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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94화 (294/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94화

294화

"저… 저게 대체 무슨 개소리야?"

신상현은 TV에서 나오는 뉴스 속보를 보고 기함을 했다.

얼굴이 살짝 상기된 아나운서가 전한 소식은 대통령 특사가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폐기를 이끌어냈다는 내용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소식에 백악관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즉각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는 논평을 냈습니다.]

[내일 오전 청와대에서 공식 브리핑이 있을 예정입니다.]

[한편,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한 대통령 특사가 누구인지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신상현은 자신이 알고 있는 회귀 전 역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발생하자 놀라고 있었다.

올해는 대선이 있는 해이다.

친인척 비리 때문에 현 정권의 지지율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상현은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최영혜라면 대한국당 경선에서 붙기만 하면 당선은 따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잠시 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뿌드득―

이빨 갈리는 소리가 조용한 거실을 깨웠다.

어쩌면 이일도 강혁의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틀림없이 강혁일 것이다.

신상현은 부르르 떨었다.

이것은 분노일까? 아니면 환희?

"크크크큿! 강 형사님. 정말 대단하시군요?"

신상현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며 이마가 드러났다.

그동안 강혁에게 당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강혁이 친 작전에 꼼짝없이 걸려들어 자금의 대부분을 잃고, 일진회 조직도 크게 흔들렸다.

자신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던 부하들도 하나둘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다.

하지만 삼강 그룹을 차지하면서 자금력은 회복되었다.

여기에 대선만 움켜쥘 수 있다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입장을 뒤바꿀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이 움직인 것이다.

입술이 실룩거렸다.

"흥, 북한 놈들이 하는 짓이야 너무 걱정할 것 없어."

신상현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혔다.

뉴스에서 떠들어 되지만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과거 회귀 전의 기억을 돌이켜 보아도 북한은 항상 말뿐이었다.

김정일 부자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다고?

강혁이 무슨 수를 부렸는지는 몰라도 결국은 실패할 것이 뻔했다.

적어도 신상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대한민국 국민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머릿속으로 뭔가가 떠올랐다.

'잠깐, 그러고 보니 올해 일어난 일이잖아!'

신상현의 얼굴이 갑자기 활짝 펴졌다.

잊고 있던 한 가지 사건이 생각 난 것이다.

당시에도 월드컵 열풍에 가려져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이다.

바로 연평 해전.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우리 측 군인이 몇 명이나 죽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이 일을 적절히 잘 이용하고, 북한이 결코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선동하면…….'

눈빛이 번들거렸다.

고개를 돌리자 마침 방송에서는 드디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시대가 개막되는 거 아니냐는 희망찬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신상현은 긴급 편성된 방송에 나온 게스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평화라? 글쎄. 어떨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정권이 바뀌며 강제 퇴직당한 전 중앙정보부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다음날, 청와대 공식 브리핑을 시작으로 한반도의 시계가 갑자기 빨라졌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으로 인해 급속하게 경색된 남북관계에 놀라운 반전이 터진 것이다.

급기야 북 미간 정상 간에 몇 번의 서신이 오갔다.

얼마 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미 국무장관이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졌다.

국민들은 봇물 터지듯 연달아 터지는 새로운 뉴스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야, 이러다 정말 통일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다. 진짜 죽기 전에 우리나라가 통일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와 동시에 전 세계 언론들이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조짐들을 대서특필하고 나섰다.

[한반도의 봄! 뉴데탕트!]

―뉴욕 타임스―

[김정일, 핵개발 포기 선언!]

―U. S. 데일리―

[김정일, 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다!]

[국무장관 전격 평양행]

―월 스트리트 저널―

[4개국 정상, 판문점 회동]

[전쟁 종식 선언 임박!]

―BBC―

언론이 군불을 넣기 시작한지 얼마 안가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남북미중 네 정상이 판문점에 모여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4개국 정상이 함께하는 평화조약을 맺기로 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성과였다.

북한은 그동안 진행되었던 핵개발 프로그램의 진척 상황을 공개하고 일괄 폐기와 UN조사단 입국을 승낙했다.

원역사와 달리 파키스탄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었던 북한의 핵개발은 사실 지지부진했다.

이는 모두 강혁이 미리 손을 써 파키스탄의 핵개발 과학자들을 빼돌렸기 때문이었다.

북한 측은 그저 미국 정부가 손을 쓴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말이다.

엄청난 자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 듯이 나가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는 핵개발 프로그램.

김정일은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북한 정권이 결국 무너진다는 말에 모든 것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차라리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중국과 베트남이 간 길을 가는 것이 백번 나은 선택이라 생각되었다.

한편 청와대에서 월드컵 개막식에 맞춰 판문점에서 4개국 정상과 평화회담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낮은 지지율로 다음 대선의 승부를 가늠할 수 없던 여당이 평화회담 발표 후 급속도로 지지율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친인척 비리와 인의적인 정계개편으로 욕을 먹던 김 대통령의 지지율도 급등을 거듭했다.

*     *     *

월드컵 개막식 삼일 전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하하하, 이거 정말 강 회장은 하늘이 보낸 사람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최 대표님."

여당 원내 대표 최현의 말에 대통령 비서실장이 크게 맞장구를 쳤다.

김 대통령 역시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말 하면 잔소리지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더니 중국까지 움직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조지아 대통령이 강 회장 말이라면 껌뻑 죽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하니 후진타오 주석까지 움직일 줄이야?"

김 대통령이 혀를 내둘렀다.

"이제 삼 일 남았군요."

최대표가 흥분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전국이 아니, 전 세계가 월드컵 개막식과 동시에 치러지는 4개국 정상의 평화회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오전에 모여 회담 후 전쟁 종식 선언과 개막식 선언을 당일 저녁 동시에 발표하게 되어 있었다.

전 세계에 평화의 기운을 불어오는 월드컵 개막식이 될 것이다.

피파에서도 월드컵의 분위기를 띄울 최상의 이벤트로 여기고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북한이 다음 번 중국, 베트남이 될 수 있을까요?"

평화 협정을 맺은 다음 북한은 개혁개방 정책을 펼쳐나갈 생각이었다.

최 대표는 대통령에게 북한의 경제개발에 대한 전망을 물은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최 대표님."

김 대통령의 말에 최 대표의 얼굴도 고무되었다.

"평화 협정 후 이를 뒷받침할 관련 법안은 최 대표만 믿겠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님."

최대표가 집무실을 나가자 비서실장만 남았다.

그러자 갑자기 집무실 분위기가 일별했다.

화기애애하던 조금 전 상황과는 180도로 달라졌다.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대통령의 목소리가 무겁게 흘러나왔다.

"각급 지휘관에게 해당 상황을 모두 전달했습니다."

"음, 명심하게 이번 일은 보안에 특히 유념해야 한다는 걸."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은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비서실장까지 집무실 밖으로 나가자 대통령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삼 일 남았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대역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김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안을 서성거렸다.

삼 일 후, 4개국 정상이 모여 휴전을 끝내고 정식으로 전쟁종식을 선언하고 평화 협정을 맺을 것이다.

이미 실무적으로는 거의 모든 것이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협정식에서는 네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앉아, 향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대화를 나누고 안면을 트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한마디로 당일 날에는 모든 세부적인 상황은 조율이 끝난 상태에서 사인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대통령은 4개국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에 정신이 없던 어느 날, 강혁에게서 걸려온 한통의 전화통화를 떠올렸다.

―대통령님, 불순한 세력이 평화협상을 망가트리고, 전쟁위기를 고조시킬 계획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월드컵 기간 중 북한 경비정이 남측 경비정을 향해 도발을 시도할 겁니다.

"……?"

월드컵 기간이라면 이미 평화협정을 맺은 이후였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때는 이미……."

―예, 평화협정을 맺은 후지요.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평화협정은 깨어지고,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은 악화되겠지요.

그리고 평화협정을 주도한 현 정권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겁니까? 김정일입니까?"

역시 김정일은 믿을 수 없는 작자인건가?

지금이라도 평화협정을 물러야하는 건가?

불현듯 여러 가지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김정일의 지시는 아닙니다.

"그게 무슨?"

―일진회가 북한 군부 내의 불만 세력을 움직여 벌이는 짓입니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리고 일진회라니요?"

―일진회는…….

김 대통령은 이날 처음으로 강혁에게 일진회라는 조직에 대한 전모를 전해 듣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이들 조직은 현재에도 사회 각층에서 권력과 금력을 쥐고 대한민국을 뒤에서 조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이들을 이끄는 수장은 놀랍게도 삼강 그룹의 최대주주이자 최영혜의 양아들이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연이어 이어졌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강혁이 하는 이야기였다.

김 대통령은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국정원 블랙요원들 마저 그들 손에 들어갔다는 말입니까?"

―상당수가 그들에게 포섭되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과거형이군요?"

―다행히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강혁의 말에 김 대통령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느끼고 깜짝 놀랐다.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심경이 되었지만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만일 그들을 그대로 두었다면 힘들게 이뤄놓은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오히려 강혁에게 감사해야하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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