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이 내게 집착한다-20화 (20/96)

〈 20화 〉 예진. (6)

* * *

시간은 어느덧 4시가 넘었다. 계속 흘러나오는 방송에 따르면, 7시 정도에 퍼레이드를 한다니 그때까지 쉬거나 저녁을 먹으며 기다리면 딱일 것 같다.

카페에서 손을 잡고 나온 우리는, 잠시 동안 멍을 때렸다.

여름이지만 가을 하늘 같이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그만큼 필터가 없어서 덥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중충하게 흐린 날씨보다는 낫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이는 그런 것 같지 않았다.

“…….”

“…….”

어우 어색해라.

사람들 앞에서 그런 남사스러운 짓을 했는데 어색하지 않을리가 없다. 정작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뭔가 혼자서 찔린달까… 아무튼 그렇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긴 했지만, 유희의 손이 떨려 딱 봐도 긴장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나도 긴장했다.

이런 상황일 수록 내가 먼저 입을 떼야 한다.

““저기….””

““아.””

““먼저….””

3연속이나 말이 겹치다니…… 안 그래도 화끈한데 괜히 더 열이 올라와서 땀이 날 정도다.

일단 유희도 할 말이 있으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먼저 말하라는 시늉을 했다.

“예약한 거 없는데… 뭐 타고 싶어?”

“글쎄… 이건 어때?”

유희가 들고 있는 팜플렛에, 둥그런 원반에 기둥 달린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역시 한 번 운행을 중단했다가. 도색도 다시 하고 새로 운행하기 시작했다.

‘아, 맞다….’

말하고 보니 유희가 이런 류에 약하다는 것을 깜빡했다. 또 무서워 할 거 같은데 어쩌지…?

“알았어.”

“오…….”

“왜 그래?”

“아니 그냥… 좀 거부할 줄 알았거든.”

“……안 무서워.”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슬슬 하나 둘 사람이 빠지기 시작한다. 점심때보다는 확실히 대기 시간이 줄었다.

그래도 1시간은 기다려야 하기에 마실 것을 사고 줄을 섰다.

“그러고 보니 알바한다고 했지?”

“응.”

유희의 학비나 모든 것을 내가 대주고 있지만, 용돈만 받고 살 수 없다며 스스로 알바를 한다고 했다. 인터넷을 보면 점점 독립하는 나이가 늦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의지를 보이니 유희는 크게 성공할 것이 분명하다.

“무슨 알바 하려고?”

알바도 알바 나름이다. 일도 쉽고 돈도 많이 받는 알바도 있고, 상하차 같이 몸도 작살나고 돈도 딱 일한만큼 버는 알바도 있다. 상하차를 처음 했을 땐 자정에 먹은 간식을 전부 토할 정도로 힘들었다.

유희라면 그런 알바는 안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위험한 알바는 아닐까 궁금했다.

“그냥 카페 알바 같은 거….”

“그렇구나.”

카페라면 뭐… 안심이다. 점장이나 같이 하는 알바생이 유희를 건들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마렴.”

“…응. 읏,”

나도 모르게 유희의 머리에 손이 가서 쓰다듬고 있었다. 순간 화들짝 놀랐지만, 그만두지는 않았다. 아빠로써 딸이 대견해서 쓰다듬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리고 유희 본인도 좋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 우리 차례다.”

몇 차례 잡담을 더 나누자 우리 차례가 왔다. 뭐… 대부분 실없는 이야기였지만, 유희가 대학 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았다.

모두가 안쪽을 보는 원반 한 가운데엔 엄청 두꺼운 기둥이 있고, 바이킹처럼 원반이 돌아가며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놀이기구다.

유희와 같이 옆자리에 착석했다. 역시 좀 무서워했다.

“괜찮아?”

“응….”

뭐… 그 유명하다는 롤러코스터도 잘 탔으니, 이것도 잘 탈 수 있겠지.

「출발합니다~ 휘우우웅~」

놀이기구 이름이 태풍 이름이라 그런지 멘트하는 직원이 바람 부는 소리를 냈다. 기둥이 점점 좌우로 흔들리며, 원반이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는 감각. 강풍기 바람을 바로 앞에서 쐬는 기분이라 더위가 한결 가셨다.

“꺄아아아악~!”

“와아아아!”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원반도 크게 돌면서 놀이기구 전경이 다 보인다. 사람들도 소리를 지르며 분위기를 탄다.

“으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유희는 안전바를 꽉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중력 때문에 아래로 다리가 약간 붕 뜨는 것이 무서운지, 소리도 못 내고 벌벌 떨고 있었다.

“후으…….”

겨우겨우 회전과 진자운동이 멈추고, 안전바가 올라가자 유희의 다리가 풀린듯 후들후들 거리고 있었다. 유희의 손을 잡아 부축해줬다.

“무리 안 해도 되는데….”

“ㅁ, 무리한 거 아냐!”

“ㄱ, 그래…….”

사실 놀이기구를 탈 시간이 남았지만, 유희를 위해 그냥 기다리기로했다.

길을 따라 놀이공원의 최심부에 가면 광장이 있다. 그 광장에서 여러가지 뮤지컬을 하거나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어디보자….”

팜플렛에는 좀비 군단이 나와서 오싹하게 한다는 문구가 있다. 사진을 보니 꽤 공들인 것 같다. 1시간 퍼레이드 이후에는 불꽃 놀이…. 개인적으로 퍼레이드보단 이게 더 기대 되는데.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광장에는 벌써 사람들이 스멀스멀 몰려오고 있었다. 유희와 나도 좋은 자리를 잡아 때가 되기를 기다렸다.

“유희야.”

“응?”

“덥지 않니?”

“ㅇ, 안 더워.”

누가 봐도 더워 보인다.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가슴 속 브라가 보일 정도로 옷깃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가디건도 팔은 걷고 있었지만 절대 벗지는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벗기 싫다는데 억지로 벗개 할 수도 없다. 뭔가 벗으면 등에 분홍색 브라가 비칠 거 같기도 하고… 아, 그래서인가.

「잠시 후, 좀비군단의 습격이 시작됩니다. 관람객 여러분들은 질서 있게 자리에 서 주세요.」

이제 시작인 건가… 하필 이때 화장실이…….

“ㅇ, 유희야. 아빠 화장실좀 금방 갔다 올게….”

“응.”

그리고 갔다 온 그 자리에는, 유희가 있었다는 흔적조차 없었다.

~~~

“유희야!”

화장실을 갔다오니 유희가 그 자리에 없다. 사람들도 둘러쌓여있어서 더 찾기 어렵다. 분명 이 자리가 맞을 텐데, 사람들 때문에 이동했나?

‘일단 톡을….’

「유희야 어디야?」

약 3분이 지난 것 같지만 1이 사라지지 않는다. 설마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한 건가…?

“유희야!!!”

광장을 나와 불러봐도 유희는 보이지도 않았고, 하필이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배경음도 빵빵해서, 내 목소리가 들릴까도 의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전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발신음만 가고 받지는 않았다. 설마 아직도 차단해 놓고 있는 상태인 건가….

번호가 차단되도 톡 자체는 할 수 있으니까, 까먹고 있었다. 아직 유희에게 완전히 인정 받지 못한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핸드폰을 어서 끊고, 유희 찾기에 돌입했다. 아직 관중 어딘가에 섞여서 나를 찾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지금 하고 있는 퍼레이드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우워어어어~”

“대장님! 좀비들이 오고 있습니다!”

“다 쏴죽여! 여러분들도 함께 좀비를 향해 쏴주세요!!!”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된다. 사람들이 단체로 빵빵빵거리는 소리를 입으로 내며 광장 위의 좀비들을 소탕한다.

‘저딴 공연이 중요한 게 아닌데….’

자동소총만 있다면, 다 쏴죽여서 소탕해버리고 싶을 만큼 덥고 짜증났다. 유희를 찾아야 하는데, 계속 방해만 받고 있다.

유희는 어디 있는 거야 젠장.

─쾅. 펑.

대포 쏘는 소리까지 들려서 지반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하필 관객들도 불러서 그런지 이동하기가 더 혼잡스러워졌다.

아직 밝긴 하지만, 해가 점점 지고 있다. 곧 있으면 황혼의 시간이라 아무리 라이트를 비춰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시간대가 온다. 그 전에 반드시 유희를 찾아야 한다.

“꺄아아아아!”

애기 울음소리까지 들린다. 신경이 예민해지다 못해 한마디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랬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하아….”

그냥 포기할까 생각도 든다. 덥고, 시끄럽고, 짜증난다. 게다가 황혼의 시간이 와서 사람들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희가 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길을 잃어봤자 금방 찾을 것이다. 못 찾는다고 해도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약속했다. 유희를 버리지 않기로.

약속한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채 유희 찾기를 포기한다? 그건 말이 안된다. 설령 유희가 나를 찾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찾아야한다.

관중 속을 빠져나와 자판기에서 물을 뽑고 벌컥벌컥 마시니 정신이 확 들었다. 외곽부터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거다. 한명한명 유희인지 살펴보면서 유희를──

‘뭐야 쟤들은.’

이상한 남성 두 명이서 여자 한 명을 감싸고 있다. 헌팅이라도 한 건가 싶지만 가운데 여성이 곤란해 하고 있다.

흰 반팔 티셔츠에 내가 평소에 즐겨 입는 것과 똑같은 갈색 가디건. 그리고 늘씬하게 뻗은 예쁜 다리. 누가봐도 유희였다.

“유희야!”

둘러싼 사람들을 밀치고, 유희를 감쌌다. 남성들이 나를 방해되는 사람처럼 노려봤다.

“……유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