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나영.
* * *
“…….”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전화벨은 여전히 그칠 기미를 안 보였다. 오히려 빨리 받으라는듯 진동과 함께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며,
「나영」
내 첫 여자친구이자, 전 부인이다.
그냥 문자로 해도 될 걸 왜 전화로 해가지고. 무음 모드로 안한 내 잘못도 있긴 하다만….
“여보세요.”
어차피 들켜버린거, 일단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왜 이렇게 안 받아?」
“그냥…. 조금. 일이 있어서.”
「약속 4시 맞지? 유희도 나온데?」
“아니… 아직.”
「뭐!? 아직도 안 물어보면 어떡해! 빨리 물어봐!」
“야.”
만나면 뭐할 건데.
유희한테 ‘내가 네 엄마다.’라고 말하기라도 할 셈이야? 유희한테서 도망쳐놓고 아무것도 안했으면서, 이제와서?
“적당히 하자.”
「뭔 소리야?」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유희가 널 보고 싶을 거라고 생각하냐? 자기를 버리고 간 엄마를?”
「…….」
“유희는 내 딸이야. 네가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하긴.」
엄마 자격 없다고 대차게 욕을 한바가지 해주고 싶었지만, 딸에게 욕정해버린 나도 아빠 자격은 없기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나영이에 대한 것은 어찌 되든 좋았다.
“…….”
「여보세요!? 야!」
초점없는 눈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검고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나를 보기 싫어하는 거지 폐인처럼 생활하는 것은 아니라, 머릿결이 윤기가 있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고, 역시 부끄러운지 몸을 덜덜 떨고 있다.
“미안. 이따가 전화해.”
「잠깐마, 야!」
나를 보는 표정이 얼른 끊으라는 듯,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어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
방문사이로는 농후한 냄새가 새어나와서 코까지 확 도달하는 바람에 겨우 가라앉힌 흥분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예쁘구나.’
얼핏봐도 예쁜건 알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것을 1초라도 볼 수 있음에 감사했고, 귀여운 얼굴이 점점 자라 성숙하게 되었을 때는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퇴근 하고 문을 닫는 순간, 그 순간 뿐, 이렇게 유희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ㅈ, 잘 지냈니?”
매일 조금씩은 봤으면서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정말로 유희가 평소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는 1도 모른다.
학교생활은 어떤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하지 않는다. 그나마 알 수 있던 것은 간간히 내 스마트폰으로 오던 학교 소식 뿐이었다.
“언제 왔어?”
내 질문엔 대답하지 않고, 자기 질문을 했다.
“방금 왔어.”
최대한 그 행위가 끝나고 왔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근데 왜 옷이 그래?”
“그냥 편하게 갈아 입은…… 어라.”
반팔 셔츠의 한쪽 팔은 제대로 펴져 있지 않았고, 바지는 회색 체크무늬 셔츠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노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한마디로 패션 꽝이었다.
“아빠 옷 그렇게 안 입잖아.”
“그건…… 그게…….”
평소 사복도 신경써서 입는 내가 너무 정신이 없던 나머지, 이상하게 옷을 바꿔입고 말았다.
설마 급하게 행동한 티가 들통난건가….
‘아니 가만.’
어떻게 내가 평소에도 옷을 신경써서 입는 다는 걸 알고 있지? 가끔씩 마주쳐서 그랬던 건가? 정말 가끔씩 보는 것만으로만 추측가능한 행동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정말로. 지금 온 거 맞아…?”
“으, 응. 맞아. 반차써서 지금 왔어… 밥은 먹었니?”
“…….”
유희가 한발짝 앞으로 내딛으며 나를 노려보더니, 이번에도 내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들킨 것 같진 않지만, 왠지 허무했다. 좀 더 대화하고 싶었는데, 좀 더 그 예쁘게 자란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하아….”
딸과의 오래간만의 대화는, 이렇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
“여보세요.”
「왜 갑자기 끊고 난리야.」
“미안.”
「아무튼 빨리 나와. 나 다시 들어가봐야 되니까.」
“그러니까 유희는 안간다고──”
「유희는 됐으니까. 너만이라도 나와.」
“나…?”
옷을 다시 갈아 입고 나와서, 정액범벅인 휴지가 들어있는 쓰레기 봉투는 밖에다 버렸다.
차를 타고 가느라 길이 밀려 약간 늦었다.
평소에는 집도 역세권에다가, 직장도 역에서 1분거리라 지하철을 타고 다니지만, 다른 곳에 갈 때는 차를 이용한다.
“왜 이렇게 늦었어?”
“미안.”
염색을 했는지 적갈색의 단발 머리의 여성이 나에게 화낸다. 실제로는 10분정도 늦었지만. 늦은건 맞으니까. 게다가 주차하는데도 오래 걸렸다.
일하던 중이었는지 와이셔츠와 재킷을 단정하게 입었고, 치마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별로 받지 않게 일부러 무릎 바로 위로 길게 빼서 입은 것 같다.
내 전 부인, 신나영이다.
“여기서 일하는 거야?”
왼쪽 가슴팍에 명함이 있는 것을 보아 아마 백화점 직원인 것 같다.
“응. 3년 정도 됐어. 넌 아직도 거기 다녀?”
“응.”
“10년이나 같은 곳에 다니다니. 난 그렇게 못하겠던데.”
“이 업계는 그렇게 쉽게 못 옮겨. 옮기려면 몇 개월 쉴 각오는 해야된다고.”
“아하~”
직급도 부장급이라 이만한 조건에 다시 다니기 위해서는 또 준비를 해야되고, 면접도 다시 봐야 한다. 그럴 바엔 가만히 짤리거나 정년퇴임까지 일하는 게 낫다. 물론 지금의 회사생활에는 만족하고 있다.
“점심은 먹었어?”
“그러고 보니 안 먹었네.”
오자마자 딸을 반찬삼아 자위했으니, 밥 먹을 틈 따윈 없었다.
“돈가스 괜찮지?”
“여전히 좋아하네.”
“늙어도 입맛은 안 바뀌더라.”
“그러냐….”
어느덧 30후반인 우리.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나아가고 있다. 나는 유희를 키우는 길을 택했고, 나영이는 도망가는 길을 택했다.
물론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나도 그래서 취업할때까지는 유희를 보육원에 맡겼으니까. 늦게나마 다시 키우고 다 자랐지만, 그래도 한 아이가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유희는? 어떻게지내?”
“대학 합격하고, 잘 다니고 있어. 오늘은 공강이라 쉬더라.”
“으응~ 열심히 사네.”
“당연하지.”
“이제 다 자란 거 아니야? 슬슬 독립할 때 됐잖아.”
“대학 졸업하면, 그 때 독립시켜 주려고. 아마 알바 안하고 있는 거 같으니까.”
“네가 내게?”
“응.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것도 못해줬는데, 이거라도 해줘야지.”
“그래…….”
나영이의 표정이 약간 씁쓸해졌다. 아마 유희를 버렸다는 생각에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표정을 봐서 그런가, 돈가스에서도 씁쓸한 맛이 났다.
“그래서, 나만 따로 부른 이유가 있어?”
“아… 그게….”
나영이가 당황해하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뭔가 말하기 껄끄러운 거 같아,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러니까…….”
머리카락까지 긁적이며 말하는 데에 뜸을 들였다. 덕분에 세련된 머리 스타일이 약간 망가졌다.
“나랑……”
“너랑?”
무슨 말을 할려는 걸까.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결혼… 했어?”
“아니.”
“안 할 거야…?”
“글쎄. 지금은 유희도 있고, 굳이 필요성을 못 느끼겠는데. 나야말로 물어보자. 너 결혼할거냐?”
“ㅎ, 해야지. 그럼.”
“생각은 있나보네.”
“근데 노처녀라고 좀 처럼 데려가 주지 않아서 말이야. 어디 날 데려가 줄 사람 있나, 찾아봤거든.”
“흐응~”
뭐… 이 나이 대엔 성기능도 떨어진다고 하니까. 그래도 화장빨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 나영이는 여전히 예쁘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결혼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괜찮은 사람 찾았어?”
“너.”
“그래… 뭐?”
“아무리 찾아도 너 밖에 생각나지 않더라구. 맞선봐도 다 너보다 못한 사람들 뿐이라서….”
“장난… 이지?”
“지금 장난으로 보여?”
“……….”
“역시난 너 밖에 없는 거 같아.”
재결합을 하자고. 나영이는 말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