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92화
292화
비서의 사고사 일주일 후.
이회수 계파의 국회의원들이 당 대표 사무실에 모여 후보 경선에 대해 활발히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번 대선에서 다시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는 결연한 표정들이 엿보였다.
게다가 이번에 이기면 이회수 계파인 자신들도 한자리씩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두들 자기 일처럼 나서고 있었다.
"이번 경선에 나서려면 의원님이 당 대표 자리를 내려놓고 선수로 뛰어야 하는데 시기는 언제쯤이 좋을까요?"
"아무래도 경선 룰을 새 대표가 짜는 것이 모양이 좋으니까… 한 달 후에는 새 대표를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냐, 너무 늦어. 다음 주에 바로 대표직을 내려놓고 후보 경선에 나갈 것을 기정사실화 해야지."
이회수 계파의 좌장으로 불리는 박제형 의원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언론에 하루라도 빨리 노출되어야 우리에게 유리해. 요즘 최영혜 의원 쪽 기세가 장난이 아니야."
"……."
"대표님, 다음 주에 바로 대표직을 내려놓고 기자회견 하시죠."
박제형 의원이 이회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회수는 뭔가 생각에 잠긴 기색으로 박제형 의원의 말을 못 들은 눈치였다.
"저기… 대표님?"
"응? 아, 미안하네. 잠깐 생각할 일이 있어서."
이회수의 말에 박제형 의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논의 중인 일은 이번 대선 후보 경선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회의였다.
특히나 당 대표를 내려놓고, 선수로 뛸 타이밍을 정하는 중이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조율 중인데 딴 생각을 한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다름이 아니라 당 대표 자리를 내려놓고, 언론에 경선에 나간다는 발표를 다음 주로 잡자는 말씀을 드리는 중이었습니다."
"……."
박제형 의원의 말에 이회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
"대표님?"
박제형이 의문스런 표정으로 묻자 이회수가 무겁게 입을 뗐다.
"다음 주는 다소 빠른 것 같군. 일단 좀 더 기다려 보게."
"예? 그러면 너무 늦습니다. 대표님. 바로 결정해주십시오."
박제형이 재차 권유하자 이회수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뗐다.
"김 비서가 죽은 지 한 주밖에 안 지났네. 내게 시간을 좀 더 주게."
"예? 하지만……."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
이회수가 단호하게 말하자 박제형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대표님이 왜 이러시지? 아무리 아끼던 비서가 죽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정말 중요한 순간인데… 그걸 모를 리가 없는 대표님이 이렇게 미적거리시다니.'
박제형 의원의 의문스런 얼굴을 뒤로하고 이회수는 계속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 *
북한 평양 주석궁.
강혁이 자신을 안내하는 군인을 따라 주석궁 입구에 도착하자 놀랍게도 김정일이 직접 나와 있었다.
위성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강혁은 중국에서 북한의 국경을 넘자 말자 말 그대로 국빈의 대접을 받으며 평양으로 들어왔다.
하나하나가 파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강혁의 이번 방문을 김정일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강 회장. 아직 연배가 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뵈니 정말 놀랍군요."
"하하, 제가 아직 많이 어립니다."
"아니, 이건 칭찬이오. 강 회장 나이에 이정도로 성공한 사람은 동서고금에 없을 거요."
사실 김정일은 정말 놀라고 있었다.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으킨 사람이 이렇게 젊은이라니?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실물로 보니 실감이 간 것이다.
강혁은 이미 대외적으로 IT 황제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다.
게다가 2002년 현재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최고 부자는 다름 아닌 강혁이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세계 제일의 부자 자리에 올랐으니 김정일로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정일은 시 총서기에게 강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로 그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조사를 했다.
물론 그전부터 강혁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김정일이었다.
모르기도 어려운 것이 강혁의 골든 그룹은 현재 전 세계에서 엄청난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기존의 삼강과 TG그룹이 가지고 있던 위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이크로 소프트가 가지고 있던 세계 1위 기업.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기업.
인터넷 최강자 구글, 페이스북.
온라인 전자결제 시스템.
전기 자동차.
최초의 상업적 우주 로켓 기업.
하나만 있어도 입이 벌어질 기업을 모두 한 사람이 주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업을 다름 아닌 한국인이 일으켰으니 김정일로서도 강혁에 대해서는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시쳇말로 단군 이래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시진풍에게 들은 이야기는 그가 막연히 알고 있던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천기를 읽고, 미래를 아는 자.
미국과 한국, 그리고 중국의 권력자들이 그의 조언 한 마디를 들으려고 목을 매는 사나이.
그가 세운 투자 회사 골든 타워는 지금까지 단 한건의 투자 실패도 기록하지 않은 업계의 전설이었다.
사실 아무리 투자의 귀재라고 해도 100% 성공률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미래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견하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골든 타워 투자회사는 창사 이래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업계에서는 이제 골든 타워가 투자하는 것만 따라 해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격언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투자의 비밀이 천기를 읽는 것이라니?
여기까지는 그래도 김정일로서도 긴가민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워싱턴에서 들려오는 첩보는 더 기가 막혔다.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드러난 것만으로도 강혁이 미국 정부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모르겠단다.
강혁에 대한 모든 것이 대외비로 조사에 나서자 말자 미국 정보 요원이 들러붙었다.
일개 기업 회장에 대한 조치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강한 제재가 들어와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캐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올라온 보고를 접한 김정일은 시 총서기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 친구는 천기를 읽는 친구에요. 미래를 본다는 말이요.'
'정말 그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김정일도 꼭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그 강혁이 서 있는 것이다.
"내 이전부터 강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탄하고 있었지요. 하하하."
김정일은 정말 기분이 좋아 연신 너스레를 떨었다.
어떻게든 강혁의 환심을 사서 그가 알고 있는 천기를 엿듣고 싶었다.
미래를 아는 사람이라니.
미국과 중국의 권력자들도 그의 말 한 마디 듣기를 그렇게 원한다고 하지 않는가.
김정일은 생각하면 할수록 이번 기회가 중요하다고 여겨졌다.
평소라면 생각할 수도 없었던 파격을 연출하며 그가 직접 주석궁 문 앞에서 기다린 이유였다.
"자자,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지 어서 들어갑시다."
김정일이 앞장서자 강혁은 그의 뒤를 따라 주석궁 안으로 들어갔다.
"저는 일개 기업의 총수일 뿐인데 이렇게 극진히 대접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릴 하시오. 우리 강 회장이라면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고도 남지요. 하하하."
김정일은 크게 웃으며 연신 강혁을 칭찬했다.
주석궁 안으로 들어가자 강혁을 위해 매우 훌륭한 연회와 공연이 펼쳐졌다.
북한이 자랑하는 인민 배우와 가수들이 나와 오직 그를 위한 공연을 펼친 것이다.
김정일은 그가 마음에 들어 한다면 공연에 나온 어떤 여자든 바로 바칠 기세였다.
하지만 강혁은 그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칠 뿐 그런 기색은 비추지 않았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물러나자 김정일은 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이게 우리 수령님께서 살아생전에 아끼시던 100년 된 산삼주요."
"오, 정말 귀한 거군요."
강혁이 웃으며 잔을 받았다.
잠시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나누었다.
"내 오늘 강 회장 같은 시대의 풍운아를 만나니 정말 기분이 좋소.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 절대 아니지. 이 나이에 대체 누가 맨손으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기업을 일으킨단 말이오. 아무리 칭찬을 해도 모자라지. 하하하."
김정일이 무릎을 치며 감탄을 발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런 성공을 거둔 거요? 내 듣기로 가정 형편도 어려웠다고 하던데?"
김정일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강혁은 씩 웃으며 미리 준비해 둔 이야기로 대충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호오, 군에서 사고를 당한 후 대수술을 했는데 그 후로 운명이 바뀌었다고요?"
"당시 의사 말로는 원래라면 죽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구사일생으로 살았다고."
"호오!"
"그 후로 얼마 안가 깨달았지요. 제 목숨은 하늘이 살리신 거라고."
"……!"
원래는 절대기억능력을 얻은 것이지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고 슬쩍 이야기를 꾸몄다.
당시 사고에 대한 기록은 군 서류에 남아 있어서 확인이 가능한 이야기였다.
강혁은 당시의 사고를 계기로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슬쩍 돌려 말했다.
"내 시 총서기 동지께 듣기로 강 회장은 하늘의 천기를 읽을 수 있는 천인이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천인이라? 시 형님께서 보시기에는 제가 그리 보였나 보군요."
꾸울꺽.
강혁의 대답에 김정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그럼, 강 회장은 진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보인다는 말이요?"
'흐흠, 이제 슬슬 본심이 나오는군.'
강혁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낚시를 할 때가 된 것이다.
"뭐… 이미 시 형님께서 얘기를 하셨으니 제가 뭘 숨기겠습니까."
"오오! 설마 했는데… 역시 그렇다는 말이군."
김정일의 놀란 모습에 강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했다.
"놀랍군. 놀라운 일이야."
김정일은 연신 놀랍다는 말을 반복했다.
만일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아무리 시 총서기의 말이라고 해도 쉬이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사내는 30대 초반에 맨 땅에서 초일류 기업을 일으킨 사람이다.
게다가 투자 회사를 운용하면서 단 한 건의 실패도 경험하지 않은 전설을 만들었다.
아무리 투자의 귀재라고 해도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00% 승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강혁의 골든 타워는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정일은 강혁의 말이 믿음이 갔다.
"사실 제가 국방위원장님을 만나려고 평양까지 온 것도 제가 본 미래와 관계된 일입니다."
"……!"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였다.
시 총서기가 굳이 혼자만 알고 있으면 될 일을 자신에게 알려주고 강혁이 직접 평양까지 날아왔다.
뭔가 자신에게 알려줄 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역시 그랬구려. 사실은 나도 궁금하던 차였소. 강 회장 같은 사람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말이오."
김정일의 얼굴에 호기심과 기대감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불안함을 나타내는 표정도 함께하고 있었다.
순간 기억능력으로 인간의 각종 감정을 단박에 잡아내는 강혁이다.
마음속으로 강혁은 씩 미소를 떠올렸다.
이제 슬슬 밑밥을 던질 시기가 된 것이다
"사실은 말입니다. 공화국에 큰 변화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
강혁의 말에 김정일은 쫑긋 귀를 기울였다.
'공화국에 변화? 그게 무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