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1화 (1/125)

1화

“이제 최종 b-nine의 멤버가 될 연습생을 발표합니다!”

MC의 진행에 공간이 떠나갈 듯 함성이 울렸다. 재경은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에 마른 침을 삼켰다.

이제 데뷔만을 앞둔 상황. 재경은 합격과 탈락의 기로에 서서 MC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기울이려고 했다.

“잊지 않았지?”

정우가 재경의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둘 다 뽑히면 내가 이기는 거야.”

아직 무대 위인데 무슨 소리를. 당황한 재경이 제 옷을 매만졌다. 정우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어갈까 잔뜩 긴장했다. 더듬거리며 옷을 매만지던 재경은 정우의 손이 다가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정우는 재경의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이었다. 잡힌 손을 빼려고 힘을 줘 보지만 그럴수록 손가락이 더욱 깊게 얽혀들어 갈 뿐 빠지지 않았다. 그걸로도 모자라 정우는 다른 손으로 재경의 얼굴에 맺힌 땀을 훔쳐주었다.

마지막 무대로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몸은 서늘한 손을 반갑게 맞았다. 재경은 그 손길을 피하려 고개를 돌렸다. 적당히 좀 치댔으면.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보자 자신과 정우가 비치는 걸 발견했다. 정우가 제 손을 잡고 땀을 닦아주는 게 고스란히 찍히고 있었다. 정우도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가 자신의 모습이 나오는 걸 보더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다른 손으로 재경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마치 제 긴장을 달래주려는 듯 다정한 손길이지만 재경은 더욱 뻣뻣해지고 있었다. 등에 닿은 정우의 손이 단순한 친구의 의미만을 담고 있지만은 않기에.

“미쳤어.”

재경이 흘리는 말을 들은 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재경의 귓가를 간지럽히던 숨이 멀어지자 정우의 얼굴이 똑바로 보였다.

수십 개의 조명이 비치는 무대 위.

정우는 재경을 빤히 바라보며 입술이 휘어지도록 환한 웃음을 자아냈다. 웃음으로 반쯤 가려진 정우의 눈동자에는 재경을 향한 강한 소유욕을 드러냈다.

그땐 키스로 안 끝나.

*  *  *

“계약 파기라니 미쳤어? 가서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져야지, 왜 여깄는데.”

40대의 여자가 제 머리카락을 헝클며 잔뜩 흥분했다. 며칠을 못 감아 엉키고 뭉친 머리카락이 손가락을 잡고 놔주질 않자 머리카락이 끊어지도록 거칠게 손을 내렸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으니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다가 제 입술에 일어난 각질을 뜯어냈다.

그녀의 입술에 치덕치덕 바른 립스틱이 각질에 엉겨 붙으며 손가락이 붉게 물들었다. 여자는 제자리를 왔다 갔다 움직이자 짓씹은 입술 사이로 거친 호흡을 뱉어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 위로 늘어진 쌍꺼풀이 여자가 인상을 찌푸릴 때마다 못난 주름을 만들어 냈다.

한때 예뻤던 말을 들었을 법한 그러나 이제는 세월의 고단함을 이기지 못한 여자는 그 고생의 원흉이 아들인 듯 매섭게 눈을 치켜떴다.

“기껏 기획사에 넣어 줬더니 누구 마음대로 계약 파기야!”

여자는 좁은 집이 떠나가라 소리 질렀다. 그녀는 재경이 들어간 화장실을 노려보며 발을 굴려댔다.

“당장 나와. 서재경!”

여자는 사방으로 물건을 던져대며 소리쳤다. 각종 물건이 화장실 문에 부딪혀 커다란 굉음을 일으켰지만, 화장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서재경!”

다시 들려오는 여자의 고함이 듣기 싫은 듯 재경은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손끝이 아릿할 정도로 찬물이지만 재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거푸 얼굴을 씻어냈다. 가슴이 뻐근해질 때까지 숨을 참고 세수하던 재경이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눈이 깜박일 때마다 속쌍꺼풀이 드러났다 숨기를 반복했다. 속눈썹에 맺힌 물이 방울지더니 또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리다 도톰한 입술에 빨려 들어갔다. 문에서 들려오는 굉음에도 재경은 거울 속 제 얼굴만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물에 젖은 꼬락서니가 가관이었다. 피부화장은 하얗게 들뜨고 연갈색 아이섀도가 눈 아래 번졌다. 광대가 따로 없는 얼굴이 우스꽝스러웠다.

깨진 거울의 금이 마치 제 얼굴의 균열 같았다. 이제 겨우 25살인데 가장자리가 깨진 거울의 조각에 비친 그는 잔뜩 지친 50대의 가장처럼 보였다.

“화장실에 숨어 버리면 다야? 나와. 나오라고!”

쾅쾅 문을 두들겨대며 질러대는 거친 소리에 재경이 턱에 뭉친 물방울을 짜증스럽게 훔쳤다.

벌컥 문을 열자 막 주먹을 쥐고 두드리려던 여자가 멈췄다. 그녀는 재경을 노려보며 현관문을 가리켰다.

“대표한테 가서 빌어. 무릎 꿇고 빌고 다신 안 그런다고 해.”

“싫어.”

“야! 서재경!”

“안 해. 안 간다고.”

재경이 매몰찬 거절에 여자가 그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어서 대표한테 가!”

여자는 당장 대표에게 간다면 놔주겠다는 듯 애원과 협박을 뒤섞어 내키는 대로 질러 댔다.

“다 잘못했다고 해.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무릎 꿇어. 빌면 봐 줄거야.”

그녀의 비명에 재경은 두통이 오는 듯 제 머리를 감쌌다. 지긋지긋한 스트레스성 두통. 그리고 지긋지긋한 엄마.

“대체 뭘 잘못했다고 하라는 거야!”

재경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게 올라갔다. 재경은 흉흉한 눈빛으로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만든 원흉을 노려보았다.

“대표한테 가면? 가서 뭐라고 말해? 그 술집에 간 거 스폰 만나러 간 게 아니라 약 먹은 엄마 데려가려던 거라고 할까?”

“…….”

“가는 김에 다 말해? 이름도 모르는 애 임신시킨 적 없으니 그 찌라시 주인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돼? 학폭 언급된 애 나 아니라고 하면 대표가 잘도 믿겠다. 그냥 내가 저지른 죄가 뭔지 모르지만 무작정 잘못했다고 하면 되는 거야?”

재경은 목에 핏대가 서도록 소리를 내질렀다.

억울했다. 찌라시에 박힌 J는 자신이 아니라고 계속 부정했다. 그러나 누구도 재경을 믿지 않았다.

하루에 수십 개씩 쏟아지는 기사와 근거 없는 추측, 의심이 확신이 되는 그 모든 과정에서 재경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부 뒤집어썼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뜨거운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자신을 잘라버린 소속사는 어떻게 할지 당장 내일 일정은 취소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강행하는 것인지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엄마는 나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 내가 J가 아닌 거 알면서…….”

“누가 연락 못 받으래?”

“…뭐?”

막 앞으로 흘러내렸던 머리를 넘기던 재경이 멈칫했다.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다. 여자, 빌어먹게도 자신을 낳은 핏줄인 엄마는 덤덤히 모든 탓을 재경에게 넘겼다.

“대표가 연락을 그렇게 많이 했다는데 왜 하나도 못 받았어.”

재경이 황망한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네가 연락만 제때 받았어도 기획사에서 아니라고 기사 내줬을 거잖아.”

“그게… 그게 내 탓이야?”

제대로 잠잘 틈도 없이 몰아치는 일정을 억지로 버텨냈다. 조금만 더 하면 쉴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엄마의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엄마를 간호하다 쓰러졌고 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엄마가 약만 안 먹었어도 이런 일 안 벌어졌어. 알아?”

재경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제 인생이 이렇게까지 꼬인 원인 중 하나가 그녀라는 듯 한껏 원망을 담았다.

“일부러 먹은 게 아니야. 나도… 나도 몰랐다고.”

여자는 억울한 듯 외쳤지만 잘게 떨리는 눈동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매일 술에 절어 지내는 것도 모자라 약이라니. 재경이 기막힌 한탄을 내뱉었다. 자신이 기절해서 연락 못 받은 건 큰일 날 일이고 여자가 약 먹은 건 실수란다.

재경이 제 옷을 붙잡은 손을 보았다. 얼굴은 계속 짙은 화장으로 덮어서 고생한 것처럼 보이는데 손은 굳은살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아들을 키우느라 거칠어져도 모자랄 판에 험한 일 해본 적 없이 고운 손이라니. 재경이 그 손을 뜯어내듯이 떼어냈다.

“알고 먹었는지 모르고 먹었는지 알 게 뭐야.”

“지금 그거 따져서 뭐 해. 어서 가서 대표한테 다 잘못했다고 빌어.”

돌고 돌아 제자리였다. 당장 아들의 속이 문드러진 것도 상관없다는 듯 구는 엄마의 행동에 재경은 모든 의욕을 잃었다.

“읏.”

이명과 함께 현기증이 돌았다. 재경이 제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거친 숨을 정리하려 애썼다. 이명이 백색소음처럼 울리는 동안 재경은 아예 고개를 떨궜다.

“그렇게 아픈 척한다고 봐줄 거 같아? 서재경. 어서 가.”

여자가 밖으로 손가락질했다. 재경이 질끈 감았던 눈을 반쯤 떴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여자가 보지 못했는지 계속 나가라고 소리쳤다.

“…래.”

재경의 나지막한 소리. 그것을 알아들은 여자가 흠칫 어깨를 떨다 곧 비명처럼 내질렀다.

“서재경!”

“이제 그만한다고.”

처음부터 가수를 하는 게 아니었다. 아니 자신을 자꾸 억지로 가수를 시키는 엄마한테서 벗어나지 못한 게 잘못이었다. 가수 따위 하고 싶지 않았으면서 인형처럼 끌려다녀서 이 지경이 된 거다. 재경이 건조한 웃음을 지었다.

“그만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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