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이 내게 집착한다-73화 (73/96)

〈 73화 〉 시연 & 수현. (8)

* * *

“수현씨….”

수현씨가 곤란할 만큼의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올려다봤다. 왜 그렇게 나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건진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내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자고 가면 또 유희에게 실망을 안기게 된다.

“정말이에요….”

“그래도 안 돼 수현씨.”

“부장님….”

“…!”

수현씨의 가슴이 내 배에 닿는다. 무게 중심을 이쪽으로 쏠려서 저절로 수현씨를 안는 구도가 됐다.

떨리는 몸의 수현씨가 얼굴을 파묻은 채로 나를 계속 밀어붙인다. 계속 이랬다간 끝나지 않을 거 같아 억지로 힘을 썼다.

“역시 저는….”

“그런 게 아니야.”

“그럼요?”

“자고 갈 수는 없어. 집에서 걱정하니까.”

“그, 그러네요…. 죄송해요 억지부려서….”

“후우….”

유희의 존재를 알리자 납득했는지 날 향하던 손을 멈췄다. 그래도 이대로 가면 수현씨가 상처받을 것이 뻔하니, 적당히 같이 있어주기로 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할까?”

“……네.”

수현씨의 아파트 안쪽에는 분수가 나오는 정원이 있다. 밤이라서 분수가 나오진 않지만, 그래도 수면 아래에서 나오는 무지갯빛 조명은 여전해서, 고요한 공간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볼 거리였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와 오토바이의 소리, 그리고 슬슬 나타나기 시작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만이 들려 차분한 분위기가 우리를 감쌌다.

그건 그렇고 수현씨가 벤치에 앉은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공허한 시선으로 분수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괜히 뻘쭘해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수현씨. 뭐 할 말 있는 거 아니었어?”

“아…. 네. 그랬었죠.”

“응?”

여전히 허공을 보고 있는 수현씨의 표정은 나라를 잃은 것처럼 좋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뭔가 위로의 말을 건네려고 해도 괜히 어설프게 말했다간 더 상처를 줄거 같아 나도 다시 침묵의 상태로 들어왔다.

“여기 산지 2년 정도 됐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처음?”

“네. 이런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있는 거… 항상 집 안에서만 있었거든요.”

“아하.”

관광지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관광 명소를 가보지 못한 것과 똑같은 경우 같아 조금 웃겼다.

“아, 그러고 보니 방송은 이제 안 하는 거지?”

“네.”

“왜 그만둔 거야? 사고친 건 아니잖아.”

“그냥…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어요. 스트레스를 풀려고 방송한 게 어느새 돈을 벌려고 하는 방송이 돼서… 목적이 변질되었다고나 할까요.”

“하긴… 그런 경우가 많긴 하지.”

수현씨의 말이 공감된다. 처음은 좋은 의도나, 건전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던 일이 사이즈가 커지고 외부에 개입되면서 조금씩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결국은 용두사미의 결말을 맞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느낌이 어때?”

“지금은 아직 모르겠어요. 매 방송마다 온 사람의 채팅도, 지금 X튜브에 달리고 있는 댓글도, 정말 제가 그만둔건지 아닌지 실감이 나지 않아요. 곧 알게 되겠지만요.”

“그래….”

후유증이라는 것은 아무리 가벼워도 생각보다 오래 간다. 당장 몇 달 다닌 직장만 그만둬도 잊지 못하는데, 하물며 2년 넘게 방송생활을 했다면 커진다면 커졌지, 작아지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만둔다고 하던 방송인들도 한두 달 지나면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고. …사고쳐서 그만 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안 돌아왔으면 한다만.

“복귀할 생각은 없어?”

“지금은 없어요. 생일 때나 한 번 키려나요….”

“아하. 그럼 그때 들어갈게.”

“정말요?”

의미 없는 대화들이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이 흘러간다. 어느새 달이 구름에 가려 하늘이 완전히 검게 변했다.

다행히 분위기는 무거워지지 않았고, 평소 사무실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나, 컴퓨터 부품 같은 이야기를 잔뜩했다.

“12시가 넘었네….”

수현씨도 시간이 지났다고 느꼈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죄송해요 부장님. 늦게까지 괜히 붙잡아서….”

“이제 마음은 풀렸어?”

“…조금은요.”

“남은 기간 잘해 보자고.”

“네….”

남자가 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 라는 말은 넣어두기로 했다.

~~~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그게….”

어쩐지 택시 타고나서부터 온 연락이 심상치 않더라니 유희가 눈이 퀭해져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에는 내가 저녁 먹고 올 것을 알았는지, 간단한 야식까지 차려져 있었다.

유희가 나를 휙 돌리더니, 킁킁거리며 구석구석 냄새를 맡았다.

“여자냄새 나.”

“…….”

아무래도 수현씨가 아까 나에게 안긴 탓에 냄새가 남은 것으로 보인다. 택시를 타고 왔다곤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꽤 지났을 텐데….

“뭐 했어?”

“그냥 상담 좀 해 줬어.”

“상담?”

“응. 이번 주까지 있거든. 나도 이사가 되면 이번 주까지지만.”

“그…래?”

“유희가 생각하는 짓은 하나도 안 했으니까 걱정 마.”

“무, 무슨 생각을 했다고….”

딱 봐도 내가 이상한 짓을 한 거 같으니 유희가 저런 태도를 취하는 것쯤은 이제 안다. 유희가 자기가 생각한 게 보여서 부끄러운지 괜히 심통을내며 뒤돌아봤고, 그 뒤를 따라가 살짝 안아줬다.

“아빤 유희밖에 없으니까.”

“말로만….”

“저건 유희가 차려 준 거야?”

“응….”

유희에 대한 사랑을 확인 시켜주기 위해 식탁으로 가서 귀여운 모양으로 솟아있는 비엔나 소시지들을 전부 집어먹었다. 케첩으로 눈을 만들어 준게 포인트였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맛있다.”

“잠깐 말돌리지 말고──

유희에게 입으로 주었다.

“웁!?”

혀로 소시지를 밀어 넣자, 유희가 나를 밀쳐 내고 우물우물 씹으며 부끄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뭐하는 거야 아빠──웁!”

입안에 소시지가 빈 것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입을 맞춘다. 이번엔 소시지가 없이, 그대로 유희에게 아침에 했던 키스와 같이 진하게 혀를 밀어 넣었다.

“우웁….”

혀와 혀가 얽혀 유희의 몸이 풀어진다. 아침에 느꼈던, 더 느끼고 싶었던 그 감촉이 혀를 따라 온몸으로 퍼졌다. 그 감각이 뇌를 간질여서 점점 나도 숨이 거칠어진다.

유희도 나를 안는가 싶더니, 천천히 밀어서 나와 거리를 두어 은색 실만이 우리를 이어 주고 있었다.

“흐, 흥.”

유희가 풀어진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확 돌렸다. 아마 다짜고짜 키스를 해서 단단히 화가 난 것이리라.

“유희야….”

“나, 시, 쉬운여자 아니거든?

“당연히 알지.”

“겨우 키스했다고 풀어지는 게….”

“그것도… 알지.”

“그러니까… 흐읏!”

“아빠는 유희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정, 마알…!”

그동안 유희 덕분에 버텨 왔다. 유희와 이런 관계가 되기 전에도 나에게는 유희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바람이라니, 바람 필 정도로 호감가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수현씨의 제안을 필사적으로 거절했으니까.

“그만할까?”

“시, 시간 늦었잖아….”

“그래도 유희랑 함께할 시간은 많은데.”

“아, 안 돼!”

유희가 마다하다니, 내가 너무 많이 들이댄 것 같다. 유희가 싫다면 멈추긴 할 거지만….

살짝살짝 움찔거리는 유희가, 겨우 숨을 고르고 나를 쳐다봤다.

“이젠 진짜로 적응할 거야.”

“그래….”

유희의 절제선언에 나도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끝냈다. 하긴, 어제도 그제도 이사가 되기 전 마지막이라 해놓고 해버렸으니까.

“잘 자 아빠.”

“응.”

나도 이제 유희를 위해서 자제 해야한다. 유희는 자제했는데 내가 덮처버리면 또 문제가 되니까 말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유희는 이미 방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후우….”

여름이 다 가시고 가을 바람이 창을 통해 들어온다. 덕분에 식은 몸이 더 차가워졌다. 혹시나 해서 수현씨의 냄새가 있나 맡았지만 나지 않았다.

“흐음….”

지하철에서 실컷자서 그런지 눈이 감기지 않는다. 덕분에 이런저런 생각이 나며 사색에 잠겼다. 금요일 발표는 잘할 수 있을지, 수현씨의 축하회에, 그리고 정말 이사가 돼버린다면… 다른 부서로 가게 되니, 지희씨와 최 과장과도 이제 마주치기 어려워진다.

정말 여러가지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자면 나아지겠지….’

잠은 오지 않지만 억지로 눈을 감는다. 그래야 눈근육이 피로해져서 눈이 감기기 때문이다. 이불 속에서 나오는 열도 합세에서 점점 내 눈을 감게 만들었다.

“흐으…!”

“…!”

자기 직전, 벽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하으… 으읏…!”

귀를 간질이는 신음 소리, 그 소리에 나도 반응해서는 안 될 부분이 반응해서 몸을 절로 뒤척이게 만들었다.

‘설마….’

옆방엔 아마 유희 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나고 있는 소리는 역시….

“아빠…앗♥”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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