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9)

04.

몸을 덮치는 열기가 이상하다. 서혜는 술 때문에 자기 몸이 고장 난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의 손이 닿는 곳마다 이렇게 데일 것처럼 홧홧할 수가 없었다.

“읏…….”

경원이 체온에 굶주린 사람처럼 허벅지를 집요하게 쓰다듬어 왔다. 열띤 피부가 서로 맞비벼진다. 그때마다 제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샜다. 너무 취해서 미친 건가, 아니면 꿈?

그런데, 꿈 치고는 남자의 벗은 몸이 너무 선명하다.

널찍한 어깨 아래로 단련된 몸이 보기만 해도 딱딱해 보였다. 밋밋하고 얇은 컴퓨터 그래픽 속의 근육이 아닌, 상상보다 더 굵직한 선이었다.

섬세한 움직임도 과연 상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저런 거랑 부딪히면 바위에 들이받은 계란처럼 깨어질 것이 확실하다.

몸을 감싸는 침대조차 기묘했다. 왜 이렇게 부드러워, 왜 이렇게 편해. 경원의 침대엔 한 번도 누워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생생한 감촉이라니.

“우리 서혜 살 좀 쪄야겠다. 응? 평소에 좋은 거 많이 먹여 줘야겠네. 그래야 덩치가 좀 커지지. 거인은 못 돼도.”

능청스러운 목소리마저 완벽하게 또렷했다. 서혜가 흐느적거리며 팔을 움직였다. 위에 올라탄 남자의 손목을 붙들었다. 저 역시도 남자를 만져 봐야 현실감이 들 것 같았다. 물론 작은 손으로 뭘 붙들거나 말거나 경원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그의 손이 원피스의 허리끈도 풀고 단추도 하나하나 풀었다.

알아서 옷을 벗을 때와 달리, 누군가에 의해 발가벗겨진다는 것은 위험한 감각이다. 등 뒤로 손이 파고들어 왔다. 간단하게 브래지어도 풀렸다.

귀찮네, 벗기기 쉬운 것만 입히든가 해야지.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살살, 살살 해요.”

남자와 달리, 서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간신히 살살 해 달라는 부탁뿐이다. 본능적으로 그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너무 경황이 없었다. 어쩌다가 침대까지 왔는지도 확실치가 않다. 아마도, 경원의 목덜미에 팔을 감고 안겨 들었던가? 그런 미친 전략은 상상으로만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상상만이 아니었나 보다.

“뭘 살살해? 섹스?”

“…….”

“그래야지, 안 그러면 오늘 밤에 죽을 텐데.”

상상 이상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해도 그렇다. 다정한 건지, 놀리는 건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마저도 사람이 질 낮아 보일 수 있는지.

서혜가 질린 듯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 남자랑 갑자기 눈이 맞아 섹스할지언정 그건 어디까지나 몸과 몸의 대화였으니까. 다른 교감은 하기 싫다.

“……그냥, 입, 좀. 열지 마요. 속에 든 건 싫어요…….”

콱-. 그러자 경원이 턱을 잡아 기어이 제 쪽을 다시 보게 만든다.

“내 속에 든 거, 그게 어떤 건데.”

“양아치 같고…… 싸가지도 없고…….”

술기운을 빌린 서혜는 못하는 비난이 없었다. 역효과였다. 경원은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두 배로 짓궂게 대꾸했다.

“좆질 할 때는 예쁘고 착한 말만 하지 뭐.”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는 게…… 문제라니까…….”

“얼굴 좀 제대로 보자.”

말은 도무지 안 통하고, 서혜는 난데없이 안경까지 빼앗겼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촉각이 더 곤두섰다.

경원은 일방적인 시선으로 서혜를 낱낱이 관찰하고 있었다. 찢어진 옷가지 위로 하얗다 못해 창백하기까지 한 피부, 그리고 완연한 굴곡들, 상기된 뺨. 긴 목선. 재잘거리는 도톰한 입술도.

주서혜. 이거 왜 이렇게 부드러운 거지. 한 줌 같은 허리에 온몸이 가늘고 말랑말랑하다. 신기한 듯 피부를 주무르던 경원이 드러난 가슴을 콱콱 부여잡았다. 커다란 손아귀에 들어맞는 모양이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살집이 튀어 오른다.

“아…… 아파.”

서혜의 긴 속눈썹 아래로 물방울이 맺혔다. 힘 조절에 실패한 남자가 서둘러 손을 떼어 냈다. 그리고 뭔가를 다시 시도한다. 둥글게 퍼진 외곽을 따라서. 그리고 점점 안쪽으로, 분홍빛이 도는 젖꼭지에 닿을 때까지. 이어서 빗장뼈와 목선을 타고 올라가 귓가를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지분거림에 서혜가 금방 기분 좋은 숨소리를 냈다.

경원은 그녀가 처음 옷을 벗어 던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만약 그때 덮쳤더라면, 애무는커녕 아파하든 말든 물컹한 살집을 내키는 대로 흔들었을지도 몰랐다. 그때는 별로 기분 좋아하는 모습까지 보고 싶단 생각이 안 들었으니까.

대체 얘랑 뭘 했다고, 서로 뭘 안다고 이런 식으로 몸을 섞게 되는 걸까. 그것도 이 모자라기 짝이 없는 인간한테.

빌어먹게도, 서로를 그렇게 한심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몸은 더 탐하고 싶어졌다.

사람은 통제력을 잃었을 때 무척 불안해진다. 안정을 찾기 위해 다른 이들을 통제하려 하고, 타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도망가기도 한다.

그리고 주서혜와 윤경원은 서로가 통제할 수 없는 미친 인간이라는 걸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몸이라도 내가 가져 봐야겠다. 내 마음대로, 엉망으로 만들어서…….

온갖 불순한 생각이 두 사람의 머릿속을 점령했다.

“흐으…….”

긴장으로 바짝 선 젖꼭지 위로 계속 손이 스치자 서혜가 다리를 버둥거렸다. 예민하게 달아올라 어쩔 줄을 모른다. 본의 아니게, 가슴에 정신이 팔려 있던 남자에게 다리가 달려 있음을 열심히 알려 주는 꼴이었다.

“그만해, 서혜야. 안 그래도 금방 넣어 줄 테니까.”

경원이 무신경한 손길로 허벅지에 걸친 치마를 들쳤다. 씻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원과 달리 온종일 노동에 시달리다 온 서혜에게서는 짙은 땀 냄새가 났다. 경원은 그런 짐승 같은 느낌도 좋다고 생각했다. 미쳤나 보다.

이내 넝마 같은 치맛자락을 완전히 뜯어내고 나니, 자신이 백화점까지 들러 골라다 온 하얀 속옷이 그대로 입혀져 있었다. 살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이제 보니 괜찮은 안목. 다른 것도 사다 입히고 싶다. 그 역시도 미친 것 같다.

그대로 손가락을 세워 속옷 위를 꽉 누르자, 갈라진 틈새로 좀 더 물이 배어 나왔다.

“너무, 깊, 어요…….”

아직 아무것도 안 넣었는데, 아래 깔린 여자가 우는소리를 했다. 그때부터 경원에게는 이성이란 게 남아 있지 않았다.

“주서혜…… 얌전히 청소나 잘할 것이지. 이런 식으로 귀엽게 군다고 내가 봐줄 거 같아…….”

“읏…….”

“뭐…… 섹스 때문에 앓아누우면 봐줄 수도 있고.”

지레 겁을 먹은 서혜가 옷자락을 아무렇게나 잡아챘다. 그리고는 제 얼굴을 가려 버린다. 어둠 속에서 경원이 속옷을 벗기는 게 느껴졌다.

위쪽으로 젖혀지는 허벅지를 따라 뽀얀 엉덩이가 조금 들렸다. 갈라진 음부 틈으로 새 나온 애액이 회음부를 타고 내리는 감각, 모든 게 너무 선연했다. 꿈이 아니라는 건 진즉 안다.

발가벗고 다리 사이를 보여 주다니.

남녀 사이에 이미 엎어진 물, 분명 이대로 끝까지 갈 거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막상 때가 되니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창피한 일이었다.

완전히 부끄러운 자세로 고정된 서혜가 제 구멍 위에 닿는 차가운 공기에 벌벌 몸을 떨었다. 그런데 차라리 차가운 것은 다행이었다. 뜨거운 체온은 상상 이상으로 두려웠다.

남의 손을 타지 않은 것이 역력한 반응에, 경원이 아무 말 없이 손가락 하나를 비집어 넣기 시작했다. 들어갈 수 없는 곳을 억지로 뚫는 것처럼 저항감이 밀려오지만, 힘 앞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

“후으…… 으…….”

뭔가 들어온다. 서혜가 입가로 색색 소리를 뱉었다. 그 소리에 맞춰 남자의 팔도 조금씩 안을 문지르는 움직임을 빨리했다. 입구 부근을 매만지는 것뿐인데, 찌걱찌걱, 이상한 소리가 섞여 들었다. 정리되지 않은 음모 위로 물방울이 튀었다.

“녹진하고…… 끈적거리고…….”

“말하지 마…….”

“겉은 까칠한 게 속은 왜 이렇게 부드러워.”

손가락을 감싼 내벽의 수축이 더 잦아지고 있었다. 예민하기도 하네, 경원은 서혜가 금방 갈 것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얼굴 좀 보고 하자니까.”

가는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경원이 낮게 읊조렸다. 그러나 서혜도 제 딴에는 필사적이었다. 경원이 손에 들린 옷을 억지로 빼앗자, 양팔로 다시금 가린다.

“왜 이래.”

봐주지 않는다는 듯 경원이 음순을 거칠게 헤집고 손가락을 두 개로 늘렸다. 더 깊게 파고든 이물질이 여린 배 안쪽의 어딘가를 문질렀다. 서혜가 놀란 듯 몸을 움츠렸다.

“섹스하면서도 버르장머리가 없네……. 예의를 지켜야지.”

“읏…… 흐…….”

말도 안 되는 논리지만 서혜가 결국 져 버렸다.

팔을 내리자, 눈앞에선 생각보다 너무나 준수하게 생긴 사내가 뚫어져라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흐릿한 시야에서 얼굴만이 간신히 보이니 집중할 곳도 얼굴밖에는 없다. 그 와중에도 제 배 속에서 뭔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미끄럽고 축축하고, 온갖 불쾌한 감각은 다 느껴지는데, 동시에 특정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서 짜릿한 느낌이 번졌다.

읏, 서혜의 몸이 잔뜩 굳어 들어갔다.

눈을 꽉 감고 다리를 꼬고, 강하게 수축했던 구멍도 일순간 크게 헐거워졌다. 간헐적인 몸의 떨림과 함께 몇 번이나 손가락을 끊을 듯이 조인다. 물의 양이나 느낌이나 이쯤이면 절정이 확실한데, 생각처럼 크게 소리를 뱉진 않는다.

가만히 여체를 관찰하던 경원이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여전히 박혀 있는 손가락으로 질벽을 한 바퀴 쓸어 만졌다. 흐윽! 서혜가 다급하게 몸을 뺐다. 어딜 가. 허리를 잡아 내리니 힘 빠진 여자는 다시 아래로 쑥 끌려갔다. 긴 머리카락이 침대 위로 흐드러졌다.

“……갔어?”

“으…….”

“갔냐고.”

경원이 젖은 손을 허벅지 안쪽에 문질러 대며 집요하게 물어 댔다. 서혜가 고개를 내저었다.

“모, 몰라요. 흐으…… 이, 입 좀, 제발…… 다물어요…….”

“그럼 혀라도 내밀고 졸라 보든지. 키스하는 동안에는 말 못 할 거 아니야.”

“그냥, 하기나 해요…….”

“진짜 괜찮겠어? 한 번 더 가고 넣을까? 만져 줘?”

“아, 아니요…….”

“네가 뭔데 아니래? 세 번이든 네 번이든, 내가 가라고 하면 가는 거야.”

다정했다가 고압적이었다가, 함께 미쳐 버린 경원이 결국에는 한 손으로 바지를 내렸다. 팽팽하게 일어선 물건이 튀어 올랐다. 서혜의 시야가 흐릿한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정말 기절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혜가 열심히 경원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서로 그다지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삽입하는 내내 눈만은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야 무서운 기분을 좀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원이 제 기둥뿌리를 잡고 음순을 이리저리 젖히며 들어갈 자리를 찾는다. 아래가 끝도 없이 벌어져 간다. 아픈데, 그런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빛이 너무 다정해서 아프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쑤욱, 한계까지 늘어난 구멍 속으로 귀두 끝이 조금 파고들었다.

서혜가 입을 벌렸다. 버텨 보려는 듯이 노력하고 있었다.

숨도 쉬기 힘들고, 울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견딜 만했다. 아직은. 고작 끝부분뿐이라는 걸 몰랐으니까.

침범해 온 귀두머리를 반갑게 씹어 대던 질구가, 어느 순간 사내를 뿌리까지 빨아들이려고 하고 있었다. 불가항력이다. 경원이 장골 아래로 세게 힘을 주고 기둥을 더 밀어 넣었다. 허벅지 앞 근육까지 콰득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머리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파고드는 것이 본능인 듯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아!”

꽉 맞붙어 있던 질벽이 본격적으로 성기 모양에 맞춰 벌어져 가기 시작했다.

왜, 들어 올 데가 없는데, 왜 자꾸 넣는 거야? 서혜가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몸속으로 기둥이 처박혀 모습을 감춘다. 경원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몸이, 전부 그의 성기 하나로 꽉 채워진 거 같다. 꼭 명치까지 꿰뚫린 것처럼 숨이 막혀 왔다.

뿌리를 조금 남긴 채 삽입이 끝났을 때, 서혜는 완전히 정신을 놓고서 울고 있었다. 배 속이 너무 이상했다. 아랫배가 죄다 망가진 것이 틀림없다고 죽는소리를 했다.

꾹, 꾹, 엄살을 부리는 것을 무시한 채 몇 번 안쪽을 눌러 보던 경원이 막힌 것을 확인하고는 힘을 싣는 것을 멈추었다. 살짝 움직여 보자, 귀두 구멍이 긁히는 감각이 느껴졌다. 전부 넣지는 못해도 깊은 곳에 딱 맞춰진 상태가 꽤 흡족했다.

“끝까지 닿았다……. 서혜야.”

“흐윽…… 윽…….”

“절반도 못 들어갈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깊게 잘 받네.”

“몸이, 몸이…….”

다정한 음성이 꼬박꼬박 상황을 인지시켰다. 망가지기는, 이렇게 잘 들어가는데. 속삭임과 함께 처음 느껴 보는 작열감이 배를 헤집는다.

쿵, 쿵, 쿵, 제 것이 아닌 박동이 몸속에서 심장과 함께 널을 뛰었다.

“흐으, 흐윽…… 안 할래…… 안 해…….”

“하…… 서혜 자궁이랑, 닿았다고. 생으로.”

“으아…… 아…….”

경원이 여자에게 길을 낸 상태 그대로 한참을 숨을 골랐다. 꽉꽉 조여드는 내벽이 황홀하다. 여자 몸 속이라 그런 것인지 주서혜 몸 속이라 그런 것인지, 흔적을 남기고 싶은 충동이 점점 넘칠 듯 불어났다. 당장 움직이고 싶은데, 얼마나 기다려 줘야 할까, 저 역시도 처음이라 잘 모른다. 대충 눈물이 잦아들 때까지라고 생각했지만 울음을 그칠 기미는 안 보였다.

“네가 왜 울어? 후우…… 내 동정 한번 먹어 보겠다고 달려드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서혜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저놈은 여유롭게 입이든 손이든 허리든 움직여 대는데, 자기는 꼼짝도 못 한다는 게. 입을 벌리면 울음소리만 나왔다.

“움직인다.”

경원이 더는 인내하지 못한다는 듯 허리를 빼냈다. 흐느낌 사이로 애원이 섞여 든다.

“으읍! 으! 하! 움직이지 마요!”

“그래그래, 살살 할게. 비비기만 할게.”

“그, 그게, 그 뜻이잖, 아. 흐아……!”

아주 약간 허리를 물리는 것만으로도 서혜가 숨넘어갈 듯 소리를 질렀다. 확실히 음부를 내려다보니 팽팽하게 벌어진 결합 부위가 위태로워 보인다. 딸려 나올 것같이 밀착한 속살이 벌써 부어 있다. 핏줄이 선 거친 기둥으로 한계까지 긁어지니 물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처음 남자를 받는 몸으로는 무리였다.

경원은 그 잔악한 교합 장면에 고개를 뒤로 젖혔다. 후-. 낮은 신음성의 뜨거운 기운이 근육질의 몸을 타고 내렸다. 세게 처박고 싶어도 참아야지, 참자. 간신히 서혜의 보드라운 허벅지를 붙든 채 약간 빼낸 성기를 쑤석거렸다. 아직 요령이 없는 남자는 힘을 줘 앞뒤로 치받는 것이 한계다.

“읏, 흐으…… 흐…….”

쓱, 쓱, 가장 두꺼운 성기 끝만 부드럽게 넣고 빼던 것을 조금 더 과감하게 짓친다. 처음 뚫린 주제에 얼마나 느끼는 것인지 서혜의 온몸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내일 체액으로 푹 젖은 침대를 청소하게 하면 어떨까.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윤경원한테 깔려 기분 좋아졌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고 싶었다.

“쪼끄만 게 가슴은 왜 이렇게 토실토실해.”

허벅지를 잡아 누른 채 느릿한 피스톤질을 이어가던 경원이 고개를 숙여서 가슴을 빨았다. 어차피 뭔 짓을 해도 서혜는 아무 저항도 못 했다. 버거운 신음성을 뱉으며 제 성기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젖꼭지가 예민하기는 한 모양인지, 쪽쪽 빨아올릴 때마다 안쪽이 거세게 조여든다. 별로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금방 쌀 것 같다.

“서혜야, 안에 싸도 돼? 오빠 처음인데 그 정도는 괜찮지?”

“아…… 아, 안 대애……. 안 돼요…….”

“난 약한 놈 명령은 안 듣는데…….”

“으…… 으응……!”

“하아…… 공손하게 빌면 생각은 해 보고.”

“으흣, 흣, 제, 제발, 밖에다…… 자, 잘못, 잘못했으니까아…….”

퍽, 퍽, 경원이 혼을 내듯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기둥의 절반 정도였지만, 갑자기 내벽이 빠르게 문질러지니 서혜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쾌락이다. 금방 절정이 찾아왔다. 그리고 자극은 계속됐다. 경원이 멈추지 않으면서 물었다.

“뭘 잘못했는데.”

“아응…… 으…… 으읏!”

“말 안 해? 이대로 애라도 만들까?”

절대 안 돼, 뒤늦게 피임에 대해 인지한 서혜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로 고개를 저었다. 필사적으로 남자의 가슴을 밀어냈지만 그에게 맞춰 흔들리는 몸은 이미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내, 내가, 잘못했어요……. 괴롭히고…… 그리고……. 약한, 주제에…… 못되게, 말해서…… 미안…….”

엉엉 울며 아무 소리나 할 수밖에 없었다. 죽을 거 같아, 제발 멈춰요. 그러다 결국 가느다란 소리로 아양까지 부렸다.

“오빠…… 오빠아…….”

경원이 참지 못했다. 그는 아예 서혜를 제 몸에 가두려는 듯 꽉 껴안았다. 큭, 짧은 신음성과 함께 질벽을 깊게 내리찧으며 아기집에 직접 정액을 쏴 주기 시작했다.

“……아!”

잘게 터는 허리 짓을 따라 물줄기 같은 기세로 내질러진다. 서혜가 배 속에 채워지는 그 선득한 감각을, 꿀렁이는 성기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느끼며 흐느꼈다.

“어, 어떻게 해요…… 안 되는데에……! 흐으……! 안, 안 된다고…… 잘못했다고 그랬는데…….”

품에 갇힌 여자가 얼굴을 가슴팍에 비비며 서럽게 운다. 끌어안은 남자의 등이 손톱에 죄 긁혔다. 할퀴든지 말든지. 남자는 따뜻한 손길로 갈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마지막 정액 한 방울까지 안에 쏟아붓고 있었다.

“쉬이. 괜찮아, 애기야. 나 사실 묶었어.”

“이 나쁜…… 아응! 우, 으!”

조금 물렁해지는가 싶던 성기가 여전히 깊게 박힌 채로 다시 부피를 키운다. 남자 쪽이든 여자 쪽이든, 성교라는 것이 한번 시작해서 어떻게 끝내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서로의 본능에 맡겨 짐승같이 살을 문지르다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윤경원은, 연료가 많아도 너무 많은 남자였다.

***

전부 술 때문이다. 그렇게 음료수 마시듯이 신나게 마셔 댔으니 이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게다가 몸도 피곤했고, 스트레스도 심했고, 졸렸고, 완전히 빈 속이었고, 남자랑 단둘이 아름다운 야경 속에 있었고, 평소에 안 하던 얘기를 해 버렸고. 겉으로 보기에는 실수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그럴듯한 상황이 다 받쳐 주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잠깐 미쳤었구나 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인 일이다.

……라는 합리화를 하면서, 서혜는 감히 깨어난 티도 내지 못한 채 침대에 웅크린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등 뒤에 경원이 있다. 동면 중인 곰과 함께 갇힌 기분이다. 허리를 그가 꽉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서혜는 한숨조차 편히 내쉬지 못하고 도로 삼켜 먹어야 했다. 머리 뒤쪽에서는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왔고, 온몸을 감싸는 뜨끈한 체온은 존재감이 엄청났다. 눈을 뜨자마자 상황이 뭔가 잘못돼 있다는 걸 파악하고도 남았다.

처음 생각은 당황이었다. 보이는 풍경에 당황하고, 맨살 위로 닿는 공기에 당황하고,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정체 모를 통증에 당황하고. 삼진 당황으로 심장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던 와중, 한쪽 벽에 걸린 푸르딩딩한 시계에 눈이 닿았다.

흐린 눈을 몇 번이나 찌푸리기를 반복해 기어이 숫자를 읽어 내니 커튼을 뚫고 들어오고 있는 밝은 햇살이 무려 오후 2시의 것. 그러자 당황이 완전히 패닉으로 바뀌었다.

오후 2시. 집 안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왔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는 시간.

왔다 간 사람이 있다면 경원의 방문을 두드렸을 것이고, 꼼짝없이 뒤엉킨 모습을 들켰을지도 모른다. 구설수 조심하라고 박 실장님한테 그렇게 주의를 들었거늘.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예컨대 어제의 그 꼬장꼬장한 회장이 감히 우리 아들을 꼬시려고 하냐며 도끼눈을 뜨고 찾아온다든가. 호텔에서 쫓겨난다든가. 그래서 저주받은 검도 허공으로 증발한다든가.

‘하, 항복할게여어, 잘, 못…… 하으, 해으…… 어요…….’

이런저런 걱정 끝에,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늦은 새벽까지 자기를 안 놔주던 경원에게 어떤 말로 애원을 했는지까지 기억이 나 버리자 서혜는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그녀는 애초부터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잘난 상류층 남자의 침대를 꿰찬 매혹적인 여자 행세를 할 깜냥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그것도 그만한 노하우가 있는 여자들한테나 가능하지, 자신은 술의 힘을 빌려도 어림도 없었다. 밤새 경원에게 잔인하게 잡아먹힌 기억뿐이다. 윤경원은 분명 유혹에 넘어간 게 아니라 넘어가‘준’거였다. 통제는 무슨, 브레이크 고장 난 폭주기관차 같은 걸 어떻게 통제해. 먼지만큼 남아 있던 자존심도 바람 한 번에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무식하게 해대는 놈인 줄 알았으면, 술을 들이붓다 기절할지언정 선을 넘을 엄두는 감히 내지 못했을 것이다.

“주서혜…….”

흠칫, 하염없이 후회를 하던 중 경원이 나른하게 이름을 불러 왔다.

일어나자마자 더듬어 대는 것이 심상치 않다. 서혜는 뱀이 똬리를 트는 듯한 은근한 압박감에 일단 숨을 참고 눈을 감았다. 자는 척으로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씨발…… 끈적거려.”

“…….”

“보송보송할 때 다시 만져 봐야지…….”

그러나 잠꼬대 같은 소리, 아니 완전히 또라이 같은 아침 인사에 눈이 자동으로 다시 뜨이고 말았다.

경원의 손이 가슴으로 올라왔다는 것도 한몫했다. 눈을 내리깔자 가슴골 사이로 하얗게 달라붙은 체액과, 아랑곳하지 않고 살을 뭉그러뜨리는 긴 손가락이 보였다.

‘하아…… 서혜야, 가슴에 쌀 테니까 잘 봐.’

차라리 필름이 끊겼으면. 남자가 가슴에 대고 사정하던 순간이 선명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활활 타고 있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원이 젖꼭지를 움켜잡았다. 손에 잡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몇 번 잡아당겼다 놓기를 반복하자, 퉁퉁 부어 있던 유륜에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흣, 결국 앙다문 잇새로 소리가 새게 만든다.

“왜 대답을 안 해?”

여자가 깼다는 걸 확인한 경원이 가뿐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몸은 이상할 정도로 개운했다. 피골이 상접할 듯한 꼴이 되어 있는 누군가와는 달리, 장어, 전복, 소고기, 홍삼 등을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섭취하고 밤 9시 이전에 숙면을 취한 다음 일어난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녁 내내 두들겨 맞은 것도 이마 깨진 것 빼고는 멀쩡하고, 이상하게 흔한 숙취마저도 없는 것이었다.

밤사이에 너무 포식했나. 실제로 정기 같은 걸 빨아 먹을 일은 없을 텐데 괜히 옆에 있는 여자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주서혜.”

굳이 일어났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으므로, 경원은 서혜의 머리칼을 한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더 잘 거야?”

얼굴에 철판을 깐 듯 친근한 태도에 서혜의 팔뚝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설마 조선시대 선비도 아니고 첫날밤을 같이 보냈다고 부부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같이 씻자고.”

서혜에게 위기감이 닥친다. 왠지 같이 씻으러 들어갔다가는 2차전을 하게 될 것 같은 합리적이고 불길한 예감이.

잠자리에서조차 경원이 몹쓸 남자라는 것을 밤새 깨달은 서혜는 싫다, 라고 속으로 대답하며 데굴데굴 몸을 굴렸다. 적어도 지금은 안 된다. 여기서 2차전을 했다가는 기어코 병원에 실려 가고 말 것이다.

“머, 먼저, 씻어요. 전 제 방으로 가서 씻을 테니까.”

“이제 와서 웬 내외질이야.”

경원이 의아한 눈으로 등을 보인 채 도망가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침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찢어진 옷으로 몸을 가리고, 어기적거리며 걸어가다가 끝내 몸이 불편한지 바닥에 주저앉는다. 뭘 저렇게 무리하면서 자기 방으로 가겠다는 걸까. 아침 인사는커녕 얼굴도 안 보여 줄 기세로.

그러다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서혜의 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다음에는, 그녀가 누워 있던 자리에 남은 붉은 자국도 발견했다.

보아하니 상처 입은 채 동굴 속으로 숨어드는 사슴 새끼였다. 경원은 이불을 던져 버리듯 치우고 침대 밑으로 내려갔다.

“귀찮게 하기는.”

별로 마음에 없는 소리를 뱉으며 다가가니 서혜가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오, 오지 마요!”

그녀의 흐릿한 시야는 제법 직관적이었다. 다른 사소한 것들은 제대로 담지 못하고 눈높이에 있는 가깝고 커다란 것부터 보인다. 맙소사, 아침부터 바짝 서 있는 남자의 성기가 덜컹덜컹 점점 선명해진다.

서혜가 밤새 자신을 괴롭힌 괴물과 제대로 마주하며 대공황 상태에 빠지는 동안 막상 발기한 상태인 당사자에게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건강한 남자들에게 매일 있는 일이 아닌가. 경원은 자기는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저렇게 호들갑인가 생각했다. 그는 나신인 상태로 당당하게 걸어가 널브러진 여자를 안아 들었다. 가벼운 몸이 번쩍 허공으로 떠올랐다.

“어쩔 수 없네, 직접 씻겨 줘야지.”

“왜, 왜 이래요! 놔요……!”

아무 짓을 안 해도 질겁하는데 씻겨 주기까지 한다니 서혜는 아예 허공에서 놓으라고 몸부림을 쳤다.

“그렇게 감동이야?”

“이게 감동한 걸로 보여요?!”

그러나 곧 쉬어 버릴 듯 섬약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경원의 눈은 흡족함으로 빛날 뿐이다. 그 대단한 최석훈 씨를 밤새 아주 성공적으로 혼내 줬다는 증거 같아서.

아, 다시 생각하니 또 아래께가 뻐근해진다.

“그럼 다른 사람 불러서 씻겨 주라고 할까?”

진담 반 농담 반인 압박으로 서혜는 간단히 저항을 멈추었다. 대신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투정을 시작했다.

“실수였어요.”

“……”

“없던 일로 해요!”

안아 든 상태로 입까지 막을 방법은 딱히 생각이 안 나서, 경원은 아무 말이나 떽떽거리게 내버려 둔 채 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나무 욕조 안에 여자를 집어넣고 샤워기로 물을 뿌리니 따갑다고 온갖 신경질을 다 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경원의 눈에 아까부터 모든 게 그저 칭얼거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처럼 들리고 있었다.

왜 그럴까. 그녀의 예민한 피부 위에 온갖 생채기를 남긴 범인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이기 때문일까. 하긴 이미 잡은 사냥감이 암만 하악질을 해 봤자 위협이 안 되는 것도 당연한 듯싶었다.

“난 실수 아니었는데. 벌어진 일을 어떻게 없던 일로 해?”

경원이 그렇게 말하며 욕조에 걸터앉았다. 적당한 온도가 되었는지 칭얼거림이 멈추길래, 그는 샤워기를 욕조에 처박아 놓고 부드러운 타올 위로 거품을 냈다.

“술 먹고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지, 술김에 하고 싶은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야. 죄라도 지었어?”

“…….”

“아무도 뭐라고 안 해, 잡아가는 사람도 없어.”

당황한 사슴 새끼를 달래는 음성이 어울리지 않게도 어른의 것이었다. 경원은 가끔 그렇게 어른 행세를 한다.

“그러니까 변명할 필요도 없고…… 의미 부여할 거면 해도 되고.”

서혜는 무릎을 감싸 안고 욕조 바닥부터 차오르는 투명한 물만 쳐다보고 있었다. 잔잔하게 올라오는 나무 냄새를 맡았다. 등과 어깨를 덮기 시작하는 비누 거품 냄새도. 비릿한 체액 냄새가 아닌 달콤한 허브 향이 났다. 선 여사님 말마따나 비싼 게 좋긴 하네.

그 상태로 서혜는 왜 밤에 벌어진 일을 없던 일로 해야 하는지 한참이나 고민해야 했다.

의미 부여를 해도 된다고? 몸 좀 부대꼈다고 무슨 특별한 감정이라도 느낄 줄 알고? 눈을 뜬 순간부터 내내 후회막급이거늘!

사람과 제대로 교류해 본 기억이 까마득한 여자애는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말하는 일에도 꽤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의미 같은 거 없으니까 잊어버려요. 서로 불편하잖아요. 이 계약 깨지면 안 되는데, 문제라도 생기면 박 실장님이 회장님한테 말해서 저 해고할지도 모르고. 그럼 아이템도 못 받을 테고.”

“박 실장이 그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해. 아니, 그보다. 아이템 때문이라고? 쪽팔려서도 아니고 싫어서도 아니고?”

“그래요, 청소나 열심히 할게요. 저는 NPC 하는 게 편해요. 컴퓨터 비밀번호 알려 주기로 한 거나 잊지 마세요.”

경원이 흐음,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그는 서혜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끼워 넣고 몸을 번쩍 일으켜 세웠다. 그 뒤로 한동안 날개뼈 부근부터 다리까지, 비누칠하는 손길이 마치 유리 다루듯 섬세했다. 공원에서 만났던 날 속수무책으로 제압당한 것을 생각하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여자라는 걸 다뤄 보기 시작한 경원은 이제 힘 조절을 제법 잘하고 있었다.

서혜 역시 그의 손이 맨살 위를 만져 대는 것에 충분히 익숙해졌기에 가만히 몸을 내줬다. 혼자 씻는 게 버거운 것은 사실이니까.

타올이 얼룩덜룩한 엉덩이 위도 부드럽게 스쳐 갔고, 가슴도 몇 번 주무르며 정액을 닦아 냈다.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겨드랑이 사이도 끈적거렸다.

뭐, 별로 사랑은 없어도 몸 섞은 다음 날 예의상 해장국이라도 사 먹이고 보내는 그런 남자들도 있는 법이겠지. 잠깐 마음의 변덕이든,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든. 아니면 한 번 더 하고 싶어서든.

어찌 됐든 남자나 여자나 쾌락이라는 원초적인 욕구만은 만족할 만치 채운 것이다.

“한 번 즐겼으면 그걸로 된 거죠, 뭐.”

조금 진정이 된 서혜가 허물어져 있던 성벽을 기웠다. 빨리 이 상황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주서혜로서 경원과 뭔가를 더 해 보겠다는 용기는 더 없었으며 최석훈으로서의 의욕만이 충만했다.

“아이템 주기로 한 약속에는 아무 지장 없는 거죠? 제 책임 아니에요. 쌍방과실이잖아요.”

그리고 완전히 게임에 밀려 버린 남자는, 반대로 조금씩 열이 오르고 있었다.

그놈의 아이템, 아이템. 게임에 미친 애라는 걸 지금껏 몰랐던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왠지 지겹고 거슬린다.

밤새도록 저 기분 좋게 해 주려고 열심히 허리를 흔들어 댄 사람한테 게임 타령이나 하다니 괘씸하기도 하고.

경원은 그렇다고 해서 적당히 하라느니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느니 하는 잔소리도 딱히 할 수가 없었다. 본인 역시도 아버지에게 얻어맞아 가며 인생 엿같이 사는 건 똑같았고, 자기가 서혜의 친구나 부모도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관계라고 설명할 수 있는 건 고용인과 고용주 그게 다였다. 그리고 주서혜도 그걸 원한다고 말한다. 실수 이상의 감정은 싫다고. 아이템이나 내놓으라고.

그럼 이쪽은 어떨까. 주서혜랑 한 번 잤다고 달라진 게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장 아이템을 줘 버리더라도, 아니 그걸 빌미로 칭칭 묶어서 매달아 놓더라도 그 맛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 아무 문제 없어. 그냥 계약서대로 해.”

경원이 화사하게 웃으며 다시 샤워기를 집어 들었다. 불길한 웃음기에 서혜가 고개를 돌린 순간, 미지근한 물이 그녀의 정수리서부터 쏟아져 내렸다. 끄악! 놀란 나머지 눈도 못 뜨고 허우적거리는 바람에 발이 미끄러졌다. 거품을 대충 물로 헹궈 낸 경원이 불안하게 기우는 상체를 붙들어 받친다. 그리고 강아지를 옮기듯이 욕조 밖으로 꺼내 들었다.

서혜는 너무 가벼웠고, 침대 위에서든 아니든 번쩍번쩍 들리며 사내의 손에 휩쓸려 다녔다. 경원이 얼추 깨끗해진 여자를 그대로 끌고 가 욕실 벽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제는 조절 실수라고도 할 수 없는 의도된 힘이었다.

“왜, 왜 그래요!”

질질 끌려간 서혜가 순식간에 유리벽까지 몰렸다. 맨발로 잘 마른 대리석 바닥을 밟고 간신히 중심을 잡자, 경원이 한쪽 손으로 벽을 짚으며 상체를 가까이 숙여 왔다.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앞으로 남은 기간. 청소는 여기만 하는 거야.”

그리고 그가 느닷없이 손을 잡아당겨 배꼽 부근으로 가져가기 시작하니 아예 서혜는 얼어붙어 버렸다. 불방망이처럼 달아올라 꿈틀거리고 있는 성기 끝이 손바닥에 문질러졌다.

청소? 어디를 청소하라고? 그 의미를 생각하던 서혜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촉촉한 입술도 벌어졌다. 어떻게 그런 저질스러운 발상을!

“컴퓨터도 마음껏 할 수 있을걸.”

하지만 생각해 보니 썩 나쁘지 않은 얘기인 것 같기도 하다.

컴퓨터라는 말에 서혜의 생각이 금방 긍정적으로 바뀌어 갔다.

변기 청소에 욕조 청소에, 게임은 구경밖에 못 하던 나날들보다야 나은 얘기가 아닌가?

노동 대신 즐겁게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면 아이템까지 손에 쥘 수 있다니. 거저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당장의 민망함을 배제한다면, 육체적 만족감으로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고……. 다른 놈이랑 자 본 적이 없어서 비교는 어렵지만, 일단은 이놈 실력이 그럭저럭 좋은 것 같으니까…….

“대신 나도 의미 부여 안 할게.”

경원이 햇빛에 녹아든 맑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서 붙잡은 손을 기둥 위로 비벼 댔다. 아직 날이 밝은 시간에 너무 난잡하다. 서혜가 금방 얼굴을 붉히고서는 발을 꿈지럭거렸다. 아직 채 거둬지지 않은 거품이 그녀의 가느다란 발목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냥 즐기기만 하자.”

분명 아무 의미 없는 파트너 정도라면, 서혜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을 일이었다. 게임 외의 관심사도 없고, 남자를 사귈 생각도 없는 히키코모리 주서혜.

그런데도 서혜에게 망설임이 역력하다. 경원이 그럴수록 서혜의 손으로 수음을 더 빠르게 했다. 채근이라도 하는 듯했다. 서혜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몸이 이상하다.

슥, 슥, 은근한 악력에 이끌려 튀어나온 핏줄 위를 문지를 때마다 성기가 얼마나 흉측하고 거대한지가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손의 물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 기둥이 좀 더 끈적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

“부담 안 준다니까.”

“…….”

“잘해 줄게. 안 아프게.”

흔들리던 서혜의 시선이 경원과 마주쳤다. 발코니에서도 그랬지만, 저열한 눈매가 왠지 자신을 옭아매는 것 같았다. 한 번 마주치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응? 너도 기분 좋았잖아. 좋아서 자지러지던데.”

다정한 어조로 그가 다시 묻는다. 거절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경고등을 켜고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실컷 즐기다가 가. 손해 볼 게 뭐 있어?”

“…….”

“할 거지?”

생존 본능에 의한 선택일까, 아니면 정말 조금 달래고 안심시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움직이는 걸까. 서혜가 결국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잘 생각했어.”

경원이 속으로 조소했다. 처음 데려온 날이나 지금이나, 너무 쉬워서.

온갖 허세로 무장한 주서혜는 몸이든 마음이든 단 한 번도 강했던 적이 없었고, 윤경원을 이기는 데 성공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맨정신에도 홀린 사람처럼 잘만 넘어가는 걸 보라. 아마 서혜가 여기 발을 디뎠던 그날부터, 넘어뜨리기로 작정했다면 이미 그리됐을지도 몰랐다.

“나 잠들기 전까지 퇴근 없는 것도 잊지 말고.”

“흣…….”

경원이 서혜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서혜는 벽을 짚고 섰다. 햇살이 내리쬐는 서울 풍경이 멀리까지 펼쳐지지만 너무 흐려서, 간신히 하늘에 떠 있는 구름만을 바라보았다. 자기도 붕 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2차전을 못 피해 갈 듯싶었다.

“엉덩이 내밀어.”

뭔가 명령 같은 게 떨어지는데, 서혜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랐다. 발을 일 센티 정도 살짝 뒤로 빼자, 경원이 물방울이 맺혀 흐르는 둔부 위를 가볍게 내리쳤다. 짝! 젖은 피부에 타격음이 두 배는 크게 번졌다.

“흣……!”

당황한 서혜가 고개를 뒤로 돌린다. 경원이 탁, 탁, 소리를 내며 자기 성기를 문지르고 있다. 그 위로 균형 있게 들어찬 복근이 밝은 곳에서 보니 무슨 공원에 세워진 조각상처럼 반짝거렸다. 꿀꺽, 침을 삼킨 서혜가 이번에는 다리를 한참 뒤로 빼고 허리를 숙였다. 저절로 엉덩이를 내민 모양새가 됐다.

“옳지.”

젖은 머리카락이 보기 좋게 휘어진 허리 위로 흩어지고, 엉덩이는 사내를 향해 둥글게 퍼지며 가운데 숨겨져 있던 은밀한 습지를 드러냈다. 그나마 대충이라도 씻겨 나간 곳은 겉 부분뿐이라 안쪽은 아직도 꽤 지저분했다. 음부 위로 온갖 체액이 뒤엉킨 와중, 약간 부어오른 음순이 보기만 해도 빽빽하게 구멍을 닫고 있었다.

“읏…….”

꽉 닫힌 균열을 벌리고, 경원이 곧장 내내 넣을 준비가 되어 있던 성기 끝을 구멍 위로 가져갔다. 그대로 음순 위를 짓누르듯 비비자 서혜가 숨을 헐떡였다. 넣지도 않았는데, 정말 엄살쟁이다.

부드러운 음부의 촉감을 귀두 끝으로 즐겨 대던 경원이 골반을 잡고 몸을 밀었다. 어제 넘치도록 싸 놓은 정액이 안쪽에서 얽혀 들며 진입을 도왔다. 그래도 여간 좁은 게 아니었다. 맨정신인 서혜의 몸은 침대 위에서와 달리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조이는 게 벌써 버릇이네.”

“으…… 흐…….”

귀두구가 반쯤 들어갔다. 그때가 제일 두렵다. 입구가 침입자를 밀어내려 하는 것과 반대로 배 안쪽은 기대감으로 조여든다.

“하루 만에 이렇게 음란해지고. 이러면서 뭐가 실수야.”

커다란 손이 단숨에 둔부를 벌렸다. 벌름거리는 구멍 두 개를 밝은 햇빛 아래서 선명하게 눈에 담았다. 경원의 눈매가 흥분으로 가늘어졌다. 뒤에서 박으면 이런 점도 꽤 즐겁구나. 주서혜라는 존재로 알아가는 것이 많다.

“힘 풀어, 응, 그렇지.”

“읏…….”

“다 들어갈 때까지. 잘하네.”

금방 기분이 좋아진 경원이 엉덩이를 살살 쓰다듬으며 서혜를 달래기 시작했다. 천천히 절반까지만 삽입한 채, 위아래로 질벽을 문지르며 약한 부분을 찾아낸다. 저 엉덩이에 철썩 소리가 나도록 박아 주고 싶은데, 상태를 보아하니 이 자세로 다 들어가는 건 무리다. 게다가 서혜는 키도 구멍도 너무 작아서, 거의 까치발을 들고 버텨야 했다.

“아으…….”

경원이 혀를 차며 다리를 아예 잡아 들었다. 다리를 양쪽으로 훤히 벌린 채로, 창문에 손을 짚고 상체를 기대게 한다. 허공에 몸이 떠오르자 바깥쪽으로 드러난 음부에 성기가 저절로 깊게 꿰인다.

“흐아아아…….”

좀 깊게 들어갔다고 흐느적거리면서 가 버리니, 경원이 서혜의 등 뒤쪽에서 만족해하며 말했다.

“밖에서 가는 거 다 보이겠다, 서혜야.”

만약 유리창 밖에서 본다면 다리를 벌린 채 가슴은 유리 벽에 문지르고 있는 꼴이었다. 실제로는 아무도 볼 사람이 없었지만, 서혜는 보여지고 있다는 생각에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을 감췄다. 힘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왜 굳이 밖에 보이도록 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이거 첫 섹스에 질내사정 당하고, 질펀하게 절정하는 거까지 죄다 보여 주고. 우리 서혜 시집가기는 글렀지. 억울해서, 어떡해.”

“읏, 으…….”

찌걱찌걱하는 마찰음과 함께 경원이 허벅지를 가볍게 위아래로 들었다 놓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지. 책임지고, 열심히…… 박아 줘야지. 기분 좋아질 때까지.”

서혜의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제발 아무 말 하지 말라며 울먹거리지만, 낮은 목소리가 욕탕에 울릴 때마다 오돌토돌한 질벽이 오물거리며 기뻐하는 것이 기둥껍질을 타고 선연하게 느껴진다.

“흐으…… 흐…… 너무, 깊어…….”

어차피 이 자세로는 도망갈 수도 없고 완전히 남자에게 매달려 있어야만 했다. 그가 놓아줄 때까지.

안쪽으로 깊게 들어온 성기가 질후벽을 부드럽게 비벼 댄다. 전날에는 많이 문질러지지 못한 부위, 그리고 밖에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자극이 심했다.

“아, 앙…… 흐아…….”

어느 순간 신음성이 조절이 안 됐다. 경원은 그녀가 어느 부분에서 더 잘 느끼는지 금방 알아챘다. 몇 번 더 들먹이기 무섭게 서혜가 고개를 저으며 다 죽어 가는 소리로 간청했다.

“으, 응, 도, 도련님.…… 조금만…… 상냥하게…….”

푹, 푹, 몸이 멋대로 위아래로 흔들릴 때마다 서혜의 목소리도 흔들린다. 이미 정액으로 꽉 찬 것 같은 자궁을 뭉툭한 것이 자꾸 밀어내니 배가 점점 이상해졌다. 간신히 뜨인 눈에 비치는 청명한 하늘도 색이 이상하다.

“배, 배…… 아, 파요…… 흐우…… 흐…….”

아픈 건지 좋은 건지, 구분이 안 된다.

“흣…… 으,읏…… 몸이, 이상, 이상해요…….”

“아…… 씨발, 미치겠네.”

하룻밤 사이에 애원하는 터득한 여자가 넋을 놓은 듯이 앙알거린다. 경원도 같이 넋이 나갔다.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정이 조절이 안 된다.

“응…… 흐, 아으…….”

“일단 한 번, 쌀 테니까, 꽉 조여.”

허벅지를 받친 손이 여체를 꽉 내려앉혔다. 남자는 갈라진 요도구로 안쪽을 비벼 대며 또다시 정액을 가장 깊은 곳에 토해 냈다. 여자의 질벽도 강하게 수축하며 한 방울이라도 더 쥐어짜겠다 성화다. 한참 뒤에야 풀려난 서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마른 바닥을 맨몸으로 뒹군다.

두꺼운 기둥에 쑤셔져 잠시 느슨해진 질구는 더는 담을 수 없는 양의 정액을 꾸역꾸역 밖으로 뱉어 낸다. 주서혜. 그 악명 높던 게임 속 폭군의 정체. 경원의 발치 아래서 온몸이 흠뻑 젖은 여자가 색색 숨을 토하며 누워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승자와 패자처럼 보였다.

보는 사람까지 정신 나가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어쩌다 이런 걸 주워와서…….”

경원이 땀이 흐른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낮게 욕지거리를 읊조렸다. 그러고는 홀린 듯이 지쳐 쓰러진 여자 위로 몸을 겹친다. 2차전을 했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서혜의 걱정은 제법 잘 맞아떨어졌다. 그가 한쪽 종아리를 잡아 올리고 젖은 음부에 금방 딱딱해진 물건을 비빈다. 경원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정액들을 귀두 끝으로 쓸어 다시 질구 안에 쑤셔 박았다. 본인도 이런 추잡한 짓을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으나 본능적으로 아깝게 느껴졌다.

퍽, 퍽, 살이 맞닿는 것도 아닌데 둔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서혜가 끙끙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일을 후회한다.

그냥 기분 좋은 수준이 아니잖아, 이건. 사기꾼아. 파트너는 취소해, 차라리 욕실 청소를 하루 종일 할 테니까…….

나름대로 뭔가를 필사적으로 주장하고 있었지만 몸이 흔들리는 것도 배 속이 괴롭혀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계속됐다. 허리를 붙들고 잡아당기던 남자의 손이 푹 퍼져 출렁이던 가슴 위로 올라갔다. 젖꼭지 위의 갈라진 틈새를 손끝으로 긁어 대며 콱, 콱, 성기를 쑤셔 박는다. 흐윽, 서혜가 몇 번째인지도 모르는 절정에 바르르 몸을 떨었다.

“서혜야, 기분 좋아?”

“흐…… 네…… 네에…….”

경원에게 통제권이 넘어가 버린 몸뚱이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뱉어 내고 있었다. 네에, 는 무슨 네에, 야. 정말 억울할 정도로 볼썽사나운 소리였다.

그리고 경원은, 한 번 사정한 뒤라서 그런지 아직 멀었다.

그는 기껏 서혜의 몸을 깨끗하게 씻겨 놨더니 이래서야 아무 소용도 없겠다고 짐작했다. 계속했다가는 분명 처음부터 다시 씻겨야 할 것이고, 얼마 안 가서 또 더러워질 것이다. 어쩌면 한 달 내내 반복할지도, 아니, 그 뒤에도 미쳐 있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예감이 들었다.

경원 역시도 제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S.D]

[저는 평범한 20대 여자인데요. 제가 술에 취해서 평소 싫어하던 남자하고 자 버렸는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절대 이 남자랑 잘 이유가 없거든요. 평소에 그놈만 보면 뒤에서 뒤통수를 때리고 싶은 정도였고요. 그런데 제가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요? 심지어 제가 먼저 매달린 것 같고…… 어쩌다 보니까 잠만 자는 사이가 됐어요. 혹시 술에 인체에 작용하는 특수 나노 칩 같은 게 들어 있어서 제 생각을 조종했거나 최면을 걸었을 가능성은 없나요?]

⤷[안녕하세요, 내공 냠냠입니다. 사랑의 묘약 같은 것은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충동 조절 장애는 전문가를 찾아 치료를 받으시는 것이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됩니다. 채택 부탁드립니다.]

⤷[어디 사세요? 외로우시면 쪽지 주세요.]

⤷[질문자님께서 뒤통수 때리고 싶은 남자와 성관계를 하여 고민이시군요? 저도 가끔 술에 취해서 이상한 행동을 할 때가 많은데요. 파가니 제약회사에서 나온 빠른 숙취해소제를 구비하고 다닌 뒤로 그런 고민이 없어졌어요. 위장도 보호해 주고 간에도 좋은 영양제입니다. 술 먹기 전에 한 포, 먹은 뒤에 한 포 이렇게만 먹었는데 실제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마침 반값 세일중이라네요. 링크 첨부해드릴 테니 둘러보세요^^]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른 서혜가 핸드폰을 끄고 침대 머리를 시트에 처박았다. 뭔가 일이 단단히 잘못된 것 같은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인정하기만 하면 편해진다는 걸 알고 있다. 윤경원이 자기가 동경해 마지않는 강인한 몸을 가지고 있고 그걸 손에 넣는 순간 쾌감이 엄청나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윤경원이 아닌가! 솔직해지기는커녕 그에게 욕정한다는 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만 태산 같았다.

경원과 붙어먹은 뒤로 서혜의 일상은 또 바뀌었다. 경원이 깨우지 않는 한 자고 싶을 때까지 늦잠도 잤고, 온종일 어깨를 두드려 가며 먼지를 닦는 대신 소파에 누워 TV를 볼 수도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른 일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태라고 봐야 했다. 한동안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몸살에 시달렸으니까.

우려하던 대로 눈치 빠른 직원들한테도 전부 들켰다. 선 여사가 빌빌거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겼는지 주전부리를 잔뜩 사다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괜히 혼자 눈치를 보며 부끄러워하는 서혜를 향해 ‘그럴 줄 알았다.’라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팔팔한 20대 남녀 단둘이 호텔 방에서 함께 지내는데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겠냐며, 심지어 윤 회장과 박 실장도 이미 옛날부터 주서혜를 윤경원의 여자라고 생각해 왔을 거라고 말이다. 룸메이드는 그냥 남들 눈에 보이기 위한 적당한 명분일 뿐.

그러니까, 박 실장에게는 이 정도 일은 구설에 끼지도 못하는 사소한 일이었고, 윤 회장은 아침 드라마처럼 아들과 엮인 여자를 떼어 내기 위해 달려들기는커녕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이 투명 인간 취급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서혜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사회인들의 무서움을 느꼈다.

뭐? 누구의 여자? 웃겨, 그놈이 내 생체 딜도가 되겠다고 자처한 거지!

서혜가 매일매일 정신 승리를 하며 이를 갈았다. 제 생각에 근거 없는 얘기도 아니었다. 경원이 자신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 주고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경원은 약속한 대로 비밀번호도 알려 주었다. 몸살에 위염까지 도져서 시름시름 앓고 있자, 호텔 룸서비스 메뉴판을 대령해 매끼 먹고 싶은 비싼 음식들을 골라 먹으라고 했고. 커다란 욕실도 마음껏 쓰라고 했고. 잠자리에서도 저 하나 만족시키기 위해 땀을 뻘뻘 흘려 댔고. 힘든 일 같은 건 절대 시키지 않았고.

다만, 섹스가 끝나고 난 뒤 자꾸 잡아먹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딱 하나만 어찌할 수 없을 뿐이다.

그는 어디서 알아 온 것인지 매번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는데, 하나같이 서혜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었다. 그냥 구음을 하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경원의 몸에 거꾸로 올라타 성기를 빠는 동안 그녀 역시 다리를 벌린 채 그에게 계속 음부를 보여 줘야 했던 적도 있다. 경원은 느긋하게 엉덩이를 잡아 벌리고서 안쪽을 관찰하다가, 왜 만지지도 않았는데 젖는 것이냐 물어 왔다. 입으로 빨면서 느끼는 거냐, 보여 주는 걸로 느끼는 거냐, 빨아 줄 테니까 엉덩이 더 빼라. 밤새도록 이어지는 온갖 희롱에 서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결국 새벽 내내 시달린 서혜가 한 번 더 추잡한 행위를 하면 다시는 성교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도 해 보았지만, 바로 다음 날 밤 호텔로 돌아와 위에서 움직이는 게 더 안 아플 거라느니, 묶고 하면 두세 배는 더 기분이 좋을 거라느니 온갖 감언이설로 구슬리기 시작하니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넘어갔다. 마지막에는 울면서 빌다가 기절하듯 잠드는 하루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나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침, 서혜는 마치 시간이 1년쯤 흐른 듯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느지막이 일어나 여유롭게 핸드폰을 뒤적거리니 11월 중순을 향해 가고 있다.

이곳에 온 것이 10월 말. 아이템을 받기로 한 날짜까지는 아직도 2주일이나 남았다.

뭐야, 왜 이것밖에 안 지났어?! 시간과 정신의 방, 뭐 그런 곳에 갇힌 건가?

서혜가 분통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얄궂게도 눈을 뜬 곳은 또다시 경원의 방이었다. 밤에 또 무엇을 했는지 이제 떠올리기가 무섭다. 뭔가 기억이 나기 전에 벌떡 일어나 움직이기로 했다. 익숙하게 뻐근한 몸을 이끌고 샤워도 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씩씩하게 룸서비스를 요청해 밥도 챙겨 먹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계속 다리 사이가 아렸다. 팔뚝 같은 물건으로 내내 아래를 벌려 놓으니 도무지 다리 사이의 불편감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황홀하고 기쁠수록 다음날 밀려오는 반작용이 크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러다가 내내 침대에 갇혀 자괴감에 허우적대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고 말 터였다.

성교라는 건 완전히 밸런스 조절에 실패한 시스템이 아닐까. 윤경원에게만 검이 주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놈은 자기 다리 사이에 달린,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걸린 검으로 마구 제 급소를 공격해 대는데, 자신은 아무런 방패도 없고 죽기 직전에야 간신히 풀려나는 것이었다.

뭐 잘못 먹은 사람처럼 잘해 주는 것도 사실은 사망을 방지하기 위한 힐링 스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는 부활 버튼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나마 겨우 앉고 걷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서혜는 최소한의 회복력을 주신 신께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경원이 그걸 알고 또 벌써 익숙해졌냐느니 자기 물건에 맞춰질 때도 됐다느니 질 낮은 소리를 할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했다.

정오에 가까운 오전이었다. 부엌에서 내내 윤경원에 대해 분석하며 벌컥벌컥 물을 마시던 서혜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고요한 집 안.

뭘까, 눈뜬 뒤로 내내 중요한 걸 잊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놀고먹으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아 맞다, 게임. 최석훈.

언제 잊고 있었지. 이 정도 컨디션이면 잠깐이나마 컴퓨터를 할 수도 있을 텐데.

뒤늦게 할 일을 떠올린 서혜가 재빨리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

한밤중 호텔 로비를 가로지르는 구둣발이 사뭇 조급하다. 잘 닦인 구두에 수천만 원짜리 캐시미어 테일러드 재킷, 그보다 열 배는 비싼 시계까지. 한눈에 보아도 번쩍거리는 것들로 온몸을 뒤덮은 남자. 그러나 위화감 하나 느껴지지 않는 수려한 이목구비와 당당한 걸음걸이는 그런 사치가 과하다는 느낌조차 들지 못하게 했다. 윤경원, 그가 전대미문의 망나니라는 소문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면 그저 날카로운 인상의 귀공자가 따로 없다.

호텔 직원들 사이에서는 말이 많다. 원래 윤씨 집안의 막내 도련님은 후줄근한 옷을 좋아하고, 필요할 때만 숨이 막힐 것처럼 철두철미하게 슈트를 입고 다녔었다. 결벽적인 정장 차림이 오히려 묘하게 반항아적인 느낌도 주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유난히 비지니스 캐주얼을 자주 입었다. 평소 신경 쓰지 않던 자연스러운 기품 따위를 풍긴다. 들리는 말로는 심지어 에스테틱도 다닌단다.

여자 생긴 거 같지? 수군거리는 직원들을 무시한 채 경원이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능글맞은 얼굴로 직원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주는 것은 덤이었다. 범수가 그 뒤에서 짐꾼처럼 양손에 쇼핑백을 다섯 개씩 들고 따르고 있었다.

“도련님, 이번 주 주말에 라운지에서 창립기념일 행사 열리는 건 들으셨습니까? 피트니스클럽 회원들한테만 초대장이 나갔답니다. 윤주원 사장님께서 그날 경매 준비에 특히 신경 쓰신 것 같습니다.”

“매년 하는 거잖아. 알고는 있는데, 어차피 나한테 초대장은 안 보내던걸. 뭐, 마약 파티 같은 게 생기면 부를지도 모르지.”

“사실, 사장님께서…… 저한테 그날 도련님은 최대한 호텔에서 멀리 떨어진 외부로 모시는 게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형님도 아직 나를 잘 모른다니까. 그럴수록 더 가고 싶어지는데. 오너 일가가 들어가겠다는데 감히 누가 말릴 거야?”

황금색으로 칠한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했다.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경원이 범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기한테 파티 초대장이 안 왔다는 다소 슬픈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도, 경원은 참으로 싱그러운 미소를 지을 줄 알았다. 평소와 달리 묘하게 무해하게 느껴지는 얼굴이다.

“짐만 내려놓고 바로 퇴근해.”

심지어 일찍 퇴근까지 시켜 준다.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범수가 집에 발을 디디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박 실장도, 선 여사도, 룸서비스를 서빙하는 직원까지 잘만 드나드는 집에 범수만은 못 들어가는 게 이상했다.

범수 혼자 남자인 것 말고는 특이점이 없다. 아무리 봐도 집에 있는 여자애 때문이었다. 난데없이 다 입지도 못할 옷과 신발을 쓸어오는 것까지, 경원이 서혜를 여자로 보기 시작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연인이라도 되는가 하면, 범수의 눈에 그것은 또 아니다. 데이트 일정은커녕 전화 통화하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고, 다른 직원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특별한 교류는 안 보였기 때문이었다.

범수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든 사랑 문제까지 참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경원은 없던 문제도 생기게 만드는 데에 큰 재능을 타고났으니 걱정도 된다.

짐을 내려놓은 범수가 현관에서 몸을 돌렸다. 문이 닫히자마자, 그는 다시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누군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수신자는 윤 회장. 정기적으로 연락해 그의 철부지 아들이 특별한 일 없이 사업 준비에 매진하고 있음을 알린다.

[도련님 오늘 판교 쪽에 사무실 알아보셨습니다. 견적도 다 직접 손보셨고요. 조만간 그쪽으로 거주지도 옮기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남동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어 보이고?]

[네. 호텔 생활이 편하신 것 같습니다.]

투둑, 투둑, 무신경하게 화면을 두드리던 범수가 곧 새로운 수신자를 지정했다. 다름 아닌 주서혜다.

[이 문자는 보자마자 삭제 바람.]

몇 번 그녀에게 업무상 문자를 보내 본 적이 있던 범수였다. 그 애나 자신이나 경원에게 휩쓸려 다니는 처지인 것은 매한가지. 안쓰러운 마음으로 조언 몇 개쯤 보내 놓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혹시 위험한 일 있는 거면 나한테 바로 말하기.]

[도련님 생각보다 더 위험한 사람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됨.]

그 시간, 문밖에서 범수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새까맣게 모르는 경원은 들뜬 표정으로 쇼핑백 하나를 집어 들고 집 안에 들어서고 있었다.

“주서혜!”

경쾌한 부름이 메아리쳤다. 집은 고요했다. 마중 나와 있어야 할 여자가 없다. 오늘도 침대에서 못 일어난 건가. 그런 생각으로 복도를 가로지르는데, 이상하게 사람의 온기도 인기척도 없는 느낌이었다.

세상이 죄다 싸늘하게 식어 버린 것 같다.

“주서혜! 서방님 오셨는데 안 나와 보냐?”

경원이 발을 딛는 동선을 따라 캄캄하던 집 안이 하나둘씩 빛으로 물들었다.

거실, 부엌, 경원의 방, 발코니, 욕실, 서혜의 방.

아무 데도 없다. 운동을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니 다른 방에도 없을 터였다.

어디 갔어? 설마 그사이에 싫증 나서 도망이라도 갔나? 걷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

요즘 세상에 억지로 가둬 놓을 수도 없는 노릇, 사실 서혜가 마음만 먹는다면 문은 언제든지 열고 나갈 수 있다. 도망가는 것도 없는 가능성은 아니다.

그러니 이 관계를 이어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은 자신에게도 있고 동시에 서혜에게 있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정이라는 게 있지 인사도 없이 간다고? 경원의 발이 자연스럽게 서재로 향했다. 그나마 있을 만한 곳이었다.

“서혜야!”

서재방은 천장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사람이 없으면 저절로 소등이 될 터이니 누군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경원이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밤마다 기분 좋은 곳만 열심히 만져 준 보람이 있는 것일까. 도망은 안 간 모양이었다.

그깟 섹스가 뭐라고, 그 원수 같던 여자애가 땅으로 꺼질까 불안해하는 스스로가 웃겼다. 몸에 대해서나 잘 알 뿐 그녀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경원은 자조하는 심경으로 커다란 서재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쪽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의자도 엎어져 있고, 책과 집기들이 습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바닥에 줄줄이 넘어져 있었다.

이윽고 시선이 향한 곳은 서재 구석, 작은 몸뚱이가 소파 위에 시체처럼 쓰러져 있다.

“주서혜?”

죽었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방 풍경에 순식간에 흑백으로 뒤집힌다. 경원이 두 눈을 크게 깜박였다. 서혜의 몸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뀌었다가 되돌아온다. 아주 잠깐 스쳐 간 환각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경원이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팽개치고 쓰러진 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야, 너 괜찮아?!”

재빨리 엎어져 있는 서혜의 몸을 뒤집어 눈동자와 호흡 상태를 확인한다. 체온은 정상, 숨도 잘 쉬고, 눈도 제대로 응시하고 있다. 그는 서혜의 힘 빠진 팔을 당겨 손목을 잡았다. 맥박을 확인함과 소파 앞에 무릎을 꿇고 계속해서 말을 거는데, 서혜는 꼭 목이 막힌 사람처럼 억 억 소리만 낼 뿐 제대로 대답을 못 했다.

“후으윽…….”

피부색이나 심박수도 정상이고 특별히 손목을 긋거나 독극물을 먹은 흔적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자살 시도는 아니고 어딘가 병이 났다는 말이 아닌가.

서혜의 꼴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갈라진 목이 제대로 소리도 못 냈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애처롭기까지 하고, 육지 위의 생선처럼 몸을 펄떡이는 걸 보면 상태가 많이 심각하다.

대체 아플 게 뭐가 있어, 일도 안 시키고 밥도 잘 먹는데?

경원이 저답지 않게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머리를 차분히 했다.

지금 아플 만한 곳이라면, 떠오르는 원인은 단 하나뿐이었다.

건강 걱정에 삼매경인 남자는 심각한 얼굴로 서혜의 유니폼을 들췄다. 치렁치렁한 속치마도 들추고 안에 입고 있는 속바지도 단번에 벗겼다. 몇 번 해 보았다고 여자 옷을 마구 벗기는 데에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위급 상황에 한시가 급한데 망설여서 뭘 하겠는가. 그렇게 팬티까지 벗기기 위해 깊숙하게 손을 비집어 넣은 순간, 서혜의 발이 경원의 머리를 거세게 밀어냈다. 서혜가 메마른 입을 열었다. 그 사이로 절망과 공포가 섞인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도, 련님…….”

경원은 그녀가 자신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로 다시 달려들었다. 진심 섞인 걱정이 느껴지는 그의 행동에 서혜의 미간이 좁아졌다. 표정은 감동이라기보다는 역경과 고통에 가까웠다. 경원은 그것이 복통 등의 통증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많이 아파? 조금만 참아, 상태 보고 바로 의사 불러 줄 테니까.”

“그게, 아니라…….”

“불편하면 여자 의사로 불러 줘?! 말만 해. VIP 병실 넣어 줄게. 응?”

“그게 아니라아…….”

“죽으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컴퓨터…… 좀…….”

“……컴퓨터?”

으어, 응, 빨리, 서혜는 저대로 필사적이었다. 답답하다는 듯이 발을 버둥거리고 팔을 휘적거린다.

그제야 경원이 조금 황당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된 원인이 섹스가 아니라 컴퓨터 때문이라고?

서재 한 편으로 돌아간 시선 끝, 모니터 화면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경원이 황급히 불이 켜진 모니터 앞으로 뛰어갔다. 지금 보니 다른 한 대는 아예 깨부숴 놨다. 그러나 경원에게 비싼 물건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서둘러 상황을 파악했다. 일단 윈드 스토리가 켜져 있기는 한데, 화면이 ‘사망하셨습니다.’라는 글씨로 가려져 있었다. 뭐야? 경원은 아무 생각 없이 부활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마을에서 눈을 뜬 최석훈의 근처로 그동안 성장한 새 랭커들이 순식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최석훈 다시 부활했어요! 지금 황궁 근처 극장이에요!]

[쟤 아까 낮에 몰래 보스 잡으러 가다가 딱 걸림ㅋㅋㅋ]

[움직이는 거보니까 조작은 하고 있는 듯요ㅋㅋ야 보고 있냐? 우냐?]

언제부터 이 상태였을까.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귓속말도 밀려오고, 부활 한 번 했다고 채팅창이 최석훈 얘기로 정신없이 올라갔다. 그간 벼르고 벼른 사람들은 욕설 방지 시스템을 회피하기 위해 온갖 특수문자와 영어를 이용해서 창의적인 욕들을 만들어 냈다.

일종의 사냥이었다. 약하고 악하기까지 한 타깃이 만인의 사냥감이 된 것이었다. 거의 3주일이 지났어도 사람들의 울화는 사라지질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동안 경원이 침묵을 유지한 끝에 온갖 헛소문만 무성하게 떠돌던 최석훈이 갑자기 살아 돌아왔으니…… 집단 광기가 폭발해 버리는 것도 순식간이었을 터였다. 여기서 조금만 안전지대를 벗어나도 집중 포화를 맞고 죽는다.

경원이 마우스를 움직여 사망 기록을 펼쳤다. 아니나 다를까 100번도 넘게 죽었다. 한때 우주최강경원이가 그랬듯이, 도저히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네가 잘못을 하고 다녔으니까 당연히 이렇게 되지. 자업자득 몰라?”

파악이 끝난 경원이 냉정하게 말했다. 주서혜의 몸이 아플까 어화둥둥 감싸 줄 수는 있어도 최석훈은 어림도 없다. 살살 쑤시며 예뻐해 주던 와중이라도 최석훈이 떠오르면, 잘못했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엉망으로 울려 버리는 경우가 꽤 잦았다.

“방법 없어. 최석훈 지금 추적 아이템이 스무 개도 넘게 붙어 있어.”

단호한 일갈에 서혜가 소파 밑으로 기어 내려갔다. 풀어헤친 머리를 질질 끌고, 손톱으로 카드득 차가운 바닥을 긁어 댄다. 관절이란 관절은 요란스럽게 꺾어 가며 엉금엉금 책상 아래까지 도착한 서혜가 경원의 바짓자락을 잡았다.

그리고 푹 패인 얼굴을 바짝 꺾어 경원을 올려다보았다.

“……도와주세요…….”

“싫어. 게임에서 다치면 안 아프다며. 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

“제발요…… 여기서도 죽으면 저는 돌아갈 곳이 없어요오…….”

서혜가 이미 말라붙은 눈물 자국 위로 새로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저주받은 검을 지금 주면 안 되겠냐며, 한 번만 도와주면 다시는 나쁜 짓 안 하겠다고 대성통곡을 한다. 어차피 컴퓨터를 내어준 이상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산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충격의 정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커 보였다.

한숨이 샜다. 경원은 지금 당장 최석훈을 구제해 줘 봤자 근본적으로 바뀌는 게 없을 것을 알았다. 지금 이런 상태라면 서혜는 계속해서 게임 중독으로 살 테고, 진짜 몸이 죽어 가든 말든 다시 최석훈에게만 매달릴 것이다. 충분히 게임 같은 건 잊고도 남을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마우스를 쥐여 주니 그것이 대단한 착각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어떡할까. 경원이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만약 한 달이 다 돼도 주서혜가 여전하다면…….

처음에는, 그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여자애의 목숨줄만 도로 붙여 돌려보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운동하고, 적절한 단백질을 섭취하고.

그 정도 기회를 베풀었으면 그다음 일은 제 몫이 아니었고, 자기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는 죄책감에서 면책이 될 거라 안일하게 여겼다.

그런데 이제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했다. 경원은 서혜를 좀 더 물고 뜯고 맛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만들어 줘야 했다.

평생 잡아 놓고서 게임 같은 건 꿈도 못 꾸게, 아예 발목 하나 분질러 침대에 가둬 놓기라도 해야 할까.

홱, 홱,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위험한 생각에 경원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거기까지는 아니지. 지금도 갓 태어난 좀비처럼 바지에 매달려 눈물과 콧물을 덕지덕지 묻히기 바쁜 여자를 보라.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과격한 방법은 안 그래도 집 나간 정신을 완전히 붕괴시킬지도 모른다.

천천히, 신중하게 공략하자.

최석훈이 살든 죽든 아예 신경도 못 쓸 때까지. 그 정도 여유는 아직 있음직하다.

경원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을 정리한 그는 금방 다시 말간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난데, 지금 문자 보낼 테니까 그대로 채팅 좀 올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주최강경원이가 접속을 시작했다.

[최석훈 주인 바뀜요]

여론을 이끄는 것은 쉬웠다.

폭군 최석훈을 제 손으로 몰락시키고 여태껏 굳건한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본인, 우주최강경원이는 소규모 길드를 이끌며 윈드 스토리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야말로 난세의 영웅 대접을 받으며 게임에 새로운 유저들까지 유입시키던 중이었다. 그런 사람이 최석훈이 현피에서 진 뒤 헐값에 팔렸다고 적당히 이야기를 끼워 맞추니 모두 의심할 바 없이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원수지간인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랭커들끼리는 정치질도 중요한 법. 누구와는 달리 평소 친목을 잘 다져 놓은 경원이의 말에 딴지를 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근데 왜 최석훈은 지금까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음?]

[자기 입으로 말하면 계정 거래했다고 운영자가 이용 정지시킴]

[아 ㅇㅋ]

[보스 나올 시간이다 사냥이나 하러 가자]

현실의 경원이 마지막으로 키보드를 두드려 소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어차피 저도 조만간 접을 거예요ㅎㅎ]

서혜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 최석훈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그녀가 봤다가는 난리를 칠 대사였지만 어차피 안 보고 있으니 알 바 아니다.

최석훈이 완전히 끝났다는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물러가기 시작했다. 채팅창도 조용해지고, 시험 삼아 필드로 나가보니 시비를 거는 빡빡이 캐릭터들은 있어도 최석훈보다 강한 랭커 중에서는 당장 따라오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대체로 보스몬스터를 잡으러 가는 게 더 중요했지 누구처럼 애먼 사람 죽이는 데에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적어도 이제 ‘사망했습니다’ 라는 안내창은 그렇게 자주 뜨지 않을 듯했다.

“서혜야, 오빠가 다 해결했다.”

상황이 일단락되고, 경원은 바닥에 여전히 고꾸라져 매달려 있는 서혜를 일으켜 세웠다. 붉어진 눈시울과 코끝이 무슨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얼굴이었다.

뭘 잘했다고 울어? 경원은 핀잔 대신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뭐 할 말 없냐?”

“…….”

친절하게 자기 손수건을 준 것과 상반되게도 경원이 팔짱을 끼고 거만을 떨었다. 제 딴에는 안 도와줘도 되는 걸 기꺼이 해 줬으니 생색을 낼 자격이 충분하지 않겠는가. 이런 일로 사람 놀라게나 만들고.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하지 않으면 엉덩이가 퉁퉁 부을 때까지 때려 줄 생각이었다.

이내 손수건으로 얼굴을 벅벅 닦아낸 서혜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올망졸망한 눈빛으로 돌아와서는, 잔뜩 쉬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감, 사…… 합니다.”

그 순간 경원의 사타구니 부근이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

감사합니다 한마디에 발기하는 자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쳤구나, 윤경원. 주서혜의 입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귀한 단어이기는 하나 그것과 성적 흥분 간의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고.

“…….”

“도련님……?”

다행히 서혜는 눈이 흐려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경원은 책상 위에 돌아다니던 안경을 주워 서혜의 손에 올려 줬다. 그는 태연하게 몸을 움직여 그녀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서혜의 어깨를 잡아 책상 앞으로 몸을 돌려 놓았다.

“게임해.”

“…….”

“의자는 네가 망가뜨렸으니까 서서라도 하든지.”

그가 서혜의 양손도 키보드 위로 올려 주었다. 서혜는 자연히 책상에 손을 짚은 채 등을 보이고 선 자세가 됐다.

경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들은 서혜가 얼떨떨한 얼굴로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아무 의심도 없이 그의 배려가 계속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경원이 뒤쪽에서 허리끈을 풀어헤쳤다.

“……?!”

서혜는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컴퓨터에서 떨어지지도 않았다. 손이 거미의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키보드에 달라붙어 버렸다. 도망가야 한다와 게임을 플레이해야 한다는 두 개의 본능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입력된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서혜의 뇌가 과부하를 일으켰다.

그럼 그렇지, 윤경원이 그럴 리가 없지! 잠깐 고마운 마음을 가졌건만 이렇게 바로 흉악한 본성을 드러내다니!

“게, 게임하라면서요! 조금 기다려 줘요! 너무 시도 때도 없잖아요!”

“하게 해 줘도 불만이야? 싫으면 하지 말든가.”

경원의 손이 등 뒤에서 이제 앞으로 끼어들어 온다. 허리끈도 풀고 가슴 앞섶도 잡아 젖혀 버리자 안에 감춰져 있던 울긋불긋한 살결이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어서 속옷까지 아래로 잡아당겨 내려 버리니 덜컥 부어오른 가슴이 드러났다. 원피스는 반쯤 벗겨진 채 아직도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옷 틈으로 가슴만 내놓고서 게임을 하는 모양새였다.

“저, 저질!”

“네가 28년 동안 참고 살아 봐.”

경원이 변태 같은 짓을 저지르면서도 진지하게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태연하게 치마를 올리고 엉덩이로 손을 뻗어 온다. 흐윽! 서혜가 숨을 삼키며 한쪽 손을 뒤로 가져갔다. 간신히 남자의 한쪽 팔을 붙잡아 밀어내 본다.

“그러게, 누가 그 나이 먹도록 참으랬나!”

쉰 소리로 소리를 치며 한 손만으로 필사적으로 캐릭터를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냥에는 양손이 다 필요했다. 결국 서혜의 손이 다시 키보드로 돌아간다. 아무리 단단한 팔을 잡고 밀어내 봤자 그에게 기별도 안 간다는 걸 아는 탓이었다.

마침내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이 허벅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손에 힘을 주고, 음부를 희롱하기 편하도록 다리 사이를 벌린다. 서혜가 몸을 떨며 엉덩이를 약간 뒤로 빼냈다. 익숙해진 반응. 경원이 천연덕스럽게 생글거렸다.

“사랑하는 운명의 여자가 지금껏 안 생긴 걸 어쩌겠어. 그렇다고 아무나하고 대충 동정 뗄 수도 없고.”

“그렇게 신중하신 분께서 저하고 대체 왜 잤대요……!”

“네가 덮쳤잖아.”

“그건……!”

“입장 바꿔 생각해 봐. 그래 놓고 다음 날 실수였다고 하면 화가 나 안 나.”

그는 한마디도 져 주지 않았고, 파렴치한 짓을 멈추지도 않았다.

긴 손가락이 균열이 난 가운데 부분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얇은 천 위로 살살 쓸며 도톰한 음순의 감촉을 찾는다. 다른 쪽 손은 허벅지 앞쪽으로 옮겨갔다. 부드러운 쪽에 가까운 음모가 천 안쪽에서 작게 서걱거렸다. 몇 번 그 위를 쓰다듬던 것이 지금껏 별로 건드려 본 적 없는 음핵 위로 얹어졌다.

“흣…….”

속옷 위에서 살짝 압박감을 주는 것만으로도 뭉근하게 열이 올랐다.

“한번 두고 보자고. 네가 게임을 더 좋아할지 이쪽을 더 좋아할지.”

이럴 거면서 조금 전에는 왜 도와준 거야? 서혜는 아득바득 게임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최석훈으로 제대로 플레이를 해 보는 게 얼마 만인가. 그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다. 이미 던전에 입성했고, 혼자 베히모스의 숲에서 꾸역꾸역 길을 뚫고 있었다. 왠지 오기가 생겼다. 석훈이냐 경원이냐 시험대에 오른 기분.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버텼다.

그때부터 집요한 클리토리스 애무가 시작됐다. 빨리 절정을 유도하거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 옷 위에서 살살 굴리는 수준의 은밀한 자극이었다. 등 뒤에 철썩 달라붙은 남자가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길들여진 아래는 물소리를 만들어 낸다. 찌걱찌걱, 게임 효과음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부끄러운 소리였다.

“흐으…….”

음핵과 구멍이 동시에 공격당한다. 천을 뚫고 들어올 듯 손가락으로 질구를 꾹꾹 눌러 댄다. 동그랗게 물이 들던 속옷이 얼마 안 가 좀 더 크게 적셔졌다.

타닥, 타닥, 서혜가 눈에 힘을 버틴 끝에 겨우 던전 외곽의 미션을 클리어했다. 그것도 상당히 힘이 들었다. 갈 듯 말 듯 한 기분에 다리가 배배 꼬인다.

경원이 천천히 속옷을 엉덩이 바로 아래까지 끌어내렸다. 허옇고 점도 높은 체액들이 잔뜩 엉겨 붙어 실처럼 끊어졌다. 허벅지까지 질척하게 애액이 번지고 있었다.

서혜는 남자가 삽입을 준비한다고 생각했으나, 그리고 심지어 조금 기대까지 했으나 아니었다. 경원은 젖은 채로 씨물을 받기 위해 벌름거리는 질구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는 음부 앞부분을 두 개의 손가락으로 확 젖히고, 표피에 덮여 있던 음핵을 완전히 드러나게 만들었다.

“흑…….”

따뜻한 손끝의 체온이 드러난 약점 위에 직접 닿기 시작하자 열감은 두 배로 심했다. 만져진 적이 별로 없어 부풀어 봤자 아직 작고 귀여운 성감대. 경원이 여기도 작네, 하고 어깨 위쪽에서부터 조소했다. 허리를 꽉 끌어안고, 손끝을 살살 흔들며 클리토리스만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흐으응…….”

일순간 서혜의 손이 멈추었다. 바들바들 떨리던 손이 몇 초간 이어진다. 가볍게 절정하는 중, 서혜의 음핵은 아직도 사내의 손안에 있었다. 그가 마저 부드럽게 손놀림을 이어 가자 엉덩이를 빼낼 곳을 찾으며 몸을 뒤튼다. 최석훈도 포위당하고 있다. 작은 여체를 꽉 끌어안은 채 모니터를 확인하는 경원의 표정이 즐거워진다.

“뭐 해, 저러다 죽겠다.”

“흐으, 흑, 그만, 가고 있을 때는…… 만지지 마요오…….”

경원이 봐주듯이 손을 떼어 냈다. 절정 중의 클리토리스 자극으로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던 서혜가 한참 뒤에야 헥헥거리며 다시 책상을 짚었다.

당연히 아직 끝이 아니다. 치마가 또 들춰지고, 경원이 젖다 못해 흐물흐물 녹기 직전인 음순을 철벅철벅 소리를 내며 만져 온다. 이번에야말로 넣어 줄까, 보스 방의 바로 앞까지 도착한 서혜가 긴장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경원은 또다시 방금 하던 일을 반복했다. 음부를 벌리고, 단단하게 여문 음핵을 살살 건드리다가, 손톱을 세워 긁기도 했다. 발목 아래까지 투명한 물이 뚝뚝 흘렀다. 서재 바닥에 웅덩이를 고이게 만들 생각인지 절정이 끝이 없다. 게다가 계속 괴롭혀져 극도로 예민해진 클리토리스는 만지기만 해도 척추를 타고 찌릿한 느낌을 전했다. 흐윽, 흐윽, 서혜가 알 수 없는 소리로 낑낑거리며 양발을 허공에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경원의 한쪽 팔에 끌어안겨 있는 몸은 도무지 벗어나지지가 않았다.

“흐에, 흐아…… 그마안…… 나쁜 놈아아…….”

서너 번쯤 더 가고 난 뒤, 마우스를 잡는 것도 포기한 서혜가 반쯤 정신을 놓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지금껏 삽입 섹스로 느낀 적은 수도 없이 많아도 이런 참기 힘든 감각은 완전히 처음이었다. 실제로도 요의가 느껴져서 밑에서 흐르는 물이 애액인지 오줌인지 구분이 안 갔다. 경원이 허리를 붙는 손을 놔주자 서혜가 책상 위로 배를 깔고 엎어졌다. 책상 위의 키보드와 마우스가 요란하게 옆으로 치워진다.

[사망하셨습니다]

모니터에 노이즈가 낀다. 이제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게임 안 해?”

움직이지 않고 숨만 몰아쉬고 있자 경원이 다정하게 물었다.

“빨리…….”

“…….”

“빨리 넣어 주세요…….”

서혜는 그에게 엉덩이를 내보인 채로 대답했다. 최석훈이야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오직 안이 채워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경원이 그제야 바지 벨트를 풀었다. 갈라진 선단에서 맺혀 흐른 쿠퍼액이 아주 질척하게 뿌리까지 묻어 있었다. 그 역시도 이 순간을 간절히 기다린 것은 마찬가지다.

경원이 서혜의 엉덩이를 높이 잡아 올렸다. 책상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서혜의 양발은 땅에 닿지 못하고 대롱거리고 있었다. 그대로 두꺼운 기둥뿌리를 서혜의 허벅지 사이로 꽉 끼워 넣으니, 드디어 뭔가 들어올 줄 알았던 서혜가 뭐하느냐며 엉덩이를 흔들어 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원이 거세게 몸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읏…… 흐읏…….”

음순 사이를 거칠게 마찰하며 성기가 비벼진다. 길고 딱딱한 물건의 표면이 예민한 클리토리스에 닿았다. 울퉁불퉁한 핏줄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손으로 만질 때보다 더 뜨겁고 야릇한 감각이었다.

“하아…… 허벅지가 무슨…….”

“흣……!”

갈라진 신음성과 함께, 미끄럽고 끈적한 액체들이 음부 사이에서 얽혀든다. 퍽, 퍽, 실제로 삽입 섹스를 하고 있는 듯한 소리가 났다. 허벅지에 불이 붙다 못해 그곳까지 전부 성감대가 된 것 같았다.

“서혜야…… 최석훈, 죽었잖아. 게임 안 해?”

“으, 응, 흐…… 아으…….”

“착하게 대답해. 솔직하게.”

“후으…… 게임, 안 할게요……. 읏…… 도련님, 이랑, 섹스가, 으응…… 더 좋아요…….”

푹, 한참 골반을 잡고 허리를 놀리던 경원이 기다렸다는 듯 음부를 가득 채워 주었다.

“아…… 아……!”

천천히, 공기조차 끼어들지 못하도록 완전히 접붙는다. 뿌리까지는 받아먹지 못하던 구멍이 처음으로 완전하게 기둥을 삼켜 먹기 시작했다. 깊은 곳까지, 더 깊은 곳까지 순식간에 배가 가득 찬다. 성기 끝이 과한 흥분으로 상승한 자궁을 더 위로 밀어내며 자궁 뒤쪽까지 깊게 파고들어 갔다.

두 사람 모두 극치감에 잠시 생각이 멎어 버리고 말았다.

“흐…… 읏…….”

“하…… 씹…….”

삽입만으로도 서혜가 어느 때보다 강한 절정을 맞고 있었다. 귀두부터 뿌리까지 어디 하나 빠짐없이 꽉꽉 조여 대니 내내 허벅지를 범해 왔던 남자 역시 사정을 참기 힘들다. 생소한 공간까지 뜨거운 성기를 비비적거렸다. 평소의 녹진한 질벽과는 다른 묘한 삽입감이 전해져왔다. 그는 그대로 뒤쪽 질궁으로 정액을 죽 죽 파정했다. 허벅지에 힘을 주고, 다른 놈들은 감히 닿을 수도 없는, 주서혜의 가장 깊은 음지까지 완전하게 점령해 버린다. 사정이 길었다. 움찔, 움찔, 성기와 연결된 고환부터 둔근까지 불규칙적으로 떨려 왔다. 힘줄이 잔뜩 곤두선 경원의 목도 뒤로 젖혀졌다. 경원이 입을 벌리고 길게 숨을 토했다.

“아…… 역시 우리 애기 배 속만큼 좋은 데가 없네.”

“흐으으…… 으으…….”

“엄청 들어간다…… 흘리지 말고 잘 받아 먹어. 다 싸고 나면 안 새게 밴드라도 붙여 줄 테니까.”

경원의 저급한 소리가 도를 넘는다. 서혜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기절할 듯 넋이 나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좋아하다니 끝까지 넣은 보람이 절로 느껴졌다.

다른 남자도 아니고 게임을 상대로 이겨 먹으려 하는 자신이 얼마나 유치한가에 대한 고민은 이제 뒷전이었다.

이대로라면 최석훈이 죽어도 주서혜는 안 죽는다. 아니, 못 죽는다. 그거면 된 것이었다.

남자의 장골이 완전히 여자의 엉덩이에 들러붙어 있었다. 남는 것 없이 전부 들어간 교합부가 만족스럽다. 여전히 깊이 삽입한 채 여운을 즐기던 경원이 상체를 숙이고 드러난 어깨 위에 입을 맞추고 흔적을 남겼다. 여리고 부드러운 몸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 것을 알면서도 얌전히 엉덩이를 내어주는 주서혜가 오늘따라 더 기특했다.

“싫으면 말해. 최대한 멈춰 볼게. 진짜 병이라도 나면 안 되니까.”

조심스럽게 허리를 뒤로 물린다. 귀두가 반쯤 걸칠 때까지 빼낸 성기를 다시 뚫어 놓은 길의 끝까지 단숨에 박아 넣는다. 철썩, 철썩, 엉덩이가 부딪칠 때마다 소리와 함께 번지는 쾌감이 머리를 바보로 만들어 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도 서혜는 싫다는 말을 기어코 입에 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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