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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내게 집착한다-61화 (61/96)

〈 61화 〉 일본여행. (12)

* * *

오츠키까지는 앞으로 50분 정도. 아직 한참 남았다. KTX 같은 고급 열차가 아닌 일반 열차라서 가는 데는 오래 걸린다. 게다가 후지급행을 타고 1시간가량 더 가야 한다.

“쿠울….”

아빠 머리가 어깨에 기댄 내 머리에 닿았다.

─유희야 우리는 이미….

─아니야!

우리는 가족이 아니다. 연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빠는 강제로 나에게 어울려 준 것이다.

피가 이어졌다는 이유로, 같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가족이라면, 아동학대가 나오면 안 되고, 존속살인이 나오면 안 된다. 그들은 가족이 아니다. 그냥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다.

─용서해 주는 거야…?

─응.

그래서 아빠가 원하는 대로 나는 가족이 됐다. 지문을 찍어서 사진을 지우고, 아빠가 가져온 콘돔이 들어 있는 봉투도 밖에다 버려버렸다.

우리들의 추억을 하나하나 지워갔다.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기 위해. 아빠가 원하는 게 가족이 되는 거라면. 난 기꺼이 포기 할 수 있다.

‘사실은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무심코 내 허벅지에 닿는 아빠의 손등이 거칠다. 흘러내리지 않게 내가 잡았다.

‘조금이라면….’

핸드백으로 가린 스커트 안쪽에 아빠 손가락을 가져갔다. 조금만 쓸려도 민감해져서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데도 더워진다.

“읏…!”

아빠는 바보야.

나는 결혼할 생각까지 했는데, 아빠는 그러지 않았어. 아빠의 사랑은 가짜였어. 이 손가락도, 이보다 더 두꺼운 자지도. 내 여기에 넣었으면서. 몇십번, 몇백번이나 왔다 갔다 거렸으면서. 안에 그렇게 사정했으면서.

“끅…!”

왜 이제 와서 가족 같은 가치 없는 말을 하는 거냐고. 사실은 그때 끝까지 해 줬으면 했는데. 거짓말하지 말라고 필사적으로 매달려 줬으면 했는데.

아빤 정말 바보야.

“하아… 하아….”

그러니까… 빨리 알아채줘. 아빠.

~~~

“아빠. 다 왔어.”

“아, 으응… 미안해 계속 기대서.”

“아니야 괜찮아.”

유희가 내 오른쪽에 앉아 오른쪽으로 기대서 자서 그런지 오른쪽 목근육이 담이 온 것처럼 아파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후지급행선의 열차가 올 때까지 약 10분 정도 남았을 때, 유희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다 줬다.

“고마워.”

아무리 에어컨이 빵빵했다곤 하지만, 1시간이 넘게 물을 마시지 않았다 보니 갈증이 나는 내게 이온음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꿀꺽꿀꺽 넘어갈 때마다 내 스테미나가 점점 채워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응?’

이온음료가 묻어 굳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오른손이 뭔가 끈적하다. 미끌거리기도 하고 찝찝해서, 티슈를 꺼내 닦아서 버렸다.

“왔다.”

“저거구나.”

일반열차가 아닌 약간 KTX비슷하게 생긴 빨간 차. 안쪽 좌석도 여느 기차처럼 되어 있어 이제 좀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유희가 창가 쪽에 앉을래?”

“아, 응.”

열차 규모에 비해 사람들이 별로 타지 않아서 그런지 뒷자석에 사람이 없어 편하게 뒤로 누일 수 있었다.

“하암…. 아.”

“아빠 그렇게 자 놓고 또 졸린 거야?”

“아니 그게….”

또 나 혼자 자버리면 유희가 또 적적한 분위기에서 혼자 있을 게 뻔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면 안 된다. 기껏 가족과 여행을 왔는데 잠만 자다니 아빠로서 실격이다.

「出します。(출발합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쿄와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심과 좀 많이 떨어져서 그런지 주변에 산 밖에 없어서 시골 같았다.

후지산을 보기전에 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놀이공원. 가장 긴 귀신의 집과 여러 극악한 롤러코스터들이 즐비한 곳이다.

“아빠 이거 봐.”

“응?”

유희가 핸드폰으로 몇 편의 영상을 보여줬다. 놀이공원에 있는 롤러코스터들의 영상이였다. 직각을 넘어 121도로 꺾는 롤러코스터부터 시작해서, 점점 가속하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빨라지는 롤러 코스터, 360도로 좌석이 꺾이는 롤러코스터까지, 거를 타선이 없었다.

“이거 전부 타자!”

“전부…?”

“왜~? 무서워?”

“……아니.”

솔직히 타다가 기절할 것 같을 정도로 무서워 보이긴 하지만 여기서 도망치면 남자가 아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잠깐만….”

그리고 이건 깡으로 해결 할 게 아니라며, 첫 번째로 121도 꺾이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한 시간 동안 쉬어야 했다.

~~~

“아빠 이제 괜찮아?”

“아… 응.”

다행히 어지럽거나 그런 건 아니라서 토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것을 전부 제쳐두고서라도 다리가 후들후들 거렸다. 직각으로 올라가며 받는 중력의 압박부터 시작해서, 하반신이 철렁 가라앉으며 얼굴을 강타하는 엄청난 속도감까지 장난 아니었다. 후지산까지 보이는 건 덤.

만약 이걸 계속 탄다는 사람이 있다면 재미보다는 난 이 놀이기구를 이만큼 탔다는 성취감에 타는 사람일 것이다. 진짜로.

“어깨 굳었어~”

“하하….”

유희가 마사지 하는 것처럼 꾸욱꾸욱 내 어깨를 누른다. 뭉쳤던 근육들이 하나하나 풀어져 가며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물가가 너무 비싸다. 기구 하나당 1500엔이라니. 롤러코스터 4개만 타도 벌써 6만원이 나간다. 듣기로는 주기마다 가격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7만원짜리 패스를 사긴 했지만, 이 텐션으로는 따로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번엔 저거 타자.”

“관람차?”

“응. 아빠 엄청 무서워하니까.”

“……그, 그럼….”

절대로 무서워서 타는 게 아니라 쉬는 타임으로 타는 거다. 암.

롤러코스터들이 압도적으로 줄이 많아서인지, 의외로 관람차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바로 탈 수 있었다.

내려오는 관람차에 유희와 마주 보고 앉자, 관람차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오….”

올라가면서 가려진 산 뒤로 파란하늘 아래 거대한 후지산이 지평선을 그린다. 만년설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눈이 쌓여 있는 것은 좀 신기했다.

유희도 후지산을 바라보며 스마트폰을 꺼내 후지산을 찍고 있었다.

찰칵.

“어…?”

“아… 찍으면 안 됐어?”

“아니. 찍어 줘.”

“…!”

유희가 씨익 웃으며 자세를 잡는다. 분명히 후지산 사진을 찍는 자세는 맞는데,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창문에 팔을 일부러 괴고 있다.

찰칵.

다행히 원피스의 치마가 말려올라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요염한 느낌이 들어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아니,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자. 난 아빠니까.

“잘 찍혔어?”

“어, 어어….”

찍은 타이밍이 딱 정상이라 후지산 배경과 함께 유희의 사진이 찬란하게 빛난다. 사진으로 보니 그렇게 야하지도 않다.

“같이 찍자!”

“응.”

유희가 내 옆에 찰싹 붙어 앉고, 자기 스마트폰으로 손을 뻗어 이쪽을 찍었다. 뭔가 표정 관리를 잘 못한 한 것 같은데 제대로 찍혔으려나….

‘유희만 잘 찍혔으면 장땡이지 뭐.’

딸바보란 게 이런 느낌일까 생각하는 동안, 관람차는 바닥에 도달했다.

~~~

“먹을 데가….”

“없네….”

아무리 놀이기구 놓느라 놓을 공간이 없다지만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닌가. 하다못해 라멘집이라도 있었으면 했는데. 개당 500엔이나 하는 핫도그 집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뒤에는 카페 하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자리가 만석이었다.

“쨘!”

“이건….”

“이럴 줄 알고 가져 왔어.”

“오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편의점에 들러서 내가 좋아하는 삼각김밥과 초코맛 우유를 사 왔다. 진리의 조합인 참치마요에 초코우유로 밥이 고슬고슬 녹아 데펴먹지 않아도 맛있었다. 먹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의외로 잘 어울린다.

두 개라 그런지 배가 금방 찼다.

“이제….”

“저기 가자!”

“저기…?’

맑은 날씨에 비해 딱 봐도 음산하게 생긴 곳. 실제 있었던 병원을 개조해서 만든 세계에서 가장 긴 귀신의 집을 유희가 가리켰다.

솔직히 무서운 건 이쪽 보다는 오히려 롤러코스터 쪽인데, 가볼까했지만 갈 수 없었다.

“음….”

「??はお?みです。(오늘은 휴일입니다.)」

안에서 사고라도 났는지, 줄 서 있는 사람은 많지만 갑자기 쉰다는 펫말이 걸렸다. 간혹 진짜 귀신이 나온다고도 하는데, 설마 진짜로 나온 건가?

개인적으로 가고 싶었지만 좀 아쉬웠다.

“음… 미리가자.”

“미리?”

“응. 어차피 아빠 토할 거 같아.”

“아니… 거든.”

“왜 목소리가 작아져? 후후.”

“아, 아무튼 아니야.”

“정말 괜찮겠어?”

“응.”

그리고 탄 시속 172km로 달리는 롤러코스터를 탄 후, 결국 화장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

줄 시간이 길다 보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이제 슬슬 가자.”

“벌써?”

“응. 여긴 기차마감 빨라서 6시엔 가야 돼.”

“아~”

하긴, 여기서 도쿄까지 2시간이 넘게 걸리긴 하니까. 또 도쿄라고 해서 바로 숙소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패스를 산 가격이 아깝긴 했지만, 그래도 유희의 사진을 몇 장 건지는 것으로 만족했다. 조금 기다려 도착한 후지급행을 타고, 종점인 카와구치코역에서 내렸다.

“오~”

내리자 마자 건물 뒤로 후지산이 보인다. 아까보다 더 가까워져서 그런지 정상에 쌓인 눈에 균열이 간게 더 자세히 잘 보였다.

“여기서 카와구치 호수에서 보는 게 제일 잘 보인데.”

“그래?”

유희가 보여 준 지도에는 이쪽 주변에 거대한 호수가 있고, 버스로 타서 호수를 빙 돌면 후지산이 직접적으로 잘 보인다고 한다.

이미 어디에 내릴지도 다 생각했다니, 유희 답다. 정말 누구딸인지.

“역시 우리 딸이야.”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해주자, 유희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응!”

“뭐아, 부끄러운 거야?”

“그, 그런거 아냐.”

정말. 자랑스러운 우리 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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