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6화 (6/125)

6화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어?”

윤하준이 가만히 있는 정우의 등을 가볍게 쳤다. 신경 쓰여서 와봤더니 역시나 길 잃은 애처럼 멀뚱히 서 있었다.

“안 들어갈 거야?”

“…내 차례 아닌데.”

“그럼 왜 입구를 막고 있어. 죄송합니다.”

다음 차례의 연습생이 정우의 뒤에 서 있다가 살짝 불만스러운 감정을 내보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윤하준은 여전히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정우의 팔을 잡아당겨 한쪽으로 갔다. 대충 널브러진 의자 두 개를 모아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예선 중인 부스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니까 연습생이 진짜 많다. 그지?”

설렘과 긴장을 담고 부스를 드나드는 연습생을 보며 윤하준이 중얼거렸다. 그중엔 자기도 있고 정우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부스로 안내되어 가버린 동생들도 있었다. 저들 중에 9명을 뽑는다는 건데 그 어마어마한 오디션을 두고 윤하준이 정우를 슬쩍 돌아보았다.

얘는 뽑히지 않을까?

아직 아무것도 치르지 않았는데 정우만큼은 될 거 같았다. 하지만 아직 오디션은 시작하지 않았고 미래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윤하준이 정우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아직도 복잡해?”

“아니.”

“그런데 왜 그래.”

“잘 안 들려서.”

정우의 중얼거림에 윤하준이 그에게 상체를 기울였다. 잘 안 들렸으니 다시 말해보라고 하지만 정우는 이미 입을 다물었다. 더 말할 생각이 없는 걸 알고 윤하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정우야.”

“어.”

“지금이라도 안 하고 싶으면 하지 마. 너 솔직히 다른 소속사로 가도 되잖아. 그러니까…….”

정우는 미비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 진짜 너희 부모님이나 너나 답답하다. 그냥 데뷔시켜 주면 되지 뭘 여기서 확인을 해. 난 솔직히 네가 데뷔하면 잘될 게 딱 보이는데…….”

윤하준이 정우 대신 화를 내주다가 그의 뒷머리를 헝클었다. 평소 아끼던 동생이 말없이 있으니 마음이 쓰인 모양이었다.

“형.”

이제껏 간간이 반응하던 게 고작이던 정우가 먼저 윤하준을 불렀다. 윤하준이 기쁜 듯 정우를 바라보았다.

“응? 왜?”

“서재경이라는 이름 알아?”

“서재경?”

윤하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번이나 이름을 중얼거려봤다. 소속사를 옮겨가는 연습생들이 있고 또 한곳에 오래 머무는 이들이 있다 보니 그들 사이에서도 작은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었다.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니면 처음 들어본 것도 같고? 왜?”

정우가 방금 서재경과 만났던 장소를 보았다.

“노래 잘 부르는 애를 봐서.”

“그래? 너보다 잘 불러?”

윤하준이 어린 동생 달래듯 하는 말에 정우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다 잘 부르는 거 같아.”

정우의 진지한 반응에 윤하준이 놀랍다는 듯 입술을 모았다.

“이번 오디션 쉽지 않겠네?”

*  *  *

“서재경!”

오디션이 끝나고 며칠 학교에만 다니는 조용한 나날이었다. 평소처럼 누군가의 온기 없이 혼자 학교에 다니고 밥을 먹으며 보냈다. 수업을 마치고 다소 힘없는 걸음으로 집에 돌아온 재경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집에 없을 줄 알았던 엄마가 망부석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아니, 그러니까.”

재경이 횡설수설 말을 더듬었다. 문을 열었을 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도 좋아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뺨을 맞은 건 기억도 안 났다. 그냥… 외로움이 일상인 재경에게 가끔이라도 찾아오는 엄마의 존재가 좋았다.

“나 있잖아.”

재경은 6살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을 일이라고 해봐야 오디션을 본 거지만 그건 제외했다. 그보다 알바 면접 본 걸 이야기할까?

아니면 요즘 학교에 다니면서 한두 명씩 얼굴을 트기 시작했다는 걸?

“그렇게 도망쳐봐야 소용없다고 했지!”

“어…….”

하지만 엄마는 재경이 더듬는 이유를 다른 것으로 착각했다.

“이번 기회 절대 놓치면 안 돼. 당장 내일부터 노래 받아서 연습해. 그날 실장님이 너 얼마나 기다렸다 갔는지 알아?”

“…….”

재경이 허탈한 심경에 들어 올렸던 손을 힘없이 떨궜다. 엄마에게 언제 왔냐고 묻고 저녁 먹자고 하려던 모든 말이 혀끝에서 나오지 못하고 뭉개졌다. 누군가의 온기가 집에 머무는 것에 정신이 팔려 다른 생각 못 했다. 자신은 여전히 실장이라는 남자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부풀어 올랐던 심장이 날카로운 바늘에 뻥 터져버린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병신같이.

재경은 제 머리를 헝클며 아까보다 차분해진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안 한다니까.”

“네가 선택할 권리는 없어.”

“엄마.”

재경이 답답한 듯 제 상의를 꼭 쥐었다. 오디션의 예선에 통과했다면 모를까 지금 엄마가 무작정 밀어붙이는 말에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일단 개길 때까지 개겨보자는 마음이었다.

“안 할 거야.”

“너는 아직 미성년자야. 네 보호자는 나고.”

“엄마는 지금 날 보호해주는 게 아니잖아.”

“내가 아니면 누가 널 봐주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사뭇 차갑게 나왔다. 그러다가 재경을 달래기 위해 억지로 나긋한 목소리를 흉내 냈다.

“재경아, 엄마 말 들어. 엄마 말 들어서 손해 볼 거 없다니까?”

재경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가 지금까지 왜 얌전히 연습생으로 살았는지 알아?”

“재경아?”

“엄마 밤무대 뛰면서도 그렇게 좋아하니까… 엄마를 위해서 열심히 한 거야.”

이건 시간이 되돌아오기 전날 외치고 싶었던 말이었다. 엄마가 아니 정하연이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는 그 무대에서도 행복하다는 듯 노래를 불렀으니까. 6살의 재경이 그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엄마가 좋아하니까 돕고 싶었다.

정말 엄마의 말대로 연습생으로 있다가 데뷔해서 엄마도 무대에 서게 된다면 우리 모두 행복해질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미 아이돌로 살아온 재경은 절대 행복해지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번 건 진짜 아니야. 그 사람들 사기꾼이야.”

“네가 뭘 알아? 얼마나 유명한 사람들인데 사기꾼이라고…….”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재경이 엄마에게 물러나며 핸드폰을 꺼냈다. 모르는 번호지만 지금만큼은 절친에게 전화가 온 듯 굴었다. 엄마가 팔짱을 끼고 통화가 끝날 때까지 서 있겠다는 듯 무섭게 바라보았다.

그래 봐야 안 할 건데. 재경은 속마음을 숨기고 통화버튼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 서재경 씨 핸드폰 맞나요?

“네.”

- 여기 choose nine이에요.

“…네.”

- 예선 통과되셔서 연락드렸어요.

“네?”

재경의 표정이 이상한지 엄마가 팔짱을 풀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 이번 주부터 숙소에서 생활하셔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

- 서재경 씨?

“아, 네. 괜찮아요.”

합숙 기간과 언제 몇 시까지 찾아오라는 간단한 이야기와 함께 통화가 종료되었다. 핸드폰을 쥔 손이 내려가며 재경은 멍하니 제게 닥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맴돌았다. 최악을 피하고자 차악을 선택한 게 통했다.

‘내가…….’

예선 통과? 재경은 자신이 처음으로 바꿔 버린 미래가 마음에 드는지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  *  *

학교 다닐 때 들고 다니던 가방을 메고 온 재경이 핸드폰과 앞에 있는 건물을 번갈아 확인했다.

“여기가… 맞나?”

어디 한적한 곳에 있는 단독 건물이나 방송사에서 마련된 세트장을 숙소로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안내받은 장소는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HY호텔이었으니 재경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한 달 동안 생활하기에 너무 비싸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프로그램이 빵 터지면서 이 호텔도 같이 이름을 알리게 된다.

아이돌을 보겠다고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이 전부 이 호텔 숙박부터 예약한다고 하니 손해는 아닐 것이다. 재경이 어깨에 흘러내린 가방을 다시 추스르고 호텔로 들어갔다. 호화로운 내부가 새로 온 손님을 반겼지만 정작 재경은 아무 관심이 없었다.

호텔이야 아이돌 생활할 때 질리도록 드나든 장소였다. 재경은 아니지만 다른 멤버의 인기 때문에 보완이 철저해야 했으니 단순한 숙박 시설은 머무르기 어려웠다.

‘아냐. 나도 호텔에서 묵을 필요가 있었지.’

다른 멤버들은 인기가 많아서, 자신은 안티가 많아서. 재경이 씁쓸한 웃음으로 생각을 떨쳐냈다.

choose nine이 쓰인 현수막을 발견하고 곧장 그리로 걸어가니 기다란 책상과 함께 저번에 본 여자와 남자가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어? 서재경 씨.”

“안녕하세요.”

“오늘은 모자 안 쓰셨네요.”

여자의 반가워하는 인사에 재경이 머쓱한 듯 제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저번과 달리 한 달간의 숙소를 해야 하므로 카메라에 찍힐 걸 예상했다. 그렇다고 화장을 한 건 아니었지만 모자는 따로 가방에 챙겨 왔다.

“기분이 어때요?”

“얼떨떨해요. 실은 안될 줄 알았거든요.”

재경이 콧등을 찡그렸다. 모자를 벗고 마주하니 제 표정이 더 잘 보일 테니 재경은 더 쑥스러웠다. 이마를 감췄다가 슬쩍 손을 세워 얼굴 반을 가렸다.

“그때 충분히 잘하셨는데요?”

여자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말 때문에 그렇다는 걸 모르겠지. 재경은 어색한 미소로 때웠다.

“어쨌든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짐이 그게 다예요?”

“아… 옷 준다고 하셔서 필요한 것만 가져왔어요.”

“그 정도면 아예 맨몸으로 온 거랑 다를 게 없는데요?”

여자가 가방을 보고 웃었다. 속옷과 양말, 편한 티와 바지 하나. 핸드폰 충전기, 문제집을 챙겨 와서 딱히 짐이 많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어떤 걸 가져오는지 모르니 재경은 말을 아꼈다. 아까부터 카메라가 제 얼굴을 비치고 있으니 더욱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표정도 많이 죽였다. 여자가 카메라를 든 남자에게서 무언의 신호를 받자 품에서 하나의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자세한 안내는 안에 들어가서 들을 거예요. 지금은 딱 하나만 알려드릴게요.”

봉투를 열자 안에는 재경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가 나왔다.

“이걸 옷에 붙여 주시고요. 들어가서 대기실에 있다가 순서에 따라 호명하면 choose nine의 심사위원 앞으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서재경 연습생의 실력을 보여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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