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106화 (106/125)

106화

정우가 룸 앞에 서서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지금 재경이랑 같이 지내고 있는 룸인데요. 아, 재경아. 우리 아침에 정리하고 나왔나?”

막 소개하려고 문고리를 잡던 정우가 뒤늦게 생각난 듯 재경에게 물었다. 하지만 오늘 방송이라고 정신없기는 재경도 마찬가지라 방을 정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재경이 눈썹을 내리며 살짝 고개만 내젓자 정우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가라앉았다.

“저 잠깐만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안 되겠죠?”

이미 카메라맨부터 같이 들어가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채팅창은 온갖 불이 붙듯 올라오고 있었다.

[절대 혼자는 못가지]

정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벼운 한숨과 함께 문을 열었다. 카메라맨이 정우보다 먼저 들어서 안을 비쳤다. 그리고 걱정하던 정우는 의외로 따라 들어가지 않고 채팅창을 보고 있었고 재경이 뒤따라 들어가서 방의 상태를 살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침구가 조금 흐트러진 것 외에는 다행히 눈에 띄게 지저분한 건 없었다. 옷도 한쪽에 잘 개어져 있고 쓴 수건은 바구니에 넣어서 지저분해보이진 않았다. 재경이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왜 방을 보여준다고 했을까 뒤늦은 후회를 했다.

“재경이나 저는 그렇게 어지르는 타입은 아니예요. 굳이 따지면 연습생 중에 있긴 한데…….”

정우가 일부러 말끝을 흐리면서 시청자와 밀당하고 있는 사이 재경은 누군지 바로 떠올렸다.

박건후.

진짜 더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운한 인간이었고 같은 방을 써서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생긴 습관이 아니라 원래 그렇다는 걸. 그렇게 박건후와 있었던 며칠을 떠올리며 다시 방을 둘러보고 있는 재경의 어깨에 정우의 손이 올라왔다.

“같은 팀끼리 같은 방을 쓰게 되니 어떠냐고요?”

재경이 돌아보자 정우는 채팅창에 익숙하지 못한 그를 위해 하나의 질문을 읽어 주었다. 그러면서 시선을 재경에게로 돌렸다. 아무래도 자기와 같이 지내는 그의 감상을 물어보는 듯했다.

‘얘랑 같이 지내는 거……?’

정우의 배려 덕분에 그와 지내는 게 좋았지만, 요즘은 다시 조금씩 불편한 마음이 생기고 있었다. 일단 정우의 마음을 알게 돼서이기도 했고 그에 따라 흔들리면서 기울고 있는 제 마음이 문제였다.

재경이 잠시 고민하다가 가장 무난한 대답을 끌어왔다.

“일단 제일 편한 상대라서 좋긴 한데, 가끔은 불편할 때가 있다?”

재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우가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내가 불편해? 내가 싫은 거야? 내가 너한테 못 해 준 거 있어?”

은근히 재경에게 자기와 같이 지내는 게 좋다는 대답만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확 잡아채는 말투에 재경이 당황해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꼭 그렇다기보다는…….”

“내 집에서도 잘 지내 놓고… 설마 그때도 불편하다고 여겼던 거 아니지?”

“아, 아냐. 좋았어. 너랑 같이 사니까 진짜 편하고 고마웠는데?”

재경이 진짜 그런 거 아니라며 정우의 오해를 풀려고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정말로 제게 필요한 때 손을 내밀어주고 며칠을 머물러도 조금도 부담 주지 않아서 고마웠다. 그리고 정우와 한 침대에서 잘 때는 그를 자세히 바라볼 수 있어서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불쑥불쑥 떠오르곤 했었다.

“절대 불편하지 않았어. 오히려 외롭지 않아서 좋았어.”

재경이 정우의 오해를 풀어보려고 말하면 할수록 채팅창의 속도도 불이 붙은 듯 올라갔다.

[그랬구나 둘이 같이 살았구나]

[합숙이 끝났을 때가 참 궁금했는데 이렇게 알게 되네]

[우리 재경이 외로웠구나]

[이런 맛에 라방을 보는거지]

[처음에 되게 틱틱대고 밀어대는 거 같았는데 다 내숭이었네 우리 재경이]

힐끗 채팅창을 본 정우는 아까보다 누그러진 표정으로 봐준다는 듯 재경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언제 삐졌냐는 듯 뻔뻔하게 진행을 이어 갔다.

“방은 다 봤고 연습실을 갈까요? 아, 지금 밥 먹으러 가도 좋은데 어디부터 갈까요?”

[밥먹자]

[우리 새끼들 밥은 꼭 챙겨묵어야 해]

이제 시청자의 반응을 즐기며 정우가 재경에게 입모양으로만 밥을 언급했다. 원래도 연습실과 밥을 먹는 것 중에 어떤 걸 할까 고민할 때 정우가 시청자가 원하는 쪽으로 하자고 이야기를 했었기에 재경이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방을 나오는 정우가 다행이라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재경에게 어서 오라고 눈짓했다. 재경은 정우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긴 하지만 문득 이 방송이 괜찮을까 싶은 걱정이 들었다.

“우리 잘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정우에게만 들리게 속삭인다는 게 조금 목소리가 컸는지 마이크를 통해 들어가고 말았다. 정우는 재경의 걱정에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려다가 잘 안 되는지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정우가 아무 말이 없자 재경은 아쉬운 대로 카메라맨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눈으로 물었지만 누구도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재경은 아쉬운 대로 정우에게 붙어서 그가 든 화면의 채팅창을 확인했다. 여전히 빨리 올라가서 한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집중해서 보니 아주 조금씩 몇 개의 채팅이 보였다.

[충분히 재밌어!!!!!]

반응이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재경도 안도한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갈까?”

정우는 웃음은 그쳤지만, 아직 가라앉지 않은 즐거운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재경의 손을 붙잡았다. 그저 나란히 걸어가기 위해서 잡은 손일 뿐이었지만, 카메라는 예리하게 그것을 담아내며 시청자의 만족을 끌어내 주었다.

[그래 그렇게만 하자 나는 좋다]

*  *  *

식당으로 내려오는 동안에도 정우가 호텔 내부를 소개해주자 의외로 작가가 마음에 들어 했다. 왜 그러냐 하니 이번에 오디션 한다고 빌리면서 홍보도 조금 해주기로 했었나 보다. 그런데 그걸 의외의 곳에서 하고 있으니 PD에게 연락해서 속삭이는 걸 우연히 듣고 알았다.

“뭐 먹을 거야?”

“나는 한식.”

재경은 돌아볼 것도 없다는 듯 한곳을 택해서 걸어가자 정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뒤따라왔다.

“은근히 한식파예요. 다른 걸 먹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러면서 카메라를 보고 재경의 식성에 대해 떠들어댔다. 재경이 유난히 잘 먹는 반찬이라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 정보를 같이 풀어냈다.

“한번은 재경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는데 또 밥을 잘하더라고요. 아, 그리고 의외로 커피를 안 먹어요. 그 이유가 뭐냐면요.”

정우가 재경의 등을 툭툭 건드렸다. 그에 접시에 불고기를 담고 있던 재경이 정우를 돌아보았다.

“너는 왜 커피 안 마셔?”

“아직 열아홉 살이니까.”

“그렇다네요.”

재경의 대답이 잡아채 정우가 다시 시청자에게 말을 건넸다.

“아직 성인이 안 됐다는 이유로 커피를 안 마신다고 하긴 하는데… 쓴 거를 싫어하는 건 아닌지?”

정우의 추론에 막 숟가락을 들던 재경의 어깨가 움찔했다.

[역시 애기입맛이었네]

[달달한 거 잘 먹을 거 같아]

[재경이한테 블랙은 엄근진과 다를 바 없지. 안 어울려]

[정우는 무슨 커피 좋아해?]

“저요? 저는 아무거나 잘 마시지만… 일단 저도 열아홉 살인 관계로.”

[그 얼굴이 정말 19살인 거 맞지?]

[겉늙었다는 건 아니야 그냥 잘생겨서 자꾸 오빠 소리가 나와서ㅎ]

정우가 채팅창을 보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 재경이 접시를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정우가 방송에 집중하다 보니 뒤늦게 자기가 너무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재경은 주변을 돌아보다가 숟가락, 젓가락만 하나씩 더 가져왔다.

정우는 재경이 숟가락을 챙기는 걸 보고 의아한 마음에 음식도 챙기지 않고 갔다. 그러자 재경이 그에게 제가 퍼온 음식을 가운데로 밀었다.

“같이 먹자.”

정우는 의외라는 듯 그것을 바라보다가 곧 미소를 지으며 밥을 펐다. 이제 채팅창을 보면서 진행하는 것보다 재경과 함께 하는 식사가 더 중요했다.

“같이 먹으려고 많이 가져온 거야?”

정우가 밥을 뜨면서 묻자 막 숟가락에 크게 동산을 만들어 먹으려던 재경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제가 가져온 밥과 반찬의 양을 살폈다.

“일 인분인데.”

“…많이 먹어.”

정우가 귀엽다는 듯 손짓하자 재경이 숟가락에 둥글게 말아 뜬 밥을 한입에 넣었다. 어느 프로그램에 나오는 ‘한 입만’을 따라하기라도 하는 듯. 그리고 반찬까지 야무지게 하나씩 집어먹는 재경의 먹성에 어느새 정우는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진짜 잘 먹네.”

재경의 볼이 미어터지도록 밥을 먹고 있는 걸 보며 정우가 제 턱을 괸 채 픽 웃었다. 방송으로도 재경이 먹는 모습이 종종 나오더니 라이브 방송으로 싣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진짜 먹방을 했었어도 괜찮았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재경이 먹는 게 방송에 찍히고 있을 걸 아는 정우는 막상 제 표정도 그대로 담기는 건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정우 눈에서 꿀 떨어지고 있네]

[왜 이렇게 달달해 쌀이 왜 저렇게 달아보이지?]

[오늘 커플방송인거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