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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내게 집착한다-19화 (19/96)

〈 19화 〉 예진. (5)

* * *

보통 가족끼리 놀러나온걸 피크닉이나 놀러나왔다고 하지 데이트라고 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남매끼리는 장난식으로 데이트라고 칠 수 있어도, 부녀 사이에는 장난으로라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면 안되는데, 신난 나머지 그만 유희에게 실례되는 소리를 해버렸다.

‘나도 참 무슨 생각을….’

안 그래도 더운데 더 더워진다. 유희 피부가 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햇살도 따갑다. 유희도 좀 지쳤는지, 내가 사다준 생수를 전부 벌컥벌컥 들이켰다.

지금 이 상황에서 괜히 민망해하는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데이트.”

“….”

“데이트라 했지?”

“ㅇ, 응….”

역시 기분 나쁘다는 감정이 느껴진다. 뭐… 내가 유희였어도 기분나쁘다며 바로 욕을 했을 것이다.

“데이트… 데이트… 데이트으…♥”

“유희야?”

시끄러워서 잘 들리진 않지만 아마도 나보고 들으라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유희가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유희가 반대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ㄷ, 데이트라매….”

“아하….”

데이트니까 손을 잡자. 그런건가…. 아니 잠깐만, 그럼 설마 유희도 데이트라고 좋아하는….

에이, 역시 그건 아니지. 그냥 간만에 나왔으니까. 아빠의 말실수를 장난으로 승화시키려는 것 뿐이다. 본인이 여기 오자고 했으니, 이대로 어색해져 버리면 기껏 나온 게 말짱 도루묵이 되니까 말이다.

여기서 내쳐버리면 기껏 유희가 신경써 준 것을 무시해버리는 것이 되기에, 나도 받아주기로 했다.

“ㅇ…!”

유희의 작은 손을 잡으니 부드러운 살결과 흘러나오는 복사열이 느껴진다. 나도 유희도 둘 다 긴장해버려서, 손땀이 겹쳐 약간 끈적거렸지만,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이제 어디갈까?”

이러니까 진짜 연인이 된 기분이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면서도 한켠에선 딸이 이성으로 보이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자꾸 머릿속에서 유희의 신음소리가 재생되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유희가 조용히 나를 끌고 간 곳은 햄버거 집 앞이었다.

“점심…..”

“응?”

“배고파.”

그렇게 유희와 잠시라도 잡았던 손을, 다시 놓을 수 밖에 없었다.

~~~

간단하게 버거를 먹고나니 식곤증이 몰려온다. 놀이기구 한두개 더 타면 나아지려나….

아까의 설렜던 감정은 어디가고, 솔직히 그늘에 누워서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역시 세월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신 차려!’

고개를 강렬히 저으며 잠을 깬다. 이런 것을 극복해야 나태해지지 않는다. 유희가 손을 다시 잡아줬다면 확 깼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내심 아쉬웠다.

“…유희야?”

뭔가 다음 계획이 있는 것 같긴한데, 머뭇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 아픈가?

“어디 아프니?”

“……아니. 가자.”

유희를 따라 간 곳은 이곳의 명물이었다. 슬슬 타고 싶긴 했는데, 기다릴 생각을 하니 아찔하긴 했다. 예상대로 최소 2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대기 행렬이 벽을따라 그 주변으로 쭉 늘어져 있었다.

“여기야.”

“응?”

왜 줄에 서지 않고 반대편으로 가느냐 했더니, 이미 예약을 해놨던 모양이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이것저것 신경써주는 게 고마웠다.

“유희야?”

이제 티켓확인을 하고 들어가면 되는데, 유희가 머뭇거렸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갈까말까 자꾸 고민을 하는 모양이다.

‘설마… 롤러코스터를 못 타나?’

롤러코스터를 못 탄다는 건 창피한 게 아니다. 나도 중학교 때까지는 못 탔다. 처음 타본 건 고등학교 때, 다른 놀이공원에 있는 롤러코스터였다. 아마 친구들 등에 떠밀려서 탄 것 같다.

사실 엄청 타고 싶지만… 혼자서 탈 수도 없고, 무서워하는 사람을 억지로 태울수도 없다.

“유희야 혹시 무서우면─”

“탈 거야!”

“그래….”

유희 본인도 어떻게든 타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도 저렇게 떨고 있는데 괜찮나…? 혹시 타다가 기절이라도 하면… 아니, 이럴 때야말로 딸에게 용기를 주는 게 아빠의 역할이다.

그리고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다.

“그럼 갈까?”

“…!”

유희가 떨지 않게 자연스레 어깨에 손을 올리자, 유희가 흠칫 놀랐다. 그래도 저항은 하지 않았고, 입구까지 올 수 있었다.

“티켓 체크하겠습니다~”

유희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주고, 점원이 QR을 찍어 확인이 끝났다.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예전에는 약간 낡았던 나무길이 전부 새것처럼 보였다. 주위에 굵은 밧줄로 그물벽을 만든건 여전했다.

“혹시 여기 길 새로 만들었나요?”

“네! 몇 년전에 공사를 새로 했거든요~”

“아~”

“오랜만에 방문하세요?”

“네 뭐….”

순간 20년 됐다고 말하려다, 말을 아꼈다. 아저씨로 보이면 큰 일이니까…. 그건 그렇고 직원한테 말 거는 것도 아저씨 특 아닌가… 나 또 실수한 걸지도…

그 말이 딱 들어맞는지, 유희가 내 어깨를 내치고 혼자 성큼성큼 들어가버렸다.

“흥.”

“ㅇ, 유희야 잠깐!”

겨우 쫓아와서 일단 줄을 서긴 했다만, 유희는 여전히 꽁한 표정이었다. 왜 그런지 전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아무 여자한테나 말을 걸어서 그런 것 같다. 설마 질투라던가… 에이, 아니겠지.

그 상태로 문이 열리고, 나 포함 예약한 사람들이 먼저 입장했다. 아무리 익숙해졌다곤 하지만 오랜만에 타니까 역시 떨린다.

“후우….”

소지품 보관함에 유희에게 빌려준 겉옷이… 그러고 보니 벗질 않았네.

“유희야. 안 덥니? 옷 벗어도 되는데.”

“안 더워.”

어깨에만 걸고 있던 가디건도, 어느새 팔을 껴서 넣고 있었다. 뭐, 본인이 싫다는데 강제로 벗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전 바 내려주세요~”

직원 2명이 양 옆을 돌아다니며, 공석에 있는 안전 바를 내리거나 사람들이 제대로 내렸는지 다시 한 번 손으로 안전 바를 누른다. 자동화 시대가 된 지금도 이런 수작업은 꼭 필요한 법이다.

이런 것을 보니 로봇이 지배하는 시대는 아마도 안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처럼 이상한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각성하지 않는 한은….

점검이 끝나자, 안내하는 직원이 마지막 확인을 했다.

“혹시 지금이라도 내리실 손님 있으신가요~?”

롤러코스터를 타며 기절하는 현상은 의외로 흔하다. 거의 그런 사람들을 보면 롤러코스터를 처음 타는 사람이다.

“….”

아직 출발도 안했는데 유희가 안전 바를 꽉 잡고 있다. 어떻게든 타고 싶다는 의지다. 이참에 롤러코스터 공포증을 극복했으면 좋겠다만….

“없으시면~ 출발 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오~ 출바알~”

상큼한 음성과는 달리, 묵직하게 롤러코스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긴장해버려서 유희를 신경쓸 틈이 없었다.

‘오오…….”

각도가 점점 위로 휘고, 천천히 고점을 향해 올라간다. 이 올라가는 순간이 가장 무섭다는 사람들도 많다. 사형수가 처형대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공포가 느껴진다고 한다.

놀이공원의 전경이 보이긴 하지만, 공포심에 그런 것을 감상할 시간 따윈 없었다.

“아빠….”

“응?”

아빠라는 한 마디에 절로 고개가 유희를 향해 돌아갔다. 어지간히 무서운지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었다.

“ㅅ, 손… 잡아줘….”

“알았어.”

이런데서 이상한 감정을 느낄 시간은 없다. 유희의 손을 깍지를 껴서 잡았다. 그 사이에 롤러코스터는 꼭대기로 올라왔고──

“으아아아악!”

“꺄아아아아!!!”

엄청난 속도로 레일을 주파했다.

~~~

“헉… 헉….”

우리나라 최장시간. 롤러코스터 위에 있던 3분의 시간은 사람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처음에 내려갔다가 잠시 다시 올라와서 잠시 쉬었지만, 이후로는 쉴틈없이 계속 달려서 정신이 없었다.

“아뜨.”

유희가 얼마나 내 손을 꽉 쥐었는지, 손등에 상처까지 났다. 뭐 딱히 화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좀 따가웠다.

“유희야 괜찮니…?”

“응….”

한동안 못 움직일 거 같아 적당히 쉼터를 찾아갔다. 식당이 밀집해 있는 곳 중, 붉은 파라솔이 펼쳐져 있는 카페로 들어왔다.

각자 음료를 시켜 자리에 앉자니,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일반 의자들도 있지만, 벽에 둥그렇게 둘러서 앉는 자리도 있었다. 소파로 되어있어서 이왕 쉴거 이런 자리에서 쉬면 좋을 거 같았다.

“여기서 좀 쉬다가면 되겠다.”

“응.”

빨대로 커피를 쪽 빨아먹는 유희.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기면서 지은 무심한 표정이 왠지 모르게 귀여웠다.

“….”

유희가 뭘 봐? 하는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봐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딱히 이상한 생각한 것도 아닌데, 이러면 이상한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이잖아…

“아빠.”

바깥 사람들을 구경하는 와중, 유희가 나를 불렀다.

“왜 그러니?”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만나는 사람…?”

만나는 사람이라… 있었다가 없었다. 라고 말하기엔 유희가 납득하기 어렵겠지.

“아니. 없어.”

“그럼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어?”

“글쎄… 아빠는 유희만 있으면 돼.”

“…!”

“아, 그런 의미가 아니라… 유희가 잘 자라서 시집가길만을 기다리고 있달까….”

난 뭘 또 허둥지둥 대는 거야…. 어른스럽게 대처하라고 어른스럽게.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 다음, 다시 평상시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왜 물어봤니?”

“…니까.”

“응?”

“또 아빠가 다른 사람 만나면… 나를 두고 가버릴 테니까.”

“…!”

과거 나는 유희를 낳고, 그리고 버렸다. 경제적 사정이긴 하지만 아무튼 버린 건 버린 거다.

그리고 유희를 다시 거뒀을 때, 그 표정은 한 없이 어두웠다. 솔직히 유희를 거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유희를 키웠다. 그리고 어엿한 어른이 됐다.

“미안해 유희야.”

나는 쓰레기다.

내가 왜 수현씨를 거절 못했는지 알 것 같다.

맘대로 유희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다른 인연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희를 어서 독립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래야 간섭 받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찾을 테니까. 그 결과 유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유희는 처음부터 날 버리지 않았는데도, 나는 또 유희를 버리려고 하고 있던 것이다.

“이번엔 절대로 버리지 않을게.”

“…진짜로?”

“응. 아빠 전부를 걸고.”

계속 궁금했었는데, 오늘 유희가 나를 데려온 이유를 알았다. 유희는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또 유희를 버릴까봐,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려고 데려온 것이다.

“아빠는 유희를 사랑하니까.”

“……응.”

어느새 건너편에 앉아 있던 우리는, 바로 옆에 붙어 서로 포옹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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