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98화
298화
신상현은 경찰차에 올라탄 후 백미러를 바라보았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잘 있었어? 할아범?"
"그럼요. 도련님."
백발의 노집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래, 마침내 복수를 하니 어때?"
"날아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노집사는 조금 전 의식불명 상태에 있던 신철호를 죽음으로 인도하고 왔다.
그의 생명을 부여잡고 있어주던 생명유지 장치를 아예 멈춰버리고 숨통을 끊어 놓은 것이다.
"이제야 제 딸아이도 편안히 눈을 감겠죠?"
"그렇고말고. 할아범. 축하해!"
신상현은 깔깔깔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건 그렇고. 준비는 확실히 됐겠지?"
"물론이죠. 도련님."
운전석 옆에 올라탄 경찰이 씩 웃으며 바로 대답했다.
조금 전 신상현의 신병을 넘겨받은 바로 그 경찰이다.
그런데 생긴 모습이 특이하다.
뾰족한 상어 턱에 눈은 마치 생쥐를 연상시켰다.
그동안 유럽에 나가 있었던 샤크 박광수였다.
그의 두 눈빛이 붉게 번들거렸다.
"확실하게 준비해놓았습니다."
샤크 박광수의 말에 신상현은 활짝 웃었다.
"그럼 한번 놀아볼까?"
신상현의 말에 노집사와 박광수가 껄껄 거리며 웃어 되었다.
"화려하게 가보죠! 도련님."
"끌끌, 이래서 우리 보스가 좋다니깐?"
박광수가 만족스러운 듯 혓바닥을 꺼내 입술을 훔쳤다.
* * *
"그게 무슨 소리야. 사라졌다니?"
"죄송합니다. 어디에서도 흔적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박 팀장의 말에 강혁은 의아했다.
"알았어요. 계속 추적해 봐요."
"예, 회장님."
국정원 조사실을 나선 신상현이 감쪽같이 몸을 숨겨버렸다.
강혁은 즉시 아이린에게 말했다.
"어때? 찾았어?"
"죄송해요. 마스터. 찾을 수 없군요."
아이린의 말에 강혁은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졌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이린은 공항과 중요 교통 시스템을 해킹해 전국의 도로망을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혁이 회귀한 시대와는 달리 전국적인 CCTV 감시망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젠장, 신상현. 대체 어디로 숨은 거냐?"
다 잡은 고기를 놓친 강혁은 분노로 손을 떨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다시 6개월이 지나 해가 바뀌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신상현은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국정원, 경찰 등 공력권이 동원되어 신상현을 찾았지만 어디에서도 그는 발견되지 않았다.
공항이나 주요 항만에서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깃배 등을 통해 몰래 외국으로 밀항했을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그동안 국내와 국제 정세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최영혜와 결탁한 일진회의 전모가 밝혀져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들은 북한 군부세력과 전쟁모의를 일으킨 혐의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재판을 받고 최영혜와 함께 감방으로 갔다.
대선은 하나마나 여당이 차지하게 되었다는 세평 그대로 여당 후보가 된 노 장관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북한은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개방 개혁 경제로 전환했다.
국경이 열리고, 제한적이지만 남북한 간의 본격적인 인적, 물적 교류가 시작되었다.
국내 기업들이 북한 개성에 진출하여 개성공단이 본격적인 닻을 올리고 출범했다.
서서히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 북한은 시간을 걸리겠지만 정상 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는 강혁의 조언과 도움이 따른 것은 물론이다.
미래를 아는 자.
예언자이며 천인인 강혁의 말은 북한의 김 부자에게 신의 말씀과도 같은 것이었다.
북한의 몰락과 더불어 강혁은 종종 김정일 가문의 처절한 최후에 대해 말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몸서리를 치며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이대로 간다면 남북한 간에 통일이 되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가 화해협력의 장으로 나아가고, 통일을 꿈꾸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이 일의 뒷배경에 강혁의 활약이 있었다는 것은 소리 없는 말이 되어 전 세계 권력자들에게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이미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아랍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언자의 지위를 얻은 강혁이었다.
여기에 핵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빌런으로 꼽혔던 독재자 김정일을 설득시킨 인물이란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세계의 권력자들과 유력인사들은 강혁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고 만남을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다.
소문대로 강혁이 예언자인지 알고 싶은 호기심과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이 뒤섞인 것이다.
이들의 욕망이 커질수록 강혁의 힘과 영향력은 거대해졌다.
* * *
"다녀왔어요. 엄마, 아빠."
"어머, 제니. 오늘은 일찍 왔구나."
이유라가 피아노 악보가 든 가방을 들고 거실로 들어섰다.
올해로 유라는 한국나이로 17살이 되었다.
어느덧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라난 유라는 요즘 피아노 콩쿠르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제니!"
양어머니 클라라의 부름에 이유라가 고개를 돌렸다.
"어머나? 제니!"
순간 클라라는 두 눈을 의심했다.
어리기만 했던 제니가 어느덧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이다.
클라라는 모르겠지만 이유라는 어느덧 20대 시절의 모습이 드문드문 드러나 있었다.
"어느새 이렇게 자라다니."
클라라는 흐뭇한 표정으로 딸 제니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는 거예요? 엄마."
"후훗, 우리 딸이 벌써 이렇게 컸나 싶어서."
"헤헷."
클라라의 말에 이유라는 귀엽게 혀를 내밀었다.
"제니, 이리 와."
"응? 왜요."
"사진 한 장만 찍자."
"히잉, 나 피곤한데……."
"케이 아저씨한테 보낼 건데?"
클라라의 말에 언제 피곤했느냐는 듯 재빨리 거울을 찾아 허둥지둥 옷차림과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유라였다.
"엄마, 나 예뻐요?"
"물론이지. 제니. 넌 항상 예쁜걸."
"헹, 엄마니깐 그렇지. 객관적으로 예쁘냐고요."
유라의 말에 클라라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절대! 100%. 객관적으로!"
"100%?"
"아니 200%!"
클라라는 엄숙한 표정으로 선언하듯 말했다.
유라는 헤헤거리며 얼굴 옆에 브이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했다.
그런 유라의 모습에 웃으며 클라라는 사진을 찍었다.
"후훗, 그렇게 좋을까?"
어린 시절부터 유독 제니가 강혁을 따랐던 일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긴 시간 자신을 후원해온 강혁에 대해 제니는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바빠서 자주 만나로 오지 못하는 그에게 제니는 항상 편지나 엽서를 써서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배울 수 있도록 해준 후원자에게 보내는 의례적인 감사 인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클라라는 곧 그런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처음으로 케이 아저씨, 존 강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난 이후로 제니의 삶에는 자신과 남편 찰리가 아닌 존 강이 항상 먼저였다.
부모인 자신들보다도 자주 언급하는 존 강에게 질투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언제나 케이 아저씨가 실망하면 안 된다며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국 1등을 한다거나.
콩쿠르에서 입상하기 위해 늦게까지 연습을 쉬지 않는다든지.
존 강을 실망시키지 않고 기쁘게 하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처럼 행동했다.
삶의 모든 것의 기준인 케이 아저씨, 존 강.
사춘기가 된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 원칙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우리 강 회장님. 아직 결혼을 안했는데 앞으로 몇 년 만 지나면… 후훗,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도 참.'
클라라는 문득 떠오른 생가에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강혁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인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헐리우드 여배우를 뺨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에 스타 검사였던 엔젤리나 뉴욕 시장.
여기에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라는 천시시.
거기다 항상 강혁과 함께 다니는 금발의 여 비서 이리나.
클라라는 그녀가 강혁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만일 제니가 정말로 그럴 생각이 있다고 해도 강혁에게는 강력한 라이벌이 있는 셋이나 있는 셈이다.
'후훗, 그렇다고는 해도 왠지 제니가 질 것 같지 않은 건 왜지?'
이제 겨우 소녀티를 벗고 있는 어린 딸을 보며 클라라는 왠지 모르게 드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도 참. 우리 제니가 상대가 될 리 없잖아."
고개를 내젓다가 문득 제니를 바라보았다.
유리처럼 투명한 맑은 피부에 밤처럼 까만 머리카락.
한없이 순수해 보이는 눈동자와 사랑스러운 두 뺨.
누구든 한번만 보고 말 수는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우리 딸이 어느새…….'
"흐음!"
클라라는 콧김을 세차게 불었다.
어릴 때부터 케이아저씨, 케이아저씨 노래를 부르고 자라던 딸이다.
정말로 제니가 커서도 존 강을 원한다면?
뭐 어떤가? 나이차 정도야. 존 강은 세계 제 1의 부자다.
게다가 딸이 좋아한다는데.
"얘, 제니야."
"응? 왜 그래 엄마?"
전에 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클라라를 바라보며 제니는 얼굴에 물음표를 떠올렸다.
"내일 엄마랑 쇼핑가자."
"……!"
클라라의 말에 유라는 깜작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 정말?"
"내가 내일 우리 딸 미모를 완성시켜줘야겠다."
"……?"
약간 뜬금없는 클라라의 모습에 이유라는 다시 한 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딘지 살짝 흥분한 듯한 엄마의 모습은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경쟁심을 보이는 듯 보이기도 했다.
'엄마가 왜 저러지?'
이유라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참, 엄마. 내일 쇼핑 갈 거면 유라도 함께 가요. 그래도 되죠?"
"응? 물론이지. 딸. 유라도 오랜만에 보겠네. 잘 지내지? 아직도 클럽활동은 계속하고 있니?"
"물론이죠. 이제는 더 이상 취미 수준이 아니에요. 개인코치까지 모시고 연습해요."
"그래? 금방 그만 둘 줄 알았는데? 대단하구나!"
"후훗, 의외이긴 하죠."
이유라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는 바로 침대에 눕자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실리콘 밸리의 한 쇼핑센터.
"크큭,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보니 더 웃기는군."
검은 색 승용차 안에서 한 명의 미청년이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한국에서 사라진 신상현이었다.
그의 시선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평범한 중년 여성과 십대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쇼핑센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련님."
운전석에는 언제나 그렇듯 백발의 노집사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상어턱의 사나이 박광수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도련님, 어느 쪽이죠?"
"왼쪽. 중년 여자 옆에 있던 애야."
"흐흥. 그렇군요."
박광수가 입맛을 다셨다.
그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언제나처럼 살인욕구가 일어난 것이다.
"이번엔 참지 않아도 돼."
"흐흐, 기다렸던 말입니다."
"오른쪽 애는 건들지 마. 새로운 우리 계획에 필요하니깐 말이야."
"크큭, 그건 아쉽군요. 알겠습니다."
박광수의 말에 신상현은 입꼬리를 올렸다.
살인중독에 빠진 것은 박광수만이 아니다.
신상현 역시 오랜만에 피맛을 본다는 생각에 눈빛이 변했다.
게다가 상대는 진짜 이유라.
강혁에게 최고의 복수를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스스로 다짐하듯 조용히 읊조렸다.
"이봐, 이봐. 잊으면 안 돼. 메인은 이쪽이 아니라고."
"크큭, 물론이죠. 저도 강혁에게는 받을 빚이 있다고요."
뿌드득.
박광수의 양손에서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흐흐흐, 강혁. 마침내 그때의 빚을 갚을 수 있겠군."
박광수의 말에 신상현은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회귀 전의 기억 속에서 박광수는 강혁에게 맞아 죽었다.
"이번에는 꼭 이기라고."
"물론이죠. 전 두 번 지는 놈이 아닙니다."
박광수의 말에 신상현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뭐, 괜찮겠지. 그동안 엄청난 훈련을 쌓았으니. 아니, 내가 이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줄 테니 말이야.'
신상현의 눈빛이 사악하게 변했다.
"할아범, 이제 그만 가지."
"예, 도련님."
쇼핑센터에서 한 블럭 떨어진 곳에 주차되어 있던 차는 조용히 자리를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