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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돌-18화 (18/125)

18화

의문이 들 듯이 하는 말이지만 실은 그게 정답이라는 걸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카메라 때문에?’

자기처럼 카메라를 피하는걸까?

“정우가 카메라 울렁증이 있거든요. 지금까지 정우 웃는 거 못 보셨죠?”

“아…….”

재경은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고 있는 이정우는 카메라 앞에서 싫어도 그린 듯한 미소를 잘 지어내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이번 오디션 프로그램도 그가 데뷔하고 싶어서 지원했으니 더욱 방긋 웃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

“네.”

재경은 더 파고드는 대신 가볍게 흘려버렸다. 카메라 울렁증이 있으면 어떻고 지어낸 말이든 관심없었다. 자신을 빤히 보던 이정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문이 열리며 카메라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장발의 머리를 하나로 묶은 댄스 트레이너였다. 그의 활기찬 인사가 따로 연습하고 있던 연습생들을 한곳으로 불러들였다. 트레이너가 간단히 제 소개를 하고 난후 연습생들을 둘러보았다.

“여기 조명이 좋은가 왜 이렇게 얼굴에서 빛이 나죠?”

가벼운 칭찬에 연습생들의 웃음이 들렸다.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고 난 후 트레이너가 본격적으로 레슨을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에 곡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댄스 트레이너가 먼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는 연습생들 사이에서 몇몇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곡이 어떤지 파악하는 건 보컬 레슨에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성격에 따라 춤선이 달라지기 때문에 미리 인지하고 동작을 익히는 게 좋았다. 물론 그것을 알아들은 건 재경을 포함 몇몇뿐이었다.

“이 곡의 콘셉트는 뭐죠?”

윤하준이 손을 들자 트레이너가 말해보라며 기회를 줬다.

“발랄하고도 상큼한 곡입니다. 마치 좋아하는 소녀에게 관심을 끌려는 소년처럼요.”

“제법이네요. 작곡가도 처음에 교복을 입는 모습을 상상하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윤하준이 능청스럽게 브이를 취했다.

“파워풀하기보단 활동적으로 춰야 합니다.”

이후로 간단한 소개를 이어가는 동안 재경은 묘한 기분에 휩싸여서 제 팔을 쓸어내렸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자꾸 불안한 기운이 뒷덜미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까 보니 연습하고 있던데 맞나요?”

“네.”

“미리 영상을 나눠준 보람이 있네요. 그러면 누가 한번 대표로 나와서 해볼까요?”

트레이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하준과 이정우, 이소운의 시선이 한 사람한테 몰렸다.

“한 사람한테 시선이 많이 가네요? 나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잘 춘다고 생각했거든요.”

윤하준이 재경을 바라본 이유에 트레이너가 보고 싶다는 듯 호기심을 드러냈다. 불안감의 정체를 알게 된 재경이 한숨 대신 눈을 감았다. 이대로 온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였으면 바랐지만 현실은 앞에 나가서 춤을 춰야 할 운명이었다.

“서재경 연습생. 나와서 춰볼게요.”

재경은 무너지려는 표정을 애써 누르며 앞으로 나갔다. 어떡하지? 카메라에 대놓고 찍히고 있는데 어떡하지? 재경은 자기 혼자 독식하고 만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빠지면 너무 티가 나고 그렇다고 안 출수도 없다.

모두가 재경에게 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 잡힌 질투와 부러움, 어디 한번 해보라는 식의 회의적인 눈빛에 재경은 도망치고 싶은걸 꾹 참아냈다. 카메라에 한번이라도 더 비춰야 하는 연습생에게 자신은 그 기회를 빼앗은 경쟁자밖에 되지 않았다.

‘내가 원해서 추는 것도 아니라고.’

재경은 자신이 추겠다고 한 것도 아니라 억울했다. 그렇다고 나는 여기서 1차 탈락이 목표야. 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답은 하나였다. 어차피 무대에서 노래까지 불렀는데 춤이라고 못 출 것도 없었다. 트레이너의 신호에 맞춰 누군가 음원을 틀었고 연습생은 동심원으로 둥글게 자리에 앉았다. 사방을 비추던 카메라가 한곳으로 돌아가면서 재경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었다.

‘그래도 최대한 방어해야지.’

재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춤을 추되 트레이너의 인정을 끌어내지 않을 방법을 떠올렸다.

이게 먹힐지 모르겠지만 시도해볼 만하다며 재경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팔을 들었다 내려면서 웨이브를 타고. 포인트 안무에서는 가볍게 몸을 띄우며 스텝을 바꾸고 팔은 쭉쭉 뻗어주고.

“오… 음?”

트레이너가 잘하는 걸 보고 감탄사를 흘리다 멈칫했다. 다른 연습생들 역시 트레이너와 비슷하게 재경의 춤에 감탄하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누군가는 재경의 춤에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곧.

“푸하하하하.”

배를 잡고 주저앉았다. 재경은 착잡한 마음을 감추고 열심히 이정우의 표정을 따라했다.

이정우가 했던 대로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고 춤을 췄더니 다양한 반응이 돌아왔다. 윤하준은 바로 배를 부여잡고 엎어졌고 이소운은 토끼처럼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이정우마저 놀란 듯 한쪽 눈썹만 비스듬히 올라간 걸 보고 재경은 한숨을 삼켰다.

‘갑자기 시킨 걸 나보고 어쩌라고.’

그러게 왜 자기보고 춰보라고 했는데. 재경은 아무것도 모른 척 가만히 있으니 트레이너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어떤 곡인지 이야기했는지 잊었냐는 듯 바라보는 시선을 피해 애먼 벽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잖아. 더 후회하지 말자.’

재경은 씁쓸한 마음과 별개로 나름 순발력을 발휘했다며 자신을 위로했다.

“그, 그게 최선인가요?”

재경은 면목없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모여서 보고 있던 다른 연습생들 사이로 들어갔다. 하필 윤하준과 이정우 사이라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다.

“진짜…….”

윤하준이 아직도 웃음이 남은 얼굴로 재경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재경은 황당하단 시선을 보냈다. 뭐 저렇게 눈을 반짝이고 이빨이 다 보이도록 웃는지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았다.

‘얘가 왜 이래.’

정작 그룹활동할 땐 거짓 미소만 지어주고 말았으면서. 재경은 윤하준의 웃음이 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렸다. 윤하준이야 아직 멀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이겠지만 재경으로써는 잊지 못할 이전의 생이었다. 리더가 되어서 멤버를 챙겨주지 못할망정 물과 기름처럼 굴어놓고 저렇게 환하게 웃는 게… 보기 싫었다.

재경이 입술을 삐죽이며 트레이너를 보았다.

“있잖아요.”

윤하준이 남은 웃음을 털어버리려는 듯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곧 기침을 가리려는 게 아니라 트레이너 몰래 떠들려는지 슬쩍 몸을 기울였다.

“아까 일부러 그런거죠?”

“뭐가요.”

재경은 트레이너를 보는 그대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정우 따라한거.”

“…….”

재경이 입을 꾹 다물었다가 태연히 뱉었다.

“카메라 울렁증이에요.”

옆에 있던 또 다른 카메라 울렁증이 움찔했다. 윤하준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재경을 보더니 픽 웃었다.

“머리 잘 썼네요.”

*  *  *

“울렁증 같은 소리하네.”

재경이 투덜거렸다. 카메라가 있어서 춤을 못 춘다고? 아까는 관심 없어서 넘어갔지만 레슨을 들으면서 알았다. 이정우가 카메라 앞에서도 뻔뻔하게 굴 수 있다는 걸.

- 표정도 좋고 자세도 좋고 동작 하나하나에 힘이 잘 들어가고 괜찮네요.

트레이너너가 박수까지 치며 이정우의 안무를 칭찬할 때 재경은 자꾸 표정이 무너지려는 걸 참느라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었는지 모른다. 각자 안무습득력이 다르니 처음부터 상세히 짚어주고 나서야 레슨이 끝났고 재경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는 길이었다.

“저… 같이 식사할래요?”

마지막 계단을 내려올 때쯤 옆으로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알고 보니 이소운이었다. 재경은 자신의 뛰듯이 자신에게 다가와서 한다는 말이 같이 밥먹자는 시답잖은 제안이었다.

“춤 도와준 것도 고마워서 밥 먹고 커피 살게요.”

“…열일곱 살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네.”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사줘요. 내가…….”

재경은 고개를 저으며 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커피 하나 사주는 게 뭐가 어렵겠냐 싶어 주머니를 뒤적이다 현타가 와서 멈칫했다.

‘나 같은 멍청이는 없을거야.’

원래도 돈을 안 쓰지만 엄연히 25살의 재경은 돈이 없다고 커피를 못 사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19살의 자신은 최소한의 돈으로만 생활하는 말 그대로 굶지 않으면 다행인 인생이었다. 별일 없으면 학교에서 먹는 밥 외에 끼니를 거르는데 이소운에게 무슨 커피를 사겠다고. 19살이 된 지 한달이 됐는데도 가끔 이렇게 25살처럼 구는 게 한심했다.

“…커피를 안 마셔서요.”

“아, 네.”

“밥 먹으러 가요.”

재경이 멋쩍어 이소운보다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식당으로 향하는 재경은 심난해서 제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여기서 한 달 버틸 생각만 했지 이후에 어떻게 지낼지 안배한 게 없었다.

‘아르바이트부터 알아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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