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이 내게 집착한다-29화 (29/96)

〈 29화 〉 실수. (2)

* * *

사람을 좋아하는 데엔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본다. 나도 그렇다.

때는 내가 중2였던 시절.

“아이고 아버님 여긴 어쩐일로….”

“데려와… 유희 괴롭힌 애 데려와 당장!”

나는 ‘집단 따돌림’ 흔히들 왕따라는 행위를 당했다. 왜 그런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냥 뭐… 적당히 자기 과시를 위한 희생 제물로 쓰인 거 같다.

“…….”

아빠의 외침에 선생 몇몇이 달라붙고, 몇몇 선생은 나에게 눈치를 준다. 나는 아무 말도 안했는데, 단지 저 인간이 억측으로 여기에 왔을 뿐인데. 억울했다.

‘지가 뭐 잘났다고.’

어차피 적당히 다른 선생들의 말에 구슬려지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학교를 떠날 것이 뻔하다. 뭘 했어도 겨우 주의 주는 거 밖에 못하겠지.

날 데리러 왔다 했을 때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사고쳐서 낳은 애라, 상대도 내가 태어나길 원치 않았을 테니까.

─나는 네 아빠란다.

그 말을 들었을 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나는 이 사람을 이길 수 없으니까. 그래도 보육원에서 단체로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잘 때보다는 좋았다. 이 사람은 코를 안 골았으니까.

어쨌든 성인이 되면 바로 독립할 것이다. 그러는 게 서로에게 좋을 테니까.

“데려올 때까지 안 나갑니다.”

“……!”

잘못하면 업무방해로 신고당할 수 있는 걸,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나….

결국 그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교무실에서 대기했다. 딱히 내가 누구누구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딱 당사자들만 내려온 것을 보면 이미 알고 있었던 거 같다. 나쁜 놈들.

“너희가 그 사람들이니?”

대꾸하진 않지만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표정으로 이쪽을 본다. 너무하긴 했지. 설마 아직도 물을 끼얹을 줄은.

어차피 적당히 훈계나 하고 돌려──

─짝.

나 포함 그곳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그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은 여자애가 휘청거렸다.

“한 번만 더 우리 딸한테 이래 봐.”

“…….”

왜일까,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훈계에 그치지 않고 그 주동자의 뺨을 후려치는 모습이 어딘가 나오는 영웅 같아서, 나한테는 쓸데없이 멋있어 보였다.

그날부터 아빠를 제대로 쳐다보지를 못하겠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자꾸 시선을 피하게 만든다.

그게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성관념이 정립된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였다.

~~~

“으으으으윽…!!!!”

이리저리 몸부림을 쳐 보지만 내가 유희에게 손 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알몸으로, 그것도 자지를 빳빳하게 세운 채로 유희를 껴안았다.

뭐라도 던져서 이 마음을 추스르고 싶은데, 던져도 해결이 안 될 거 같다.

나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그동안 잘 참아왔었는데, 왜 못 참은 거야!’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영원히 눈을 뜨지 않았으면 했다. 차라리 없었던 일이 되었더라면, 이게 사실은 꿈이었다면, 짜잔 아저씨가 나와 줬으면 했다.

“하아….”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되돌아가거나, 어디 다른 세계로 가거나, 몸이 여자로 바뀌거나 그러지 않는다. 그냥 1초 전 과거, 지금의 현재, 1초 뒤 미래가 서로 공존하며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사실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내 실수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

방문을 잠궈서 유희가 들어올 일은 없다. 몸도 이불에 다 말라서 다시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었다. 옷을 입어도 마음이 뒤숭숭한 건 변하지 않았다.

유희를 볼 면목이 없다. 관계라던가 이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다. 보나 마나 최하치를 뚫고 지나가 기네스 기록을 갱신했겠지.

집에 있어 봤자 나만 죽는다. 가시방석이 아니라 이 공간 자체가 가시 같다.

문을 슬쩍 열어 유희가 방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아…….”

유희를 피해 나왔다곤 하지만 갈 곳이 없다. 그리고 계속 쉬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한숨이 푹푹 나온다.

유희는 지금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이건 누가 뭐라해도 범죄자. 정작 나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길을 따라 주변을 걷는다. 버스를 타고 가서 쭉 종점까지 가서 좀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이 나오고, 그 산길을 쭉 타면 관악산이 나오기 때문에, 산을 타기로 했다. 피톤치드를 좀 쐬면 그나마 나아질 테니까.

‘여기서 장수풍뎅이 잡고 놀았었는데.’

야생에서 잡은 장수풍뎅이와 장수풍뎅이 샵에서 산 장수풍뎅이 중에 누가 셀까 예측하는 것도 한 묘미였다. 대부분 야생 장수풍뎅이가 이겼지만, 사슴벌레의 경우는 샵에서 산 개체가 이긴 경우가 더 많았다. 아무래도 사이즈 키우기는 사슴벌레가 더 쉬우니까.

학교 걷기 대회를 할 때도 많이 걸었다. 항상 걸어서 두 시간 걸려 관악산에 도착하면, 택시 타고 돌아오는 게 일상이었다. 어차피 그때는 기본요금이 1900원 밖에 안됐고, 아무리 오래 걸려도 5천 원이 안나왔기 때문이다.

“어우~ 힘들어죽겠네.”

“이젠 죽을 나이니까 그런 말도 함부로 하면 못 써! 하하하하!”

“…….”

정말 정년 넘으신 어르신들이 저런 말을 하니 좀 무섭다. 이러다가 진짜 돌아가시면 어쩌려고…. 뭐…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만.

‘이럴 거면 음료수라도 사 올 걸.’

아무리 시원한 바람이 부는 숲이라곤 하지만 여름은 여름이다. 벌써 땀이 주르륵 흐르고, 등의 땀은 젖어서 집에 들어가면 또 샤워를──

“하아….”

갑자기 또 기분이 안 좋아졌다. 잊으려고 나왔는데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유희야….’

중간에 있는 벤치에 앉는다. 이런 데는 중간중간에 벤치가 있어서 앉을 수 있다. 물론 벌레가 드글드글 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도저히 걸을 기분이 안났다.

이런 것이 다 시간 끄는 행위라는 건 알고 있다. 소용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해도 못 받아들여질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시간을 늦추고 싶었다. 차라리 오늘은 외박을 하고 싶은 기분이다. 그만큼 도망치고 싶었다.

“총각 괜찮아요? 이런 댄 왜 왔대?”

절망에 빠져 있자니, 한 아주머니가 나한테 물을 주셨다. 레깅스 스포츠복을 입고 등산 가방을 가져온 거 보니 어디 동호회에서 온 거 같았다.

“아… 감사합니다. 그냥 일이 있어서요.”

“별일이네…. 물도 없고, 지쳐 보이고, 이러다 쓰러질라.”

“하하하….”

단단한 얼음이 안에 담겨 있는 얼음물.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받지 말라고 하지만 그럴 판단을 할 겨를이 없었다.

“캬…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그거 다 마셔요. 처리하기 곤란했는데 잘 됐네~”

“처리 하다뇨…?”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민주 엄마! 빨리 와! 이러다 들켜!”

“아, 알았어요~ 그럼 갈게 총각~”

“살펴가세요….”

보통 남편이 부르면 여보나 당신이라 부르지 않나…? 역시 세상일 참 복잡하다니까.

그래도 시원한 물 덕분일까, 기운이 났다. 그리고 결심이 섰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지.’

계속 도망쳐도 언젠가 잡힌다. 그리고 유희에게 평생 상처로 남는다. 이미 자식을 버렸다는 상처를 남겼으면서, 다시는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지금 도망치면 또 유희를 배신한 꼴이 된다.

“헉… 헉…”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길을 뛰어가, 관악산으로 내려왔다.

~~~

─데이트 중이거든요.

─아빤 널 사랑하니까.

저번 데이트에서 아빠의 진심을 들었을 때 나는 포기했다. 아빠는 나를 가족으로서 사랑하지, 이성으로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역시 나의 마음은 닿을 수 없었다. 아빠를 상상하며 자위한 것을 들켰을 때에는, 눈감아줬다. 그리고 몇 번 성적 어필을 했지만 아빠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다른 여자가 꼬였을 때도 쫓아내고, 뭔가 아빠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 같았는데, 역시 나는 아니었나보다.

─유희…야.

아빠에게 몸을 보여졌을 때, 아빠는 바로 나가지 않고 내 몸을 탐닉했다. 온몸을 구석구석 훑으면서, 아빠 본인은 눈치 못 챘겠지만 아빠의 그곳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 기회를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복수를 한다는 핑계로 아빠와 좀 더 친해질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지금까지 무시해왔었는데 갑자기 친한 척하기도 조금 염치 없었으니까.

부끄럽긴 했지만, 아빠가 나를 조금이라도 이성으로서 의식해 준다면 상관없었다. 조금이라도 섹스어필이 되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

─……!

아빠에게 안겼을 때,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조금 흥분했다. 아빠의 자지가 내 배를 쿡쿡 찌르는 감각이, 그 따뜻한 온도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도망치는 아빠를 불러 세우려 했지만 그럴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다. 내가 뭔가 잘못 한 거 같았으니까. 아빠가 나 때문에 패닉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을 매도했다.

방에 설치해 둔 CCTV너머 아빠가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괴로웠다.

‘그냥 솔직하게 좋아한다고 말하면 되는 걸.’

그랬다면, 아빠가 뛰쳐나갈 일도, 집을 나갈 일도 없었을 텐데. 아빠가 저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될 텐데.

─철컥.

아빠가 집에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흐윽….”

또 이대로 버림 받는구나. 차라리 내가 입양아였으면 좋았을 텐데. 왜 나는 아빠 딸로 태어나서….

‘돌아와줘 아빠… 도망치지 마… 난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단 말이야…….’

신이 내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일까, 현관문 앞에서 흐느끼는 나에게 빛줄기가 내려왔다.

“…….”

“…….”

뒤의 역광 때문일까, 아빠의 모습이 더 빛나보인다. 땀이 흘려 붙어버린 티셔츠 때문에 아빠의 잔 근육 모양이 보인다.

여기서 도망치기 싫었다. 도망쳐버리면, 또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아빠가 나를 피해다닐 수도 있다.

그리고 영원히 고백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유희야 아빠가 정말 미안──읍!?”

그래서, 내가 먼저 다가가기로 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