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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내게 집착한다-51화 (51/96)

〈 51화 〉 일본여행. (3)

* * *

드디어 찾아온 여름휴가. 유희와 일본으로 여행 가는 당일. 4박 5일로 도쿄를 다녀오기로 했다. 이 나이 먹고 비행기를 안 타본 것도 참 그렇긴 하지만, 그동안 유희를 위해 절제하며 살아왔으니 딱히 열등감이라거나 그런 건 없다. 유희랑만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승객여러분, 이륙 전 안전한 여행을 위해 좌석 벨트를 꼭 매주십시오」

안내 음성에 따라 좌석 벨트를 맸다. 출장 때문에 KTX는 많이 타 봤지만, 비행기를 타는 건 또 처음이라 왠지 모르게 설렜다.

─우우우우웅.

비행기가 쿠구궁하는 굉음을 내며 출발한다. 롤러코스터가 출발하는 감각과 비슷하게, 의자가 흔들리며 이동하다가, 붕뜨는 느낌이 들었다.

‘오….’

창문 쪽을 여니 구름 아래로 보이는 바다가 아주 장관이었다. 어렸을 적의 로망이랄까, 왜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알 것 같다.

“…….”

“짜증나짜증나짜증나짜증나짜증나짜증나…!”

반면 멀리서 보이는 유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멀미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멀미했다면 승무원을 불렀을 테니까.

“하아….”

유희가 저러는 이유는, 우리의 좌석이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

30분 전.

“오늘 엄청 기대된다~”

“응.”

숙소부터 여행 코스까지, 유희가 전부 예약했다. 내 카드 번호는 언제 또 외웠는지, 거금의 돈이 나갔다는 문자가 올 때마다 식겁했다. 다 무이자 3개월이라 일단 안심은 했다만.

체크인을 하고, 검사도 마쳐 둥근 원형 의자에 직육면체의 등받이가 얹어져 있는 소파에 앉아 탑승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부우우우웅.

가까이서 비행기들이 착륙하거나 이륙하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역시 남자라 그런가, 이런 기계적인 것들을 보면 온갖 SF 영화가 떠올라서 상상 속으로 정주행을 하게된다.

탑승시간 20분 전, 스피커에서 안내음성이 들렸다.

「10시 10분에 인천에서 출발하여 도쿄, 나리타에 도착하는 K203편은, 기체에 결함이 있어 다른 항공기로 대체될 예정입니다.」

다른 항공기로 대체한다라, 결함이 있어도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인 것 같다. 만약 사고가 났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리고 탑승시간, 유희와 함께 새로 바뀐 티켓을 발급받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자기 어디야?”

“나는… 30A인데.”

“뭐!?”

“왜? 무슨 문제 있어?”

“나는 28D란 말이야!”

“28D…?”

A와 D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같은 라인도 아니다. 기체가 바뀌어서 좌석도 아마 랜덤으로 바뀐 듯싶다. 줄이 계속 밀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따로 앉았다.

그리고 다시 현재.

‘화나도 너무 화났잖아….’

하필 비행기라 핸드폰으로 문자소통도 할 수 없다. 한 명킨다고 뭐가 달라지긴 하겠냐마는 그래도 데이터를 키는 것 자체가 민폐고, 매너이긴 하니까 말이다.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구만….’

유희가 옆에 있었다면 서로 기대서 자거나, 아니면 속닥속닥 얘기하면서 즐겁게 갈 수 있었을 텐데, 뭔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기분이 든다.

게다가 옆사람이 노출도가 높은 옷을 입은 젊은 아가씨라,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아랫쪽이 반응하게 된다.

‘오늘 밤까지만….’

그야, 이 날을 위해 일주일을 참았으니까.

~~~

다행히 사고나는 일 없이 무사히 공항에 내렸다. 바로 옆나라라 그런지 한국어가 간판마다 보여서 왠지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입국 심사나 대부분의 종이에는 일본어와 영어 밖에 없어서 곤란했지만 유희가 다 써 주어서 다행이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유희에게 짧게 배운 일본어로 직원에게 인사하니 직원도 같은 말로 내게 말했다. 귀로 직접 들으니까 뭔가 더 감회가 새로웠다.

입국심사가 끝나고, 짐을 찾는 곳에서 다시 유희를 만나자마자 내게 팔짱을 꼈다.

“유, 유희야….”

“왜?”

“아냐. 아무것도.”

아까 떨여져서 앉아서 그런지 더 나에게 달라 붙어온다. 싫은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염장질을 하니 뭔가 좀 부끄러웠다.

20분 정도 기다리고, 우리 짐을 찾아서 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야 돼?”

“음… 이제 패스산다음에 교통카드 만들고 열차 타면 돼.”

“아하….”

분명 유희도 처음 오는 것일 텐데도 많은 공부를 한 듯 빠삭하게 알고 있다. 교통카드도 유희 덕분에 쉽게 만들 수 있었고, 패스도 유희가 짧은 일본어를 통해 금방 샀다.

도쿄 전역을 돌아다닐 때 굳이 교통카드를 쓰지 않아도 24시간 동안 무료로 쓸 수 있는 패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환승에 요금할인이 없어서 패스를 쓰면 돈을 훨씬 아낄 수 있다.

「나리타 스카이라이너」

나리타공항의 열차 타는 곳으로 내려가 도쿄로 향하는 스카이라이너를 탄다. 다행히 이번에는 좌석 변경 없이 둘이서 탈 수 있었다.

“하아… 드디어 자기랑 앉았다.”

“다행이네.”

KTX와 비슷한 좌석이지만, 조금 더 쾌적한 느낌이 든다. 해외라서 그런 건가, 타지를 밟았다는 느낌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신기해 보였다.

「이 열차는 우에노. 우에노 행 입니다.」

객실 앞문 윗쪽에 달려 있는 화면. 여기에도 한글이 써져 있다니 새삼 감탄했다.

툭.

어깨에 무언가 닿는다. 아마 아까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좀 불편해 보여 자세를 바로잡은 다음 편하게 눕혔다.

유희의 따뜻한 온도가 내 어깨를 통해 전해져서, 나도 슬슬 졸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금방 내릴 거긴 하지만….’

그리고 나는 ‘유희와 같이 기대서 자기’라는 자그마한 목표를 달성했다.

~~~

‘더워.’

계속 실내에 있어서 까먹고 있었지만, 일본 자체가 우리나라의 남쪽에 있어서 그런가 여름에 오니 엄청 더웠다. 강렬한 햇빛이 썬크림 갑옷을 뚫고 들어와 따가울 만큼 거리를 비친다.

“이쪽이야?”

“아니 이쪽~”

“와~”

스카이라이너의 종착지인 우에노 역. 우에노 역에서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탄다음, 칸다 역으로 간다고 유희가 설명해 줬다. 아무래도 공항가는 열차가 있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자기야 이쪽!”

“아, 응!”

자칫 잘못하면 서로 떨어질 위험이 있어서, 유희와 손을 꼭 잡고 갔다.

‘여긴 앉지를 않네….’

아까부터 느꼈지만, 한국과는 달리 빈자리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앉지를 않는다. 노약자석 같은 개념은 없는 것 같고, 그냥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지, 아니면 일본 특유의 문화인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칸다 역까지는 3정거장이라 우리도 앉지 않고 서서 갔다. 그리고 앉으면 왠지 눈치 보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착했어.”

“후우….”

칸다역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숙소. 아파트의 한 방을 통째로 빌렸다. 아, 일본에서는 멘션이랬던가.

아파트라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아파트처럼 그렇게 넓지는 않고, 주방과 거실이 있는 원룸 비슷한 곳이었다.

“나 먼저 씻을게~”

“응.”

우리나라보다 더 더워서 땀이 뻘뻘 흘러 씻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유희가 씻는 동안, 나는 에어컨을 키고 가운데에 놓여져 있는 킹사이즈의 침대에 누웠다.

‘가만….’

늘 유희가 같이 샤워를 하자하고, 같이 침대로 가는 게 어느 정도 ‘루틴’이 되었는데, 오늘은 그런 요구가 없다. 더위에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본인이 하기 싫은 건지는 모르겠다.

십수년을 금욕 생활을 하고 살았었는데 고작 며칠 안했다고 이러는 나에게도 참 자괴감이 들었다.

물론 이쪽에서 강제로 덮칠 계획은 없다. 그랬다간 유희가 상처받을 지도 모르고, 섹스 때문에 유희와 사귀는 것도 아니니까.

“하아….”

방이 좀 시원해지기 시작하니 눈이 솔솔 감긴다. 벌써부터 지치면 안 되는데, 이러다가는 관광도 못하고 오늘 하루가 지나가버린다.

정신을 차리고 고양이 자세를 잡아 기지개를 켜듯 몸을 쭈욱 당겼다.

“자기야 뭐 해…?”

“…!”

“아… 스트레칭 하고 있어.”

벌써 샤워를 끝내고 나온 유희가 나를 보며 “풉.”하고 비웃었다.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유희가 웃으니까 괜히 쪽팔린다.

“뭐야 그게~”

“아니 그게…….”

몸을 일으키자 뒤돌아서 보이지 않았던 유희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타올을 몸에 두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옷도 입은 것도 아니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희야. 옷은….”

“아, 깜빡하고 속옷 안챙겨서…. 어차피 이미 다 볼거 본 사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왜~? 흥분했어?”

유희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말은 하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러고는 자기 캐리어를 열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뭔가 기대한 내가 바보 같았다. 유희도 눈치챘는지 내 등에 손을 얹고 말했다.

“왜 가만히 있어? 뭔가 해주길 바란 거야?”

“아, 아니…….”

“거짓말.”

“…….”

민망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유희가 가까이와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밤에 엄청난 거 준비했으니까 지금 미리 빼면 안 돼?”

“…!”

그 말을 듣고는, 욕실에서 계속 발기를 유지하며 샤워해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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