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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돌-65화 (65/125)

65화

“내가 소속사 아들이었으면 데뷔각이라고 떠들어 대는 놈이나 여기 와서 재경이를 만났다고 하는 놈이나 참. 나 얘네들을 질투해서 이런 글 올렸어요, 라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하준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누가 봐도 정우나 재경을 시샘하는 마음에 이런 짓을 벌인 게 티가 났다.

“대표님은 뭐라셔?”

“알아서 하겠다던데.”

정우가 태연히 대답했다. 애초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기에 소속사에서도 준비해 둔 게 있었다.

“너는 금방 가라앉겠지만 재경이가 문제네.”

하준이 검지로 얼굴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빠졌다.

“지금 소속사에 들어오는 건 안 되겠지? 지금 개인 연습생이라 감싸 줄 곳도 없잖아.”

정우도 하준과 같은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만약 들어오라고 해도 오디션이 끝나고 난 후지 지금은 아니야.”

오디션을 하는 와중에 소속사가 결정이 되는 것 자체가 어떤 말이 돌지 모른다. 괜히 부정 행위를 했다는 소문이 돌 수도 있다. 지금은 그저 오디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가장 좋았다.

“답답하다.”

하지만 이미 재경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으니 하준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재경이냐. 걔가 무슨 특혜를 받으면서 다녔다는 건데. 걔가 다른 애를 괴롭혀?”

지금껏 하준이 본 재경은 전혀 남을 괴롭힐 성격이 아니었다.

“눈에 안 띄겠다고 구석에 숨어 있다가 소운이가 도와달라 한마디 했다고 칠렐레팔렐레 가서 도와준 애야. 카메라를 의식해서 그랬으면 말을 안 해. 카메라에 안 찍히려고 아등바등하면서 남을 도와주던 애를…….”

하준이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때리다 정우를 보았다.

“재경이한테 말해야겠지?”

“알고 있는 게 낫겠지.”

정우가 아까 핸드폰에서 하준이 보던 그 사이트를 들어갔다. 그리고는 재경의 이야기부터 댓글까지 하나하나 캡처했다. 정확한 사실 여부도 따져봐야 하지만 도망치지 못하게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다.

“뭐하냐.”

하준이 고개를 내밀어 정우가 하는 짓을 보더니 혀를 찼다.

“지 거나 좀 캡쳐 하지.”

대충 한 번 읽고 만 놈이 재경의 것이라고 하니까 아주 열성적으로 들러붙는다고 중얼댔다.

“나는 간다. 재경이한테는 네가 말해라.”

하준은 제 할 일을 다 한 듯 돌아섰다. 재경에겐 자신보다 정우가 조금 더 나을 거란 생각에 시간을 쪼개서 왔다. 하준이 제 연습하러 가버린 사이 정우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자고 있으면 아침을 못 먹었을 텐데.

정우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재경의 방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  *  *

방으로 돌아오고서도 여러 생각이 겹쳐 해가 뜰 때 잠이 들었다. 정신없이 잠이 들었는데 고소한 냄새가 재경을 깨웠다.

‘뭐야.’

여기서 맡아질 리가 없는 냄새에 재경이 한쪽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빨리 세수해. 너 이거 먹고 바로 연습 가야 해.”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에 재경은 순간 제 룸메이트가 누군지 떠올렸다. 박건후가 아닌데.

“네가 왜…….”

“시간 없다고 했다.”

정우가 눈짓으로 시계를 가리키니 재경이 그를 따라 눈을 돌렸다가 벌떡 일어났다.

“알람이 안 울렸나?”

“울리는데도 못 깨던데?”

재경이 반사적으로 제 부스스한 머리를 비비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서둘러 양치와 세수를 하고 나온 재경이 훌렁훌렁 옷을 벗어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정우가 재경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빼놨다.

“앉아.”

“이거 네가 사 온 거야?”

“받아 온 건데.”

재경이 내려가서 밥 먹을 시간이 없을 걸 알고 정우가 미리 토스트를 주문해서 가지고 올라왔다. 그 냄새에 재경이 잠에서 깼고.

재경은 멋쩍은 듯 자리에 앉아 토스트를 집었다. 저번에 삼각 김밥 이후로 두 번째였다.

“고맙다.”

“어서 먹기나 해.”

정우가 제 몫의 토스트를 집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정말 이것만 먹고 일어나야 하는 듯 정우가 먼저 제 몫을 먹기 시작했다. 재경도 따라 한 입 베어 물었다.

눈뜨자마자 먹은 것치고는 빵이 질기지 않고 토마토와 양상추가 있어서 잘 넘어갔다. 그렇게 토스트의 반 이상을 먹을 때쯤 재경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왜?”

“악플은 한가한 애들이나 다는 거다.”

정우가 대뜸 내뱉은 말에 재경이 뭐야, 싶은 눈으로 보다가 다시 토스트를 보았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물려고 할 때 문득 어제 자기가 떠올랐다. 누군가 정우를 공격한 이야기를 올린 걸 두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게 말이다.

“내 이야기도 올라왔나 보네.”

재경은 덤덤하게 말하곤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래서 별거 아닌 듯 답하긴 했는데 방금까지만 해도 부드럽게 잘 넘어가던 빵이 넘어가질 않았다.

“읽어 볼래?”

재경은 빵을 오물거리며 고민하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내용인지 보고 싶었다. 정우가 재경이 잘 볼 수 있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재경이 식탁 위에 둔 핸드폰을 집지도 않은 채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첫 문장을 보자마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전상국.’

이곳에 들어왔을 때 재경 역시 전상국을 보고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전상국이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 다음 내용부터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다 읽고 난 재경이 핸드폰을 정우에게 도로 밀며 토스트를 마저 먹었다.

“괜찮냐?”

“응.”

“이걸로 널 오해하는 사람이 많을 거야.”

“그러겠지.”

오해라면 지긋지긋하게 겪어 와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재경이 마저 토스트를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나갈게. 토스트 잘 먹었다.”

재경이 정우를 쳐다보지 않고 곧장 방을 나섰다. 정우에게 혹시나 제 감정이 드러날까 서둘러 나온 재경이 복도로 나오면서 억지로 감췄던 표정을 내보였다.

“전상국…….”

이젠 억울하게 당하고만 있기 싫었다. 전상국이 장난친 것도 알고 있으니 그를 찾아가서 따질 생각이었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던 재경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걸음을 멈췄다.

‘잠깐만.’

억울하다는 감정 때문에 다른 걸 돌아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이 소문이 제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등등. 재경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서성이며 고민했다.

*  *  *

“상국아, 재경이가 너 찾는데?”

같은 조 연습생의 말에 전상국이 거울에 비친 재경과 눈이 마주쳤다. 재경이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작게 고갯짓을 하고 나가자 전상국이 속으로 욕을 짓씹었다.

‘건방진 새끼.’

전상국은 카메라를 피해 재경을 따라가면서 어떻게 그를 건들까 생각했다. 자기가 올린 글을 보고 부른 걸 알기에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발뺌할 생각은 없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간 재경이 전상국을 마주 보았다.

전상국이 먼저 재경을 향해 가볍게 도발을 던졌다.

“연습 안 하냐? 그렇게 설렁설렁해서는 너 그 자리 못 지킨다.”

“네 걱정이나 해.”

재경이 받아치자 전상국의 인상이 구겨졌다가 이내 펴졌다.

“그 9등이라는 게 대단하구나. 네가 이렇게 나대는 걸 보면 무슨 마법의 숫자 같아.”

“그래, 35등.”

이번에도 재경이 여유롭게 받아치자 전상국의 얼굴이 다시 와락 구겨졌다.

“그래서 그거 말하려고 불렀냐?”

“아니.”

재경은 전상국을 보고 똑바로 섰다. 예전엔 그냥 상대하기 싫어서 그랬는지 그를 똑바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보고 있으니 전상국의 매서운 눈빛이 그렇게 무섭지도 않았다.

“너 이제 보니 나보다 작네. 키 몇이냐?”

재경의 엉뚱한 질문에 전상국이 미친놈 보듯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기보다 크다는 걸 알려주려고 한 말에 울컥했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그동안 널 똑바로 본 적이 없던 거 같아서.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널 크게 생각했지?”

“뭐라는 거야.”

“이렇게 똑바로 서면 나랑 눈높이가 안 맞는데.”

기어이 전상국이 주먹을 쥐며 흥분할 때까지도 재경은 처음 그 자세 그 표정으로 서 있었다.

“너 나랑 장난하냐?”

“너도 나한테 장난 걸었잖아.”

“뭐? 무슨…….”

전상국이 익명 게시판을 떠올리며 비죽 미소 지었다. 재경이 자신을 부른 이유가 역시 그거였구나, 싶으니 잃어버렸던 여유를 되찾았다.

“이제 보니까 똥줄 타서 날 찾아왔네.”

전상국이 피식피식 나오는 웃음을 참아보려고 입술을 매만졌다. 그래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지만.

“그런데 내가 무슨 장난을 쳤는지 모르겠는데?”

원래는 글을 올린 게 자기라고 말하려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재경을 더 골려주려고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게 계속 몰라라.”

그래야 그 소문이 유지되지. 재경은 전상국의 공격을 역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가뜩이나 9등이 부담스럽던 참이었다. 아무리 정우의 말대로 다른 연습생이 더 눈에 띌 거라고 위로해 봐도 재경 역시 그것에 기대서 연습을 게을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터트려준 악소문이 제게 나쁜 영향을 끼쳐줄 것이다. 이게 지금은 제게 도움이 될 것이다.

“너는 나한테 장난친 거 없는 거다.”

재경이 전상국의 어깨를 두드리며 먼저 자리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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