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66화 (66/125)

66화

연습실로 돌아온 재경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모른 척 한쪽에 가서 물건을 내려놨다. 그리고 운동화 끈을 끌러서 다시 묶고 있으니 중하랑이 다가왔다.

“너 괜찮아?”

“저 왜요?”

“아니… 그.”

중하랑이 선뜻 입을 떼지 못하자 재경이 일어나서 발목을 돌렸다. 다들 이런 쪽으로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해 주지만 재경은 지금 그걸 가지고 어떻다고 말할 여유가 없었다.

그냥 평소대로 아무 일 없던 듯 굴고 싶었다.

“연습해야죠. 얼마 안 남았어요.”

“어, 그래.”

재경의 일이다 보니 쉽게 운을 떼지 못하던 중하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비켰다. 그리고 재경이 지나가자 그의 뒤를 따라가며 다른 연습생과 눈을 마주쳤다. 재경은 그 오고 가는 시선들을 거울을 통해 봤지만, 모른 척 자리를 잡았다.

재경을 중심으로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이제 남은 시간이 3일.’

최종 점검만 남았고 그 안까지는 모두 제 안무를 완벽히 익히는 게 중요했다. 재경은 유독 일이 많게 느껴졌던 이번 라운드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었다. 엄마를 만나서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들어와서 발표식을 하고 제 소문이 돌고.

예전과 달리 이번엔 제 의지대로 소문을 해명하지 않고 두지만,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당연히 억울했다. 심지어 제 이야기를 올린 게 전상국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왜 그랬냐고 따지기보다 끝까지 밀고 나가라고 말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아니라고 말해도 모자랄 판에 그걸 이용하고 있으니. 어쨌든 그 소문이 얼마나 크게 돌지 모르겠다. 당장 제 순위에서 떨어지는 건 물론 아예 탈락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아무 영향이 없을 수도 있고. 뭐가 되든 재경으로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는 범주였다.

‘이젠 진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네.’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재경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  *  *

리허설을 바라보고 있는 마스터들은 한 팀 한 팀마다 저마다의 대화를 나눴다. “저 팀이 춤의 난이도가 가장 높았죠?”

한 마스터의 질문에 민유 댄스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라운드에서 가장 힘든 곡이죠. 그걸 소화하기도 힘들겠고요. 그런데 지금 리허설대로 무대를 하면 문제겠네요.”

“왜요? 다 잘하던데.”

“실수하거나 못 추는 애들은 없는데 유독 한 명이 눈에 띄어요.”

노래의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실력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민유 마스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우를 보았다.

“정우가 늦게까지 연습했다는 건 들었는데 너무 눈에 띄네요.”

“그렇긴 해요.”

“다른 애들도 못 한 건 아닌데 가뜩이나 잘하는 애가 연습까지 많이 해서 차이가 벌어졌어요.”

민유가 말한 걱정이 뭔지 알아들은 마스터들이 전부 무대로 고개를 돌렸다. 막 노래가 끝나고 일자로 모인 연습생들이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우는 관자놀이에 흐른 땀만 닦을 뿐 크게 힘든 기색이 없었지만.

“아예 정우가 센터를 했으면 나았을 텐데.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겠네요.”

“그러게요. 균형이 아쉽긴 하다.”

정우네 팀이 내려가고 그다음 팀이 올라왔다. 그러자 제이나 보컬 마스터가 눈에 띄게 좋아했다.

“재경이다.”

재경을 향한 마음이 대놓고 드러나니 마스터들이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편파적인 마음을 보이면 안 될 텐데요?”

“당연히 심사할 때는 공정하게 합니다. 다만 아주 조금 더 응원하는 친구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죠.”

제이나가 절대 제 사심을 넣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마음을 아는 듯 민유 댄스 마스터가 말했다.

“그런데 재경이라면 예뻐할 만하죠.”

“그렇죠?”

제이나가 화색이 돌면서 되물으니 민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말했다.

“춤과 노래를 다 잘하는 몇 안 되는 연습생에다가 차분하지 욕심 없지. 저 팀에서 열심히 하드 캐리했을 텐데 하나도 티 안 내던데요?”

“춤에서도 그랬어요? 노래는 더 했어요. 재경이가 다 끌고 가잖아요.”

그때 한 마스터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얹어왔다.

“그럼 이 팀도 재경이 혼자 눈에 띄는 건 아닐지 모르겠네요.”

앞 팀에서 정우 혼자 눈에 띄던 것처럼. 그러나 제이나가 고개를 저으며 무대를 가리켰다.

“그거야 보면 알겠죠.”

지금까지 본 재경이라면 절대 그럴 아이가 있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제일 좋겠다.

“리허설이 아니라 진짜 무대라고 생각하자.”

동그랗게 모여서 손을 겹친 와중에 중하랑에 모두의 얼굴을 돌아보며 말했다.

“심사받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보여 주는 거야. 알겠지?”

전부 고개를 끄덕이며 의지를 다질 때 중하랑이 재경을 보았다. 여전히 큰 표정 변화 없는 재경은 긴장감 없이 있었다.

“재경아.”

“네 형.”

“잘 부탁한다.”

“네.”

중하랑이 말한 부탁한다는 의미가 뭘지 말하지 않았지만 재경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가 해산하며 무대에 자리를 잡았다. 재경은 가장 느지막이 걸어 들어가 센터 자리에 섰다.

센터이자 메인보컬.

지금껏 재경에게 있어 이렇게 중요한 걸 얹은 무대는 없었다. 그렇게 치면 센터로 하는 건 처음이지만 재경은 처음과 똑같았다. 센터이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이 무대를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다짐 같은 건 없었다.

재경이 아이돌을 할 때 가장 원했던 건 하나였다. 혼자 어울리지 못하고 외로웠던 순간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재경의 우울증은 깊어만 갔다.

어쩌다 보니 오디션을 지원하게 되었지만, 라운드를 걸칠 때마다 재경은 아이돌을 하면서 겪었던 아쉬움을 하나씩 없애고 있었다.

음정이 어긋나는 실수없이 매끄럽게 고음을 올리는 일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럽게 춤을 추는 것. 그리고 이번엔…….

노래가 시작되기 직전 고요한 시간. 재경이 내리 깐 눈을 들어 카메라를 보았다. 재경의 눈빛이 그대로 카메라에 찍히는 순간 노래가 시작되었다.

“와.”

무대를 보는 마스터들이 감탄을 흘렸다. 그들은 재경을 보다가 또 다른 연습생을 보는 등 부지런히 시선을 옮기면서도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는 재미에 빠져 집중해서 보았다.

“여기 진짜 파트 잘 나눴다.”

“그러게요. 재경이 눈에 띌 줄 알았는데 완전 반전이네.”

처음 노래가 시작할 때 재경이 카메라를 보는 그 순간 센터라는 인식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러나 정작 춤은 누구보다 띄지 않으면서 다섯 명이 한 팀처럼 묻어났다.

각자가 솔로로 돋보이는 부분은 확실하면서도 재경은 메인보컬로 나와야 하는 곳이 아니면 모두와 하나로 어우러졌다.

“저렇게 추는데도 재경이가 센터라는 게 확 와닿는 게 더 신기해.”

“저런 게 카리스마지.”

“무대를 어떻게 활용할지 아는 애 같아.”

마스터들이 각자 한마디씩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재경의 춤이 유난스럽지 않은데도 그의 표정이나 눈빛에 자꾸 그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룹의 균형을 적절하게 유지하면서도 제 역할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정우와 다르게 재경의 팀은 하나라는 인식이 강했다. 더불어 모두가 서로를 생각하면서 무대를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마스터들은 어느새 관객처럼 무대를 감상했다.

“이 팀 끝났네.”

“다른 애들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워낙 팀이라 센터를 제외하고 눈에 띄는 애가 없는 반면 이 팀은 처음부터 끝까지 5명 모두가 눈에 띄었다.

마스터들이 혀를 내두르는 동안 민유가 심각한 눈으로 재경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제이나가 민유의 어깨를 두드렸다.

“왜요?”

“아니, 떨어지면 내가 데려갈까 싶어서.”

“꿈도 꾸지 말아요. 쟤 탐내는 소속사 엄청 많을걸요?”

제이나가 웃으며 민유의 바람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  *  *

리허설을 마치고 내려온 재경은 무너진 메이크업을 고치러 가는 와중에 한쪽에 서 있던 정우를 발견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게 아니라 혼자 있는 모습에 재경은 그를 의아한 듯 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든 정우와 눈이 마주쳤을 때 재경이 “아…….” 말을 흐렸다. 정우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왜 그런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정우의 표정이 바뀌며 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서재경, 역시 잘하네.”

“너도 잘했지.”

“나는…….”

재경의 말에 정우는 애써 짓던 미소를 지웠다. 대신 그는 복잡한 심경을 감추려는 듯 한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재경은 이제껏 열심히 연습하던 것만으로 정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잘하지.”

잠깐 운을 뗀 후에 나온 정우의 말에 재경은 싱겁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 잘하는 거 아니까 그만 말해라.”

“그래. 가야 하지?”

정우가 재경을 부르는 소리에 한 걸음 물러났다. 가라는 신호에 재경이 한 걸음 움직였다가 정우를 돌아보았다. 생각해 보면 정우는 여전히 혼자 연습하고 있었다. 물론 늦은 시간까지 했으니까 다른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자기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나?

하지만 정우에 대한 궁금증은 멀리서 재차 재경을 부르는 소리에 금상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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