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일본여행. (5)
* * *
“여기서 먹자!”
점심은 근처에 있는 규동으로 해결했다.
맛은 우리나라에 있는 규동과 그렇게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차이점이라면 사람들이 의외로 바빠서 주문을 까먹는 일이 많다는 것.
유희가 일본어로 직원들의 눈치를 주고 나서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끄응….”
“들어 줄게.”
오락실에서 나온 유희의 손에는 많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지만, 하나 같이 다 밀봉해놔서 볼 수 없었다. 뭔지 물어보기는 했지만 나중에 알려주겠다며 알려주지 않았다. 너무 궁금해서 슬쩍 볼려했다가, 유희의 찌릿하는 시선을 보고 바로 관뒀다.
“자기야 무거워?”
“조금… 무겁네….”
짐 하나하나는 가볍지만, 이게 또 모이다 보니 어느 정도 무게가 나가는 수준으로 무거워졌다. 날씨도 더워서 팔도 끈적끈적해졌다.
“숙소 들렀다가자.”
“응.”
지하철을 타고 다시 돌아온 칸다역. 충전해 둔 돈이 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살벌해진다. 다시 숙소에 들어와 짐을 놓고 조금 쉬려고 했지만 유희가 재촉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했다. 은근슬쩍 쇼핑백 내용물 좀 볼려 했는데… 역시 눈치챈 건가.
“밤에 알려줄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아줘….”
“……응.”
그 표정을 보고는, 어떻게든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우에노 역에서 긴자선으로 갈아 타서 나온 아사쿠사역. 이곳에 있는 절이 유명하다.
입구부터 양쪽에 거대한 조각상이 있고, 가운데는 뇌문(雪門)이라고 써져 있는 조형물이 달려있었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진짜로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와….”
전체적으로 붉은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고, 지붕도 높아 일본에 있는 절들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입구를 들어서자 양 옆으로 각종 기념품들과 부적들을 팔았고, 좀 더 들어서자 큰 절과 함께 사람들이 참배를 하고 있었다.
나와 유희도 가서 100엔을 넣고 소원을 빌었다.
‘유희와 평생 함께할 수 있기를…….’
우리가 1촌이든 2촌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유희와 나는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뿐이다. 이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유희가 좋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대책은 생각해놨다. 정말 터무니없는 방법에다가, 엄청 비겁하지만, 법의 눈을 피해 유희와 함께하려면 이 방법 밖엔 없다.
‘언젠가는 유희에게 말해야….’
유희가 받아줄까 문제긴 하지만, 유희라면 받아줄 거라고,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유희도 소원을 다 빌었는지, 내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
“자기는 어떤 소원 빌었어?”
“나…? 음…. 유희랑 평생 있는 거.”
“……나랑 같은 소원이네!”
우연일까 필연일까, 유희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모습이 나와 소원이 같아 내심 기뻤다.
그 미소를, 평생 지켜 주고 싶었다.
“오미쿠지하자!”
유희가 옆에 있는 나무 상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미쿠지라….”
참배야 뭐 여느 나라처럼 돈을 넣고 소원을 비는 거라 별 감흥이 없었지만, 한 번쯤은 오미쿠지를 해 보고 싶었다. 새해는 아니지만 자신의 운을 시험해볼 수 있으니까.
동전구멍에 100엔을 넣자, 햄버거집에서 빨대가 나오듯이 번호가 적힌 막대가 굴러 나왔고, 그 번호의 사물함에 달려 있는 종이를 빼니 결과가 나왔다.
「小?」
소길… 인가? 흉 같은 게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유희도 좋은 게 떴는지,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 나왔어?”
“대길!”
“오~”
“햐앗…!?”
역시 유희는 운도 좋다. 나도 모르게 유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유희가 화들짝 놀라며 내 손을 내쳤다.
“유희야…?”
“그게… 나도 많이 참고 있으니까….”
“아하….”
서로 어색해져서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유희도 나랑 똑같이 밤을 기다리는 셈이 되었으니까.
‘아무리 유희라지만… 너무 꼴리잖아….’
빨리…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
아사쿠사에서 30분 정도 걸어서 나오는 랜드마크. 이럴 거면 지하철을 탈 걸, 약간의 후회감이 들었지만, 오후시간이라 시원한 바람이 살살 불어와서 좀 괜찮았다.
“여기가 거기구나….”
서울엔 남산 타워가 있듯이, 도쿄에는 도쿄 타워와 스카이트리가 있다. 그중에서도 높이가 세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전파탑. 스카이트리에 왔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63빌딩을 보듯이 별 감흥이 없었지만, 막상 가까이에서 직접보니 그 위상이 차원이 달랐다.
“후우… 이제 좀 시원하네.”
스카이트리의 내부로 들어오자, 매표소에서 예약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티켓은 350미터 높이로 올라가는 텐보데크(???ッキ)와 450미터 높이로 올라갈 수 있는 텐보회랑(??回?), 그리고 두 군데 다 올라갈 수 있는 콤보 티켓이 있었다. 이왕 온 거, 제대로 즐기기 위해 콤보티켓을 샀다.
“오랜만이네….”
스카이트리에 전망대만 있는 건 아니라, 중간중간에 쇼핑몰도 있고 거기는 유명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굿즈들이 많이 있었다.
아직도 X켓몬 시리즈가 나오다니, 슬슬 끝날 때도 된 것 같은데 말이지….”
유희도 인형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막상 관심은 없는지 막상 원래 자리에 돌려 놓았다.
“가자.”
“응.”
쇼핑몰을 한 바퀴 돌고 저녁 식사를 마치자, 캄캄한 저녁이 찾아왔다.
직원들의 안내를 받고 전망대로 올라간다. 다른 여타 타워들처럼 엘리베이터 안에서 영상을 틀어줬고, 층 수 옆에는 지상에서 몇 미터 정도 떨어졌는지도 보여줬다.
드디어 지상 350미터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확 들어왔다.
“우와….”
남산, 그리고 63빌딩과는 차원이 다르다. 빛이 없어져 생긴 검은 건물들의 배경에, 은은하게 비추는 건물의 조명이 별처럼 깔렸다. 거기에 전망대 자체의 조명 때문에 분위기가 더 운치 있어졌다.
“…….”
유희도 신기했는지, 말없이 계속 창가를 쳐다보며 걸었다.
“어, 가게 있다.”
반바퀴쯤 도니 나오는 기념품 가게. 나무로 조립하는 스카이트리, 퍼즐로 된 스카이트리, 도금으로 된 스카이트리 등, 온갖 종류의 스카이트리가 다 있었고, 스카이트리 말고도 몇몇 일본의 랜드마크들의 모형들도 팔고 있었다.
가격도 그렇고, 딱히 땡기지는 않아서 돌아보기만 하고 금방 나왔다. 그리고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아까보다 더 높은 430미터 지점까지 올라왔다.
“여기로 가면 되는 건가?”
엘리베이터를 나오자 양 옆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벽 쪽엔 430미터부터 시작해서, 올라갈 때마다 점점 450M까지 안내하는 그림이 나온다. 올라가는 길목에 어떤 작품과 콜라보 하는 건지, 순정만화 포스터가 잔뜩 있었다.
‘이래서 전망대는 꼭 밤에 와야되는구나….’
괜히 사람들이 꼭 한 번쯤은 가 봐야 한다고 추천해주는 곳이 아닌 것 같다. 건물들과 하늘이 이어진 지평선이 보이면서 세계가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기야!”
경치에 심취해있자, 유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 응. 왜──”
스카이트리에 들어온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유희가 달려와 나를 껴안는다. 서로 옷이 얇아서 유희가 접촉한 모든 곳이 느껴졌다.
“유희야… 갑자기 왜….”
“……참겠어.”
“뭐라고?”
“나… 더 이상 못 참겠어…….”
유희가 숨을 거칠게 쉬었다. 타워 내에 에어컨이 빵빵한대도,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얼굴이 붉어져있다.
“…갈까?”
그 말을 무슨 뜻인지 이해한 나는, 바로 유희와 함께 타워를 내려왔다.
~~~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도 서로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공공장소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상상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츄읍… 응…!”
들어오자마자 누구라도 먼저 할 것 없이 입을 맞췄다. 생각해 보면 키스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맛보는 유희의 혀의 감각에 벌써부터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날씨가 더워 땀을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상관하지 않고 서로 껴안았다.
“자기야….”
스카이트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 유희도 사실 이전부터 참을 수 없던 것이다. 최대한 절제했던 감정이 전망대의 전경을 보면서 폭발한 거겠지.
“흐읏….”
끈적끈적한 옷과 브래지어를 벗기고 가슴을 힘껏 움켜쥐자, 탄력있으면서도 부드러운 가슴이 손가락이 파뭍힐 정도로 휘감겨 왔다.
“헤읏!”
일주일 동안 서로 의식하지 않았다. 내 쪽에서도 덮치지 않았고, 유희가 나를 원하는 일도 없어서, 어느새 매너리즘의 빠진 건가 하고 의심하긴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 놨었다.
하지만 서로 쓸데없는 배려를 했다는 것을 일본와서 깨달았다. 나도 유희도, 서로의 몸을 본능적으로 원하고 있었으니까.
“자기, 얏!”
가슴을 만지던 손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 바지속으로 넣었다. 팬티 너머로 느껴지는 둔턱한 살과 작은 균열이 질척해진 것을 느끼면서 바지를 점점 내렸다.
“잠깐만!”
“……미안.”
“그게 아니라…. 이러면 평소랑 똑같잖아.”
유희가 고개를 저으며, 나와의 거리를 멀리했다. 그러고는 손을 써서 억지로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내가 말할 때까지 보지마….”
“응….”
부스럭하면서 찌이익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에게 계속 열어 보지 말라고 한 봉투. 뭘 뽑았길래 보지말라고 한 걸까.
뭔가 계속 기대되는바람에, 이미 내놓고 있는 내 자지는 움찔움찔거리고 있었다.
“이제 봐도 돼….”
유희의 부끄럼섞인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내 얼굴이 풀어져 있나 한 번 더 점검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봤다.
“……!”
“우우….”
그리고 뒤돌아본 현장에는, 엄청 노출도가 높은 메이드복을 입은 유희가 부끄럼을 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