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63화 (63/125)

63화

[익게] ㅇㅈㅇ 양심 없네

다들 데뷔해보겠다고 아등바등거려봐야 소용없어. 존트 회사 아들이 내려오셨거든. 존트에서 존나 밀어줄테니 천사의 편집각이고 또 방송을 얼마나 많이 타겠어. 그냥 문어다리 놓고 싸워야지 나도 소속사 아들이었으면 진작 데뷔각인데

이번에 ㅇㅈㅇ가 1등한다에 내 손목 건다 당장 2차 발표식부터 보믄 알겠지

└어쩐지 엄청 띄워주더라 처음에 백명 가까이 있을 때부터 혼자 엄청 나오는 거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다 이거로 유명세 얹어가려는 게 보이네 보여 쯧

└대놓고 한 사람을 위한 방송이구나

└ㄱㅆㅇ 말도 안 되는 억지 부리지마 네 뇌피셜에 애 꿈이 망가질 수도 있어

└└뇌피셜인지 아닌지는 보면 알겠지

└다 미션으로 정당하게 따간건데 무슨 개소리를 이렇게 염병첨병하게 적어놨지? 응?

└└미션 자체가 정당한지 아닌지 어떻게 앎?

└그런데 합격자는 국민투표 아닌가?

└조작일지 어떻게 알아. 첫 번째 발표에서 1등이 아니었나보지. 그러니까 탈락자를 보여줬겠거니

└└이게 맞다고 본다. 오디션 프로에서 무슨 탈락자를 비춰.그 PD라는 사람 자체가 말도 안 되는 판타지였어.

└ㅇㅈㅇ? 내가 아는 그 ㅇㅈㅇ? 대표 아들이라고?

└ 존트?

└└J*

└└걍 연습생이라고 나온 소속사를 봐

*  *  *

소운이 찾아왔을 때 재경은 제게 일이 생겼다고 짐작했다. 그런데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순간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재경의 앞에서 소운이 얌전히 있질 못하고 제자리를 서성거렸다. 그러다 재경이 다 읽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누가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렸어요.”

“그러네.”

내용을 읽은 재경이 다시 위로 올라와 제목부터 작성자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댓글까지 살핀 후 소운에게 돌려줬다.

“정우가 JT 대표 아들인 거 확실해?”

소운이 핸드폰을 받아들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이거 보자마자 형한테 온 거예요. 아무래도 다른 형들은 같은 소속사니까 더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소운이 요즘 가장 가깝게 어울려 다니는 사람은 하준이었다. 그러나 정우와 같은 JT소속사인 하준에게 보여 주기가 어려워서 곧장 재경에게 다가왔다.

“저는 이런 거 잘 모르기도 하고… 어떡하죠? 말해 줘야 할까요?”

자신에 대한 소문이 돈다는 걸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지금 정우는 한참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알려줘서 그가 신경 쓰이게 하는 게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일단 지켜보자.”

“그럼 분명 일이 더 커질 텐데요.”

소운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재경의 말끝을 붙잡고 늘어졌다. 재경도 소운이 왜 그러는지 알았다. 아직 방송으로 나오지 않은 발표식 결과 때문이었다. 당장 이 소문을 두고 긴가민가하던 애들은 정우가 1등한 걸 알면 더욱 이 게시판에 신빙성을 올라갈 것이다.

“재경이 형이 정우 형한테 말해 보면 어때요?”

소운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재경이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소운이 핸드폰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더 대비할 수 있고 또 남들은 아는데 자기만 모르는 거 좀 그렇잖아요.”

소운의 말이 이어질수록 재경의 입이 점점 더 굳게 닫혀 갔다. 자신을 둘러싼 악소문이라면 누구보다 지긋지긋하게 겪어왔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둘러싼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돌 때 어떤 기분인지 알았고 또 그것이 진짜처럼 믿어버리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차라리 몰랐다면 어땠을까.

그냥 아무것도 몰랐다면 적어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정우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소운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사람마다 반응은 다를 것이고 재경과 다르게 정우는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 수도 있으니까.

“알겠어. 상황 봐서 정우한테 말해 볼게. 너 연습 가야지.”

“그럼 저는 가 볼게요.”

시간을 확인한 소운이 화들짝 놀라더니 먼저 비상계단을 빠져나갔다. 소운이 가고 혼자 남은 재경은 비상계단의 한구석에 걸터앉았다.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이라는 건 그에 따라오는 말을 감당해야 했다. 항상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없으니 보고도 못 본 척 굴 때가 필요했다.

소속사의 강력한 대처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향한 악의를 아예 모르고 살 순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우는 언젠가 겪어야 할 걸 당긴 것에 불과했다. 소문이 어떻든 지금 오디션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만큼 감당해야 할 무게일 수도 있고.

“그래도…….”

이성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기지만 감정은 아니었다. 정우도 사람이었다. 지금 맛보기로 겪고 나서 나중에도 언제든 그의 안 좋은 말이 올라올 수 있으니 버텨야 한다고 말하는 건 정말 끔찍한 위로였다.

재경이 그랬다. J라는 이니셜 뒤로 자신의 끔찍한 소문들을 두고 다들 유명세에 불과하니 일단 지켜보자고 했었다. 그 소문이 커지고 커져 걷잡을 수 없는 괴물이 되어 재경을 삼켜버렸을 때까지 모두 참으라고 그랬다.

“정말 싫다.”

자신이 겪은 일부를 정우가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고… 언젠가 제게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재경의 기분을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  *  *

연습이 끝나고 혼자 남은 재경이 연습실을 정리했다. 제 물건을 챙기고 다른 연습생의 물건을 한쪽에 둔 후 땀이 떨어진 자리는 얼룩이 남지 않도록 닦았다. 내일 와서 바로 연습할 수 있게 기본적인 정리를 끝낸 재경이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를 넘어선 시각. 매일 몰아치는 연습을 감당하려면 잠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늦은 시간까지 연습한 재경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몸은 지켜서 자고 싶은데 정신은 여전히 바짝 곤두서 있다. 정우의 소문 때문이었다. 심란하고 착잡한 마음이 더욱 그를 빨리 지치게 하면서도 푹 쉬게 놔두지 않았다.

재경이 마지막으로 제 핸드폰을 들고 연습실의 불을 껐다. 연습실을 나온 재경이 복도를 걷다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정우네 조가 연습하는 곳인데 불이 켜져 있어 누가 남아있나 싶어서 그랬다. 그리고 아직까지 연습하고 있는 익숙한 뒷모습을 보고 멈춰 섰다.

“저 독한 새끼, 진짜.”

이 시간까지 연습하고 있는 걸 보고 재경이 징글맞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 역시 늦게까지 연습했지만, 그래도 정우보다 먼저 끝냈다는 이유로 그를 독한 놈 취급하는 것이었다.

재경은 잠시 정우를 보면서 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낮에 소운이 정우형한테 말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던 게 떠올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재경은 결국 연습실의 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에 돌아본 정우가 재경을 발견하더니 곧장 다가왔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너는 이 시간까지 연습하냐.”

재경이 정우를 지나쳐 연습실로 들어가며 말하자 뒤따라오는 발걸음이 들렸다.

“잠이 안 와서.”

마찬가지로 잠이 안 와서 늦게까지 연습했던 재경은 무슨 말을 하기보다 그냥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할 말이 있는 듯 앉은 재경을 보더니 정우가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란히 앉은 둘의 모습이 거울에 고스란히 비쳤다. 발표식이 끝날 땐 통유리였는데 오늘은 거울이었다.

재경은 한참 정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죽을 듯이 연습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우의 연습량은 눈에 띄게 많았다. 자신만큼이나 바래진 운동화를 보고 있자 정우가 재경의 어깨를 툭 쳤다.

“뭔데.”

“…너 그러니까,”

재경이 운을 띄우긴 했는데 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지 제 옷깃을 잡아당겼다. 네 악소문이 돌고 있다는데 알고 있냐는 그 한마디 하기가 쉽지 않았다.

친구이긴 하니 걱정돼서 말하지만, 또 주제 넘는 짓이 될 거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걸리는 게 많아 재경의 망설임이 길어졌다.

“너 악플 다냐?”

고민 끝에 내놓은 말에 정우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얘가 미쳤나, 싶은 시선이었다.

“악플 달아 본 적 있냐고.”

재경이 대답이나 하라는 듯 두 번 물어보니 정우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안 해.”

“왜?”

“뭐?”

“왜 안 하냐고.”

“그런 거 할 만큼 여유롭지 않아.”

“그래?”

재경이 곧바로 수긍하고 있으니 정우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그걸 말하려고 저렇게 망설였나?

그런데 정우가 어떤 생각하는지 관심 없는지 재경이 괜히 제 구겨진 옷을 탁탁 폈다. 그런다고 펴질 리 없지만 재경은 그걸 핑계로 정우를 보지 않고 말했다.

“그래.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다는 게 악플인 거지. 그러니까 혹시나 너한테 그런 게 달려도 상처받지 마라. 너 지금 되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멋진 모습만 보여줘.”

“뭐가 이렇게 말이 튀어.”

악플 이야기에서 갑자기 멋진 모습만 보여 주라는 말로 튀는 대화가 웃겼는지 정우가 미소 지었다.

“어쨌든 네가 잘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 너 보기에 배 아파서 대표 아들이니 뭐니 말하는 거라고.”

“흐음.”

이제야 재경이 무슨 말을 하려고 건지 눈치챈 정우가 목울음을 흘렸다. 정우는 잠시 재경을 바라보다 장난스럽게 내뱉었다.

“나 JT 대표 아들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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