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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돌-16화 (16/125)

16화

“우리 조 너무 쎈 거 아니에요?”

누군가가 가벼운 투정을 부렸다.

유민혁이랬나?

한찬형이 몇 번 언급하는 걸 들었다. 키도 크고 눈썹도 진해서 인상이 강한 편이었다.

“아니, 얼굴부터 반칙이면서 촬영을 그렇게…….”

안무 레슨을 기다리는 쉬는 시간 같은 조원이 동그랗게 앉아있게 되었다. 재경은 애초 이런 자리모양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습실에서 나란히 앉는 것보다 이게 나았으니까.

이왕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 물꼬를 틀고 나온 게 저 말이었다. 아직 순위는 나오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시선이 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 A조는 윤하준과 이정우라 윤민혁이 그들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하긴 둘이 가장 촬영을 잘하긴 했다.

“어떻게 그렇게 포즈를 잘 잡으셨어요?”

“…네?”

윤민혁이 건넨 질문에 뭘 그렇게까지 늦게 대답햐냐 생각하던 재경이 얼떨떨한 얼굴로 소리냈다. 은연중에 이정우에게 물어본 말인 줄 알았는데 윤민혁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자기한테 물어봤다는 걸 알고 반응하긴 했지만 사이의 공백이 너무 길었다.

“전에도 찍은 적 있으세요?”

“어… 그게 잘… 기억이.”

재경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하고 어벙하게 반응했다. 어떻게 그렇게 포즈를 잘 잡냐니. 다시 19살로 돌아와서는 촬영을 한 적이 없으니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해야 하나 재경이 고민하느라 점점 침묵이 길어졌다.

그러다보니 다시 불편한 침묵이 찾아왔다. 유민혁이 연습실의 한 켠에 자리 잡은 카메라를 보더니 말을 걸 타깃을 바꿨다.

“윤하준 연습생은 오디션 프로 처음 하는 사람 같지 않아요.”

“그럼 저 이전 프로는 다 떨어지고 여기 온 거 같아요?”

윤하준이 울상을 지으며 장난치자 유민혁이 뒤늦게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이번엔 불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또다시 비어버린 오디오에 누군가 끼어들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재경의 시선이 윤하준에게 향했다. 어떤 분위기든 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지금은 무슨 일인지 가만히 있었다.

‘저 성격 때문에 리더를 맡았다면서…….’

데뷔조에서도 리더, 비나인에서도 리더. 그런데 지금은 왜 저러고 있을까? 눈이 가늘게 뜨는 게 할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재경은 윤하준을 몇 번 더 의심스럽게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나서는 건 자기 마음이었다. 트레이너는 언제쯤 들어올까 가늠하던 재경의 귀에 윤하준의 목소리가 꽂혔다.

“이정우 연습생은 언제부터 그렇게 잘생겼어요?”

“뭐?”

“풉.”

재경이 급하게 손을 막았지만 튀어나온 웃음을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짧았으니까 다른 사람이 듣지 못했겠지?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몰래 주변을 둘러봤다가 점점 눈썹이 아래로 내려갔다. 모두가 재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는 다 들었다는 듯 미소를 짓고 또 누구는 놀란 듯 눈이 떠진 채로.

‘망했어.’

그냥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훅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웃지 않았을텐데. 이건 그냥 누가봐도 이정우를 비웃는 거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윤하준이 바로 말을 덧붙여줬다.

“서재경 연습생도 잘생겼어요.”

“…그래서 웃은 거 아니에요.”

“제가 한 건 했네요. 서재경 연습생을 웃게 했어.”

재경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표정을 감춰보려 손을 들었다가 손끝이 떨고 있어서 내렸다.

“밥 먹은 사람한테 배부르겠다고 말한 거 같은 느낌이라 웃음이 나왔어요. 다른 의미는 없었습니다.”

이정우가 잘생긴 게 당연한데 잘생겼다고 말하니 그게 웃겨서 웃었다.

“정우가 잘생기긴 했죠. 재경 연습생도 잘 아는구나.”

“예 뭐…….”

아니까 더 옆에 있기 싫지. 재경은 이렇게 된 거 이정우를 비웃은 게 아니라는 오해만 풀길 바랐다. 그래서 아침까지만 해도 옆에 오지 말라고 밀어낸 이정우의 칭찬을 건넸다.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생기긴 했죠. 옆에 있으면 비교될 거 같아요.”

“흐음…… 자기소개를 하시네.”

“네?”

윤하준이 너무 작게 중얼거려서 제대로 듣지 못했다. 재경이 되물었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다며 윤하준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정우에게 “잘생겨서 좋아?” 따위의 장난을 치고 있었다.

‘저것도 문제야.’

말수도 적고 분위기도 가볍지 않은터라 누구도 이정우를 걸고 넘어지지 않았는데 윤하준이 그런 거 몰라요, 하는 표정으로 언급해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래도 웃음이 터질 정도는 아니었는데 재경은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물이 엎질러져서 줍지도 못했다. 그냥 어딘가 박히고 싶은 생각만 가득한 채 대충 흘려넘길 말을 건넸다.

“두 분 사이가 좋으시네요.”

같은 엔터라 당연할 말을 던졌다. 딱히 대답할 게 없겠지 싶어 고개를 돌리는데 윤하준이 의아하다는 듯 굴었다.

“정우랑 재경 연습생이 더 사이좋아 보이는데요?”

아, 시발.

*  *  *

댄스 트레이너가 조금 늦는다고 말을 전해오는 스탭이 먼저 연습하고 있으라고 하자마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일어났다. 퍼포먼스 곡이라 댄스가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연습생들이 눈을 빛내며 몸을 풀었다.

99명의 연습생이 개인적으로 노래를 부를 가능성은 적었다. 눈에 띄려면 누구보다 잘 춰야 했다. 그래서인지 안무에 매달리려는 분위기가 컸다. 재경은 분위기에 편승해 연습실을 채운 사람들을 보다가 슬쩍 구석으로 물러났다.

늘 그렇듯 눈에 띄지 않으려고.

프로필 촬영을 마친 후라 더 조심스러웠다. 거기다 화면으로 보여준 안무도 영향을 미쳤다.

‘안무 난이도가 중급이야.’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았다. 일단 반복되는 후렴구의 포인트 안무가 제일 어려운 난이도이고 나머지는 어려울 게 없었다. 몇 군데 버벅거리긴 하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추라고 하면 출 수 있었다.

연습생 기간도 길었고 앨범준비하는 시간이 늘 촉박했기에 짧은 시간 안무를 숙지하던 습관 때문에 재경은 별로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여기서 이렇게 팔을 들면…….”

벌써 몇몇은 서로 도와주며 안무를 숙지해나가고 있었다. 재경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자신을 더 감출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또 이정우인가 싶어 재경이 표정 관리가 안된 채로 고개를 들었다가 의외의 인물을 발견하고 놀랐다.

“저…….”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선 이소운이었다. 같은 룸을 쓰고 이제 17살이라고 했던가? 재경이 앉아있어서 소운의 그림자가 진거였다.

“무슨 일이세요?”

“혹시 시간 되시면 저랑 같이 안무연습하지 않으실래요?”

이소운의 말에 재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게 같은 룸을 써도 이소운은 한찬형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소운의 뒤편을 보자 한찬형이 다른 연습생과 합을 맞추고 있었다.

“저보단 한찬형 연습생이 낫지 않아요?”

“그게…….”

이소운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제가 댄스가 약해서요.”

그게 왜?

“저기 사이에서 해봤는데 자꾸 못 따라가서 따로 하자고 말하고 나왔어요.”

자기가 따로 하자고 나왔는데 왜 나한테?

“아직 안무 연습하지 않으셔서 괜찮으면 처음부터 같이 맞춰보고 싶어요.”

아……. 바로 각이 나왔다. 한찬형과 하기 싫어서 따로 나온 게 아니었다. 따라가지 못하니 눈치껏 멀어진거지. 그러고 내가 눈에 띄었나보다. 이소운은 재경이 가만히 있는게 혼자서는 힘드니 댄스 트레이너가 오길 기다리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재경은 같이 안무를 맞춰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거절하려고 했다.

“제가 조금 많이 부족한데요.”

“네?”

“그래도 서로 도와주다보면 아주 조금은 늘 수 있지 않을까요?”

“아…….”

“부담스러우면 안하셔도 돼요. 저 혼자서도 잘해요.”

이소운이 멋쩍은 듯 웃자 재경이 말을 잃고 멍청한 소리만 냈다. 여기서 조용히 지내다 탈락하려는 자신과 다르게 이소운에겐 간절한 기회일 것이다. 자신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을 그 한 명까지도 모두 여기에 제 꿈을 걸었을텐데 이기적으로 생각했다.

“제가 연습생 기간은 좀 되는데도 그…… 안무 레슨은 기초반에서 올라가질 못해서…… 그래도 트레이너님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익혀두면…….”

“같이 해요.”

재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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