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수현. (5) Remake
* * *
“쨘~ 오늘의 게스트 K씨~”
긴장되는 마음으로, 캠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옆에 떠 있는 현황판을 보니 시청자가 족히 천 명은 넘는 것 같다.
사무실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과 목소리 톤의 수현씨. 괜히 방송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톤 높은 연예인들은 카메라 키고 꺼지고의 톤이 달랐지 아마.
“부장님! 인사해 주세요!”
수현씨가 공기만 넣은 소리로 속삭이며 재촉했다.
“아, 안녕하세요…….”
「ㅋㅋㅋㅋㅋ어색해 하는 거봐」
「진짜 일반인인 듯」
「몸 좋아요!」
「진짜 주작이라니까」
슬쩍슬쩍 보이는 채팅에 나를 칭찬하는 글들이 보인다. 다행히 욕하는 채팅은 올라오지 않았다.
“그럼 K씨. 자기소개좀 해주겠어요?”
“신입 사원들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는 서른 아홉입니다. 낼 모래 불혹입니다.”
「불혹이래 ㅋㅋㅋ」
「틀」
「틀」
「틀」
틀 이건 아직도 쓰는구나…. 설마 내가 이 나이가 돼서 듣게 될 줄이야……. 뭔가 좀 슬픈 걸.
“어허! 놀리면 안 돼요! 상처받으시잖아요! 부ㅈ, 아니 K씨도 농담으로 봐주세요~”
“네… 뭐……. 사실이라 상관없긴 합니다만….”
조금 웃으라고 내 나름대로의 자학개그를 했는데, 채팅창엔 눈물의 물결이 흘렀다.
“아하하…. 일단 너무 채팅창이 슬퍼졌으니까 진행할게요. 처음으로 할 게임은 휴먼 레전드 아시죠? 예전에 엄청 흥했던 게임의 인기를 이어받은 채신 게임. 아까 연습할 때 봤는데 은근 잘하시더라구요~”
“너,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 주세요….”
「ㅋㅋㅋㅋ졸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왤케 귀여움 ㅋㅋㅋㅋ」
「너, 너무 기대하지 말아 주세요 ㅇㅈㄹ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그럼 시작할게요~”
게임이 켜지고, 수현씨와 자리를 바꿨다. 바닥에 남은 온기가 느껴져서,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 거렸다.
연습할 때와는 달리 천 명이 넘는 눈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안 그래도 떨리던 손이 더 떨렸다.
“에? 일반 게임 인가요?”
“네!”
“아…….”
「아저씨 오열 ㅋㅋㅋㅋㅋ」
「그의 곶통이 시작된다….」
시청자들의 동정 가운데, 게임이 시작 됐다. 완전히 방심했잖아. 봇전에서도 버벅 거렸는데 일반전이라니… 이러다 욕먹고 신고 당하는 거 아니야? 내 계정도 아닌데 어쩌지….
그래도 별수 있나. 일단 해 봐야지.
“자~ K씨가 할 캐릭터는 히트맨입니다! 지금 보니까 K씨 얼굴이랑 엄청 닮았거든요?”
「ㄹㅇ? 존잘남이겠네」
「ㄷㄷㄷ」
「실제 히트맨인가요」
채팅이 올라가긴 하는데 게임에 집중해야 되서 잘 보이진 않는다. 옆에 있는 수현씨가 대신 읽어줬다.
“K씨 정말 히트맨이냐고 물어보는데요?”
“그러면 잡혀가요.”
「아…….」
「아…….」
「아재요… ㅠㅠㅠ」
「와하하하하하 검나 웃겨~」
……죽고 싶다.
그 사이에 게임은 시작됐고, 슬슬 캐릭터를 움직였다. 이 게임은 하위 스킬을 찍어야 다음 상위 스킬, 초상위 스킬, 궁극기 순으로 찍을 수 있다.
즉, 하위 스킬이 구린 히트맨은 초반에 잘 사려야 한다.
“오~ 잘 사리시네요.”
“뭐… 초반에 구리니까요.”
걸음 한걸음도 스태미너가 빨리 달기 때문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상대 스킬을 피해야 한다. 하필 상대 캐릭이 총을 사용하는 캐릭터라, 계속해서 무빙을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현실 고증 덕에 평타가 논타겟인 정도.
「와」
「아재 맞음? 무빙 ㅁㅊ는데」
옆에 채팅을 보니 뭔가 자신감이 붙어 조금 적극적이게 됐다. 레벨도 올라서 상위 스킬 하나 찍을 수 있었다.
QWQ평.
나이프를 던지고, 그쪽으로 굴러서 다른 나이프로 찌르고, 다시 나이프를 주워 쿨타임을 초기화 시켜 사용하고, 평타. 히트맨의 기본적인 콤보다. 물론 이것들 모두 수현씨가 알려 줬다.
「First Blood」
오, 하고 스스로도 감탄했다. 말하는 대로 하니까 정말 죽는다.
덕분에 채팅창은 광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와」
「와…」
「ㄷㄷㄷㄷㄷㄷ」
「진짜 히트맨 ㄷㄷㄷㄷㄷ」
기세를 이어 다음에 오자마자, 수현씨가 알려 준 콤보로 적을 처리 했고, 다른 라인에서도 킬이 많이 나와서, 무난하게 이겼다.
“와 진짜 잘하세요!”
“아하하하….”
다행히도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트롤 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쓸데없이 고증한 건 정말 귀찮았다.
“아! 밥왔다. 잠시만요~ 채팅창 적당히 읽어 주시면 돼요~”
“수ㅎ, 아니 잠깐…….”
수현씨가 갑자기 밖으로 나왔고, 방 안에는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었다. 안 그래도 아까 재미없는 아재라고 못 박혔는데 채팅을 읽어달라니, 수현씨도 참….
“아, 아 그러니까…….”
「직급이 뭐예요?」
눈에 띄는 채팅이다. 아, 이참에 직장에 대해 궁금한 거나 물어보라 그럴까. 회사생활 어떤지도 말할 겸.
“부장입니다. 한 10년 넘게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와 부장님 ㄷㄷㄷ」
「월급은 얼마예요?」
「부장 ㄷㄷㄷㄷㄷ」
「월급 월급」
「백수새끼들 ㅋㅋ 연봉이라해야지 직장 안 다녀본 티나누」
「윗놈 백수」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그래서 월급 얼마임?」
역시, 월급에 대한 질문이 많구만. 근데 기본적으로 직장인들 사이에서 연봉을 공개하는 건 금지다. 물론 부모님이나 친구들끼리 대화하는 건 상관없겠지만, 그걸 공공연하게 올려버리면 계약을 위반하는 게 되어버리고 만다.
“뭐… 부장급 정도는 받고 있습니다. 혹시 회사생활 궁금한 거 있으시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ㅋㅋㅋ 상담센터 ON」
「부장가는데 몇 년 걸리셨나요」
「자소서 어케 써요?」
「회사 어디예요?」
오, 이거면 나름대로 답변 할 수 있을지도.
“부장하는데는 6년정도 걸렸고… 뭐 이건 특수한 경우지만요. 자기 자랑은 아닌데 제가 좀 업무 능력이 탁월하다는 소리를 들어서……
자기소개서는 글쎄요. 저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거 따라 비슷하게 써서 그냥 잘 쓴 거 보고 자기 이야기로만 바꾸면 될 거 같네요.
회사명은 일단 말하면 안 될 거 같으니까 여기선 말을 아끼겠습니다.”
「어디 사시나요」
아까 처음으로 눈에 띈 채팅을 쓴 사람의 채팅이 다시 한번 보였다. 내가 어디 사는 건 왜 궁금 한 거지…?
“신림 삽니다.”
「저도 신림살아요」
“…….”
솔직히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거 뭐 스토커도 아닌데, 왜 내 정보에 집착하는 것 같지…?
“저 왔어요~ 와~ 잘하시고 계시네요~”
“아하하… 뭐, 다행이네요….”
“분명 얼어 계실줄 알았는데… 아, 초밥 드세요! 특별히 장어 초밥 더 넣었어요!"
「장어… ㅜㅑ ㅜㅑ」
「오늘 밤 힘좀 쓰시겠네」
「와이프 어캄 ㅋㅋㅋㅋㅋㅋㅋ」
「장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내는 없어서요.”
「? 노총각?」
「헐…」
「????」
「?」
「저런 사람도 총각인데 우리는…….」
채팅창이 나에 대한 애도와 자신들의 한탄으로 가득 찼다. 뭐, 여기서 아내가 있다고 거짓말을 칠 수도 없고, 참 뭐 하네.
「혹시 이혼 하셨나요」
……일부러 못 본 척 초밥 먹는데 집중했다. 가면에 초밥이 걸려서 순간 벗겨질 뻔했지만, 다행히 잘 넣었다.
사는 곳도 나와 같고, 직급 물어보는 것도 그렇고, 지금 이혼 하는 것까지. 뭔가 저 사람, 나에 대해 전부 알고 있는 느낌이 든다. 설마 나와 관계 있는 사람인가?
“어허! 그런 선넘는 채팅 금지예요!”
“하하….”
얌전히 초밥을 먹자, 일부러 다른 것들을 골라 먹었는데도 장어 초밥이 남았다. 정력 좋아져 봤자 쓸 데도 없는데, 그래도 남길 수는 없어서 입으로 욱여넣었다.
플라시보 효과 때문인가, 정말 장어를 먹으니 아래쪽이 불끈해지는 느낌이 난다.
「방종 언제하나요」
“글쎄요. 밥 먹고 한 판 더 하면 끝날 거 같네요. K씨도 돌아가셔야 하니까요.”
음…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어서 이 사이버 인파속을 벗어나고 싶은데…….
“아… 다 먹었으니까 이제 다시 시작할게요~”
다음 판은 물론 참패했다. 상대도 히트맨이었기 때문에 잘 다루지 못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당해내지 못했다.
시청자들이 아재라며 나를 위로해 줬다. 괜히 아재라는 사실에 마음이 울컥해졌다.
수현씨가 마무리를 하고, 방송이 무사히 끝났다. 답답한 가면을 벗자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수현씨가 가방 속을 뒤지더니, 적잖은 두께의 봉투를 꺼내 내게 주었다.
“고생하셨어요 부장님. 정말 감사해요. 사례금 준비해 놨어요.”
“…아뇨 됐어요 나와서 게임밖에 안했는데요 뭘. 지금 돈이 급한 것도 아니고, 또 돈 때문에 나온 건 아니니까요. 수현씨 부탁이라 나온 거지.”
“그럼 다른 사람이 불렀다면….”
“수현씨처럼 친한 사람이 아닌 이상 아마 어떻게든 거절하지 않았을까요.”
확실히 인터넷 방송에 출연할 생각은 아예 없었다. 다만 부탁한 게 수현씨라 그렇지, 다른 곳에서 거금을 준다 했어도 나는 거절했을 것이다.
“역시 부장님은─……!”
수현씨가 갑자기 말을 하다말고 나를 쳐다본다. 안절부절 시선을 돌리며 저쪽을 쳐다봤다.
“부, 부장님 그…… 역시 괜히 드렸으려나요.”
“네? 뭐가… 아…….”
자세를 고쳐 앉으려고 엉덩이를 움직였더니, 앞쪽에 뭔가 딱딱하게 옷에 걸렸다.
발기한 내 그곳이었다.
‘…완전 최악이잖아 이거…….’
이게 다 장어초밥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빨리 돌아갈게요. 제발 신고만은….”
“아, 아뇨! 신고라니, 오늘 이렇게 수고해주셨는데… 따지고 보면 제 복장 때문이니까요…….”
“평소에도 그 복장을 입으시나요?”
“네, 네 뭐… 하다 보니 적응이 돼서요….”
그런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웠는지, 침대에 있던 담요로 자기 몸을 가렸다. 그제서야 수현씨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부장님은 그… 아내 분 안 계신다고 하셨죠.”
“네 뭐….”
“혹시 정말로 이혼 하신 건가요?”
“…….”
마음이 참 혼란했다.
사실대로 말해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기엔 내가 너무 못한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바에야 차라리…….
“아, 말씀하시기 껄끄러우시면 안 하셔도 돼요. 그냥 궁금했던 거라… 솔직히 부장님처럼 잘 생기신 분이 이 나이에 노총각이라는 게 궁금할 뿐이라서….”
“아하하…….”
자세한 사정을 얘기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혼 했다는 사실을 듣자, 수현씨가 연민의 눈빛을 보내 왔다.
그러면서 의자에 얹었던 내 손등 위에 자기 손을 얹고, 내 앞으로 몸을 숙였다.
“부장님… 그럼 지금 홀몸이신 거네요…?”
“…….”
부정하지 않고 끄덕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선이 저절로 흔들리는 가슴을 향했다. 레오타드 사이로
빼꼼 하고 봉긋하게 솟아오른 것이 조금 보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 수현씨. 이제 가 볼게요.”
이 이상 가면 자제할 수 없을 거 같아서 몸을 내뺐지만, 수현씨가 다시 내 손을 잡았다.
“부, 부장님… 이러면 믿기지는 않으시겠지만…….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뭐… 말씀하세요.”
“저, 부장님한테 반한 거 같아요.”
“네…?”
아니, 띠동갑한테 반하다니, 뭔가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나?
“수현씨 저는 진짜로 서른 아홉──”
“나이는 괜찮아요. 자기 관리 잘하시고… 일도 저한테 잘 설명해주시고…. 솔직히 얼굴 너무 잘 생기셨거든요.”
“칭찬 감사합니다…….”
낯 부끄러울 정도로 칭찬을 해대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 칭찬을 부정해버리면 기만해 버리는 것이 되니까.
“그… 조금만 가까이 가도 될까요…?”
“…….”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윤리 의식이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딸로 자위한 것도 모자라 이젠 신입사원한테까지 손을 대다니, 나가 죽는 게 옳을 정도다.
하지만 내 머리와는 다르게 몸은 이미 그녀를 허락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돼…….’
이대로가면 진짜… 수현씨를 덮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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