한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례를 부탁하며 크게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런 친구가 자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사업에 문제라도 있었나?"
"아뇨, 잠깐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잠깐이고, 지금도 잘 굴러가고 있는 걸로 압니다."
"미안하다고 적혀 있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 딱 한마디만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허, 그 참. 그럴 친구가 아닌데……."
이회수는 자신의 고교 동창이며 정치적 후원자인 박인배 사장의 죽음에 황망함을 금치 못했다.
"설마, 그 친구가……?"
"혹시 짚이시는 데라도 있으신 겁니까?"
비서실장의 말에 이회수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닐세. 아무 것도 아닐세."
"……?"
잠시 후, 비서실장은 당 대표 사무실에서 나와야 했다.
'뭔가 알고 있는 눈치인데?'
비서실장은 자신의 말에 지레 놀란 듯 이상한 행동을 하던 이 대표를 떠올렸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비서실장은 다시 비서실로 돌아갔다.
"설마, 그 친구가……?"
이회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얼마 전 최영혜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차기를 보장해주고, 이번에는 자신을 밀어달라고 부탁하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이회수는 아직은 앳된 모습을 완전히 벗지 못한 젊은 미청년을 만났다.
이회수는 그를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으으으. 설마 그런 애송이가……."
이회수는 의자에 앉아 복잡한 심경으로 양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