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이 내게 집착한다-83화 (83/96)

〈 83화 〉 나영. (4)

* * *

“으음….”

익숙한 천장. 내 방이었다. 내 생일 다음 날인 일요일. 어제 유희와 계속 몸을 겹친 때문인지, 한낮이 돼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윽….”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제대로 눈을 깜빡일 수 있는 것을 보아, 가위를 눌린 건 아니다. 이번엔 차가운 느낌이 아니라 따뜻하고 말랑한 무언가가 내 몸을 덮고 있었다.

“유희야….”

“일어났어?”

“으응….”

알몸의 유희가 내 위에서 나를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그 귀여운 모습을 보니 나도 괜시래 웃음이 나온다. 이게 아빠미소라는 건가.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엄청 피곤한 상태인 것이다.

“5분만….”

“아잉~”

유희가 계속해서 몸을 비비며 나를 깨운다. 머리카락이 계속 나를 간질여서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빠아~”

“알았어. 일어날게….”

결국 유희의 애교에 못 이겨 몸을 일으키자, 유희가 안아주며 머리를 비볐다. 나도 유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안아줬다.

우우웅.

“…….”

스마트폰 화면에 익숙한 이름이 비친다. 분명 결별을 고했지만, 이대로 무시하는 건 좋지 않을 거 같아 별로 좋지 않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잘… 지내?」

“나야 잘 지내지. 너는?”

「나? 나도 뭐…」

“그래서 무슨 일이야? 전화를 하고.”

분명 그때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연락을 하다니, 아직까지 철이 덜 들었거나, 아니면 정말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게….」

전화너머 들리는 목소리가 약간 떨린다. 후우, 한숨을 쉬더니, 조금씩 조금씩, 자신에게 생긴 일을 띄엄 띄엄 말하기 시작했다.

“뭐…?”

「안 될…까?」

“어디야.”

「3번출구 카페….」

“알았어.”

“아빠 어디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희가 가지 말라는 듯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조금 볼 사람이 있어서.”

“나도 가면 안 돼?”

“……오면 후회할지도 몰라.”

“왜…?”

“…….”

“아빠──”

말하는 대신 유희와 키스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제서야 유희는 자기주장을 꺾고 납득해 줬다.

‘왜냐하면 지금 만나러가는 사람이… 너를 낳은 사람이거든.’

~~~

높이 뻗은 하늘은 쨍쨍하고, 쌀쌀한 바람이 불며 머리에 스친다. 그야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 도달한 것이다. 이런 기분 좋은 날에 유희와 나들이라도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3번 출구에 있는 카페라면 그 카페밖에 없기에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흰색 재킷에 연갈색 치마를 입었고, 예전에 봤던 저갈색과는 다른 화이트블론드 색의 염색을 하고 있었다.

적당히 카페모카를 시키고, 그녀 앞에 앉았다.

“오랜만이야.”

“응.”

가을 하늘에 썬글라스라니 뭔가 좀 그렇지만, 아마도 이쪽과 시선을 맞추기에는 좀 서툰 것 같다. 그도 그럴게 재결합 하자고 했을 때는 내가 매몰차게 거절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재결합이라거나 그런 것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나영이가 일이 생겼다기에, 일단 사정을 들으러 온 것뿐이다.

“그래서, 자세히 말해줘.”

“응….”

나영이는 나와 이혼한 후에, 자기 혼자 인생을 살고 싶다며 집을 나온 나영이는, 혼자서 이것저것을 느끼고, 여기저기서 일하며 인맥을 쌓아오며 살았다.

그 후에 만난 인연이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생각나버려 그 사람에 대해 보류 했고, 나한테 매몰차게 거절당한 후, 결국 그 사람을 받아줬다고 한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증거는?”

“저번에 슬쩍 톡을 봤는데… 다른 여자랑 하는 거 같아서.”

“여자랑 톡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거 집착이라고.”

“알아! 평범하게 업무나, ‘오늘 날씨 좋네요’ 같은 잡담 같은 거면 나도 넘어가 줄 수 있어.”

나영이의 상대의 톡을 보니, 보통 사이라면 나올 수 없는, 기분 좋았다는 말과 함께 서로 몸을 겹친 사진들이나 그 외 몰래 만난 듯한 뉘앙스의 톡들이 많이 나왔고, 사진까지 찍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알려달라고. 나영이가 나한테 부탁한 내용이었다.

“으음….”

바람맞은적도, 바람피운적도 없어서 모르겠다. …아니다. 어쩌면 바람핀 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유혹당한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이 오도록 허락해준 내 책임도 있으니까. 아,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듯, 한 번 바람피면 바람상대가 트라우마를 안겨 주지 않는 한 계속 된다. 설령 들켜도, 인간의 본능은 어쩔 수 없어 잘못을 계속 반복하게 된다.

“넌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

“다, 당연하지. 다정하고, 나 신경 많이써 주고, 잘생겼고… 너보다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그 사람을 잡고 싶어?”

“그렇…게 되나…?”

“결혼하려는 거 아니었어?”

“으음….”

“확실히 해야 해. 안 그러면 나는 어드바이스 해 줄 수 없어. 니 마음이 애매해서야 계속 그렇게 살아갈 테니까.”

“잡고 싶다고… 생각해.”

“그래.”

그 깐깐한 나영이가 그렇게 좋다고 하니 나로서는 이견이 없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으면 좋겠다만. 왠지 걱정이 됐다.

“니가 그렇게 좋아하면 주도권을 니가 잡아야 해. 일단 증거도 있으니까 추궁해 봐. 상대가 순종적으로 나오면 앞으로 관리를 잘하면 되는 거고, 그게 아니면 미련없이 떠나보내면 돼.”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야?”

“나랑 유희 떠날 때도 그랬잖아?”

“……미안.”

“뭐… 지난 일이니까.”

“유희는 잘 지내?”

“응. 요즘 개강해서 좀 힘들어해.”

“그렇구나….”

“개강했는데도 밥 차려주고, 빨래해주고… 고마운 일밖에 없어 유희한텐.”

“…둘이 뭔 일 있었어?”

“응? 뭐가?”

“항상 유희 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굳었잖아. 지금은 엄청 표정 좋은데?”

“그랬었나?”

“응. 화해라도 한 거야?”

“화해라기 보단… 용서 받은 거지.”

일본으로 여행가서 유희에게 용서받았다. 그리고 가족도 연인도 아닌, 조금 애매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서로를 이성으로서 좋아하긴 하지만, 아빠라고 불리고 있으니까.

“그래….”

썬글라스 뒤로 창가를 멀리 쳐다보는 것이 보인다. 아마 유희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이리라. 그 시선에 대해 딱히 딴지를 걸진 않았다.

“나도… 용서 받을 수 있는 걸까….”

“…….”

혼자서 내뱉는 나지막하고 공허하게 흩어지는 목소리. 아마 들으라고 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마 지난날이 생각난 것이겠지. 내가 유희는 아니라, 점점 흐려지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카페를 나왔다.

“아, 어디 살아? 복장보니까 여기 사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나? 신도림.”

“아하. 데려다줄까?”

이사가 된 기념 차도 자랑할 겸, 선뜻 말했지만 나영이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의심할 상황에서 니가 그러면 어쩌려구.”

“그랬지… 미안.”

“아무튼 고마워. 덕분에 잘 될 거 같아.”

“그래.”

“아, 가끔은 유희 사진도 보내주고 그래.”

“…허락받으면.”

“응~”

제발 이게 마지막 만남이 되기를, 속으로 바랐다.

~~~

“아빠왔어.”

“응.”

집에 오자, 유희가 또 뾰로통한 표정으로 있었다. 아마 일어나자마자 밥도 안 먹고 나가서 그런 거겠지. 원래라면 밥은 진작에 먹었어야 할 시간이니까.

“또 여자 만나고 온 거야?”

“…….”

아마 스마트폰에 비친 이름을 확인하고 성별을 짐작한 거겠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리자 유희가 주먹으로 나를 계속 쳤다.

“아빠한텐 내가 있는데….”

“미안해.”

유희가 부풀린 볼 바람을 빼며 머리로 나에게 콩, 박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직장 동료야?”

“……아니.”

“그럼? 대학 동창? 고등학교 동창?”

“아니야.”

“그럼…?”

말해도 되려나 싶었지만, 괜히 숨겨서 또 이상한 오해를 하고 싶게 만들지 않았다. 유희도 알 건 알아야 하니까. 비록 그게 상처가 될지라도, 나는 알려 줘야 한다.

“…엄마야.”

“…!”

엄마라는 말에 순간 유희의 몸이 움찔거린다. 자신을 낳아 놓고 도망가버렸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한 것이다.

“왜 만난 거야?”

“잠깐 상담할 게 있대서. 유희랑은 관련 없는 일이니까 신경 쓰지마.”

“왜 아직도 연락하는 거야?”

“그게… 아빠가 먼저 한 게 아니라──”

“수신차단 하면 되잖아.”

“…….”

유희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처음 그날처럼, 동공에는 초점이 사라져 있었고, 금방이라도 무슨 짓을 할 것처럼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유희야….”

이 다음 유희가 한 말에, 조금 소름이 돋았다.

“설마… 그 여자한테 미련이 남은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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