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34화 (34/125)

34화

“저게 뭐야.”

그때 불렀던 트로트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었다.

“왜 저게…….”

1분 외에 추가시간이 없는 재경의 시간을 일부러 다른 걸 추가시킨 걸 모르고 당황함의 연속이었다. 보여주고 싶은 장면은 너무 많은데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는 자막이 흘러갔다.

더불어 몇 가지를 편집해서 보여주겠다며 더욱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재경이 황당한 얼굴로 보고 있자니 하준과 소운, 그리고 정우는 무슨 일인지 알아채고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막았다.

“뭐야, 뭔데……. 왜 그러는데?”

태연이 뭐냐고 물어보지만, 답이 없었다. 대신 하준이 TV를 보라는 듯 연신 앞을 가리켰다.

재경이 호텔에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천천히 들어오는 장면을 시간이 없는 관계로 빠르게 감았다. [이 정도면 최소 호텔 아들의 친구의 누나의 아는 사람] 이라는 자막처럼 자신이 너무 자연스럽게 구는 모습을 보고 재경이 입을 막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아이돌 활동 시절 빈번히 머물렀던 게 저도 모르게 티가 났다.

‘그래서 그날 뭐 이상한 거 없냐고 물었구나.’

“생각해보면 호텔 되게 익숙하게 쓰긴 했어요.”

소운이 저게 맞다는 듯 제 의견을 실었다. 재경은 못 들은 척 TV에 집중했다. 곧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부터 여자의 물음에 재경이 다른 연습생과 자신을 비교하는 모습에 재경이 알았다는 듯 대답한 게 가방이었다. 덕분에 자막에 [응. 그거 아니야^^]라고 올라왔다. 그다음엔 시간이 없는 관계로 짤 위주로 추려본다는 자막이 올라왔다.

이젠 또 뭘 보여주려고 그러는지 싶어 재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피구를 하겠다는 설명과 함께 최PD가 건넨 공을 받은 채 가만히 있던 재경의 어벙한 모습이나 옷을 고르는 걸 보고 정말 질색하는 표정이 담겼다.

“1분 동안 알차게 담으셨네.”

“재경이 형 먹는 모습까지 담았어야 완벽한데. 진짜 잘 먹거든요. 어?”

시간이 끝나감에 따라 건후가 중얼거리자 소운이 한마디 보탰다. 그런데 소운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마지막 2초를 남기고 재경이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들어왔다. 두 볼 빵빵하게 넣고 오물거리는 재경의 모습이 멈추더니 이내 다른 연습생의 얼굴이 나왔다.

재경이 억울한 듯 눈썹을 휘었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눈에 안 띄게 잘 있다 나오려고 했는데…….

“짤 모음집이라니.”

하준이 전혀 예상치 못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재경만이 아니었다. 아쉽게 시간을 많이 따지 못한 연습생의 경우 비슷하게 모아서 보여주곤 했다. 그들 나름대로 한 명 한 명에게 들이는 정성이 가득했다.

“진짜 이상해.”

그걸 본 재경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왜 저렇게 정성을 들이는지 몰랐다. 원래 제작진은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하는 존재잖아. 그게 악마의 편집이든 한 사람 몰아주기든.

‘대체 왜…….’

그런 비슷한 걸 생각한 재경이 무릎을 모아 얼굴을 묻었다. 만약 자신이 한 컷이라도 나오고 싶은 사정이라면 악마의 편집으로 날려버릴 제작진을 만나지 않았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결과는 재경은 숨고 싶었는데 착한 제작진이 열심히 살려줬다는 거다. 이제 기대할 건 하나뿐이었다.

‘묻혀라. 묻혀라.’

1분 그게 뭐라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이니 못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더욱이 다른 연습생들도 정말 잘 편집돼서 나왔으니 자신은 묻히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우가 재경의 눈치를 보며 슬쩍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

[찾았다요놈]

[너구나 날개에서 춤추던 말랑콩떡이]

[재경이 너 그러면 못써-_- 무대에서도 날개속에 숨어 있더니 여기서도 그렇게 숨어 있으면 어떡해 찾느라 힘들었잖아 네 잘못이니까 빨리 와서 이모 통장 가져가 이모 진심이다]

[무대조명 때문에 하얀게 아니었자나 이런백설기같으니라구ㅠㅠㅠ]

[재경이 1등가자!! 누나가 응원한다!!]

[재경아 너 너무 이쁘다.……]

[재경쓰... 내가 아이스아메리카노바닐라라떼딸기스무디스파클링에이드조각케이크티라미수슈크림홀케이크 다 사줄게.………………]

[알찬 1분이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 쿨럭. 그래도 내새꾸 잘되는 건 보고 죽어야지.]

아무래도 1분과 상관없이 눈에 띈 모양이었다. 정우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반응을 읽었다. 거의 무대에서 찍힌 말랑콩떡백설기같은 애가 얘였구나 하는 반응이었다.

반응을 확인한 후 하준은 소운과 태연은 건후와 눈을 마주쳤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태연이었다.

“재경이 형, 우읍!”

태연은 갑자기 제 입을 막아버린 하준을 원망스럽게 보았다. 왜 제 입을 막는거냐고 하려는데 하준이 웃으며 말했다.

“태연이 육포 더 줄까? 좀 씹고 있을래?”

하준이 태연의 의지와 상관없이 육포를 넣어주는 동안 소운이 핸드폰을 열심히 두드렸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려놓는데 거짓말처럼 건후의 핸드폰이 울렸다.

정우가 슬쩍 핸드폰을 내리며 재경을 보았다. 반응을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정우는 일단 무난한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우리가 섰던 생방송 봤어?”

재경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차라리 안 보는 게 낫지. 그 생방송에 자신과 재경이 꽤 잡혔다는 걸 여기서 재경만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정우는 그냥 어떤 반응이 올라왔는지 말 안하기로 했다.

*  *  *

“형 가요?”

“가야지.”

방송이 끝나자마자 일어서자 소운이 물어봤다. 재경은 챙길 것도 없으니 빈손 그대로 주머니에 핸드폰의 무게만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선이 나오는 방송은 봤으니 이제 갈 일밖에 안남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또 볼거잖아. 갈게.”

재경이 소운의 머리를 한번 흐트러뜨리고 다른 이에게도 가볍게 인사했다. 그래도 집주인이라고 하준이 배웅이라도 나오려고 일어났는데 정우까지 일어난 건 의아했다.

“너도 가게?”

재경이 의아한 눈으로 정우를 보았다. 고개만 끄덕인 정우가 아예 같이 나갈 것처럼 굴자 하준이 혀를 찼다.

“너 그냥 JT하지 말고 JK해. 재경 엔터 딱이지?”

“응.”

정우가 반박하지 않고 수긍하자 하준이 기막힌 듯 웃고는 아예 현관문까지 열어줬다.

“가라. 재경이도 또 보자.”

가만히 보고 있던 재경은 하준이 내보내는 손길에 밀려 정우와 함께 나와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얼떨떨하게 보고 있던 재경이 정우를 돌아보았다.

“나 때문에 일어난거야?”

“…….”

“너 진짜…….”

재경은 정우를 보고 무슨 말을 하려다 도로 다물었다. 진짜 왜 이렇게 들러붙지? 하는 마음이 강한데 그렇다고 대놓고 말하기엔 부끄러웠다. 재경은 잠시 정우를 보다가 한번은 물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인터뷰때 자신의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강아지 따라오는 것처럼 굴 필요까지는 없었다.

재경이 잠시 시간을 확인하고 바깥에 진 해를 보았다. 지금 시간에 식당은 다 문을 닫았을테니 편의점 정도가 적당하려나? 얼추 생각을 정리한 재경이 먼저 정우에게 말걸었다.

“바로 집에 갈거야?”

“생각 중.”

“그럼 나랑 밥 먹을래?”

정우의 눈이 크게 떠진 걸 보고 재경이 민망해서 시선을 돌렸다 돌아왔다.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굴었나?’

“그냥 밥 먹자는건데 뭐가 이상해?”

정우의 대답이 느려지자 민망한 재경이 말을 덧붙였다.

“왜?”

“뭐?”

재경은 정우의 경계심 짙은 물음에 외려 당황했다. 그러다 자신이 너무 자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정우가 지금 자신을 따라 나온 게 아니라 그냥 집에 가려고 나온 건지도 모르는데. 애초 합숙할 때 같이 다녔다고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는 게 부끄러웠다.

실은 남들보다 더 정우에게 빡빡하게 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된 그를 향한 질투가 있었고 그룹 활동을 했었고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서운했었다. 그런데 정우는 자신이 어떻든 옆에 있으니 다 받아줄 줄 알았나보다. 이게 무슨 자신감인지 재경이 뒤늦게 열이 올라서 그에게 한 걸음 물러났다.

“미안해.”

재경이 서둘러 무슨 말을 하려다 아무 생각이 안나 그냥 사과했다.

“갈게.”

“잠깐만.”

정우가 재경의 팔을 잡았다. 그에 반쯤 돌아섰던 재경이 자신의 팔을 잡은 손을 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밥 같이 먹자. 대신 조건이 있어.”

“괜찮아. 나는 따로 먹을게.”

재경이 기가 차서 정우를 보았다. 누가 보면 밥 좀 같이 먹어달라고 애원한 줄 알겠다. 조건까지 붙일 일인가?

“그냥 따로 먹자.”

“조건이 뭔지 들어보지도 않고 가는거야?”

“안 듣고 거절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재경이 말하지 말라는 듯 손을 들었다. 무형의 막이 생겨 정우의 목소리가 안 들렸으면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정우가 재경의 손을 잡고 내렸다.

“같이 밥 먹는 거 2화 할 때 어때?”

정우의 부탁은 별게 아니었다. 오늘이 아니라 2화 할 때 같이 밥을 먹자는 것.

재경이 잠시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거절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먼저 밥을 먹자고 했으니까.

“그럼 그 날 보자.”

정우가 재경의 손을 놓아주며 거리를 벌렸다. 재경이 제 손에 닿았던 온기를 느끼며 눈을 들었다.

25살의 이정우 그리고 19살의 이정우. 자신을 바라보는 둘의 온도가 확연히 달랐다. 재경은 오디션에 참가하면서 적어도 이정우와 좋은 사이가 되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제법 잘 지낼 수 있겠단 생각에 슬그머니 다른 기대가 올라왔다. 어쩌면 자신이 아이돌을 하지 않더라도 정우만큼은 친구로 남지 않을까. 다시 만나면 조금 더 진중히 대화를 나눠보고 앞으로 적당히 잘 지내보자고 결론을 내려도 좋겠다. 어차피 그와 다시 멤버로 만날 일은 없으니까 상관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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