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7/21)

2.

해림은 뜬 눈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씻고 나왔다. 얼마가 필요할지 몰라 지갑에 가지고 있는 현금을 모두 넣고, 주신도가 장난처럼 집어넣은 모자도 챙겼다. 전혀 어울리지 않으나 얼굴을 감출 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케이는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 있었다. 1층 비상구 입구로, 해림이 예전에 봤을 때는 가드가 떡하니 서 있었더란다. 지금은 케이 혼자 남아 유유하게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었다.

케이가 해림을 보고는 담배를 미련 없이 바닥에 던졌다.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같잖다는 듯이 핏 비웃었다. 케이의 옷차림에 비해서 초라하기는 하나, 어차피 놀러 가는 것도 아니라 해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숲길은 그날과 다름없이 음침했다. 밤새만 간간이 울었다. 케이가 적막을 메꾸려는지 뒤통수에 깍지를 끼고서 참새처럼 종알종알 떠들었다.

“그런 옷을 입고 어떻게 손님은 받았어? 아, 못 받았겠구나. 소문은 들었어. 고자인 걸로 모자라 손님 자지에다가 토했다며. 사장이 그 성격에 그쪽 살려 두는 게 신기하네. 그쪽 정말 사장하고 뭐 있는 거 아니야?”

빚 외엔 없다. 또한 그래야만 했다. 무수히 쏟아지는 질문에도 해림은 간간이 응, 아니 하는 짤막한 대답만 내놨다. 긴장도 했거니와, 케이의 질문이 대부분 영양가 없는 것들이었다. 나이가 뭐냐, 진짜 이름이 뭐냐 하는 호구 조사와 주신도에 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사장실에서 정말 서류 정리만 하는 거 맞아?”

“어.”

“거짓말 말고. 사장이 남자하고는 손닿는 것도 싫어하는데 한 공간에 머문다는 게 말이 돼.”

그런 인간이 저에게는 연고도 발라 주고 구음도 시키고 그걸로 모자라 손수 로터까지 넣었다. 어둠에 가려진 해림의 귓불과 눈 아래가 불그죽죽 익었다. 앞서가는 케이는 보지 못했다.

“남자도 파는 포주 새끼가 지는 남자하고 떡 치는 걸 싫어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런 좆같은 모순이 어디 있어. 그쪽은 어떻게 생각해.”

“글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어서.”

해림에게 하는 걸로 봐서는 성별을 막론하고 그리 큰 거부감은 없는 듯 보였다. 물론 신음 듣기 싫다고 입 닥치라 하고, 그놈의 수술용 장갑을 끼고 달려들기는 하지만. 저번에는 정신이 없어 기억이 희미한데, 주신도가 맨손으로 아래를 헤집지 않았나 싶었다. 딱딱하고 뜨뜻한, 사람의 체온을 지닌 손가락이…….

이렇게 가다가는 언젠가. 아니, 어쩌면 빠른 시일 내에.

“…….”

더는 생각하지 말자. 해림이 추운 듯 부르르 떨며 어깨를 문질렀다.

“내가 주신도 한 번 따먹는 게 소원이야. 그거만 달성하면 여기에 미련 없어.”

나라님도 없으면 욕한다고, 듣는 당사자가 여기에 없으니 무슨 말을 하든지 사실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거슬렸다.

“그쪽이 사장을 깐다고.”

사지를 결박해도 다 부수고 튀어나올 괴물 같은 덩치와 힘을 무슨 수로. 상상하니 웃겨서 해림이 피식거리자 케이가 슬쩍 돌아봤다.

“무슨 소리야. 사장이 날 따먹어야지. 맛있게 냠냠.”

케이가 검지를 입 속에 깊숙이 넣었다가 쪼옥 긴 소리를 내며 뱉었다. 혀끝과 손가락 끝에 이어진 가는 끈이 어둠 속에서도 반짝 빛이 났다.

못 볼 꼴 봤다. 여기 와서 참 많이 못 볼 꼴 본다. 해림의 뺨이 불쾌함을 담고 씰룩거렸다. 해림의 적나라한 표정을 보고 케이가 깔깔댔다.

“놀리는 재미가 있네. 다 왔어. 저기야.”

떠드는 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건물에 다다랐다. 전에 봤던 불쾌한 광경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억이 다리를 붙들어 발걸음 떼기가 어려웠다. 그런 해림을 뒤로하고 케이가 넉살도 좋게 덩치들에게 인사했다. 저번에 봤던 이들과 얼굴이 달랐다.

“형님들, 저 왔어요.”

덩치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케이의 뒤에 어정쩡하게 선 해림을 쳐다봤다. 케이가 쓱 시야를 가리고 섰다.

“이 친구가 궁금하다고 해서요. 심하게는 안 놀고, 가볍게 보고만 올게요. 형님들, 저 알잖아요. 제가 언제 여기서 사고 친 적 있나요. 저번에 얻어맞은 건 그쪽이 먼저 시작했던 거고.”

케이가 눈웃음을 살살 치자 딱딱했던 덩치들의 눈썹이 슬금슬금 무너졌다. 케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애교를 곁들인 다음에는 완전히 무너져 옆으로 비켜섰다. 제게는 보이지 않는, 남들에게 먹히는 매력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케이가 손짓해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해림을 부르더니 불시에 주머니에 손을 쑥 넣었다. 해림이 식겁해도 아무렇지 않게 뒤지다가 지갑을 꺼내 제 것처럼 열었다. 지폐를 뭉텅이로 꺼내어 덩치들에게 나눠 줬다.

“이건 우리 형님들 힘드니까, 맛있는 것 좀 사 드시라고. 이따가 나올 때 제가 좋은 술 하나 가져올게요. 얼마나 힘들어, 이렇게 밤새 서 있는 거.”

안쓰러운 듯이 아휴, 아휴 소리를 거푸 내뱉자 덩치들이 못 이기는 척 돈을 받았다. 케이가 빙글빙글 웃고 있자 덩치 중 한 명이 바구니에 담긴 여러 색의 팔찌 중 연두색으로 빛나는 놈 두 개를 꺼내 케이에게 건넸다.

“너 보고 들여보내 주는 거야. 사고 치지 마라.”

경고는 해림에게 하듯 날카로운 시선이 케이의 어깨 너머로 넘어왔다. 케이가 여부가 있겠느냐며 팔찌를 받아 해림의 손목에 채웠다. 초록색. 지하에서도 팔찌를 보고 떨어져 나간 인간들이 더러 있었다. 일단은 안심이었다.

케이는 엘리베이터로 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쭉쭉 내려가 문 안으로 쏙 들어가자 저번에 봤던 장소와 비슷한 널따란 홀이 등장했다. 구조는 달랐다. 목욕탕처럼 군데군데가 깊게 파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이 찰랑찰랑 차 있었다.

헐벗은 사람들은 거기나 여기나 같았다. 음악은 사람을 녹일 듯이 흐물흐물하고 몽롱한 재질이고, 그 사이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가로질렀다. 질퍽하게 터지는 소음과 높고 낮은 신음과 거친 숨소리도 매한가지였다.

“지하에 잘 오셨어요. 환영합니다.”

케이가 쇼를 앞둔 진행자처럼 팔을 길게 뻗으며 홀을 소개했다. 한 번 봤던 현장과 비슷해 해림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물속에서, 구석 소파나 침대에서 최소 두셋이 붙어 낯 뜨거운 정사를 벌였으나, 안 보면 그만이었다.

“안 내려가?”

뱀처럼 다리를 얽고 몸을 비벼 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난간 아래를 보다가 케이를 돌아봤다.

“브로커를 이쪽으로 불러 줘.”

“별걸 다 시키네. 알았으니까 그 좆같은 모자 벗고 기다려.”

영 보기 힘들었는지 케이가 모자를 지적했다. 해림이 머쓱하게 모자를 벗고 눌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케이가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어 내려갔다. 어디론가 쑥 들어가 모습을 감추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굴속에서 머리를 내미는 토끼처럼 튀어나왔다. 돌아온 케이의 손바닥에 종이로 포장한 까만 덩어리가 몇 개 올라가 있었다.

“걔는 잠깐 화장실 갔대. 이거 먼저 먹고 있어. 여기 빵 맛있거든.”

안 그래도 긴장한 속이 쓰려 뭐라도 입에 넣고 싶던 터라 해림이 머뭇거리다가 받아들었다. 입에 넣으려다가, 사탕 준다고 따라가지 말라던 주신도의 말이 손에 제동을 걸었다. 옆에서 케이가 제 몫으로 가져온 브라우니를 한입에 쏙 넣고 우물거렸다.

“안 먹을 거면 나 줘. 나 먹을 거 아껴서 준 거야.”

주신도가 한 경고 따위가 뭐라고. 케이가 손을 뻗기 전에 해림이 냉큼 입에 넣었다. 버터 향과 초콜릿 맛이 진했다. 쫀득한 식감과 달콤한 맛에 여태껏 쓴 기가 남아 있던 혀가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이 맛이라며 더 많은 당분을 요구했다.

“하나 더 있어?”

“아―, 내가 먹으려고 챙겨 왔더니. 착한 내가 양보해야지. 옜다. 돈은 나중에 다 청구할 거야.”

돈이라는 말에 해림이 움칫했다가, 어차피 받은 거 돌려주기도 민망해 입에 털어 넣었다.

“마실 건 어디서 구하지?”

“여기가 좀 복잡해서. 내가 가져다줄게. 기다려.”

케이가 쏜살같이 튀어 내려갔다. 안 그래도 아래로 내려가기 부담스러운 차에 잘 됐다 싶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 부려 먹는 기분이라 어딘가 찜찜하기는 했어도.

한참 후 케이가 돌아왔다. 손에 어김없이 마실 것이 들려 있었다. 꽃향기가 올라오는 샴페인이었다.

“고객님께 제가 서비스해야죠. 청구서는 나중에 돌아가서 보낼게요. 지금은 일단 브로커 만나는 것만 신경 써. 아, 저기 있다.”

케이가 난간 아래를 봤다가 손을 흔들며 아래로 홀랑 내려갔다. 검은 머리가 사람들을 비집고 뛰어가는 걸 보다가 해림이 난간을 등지고 돌아섰다. 누가 보든 개의치 않고 욕정을 분출하는 이들이 해림을 불편케 했다.

빨리 브로커나 만나서 이야기나 나누고 여기를 떴으면 좋겠다. 여러모로 꺼림칙한 공간이었다.

난간 위에 홀로 남은 해림이 홀짝거리며 잔을 비웠다. 케이가 이제나 오려나, 저제나 오려나 기다리는데,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손에서 힘이 빠져 유리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챙그랑, 소리를 터트리며 산산조각이 나 홀 위로 유리 조각이 후드득 떨어졌다. 해림이 머리를 잡고 비틀거리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릎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머리를 흔들어 어지러운 시야를 바로 잡아 보려 해도 쉽지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난간을 쥐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마침 케이로 보이는 인물이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선을 느낀 듯이 난간 위를 올려다봤다. 해림을 보고는 해맑게 손만 흔든다.

케이의 이름을 부르려는데 숨결마저 가빠졌다. 몸이 뜨거웠다. 아랫배가 욱신거리고 허벅지 안쪽이 둥글게 솟게끔 힘이 들어갔다가 일순 빠졌다.

케이가 흔들던 팔을 내리자 옆에 있던 이들이 계단을 올라왔다. 어딘지 모르게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해림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당장 일어나서 여기를 벗어나고 싶건만, 다리에서 뼈가 몽땅 사라진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팔도 사정은 같았다. 난간을 쥐는 일도 힘에 부쳤다.

“오지, 마.”

남자 둘이었다. 가면을 쓴 이들이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해림을 보며 낄낄거렸다. 브로커가 아니었다. 한 놈이 기어이 해림에게 다가와 팔을 잡아당겼다.

“오렌지 맞네.”

남자의 시선을 따라 해림이 고개를 들었다. 들어올 때는 분명 초록색이었던 팔찌가 오렌지색으로 변해 있었다. 대체 언제. 해림이 난간 아래를 내려다봤다. 케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냐.”

색깔의 차이가 무얼 의미하는지 구체적인 건 몰라도 오렌지색이 저에게 불리할 거라는 건 눈치챘다. 해림이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고 팔을 휘둘렀다. 있는 힘껏 남자의 팔을 내치고 간신히 일어섰다.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남자가 뒷머리를 억세게 휘어잡았다.

“우리하고 놀아야지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돈 벌러 왔으면서 일 안 해?”

“아니, 라고!”

저보다 체구가 커다랗고 악력이 세서 몸을 뒤틀고 악다구니를 써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힘이 없어 팔을 휘저어도 물속에서 젓듯 느리고 둔했다.

두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우악스레 해림을 끌고 갔다. 반항해도 소용없었다. 어질어질 흔들리던 시야가 까매졌다가, 빛이 확 든 듯 밝아졌다가를 반복하다가, 무릎이 쿵 하고 땅에 닿고는 불이 꺼지듯 컴컴하게 물들었다.

* * *

작대기는 안돼요. 떨까지만이라고. 파퍼는 뿌려 놨어요. 바늘 씨발 저리 치워.

씨발, 노는 데도 등급 따지냐.

뽕 박은 거 걸리면 나도 죽고 손님도 죽어요. 여기 사장 성격 몰라. 저번에 사장한테 대들었다가 대가리에 드릴 구멍 뚫려 나간 인간 못 봤나 봐.

사장이 이걸 아낀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없기는, 사장이 예뻐하는 애들 몰라요. 걔네는 블랙 등급 회원권 없으면 못 가지고 놀아요. 얘야, 돈에 환장해서 지가 팔찌 끼고 왔지만. 손님은 운 좋은 거예요. 비싼 놈 싸게 맛보는 게 어디 흔한가.

존나 꼴리게는 생겼는데. 안전한 거 맞아?

사지 멀쩡하게만 가지고 놀면 돼요. 상처 내지 말고.

돈 내고 노는 데 규제 한번 존나 많네.

귀는 열렸다. 두런거리는 대화 소리가 머릿속을 헤맸다.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들었다. 눈꺼풀은 위아래가 단단히 들러붙은 듯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가 힘겹게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었다. 진한 방향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손가락만 움찔거렸다. 보드라운 시트가 몸 아래 있었다. 배에 닿는 공기가 차가웠다. 몸은 뜨겁고 등골은 가끔씩 오싹하며 간지러웠다. 몸은 침대 속으로 녹아 들어갈 듯이 나른한데 아래는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너도 놀 거면 돈 돌려주고.

난 박는 데 취미 없어요. 재밌게 노시고 다음에 또 이용해 주세요. 저 통하면 높으신 님들이 먹는 거 저렴하게 드립니다. 반값이에요, 반값.

낄낄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문 닫히는 소리가 이어졌고, 그림자가 몸 위로 늘어졌다. 전등을 뒤통수에 진 인영들은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있었다. 목 아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끔찍해서 눈을 감았다. 바다 밑바닥처럼 차가운 손들이 몸에 닿았다. 싫어서 소름이 돋고 역겨워서 속이 메슥거렸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뜨자 코끼리의 회색 다리가 남자들 사이를 고양이의 늘씬한 발처럼 비집고 지나갔다. 환각이었다.

“싫어…….”

있는 힘을 쥐어짜도 꿈속에서 허우적대는 꼴이었다. 한 치도 침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손이 가슴을 더듬었다. 젖꼭지를 꼬집어서 허리가 들썩였다. 엉덩이를 쥐고, 뺨을 쥐었다. 입술을 비집고 손가락이 들어오고 가랑이 사이에는 방향제보다 진한 향이 물씬 풍기는 오일이 부어졌다.

정신은 혐오 속을 떠도는데 몸뚱이는 미쳤는지 손길이 좋다고 난리였다. 아랫도리를 붙들자 해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값어치 하네.”

“아 씨발, 이런 좋은 건 숨겨놓고. 여기 사장 좆같네.”

“빨리 박아. 터지겠어.”

질 낮은 농담들. 젖은 손이 허벅지 안쪽을 파고들었다. 둥글고 탄력 있는 엉덩이를 손아귀에 움켜쥐고 그 안의 굴곡도 오일에 젖게끔 문질렀다. 누구 건지 모를 손가락이 미끄러운 구멍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나, 둘, 셋,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들어와 휘휘 돌리며 찌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한 명의 손가락인지, 두 명이 넣고 후벼 대는지도 몰랐다. 손가락이 깊이 들어와 오일을 부어 넣을수록 몸이 후끈하고 배꼽 아래가 묵직하게 달아올랐다. 구멍이 절로 옴찔옴찔하며 좁아지고, 안에 들어온 손가락을 깨물어 먹을 듯이 점막이 달라붙었다.

“이거 봐라. 이거 타고났다.”

“빨리하라고! 어차피 씨발, 약도 먹였는데. 안 찢어져.”

“다치면 안 된다잖아.”

“동영상 켰어?”

“못 참겠다.”

누가 젖꼭지를 입에 넣고 쪽쪽 빨아 댔다. 기어이 신음이 터졌다. 빳빳하게 선 기둥 끝에도 멀건 물이 맺혔다. 구멍에서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몸이 뒤집히고, 허리가 억지로 위로 끌어 올렸다. 남자가 손을 떼자 힘없이 도로 무너졌다.

“약 너무 먹인 거 아니야?”

“몇 개 처먹었대?”

“브라우니 두 개. 파퍼 한 잔.”

“많이도 처먹였다. 뽕만 박지 말랬지 그냥 골로 보내고 싶은 거 아니야? 원수졌나.”

“무슨 상관이야. 야, 이거나 잡아. 계속 쓰러져.”

코끼리 다리는 공룡이 되었다. 눈알이 커다랬다. 처음 보는 파충류의 눈으로 해림을 보다가 느리게 무너져 내렸다.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인간 크기가 되었을 무렵, 삐쩍 마른 소년이 해림의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누구냐고 물으려던 차였다. 소년이 입을 벙긋거렸으나 귀가 멍멍해 들리지 않았다. 등에 시트가 닿았다. 다리가 벌어졌다. 무릎 아래로 손이 들어왔다. 해림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숨을 쉬려고 벌어진 입술에 살덩이가 닿으려 했다.

밖에서 음악 소리가 시끄러웠다. 쿵, 쿵 하는 소음이 심장 소리만큼이나 커졌다. 벌어진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던 일그러진 덩어리가 일순간 저리 휙 날아갔다. 퍽, 하고, 수박 깨지는 소리가 나고서는 머리 위에 자리 잡은 덩어리도 사라졌다. 얼굴에 비릿한 액체가 튀었다. 해림이 느리게 혀로 입술을 축였다. 쇠 맛이었다.

덩어리가 사라지고 몸을 더듬던 감촉이 사라졌다. 머리는 여전히 무겁고 눈앞에는 형광색 판타지가 펼쳐졌다. 코끼리와 공룡이 가고 기린과 코뿔소가 방 안에서 뛰어놀았다. 열대 우림처럼 악어가 거대한 대가리를 들고 주둥이를 벌리질 않나, 새카만 재규어가 앞발을 흔들질 않나. 동물의 왕국이었다.

덩어리들은 동물들 사이를 재주 좋게 피해 가며 이리저리 처박혔다. 덩어리를 후려 패는 장신의 남자는 다행히 인간의 상이었다. 꺼먼 바지에 꺼먼 머리, 말처럼 튼실한 허벅지에 굵고 길쭉한 다리로 덩어리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덩어리가 다리에 들러붙은 거머리라도 되는 듯이 가차 없었다. 발에 밟힐 때마다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피를 토해 냈다. 제 몸에 붙어 피를 빨던 거머리가 맞는 성싶었다.

사람은 덩어리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려 대가리로 보이는 곳을 손바닥으로 후려치기까지 했다. 사람의 손아귀에 잡혀 살색 덩어리들이 덜렁덜렁 흔들렸다. 덩어리들이 축 늘어지고 나서야 사람이 덩어리를 내던지고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양 옆구리에 손을 대고 한숨을 길게 몰아쉰다. 등 근육이 흰 셔츠를 찢고 나올 듯이 꿈틀거렸다.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불안했다. 해림이 가까스로 알몸을 웅크렸다. 몸이 제멋대로 떨리다 말았다. 숨은 가쁘고 해소되지 못한 야한 기분이 배 아래에서 약한 전류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것들은 창고에 처박아 놔.”

한 글자씩 떼어서 들어도 될 만큼 정확한 발음이었다. 멍한 해림의 머릿속에도 모래에 발을 딛는 것처럼 음절이 푹푹 박혔다. 익숙한 목소리가 목구멍을 간질였다. 해림이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더욱 동그랗게 몸을 웅크렸다.

예고 없이 불쑥 치미는 감각의 주기가 짧아졌다. 참기 힘들었다. 누구라도 잡고 매달리고 싶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가물가물한 이성이 말려서 해림이 귀를 막으며 욱하고 치미는 감각을 삭였다.

“내가 말한 건 어디로 들었어. 딴 데로 새지 말고, 누가 맛있는 거 사 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랬지. 도련님 진짜, 존나 말 안 들어. 왜 사람 돌게 해. 응?”

잇새로 악문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해림의 몸 위로 옷이 떨어졌다. 옷에서 익숙한 향이 났다. 은은한 담배 냄새와 체향이 섞여 지독한 방향제 냄새를 지웠다. 해림이 옷 아래로 몸을 꾸물꾸물 숨겼다. 그러다가 작게 떨며 신음했다. 옷깃이 손가락처럼 살갗을 문질렀다. 아랫도리도 갑자기 들이닥친 두통처럼 지끈거렸다.

“뭐 먹었어.”

목소리를 쥐어짜 봤지만 아무 소리도 안 나왔다. 신음만 흘렀다. 눈가가 시큰하더니 눈두덩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뾰족한 눈앞 꼬리에 둥글게 고이다가 영롱하게 굴러떨어졌다. 사람이 짙게 뱉은 한숨이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덩어리가 문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제각각이던 동물들도 꼬리를 흔들며 덩어리와 함께 나갔다. 이제 방에는 사람과 저 단 둘뿐이었다. 아직도 색이 어그러지는 환각은 남았으나 그래도 형태는 구별이 갔다.

“이상해.”

“이상하겠지.”

“뜨거워.”

“안 뜨거울 리가.”

“간지러워.”

“……씨발, 진짜.”

남자가 야속한 소리만 골라 했다. 서러움이 복받쳤다. 옷가지를 몽땅 빼앗기고 집 밖으로 쫓겨난 어린아이도 이보다 서글프지는 않으리라. 눈물이 펑펑 샘솟았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뭉개진 형태에서 남자의 입술만 일그러졌다. 구겨져도 보기 좋은 입술 모양새였다.

“나보고 어쩌라고. 말을 해. 말을 해야 뭘 해 줄 거 아니야. 뭘, 맛있게, 처먹었냐고. 저 씨발 새끼들은 어디까지 했어. 여기는 왜 또 젖었고. 누가, 어떤 새끼가 이랬어.”

남자의 목소리가 문제였다. 짐승처럼 으르렁 떨리는 목소리가 야했다. 거친 밧줄처럼 숨통을 꽉 조였다가 풀어냈다. 때가 되면 혓바닥을 아래로 누르고 목구멍을 침범하던 그 맛을 혀가 알고 있었다. 쓴 풀 맛을, 입에 침을 고이게 하는 그 맛을.

아래가 지끈거렸다. 미끈미끈한 허벅지 안쪽이, 더 깊숙한 곳이 멋대로 오그라들었다가 풀어졌다. 아랫배에 그만큼 힘이 들어가고, 아랫도리가 허벅지 사이에서 불끈 몸집을 키웠다. 해림의 눈썹 사이가 얇은 종이처럼 구겨졌다. 내뱉는 숨이 달아졌다. 앞에 있는 남자가 제 몸을 식혀 줄 얼음이라도 된 듯이 손에 쥐고 싶었다.

열을 식힐 방법을 알았다. 경험해 봤다. 눈앞의 남자가 해 줬었다. 손가락으로, 그리고 다른 걸로도. 안을 휘젓고 눈에서 별이 튀도록, 몸에서 열이 줄줄 빠져나가도록.

“해 줘.”

“뭘.”

“알잖아.”

음절 하나, 하나 뱉는 게 힘에 겨웠다. 할딱거리는 숨소리가 짧은 문장보다 많았다. 너무 더웠다. 이마에 땀이 어렸다. 해림이 꿈틀대며 간신히 몸을 덮은 옷을 끌어 내렸다. 눈물은 뚝뚝 떨어지고, 얼굴과 목덜미는 벌게졌다. 희멀건 가슴도 선홍빛으로 물들고 빨린 한쪽 젖꼭지만 유독 꽃처럼 붉었다. 음영이 드리운 아랫도리는 꼿꼿하게 서서 젖꼭지와 같은 색이었다.

“죽을 거 같아.”

아랫배에서 머물던 감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나마 한 줄기 가늘게 남았던 이성이 닳고 닳은 실처럼 툭 하고 끊어졌다. 해림이 허벅지 안쪽이 맞붙도록 꼼지락거리며 남자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고개를 들고 처절하게 쳐다봤다. 눈빛이 말이었으면 오열이었다. 입술을 몇 번이고 벙긋대다가 마른 입술을 축이고서야 소리를 냈다. 눈물이 빗방울처럼 떨어지며 뺨을 갈랐다.

“제발.”

“도련님이 지금 무슨 소릴 떠드는지는 알아?”

“알아.”

“좀 미친 것도 알고?”

“알아. 빨리. ……읏.”

시간이 흐를수록 배 속이 참을 수 없이 달아올랐다.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해림이 남자의 바지에 이마를 비비적거리다가 하소연을 뱉을 듯 입술을 벌리고 올려다봤다. 마주친 눈동자가 환각 속 동물들의 눈처럼 붉은색이었다.

눈동자가 잠시 다른 쪽을 향했다가 돌아왔다. 커다란 손도 다가왔다. 허락의 의미라 무섭지 않았다. 해림이 숨을 한껏 들이마시려 입을 벌렸다. 목덜미에, 그리고 목뒤에 커다란 손이 닿았다.

* * *

몸이 자꾸만 무너졌다.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리다가 힘이 풀려 아래로 풀썩 쓰러졌다. 탄력 좋은 매트리스가 땀 어린 몸뚱이를 받아들었다가 가볍게 튕겼다. 시트는 엉망으로 구겨져 한쪽으로 밀려났고, 비틀어진 베개만 간신히 머리맡에 남았다. 베개 하나는 출렁이는 침대를 못 이기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일어나.”

엉덩이를 휘갈기는 손길이 채찍처럼 매서웠다. 둥그스름하고 뽀얀 엉덩이에 금세 벌건 손자국이 올라왔다. 살결이 푸르르 떨리다가 다시금 손아귀에 잡혔다. 해림이 어깨를 움칫 떨고서 베개를 움켜잡았다. 엉덩이에 닿은 손도 거센 아귀힘으로 열 오른 살을 움켜쥐었다. 오일로 번들번들하게 범벅된 구멍이 둔덕 사이로 슬쩍 드러났다.

“해 달라고 했으면 협조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손이 닿은 곳은 뜨거운데 말은 싸늘하고 뾰족하다. 눈가가 이상하게 시큰해져 해림이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철썩, 하고 살 갈기는 소리가 또 터지며 베갯잇 아래로 짤막한 신음이 스며들었다. 엉덩이가 움찔하고 위로 들렸다가 내려왔다. 바짝 선 아랫도리가 침대에 문질러져 해림이 아랫입술을 물고 터지려는 비음을 참았다.

“계속 혼자 놀 거야?”

엉덩이를 찰흙처럼 주물럭거리던 손이 떨어졌다. 옷자락이 부스럭거리며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해림이 베개에서 간신히 고개를 떼고 허벅지에 안간힘을 줬다.

“아, 아니……, 흐윽.”

아무리 무릎을 세우려고 애를 써도 번번이 미끄러졌다. 이렇게 하다가 남자가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면 어쩌나, 힘 하나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이 열병을 어떻게 해결하나. 애처럼 겁이 나 해림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보다 못한 남자가 한숨을 쉬고서 골반의 위쪽을 잡아다가 억지로 세웠다.

“제대로 버텨.”

엉덩잇살이 벌어졌다. 손아귀가 살점을 떼어 낼 듯이 그러쥐었다. 통증도 쾌감이었다.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고 누군가의 손가락이 들락거렸던 구멍이 발씬거렸다. 미끈거리는 불알과 구멍 사이를 둥글고 뜨거운 대가리가 눌렀다. 끝에 오일이 묻어 미끄덩 위로 올라갔다가, 핏줄이 얼기설기 돋은 기둥이 둔덕 사이에 파묻혀 미끄럼틀을 타듯이 주르륵 내려왔다.

“흐윽, 으……, 읍.”

해림이 꾸물거리며 허리를 뒤로 밀었다. 살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기둥이 바르르 떨리며 끄트머리에 투명한 방울이 맺혔다. 좀 더 큰 자극이 필요했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때는 언제고, 애가 타서 엉덩잇살을 자꾸만 뒤로 밀어 댔다.

“보채는 거 봐라.”

비웃는 목소리였다. 제대로 해 주지도 않으면서. 서러움이 왈칵 솟아 해림이 뒤돌아보려 했다. 쪼그맣게 쪼그라든 불알과 도톰하게 솟은 이음새를 문지르던 선단이 구멍을 꾹, 누르지 않았다면 그러려 했다.

해림의 입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해 봤자 손가락이나 좀 들어올 줄 알았지, 다른 건 예상하지 못했다. 약에 취한 뇌가 거기까지 사고를 돌리지 않았다.

엉덩잇살을 손에 쥐고는, 다른 손으로는 약이 바짝 오른 기둥을 쥐고 남자가 선단으로 구멍을 눌렀다. 오일이 담뿍 묻은 구멍이 힘에 못 이겨 조금씩 벌어졌다. 끄트머리를 조금 삼켰다가, 야금야금 두꺼운 대가리를 먹었다.

“―하윽!”

해림의 팔이 푸들푸들 떨리다가 결국에 상체가 앞으로 무너졌다. 그래도 진입은 끝나지 않았다. 오물거리는 미끈한 구멍 안으로 대가리와 기둥의 반이 모습을 감췄다. 엉덩이를 쥔 손등에 핏줄이 곤두섰다가 팔목을 타고 넝쿨처럼 팔뚝까지 올라왔다. 목에도 핏대가 섰다가 관자놀이에도 힘줄이 불거졌다.

“씨, 발……, 이게, 무슨…….”

남자는 욕을 했고 해림은 숨을 깔딱깔딱 쉬었다. 아프지 말아야 할 곳이 아팠다. 배가 욱신거렸다. 아랫배가 야트막하게 솟았다가 갈비뼈가 보일 만큼 안으로 홀쭉하게 들어갔다. 얼얼하게 찢기는 고통이 말도 못 하겠는데, 아랫도리는 반대로 신이 나서 물을 뚝뚝 흘렸다.

배 속이 엉망이었다. 얻어맞고 찢어진 채로 버려졌는데, 누가 달려들어 내장을 혓바닥으로 길게 핥는 듯이 뜨거웠다.

“아, 파. 너무……. 커서. 윽. 하, 더 들어오지……!”

“하……. 진짜. 도련님, 계산은 나중에 하자.”

푹, 하고 남자가 몸을 들이받았다. 황소가 돌진해서 뱃가죽에 그 뿔을 박아 넣은 듯이 몸이 바짝 붙었다. 해림의 고개가 베개에 처박혔다. 입을 벌렸으나 숨은 터지지 않았다. 너무 깊게 들어왔다. 안쪽 살이 침입자에게 죄다 달라붙었다. 요철과 핏줄이 선 기둥과, 벽을 울렸던 진동처럼 툭, 툭 일정하게 뛰는 맥이 온몸을 짓눌렀다.

“―!”

해림이 질끈 눈을 감았다. 기둥에 가득 차서 나갈 길만 찾던 정액이 길게 뿜어져 나왔다. 해림의 배를 하얗게 적시고 그 아래로 뚝뚝 흘러내렸다. 머리가 어찔한 쾌감에 눈앞이 흐릿했다.

뒷머리가 잡혔다. 머리카락 뿌리를 뽑을 듯이 잡아당겨 손이 저절로 바닥을 짚었다. 바짝 달라붙었던 몸이 뒤로 빠졌다가 또다시 부딪혔다. 두께가 수십 미터인 철판에 몸이 부딪히듯 뼈마디가 덜그럭거렸다. 배 속도 그랬다. 열이 휘몰아쳤다. 아랫도리가 매달린 정액을 털레털레 털어 내고도 모자라 물을 찔끔찔끔 싸 댔다.

“아, 아윽. 하으, 하으, 윽……!”

신음이 속절없이 터졌다. 찌걱거리며 맞붙는 곳에서 거품이 일었다. 얼마나 세게 해림을 후려치는지, 한 번 부딪칠 때마다 해림의 무릎이 위로 퍽퍽 밀려 올라갔다. 남자가 머리카락을 손에서 놓자마자 해림이 있는 힘을 다 긁어모아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남자가 핏 하고 비웃었다.

“누가 도망가래?”

더는 멀어지지 않게 골반을 양손에 쥐고 남자가 해림을 끌어 내렸다. 해림이 무작정 뭐든 잡아 끌려 내려가지 않으려고 용을 썼으나 다 벗겨진 침대 시트만 손에 쥐었다. 시트 채 주르륵 끌려 내려갔다. 반만 들어갔던 기둥이 다시금 구멍 안 깊숙한 곳을 헤집었다. 해림이 까무러칠 듯 푸르르 떨며 발끝까지 힘을 주었다.

“흐으, 살, 살살……. 아파요. 정말, 아프……. 헉.”

“질질 싸면서 뭐라는 거야.”

통증과 쾌락에 경계선이 없었다.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가도 번개처럼 내리꽂히는 쾌감에 손가락과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남자가 깊숙이 박으면, 내장이 압력에 못 이겨 다 터져 나갈 듯한 공포로 덜덜 떨면서도 아랫도리에선 정액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찍찍 새어 나갔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샜다. 눈물도 새고 투명한 콧물도 코끝에 대롱대롱 맺혔다. 해림이 베개에 젖은 얼굴을 문지르며 팔로 뒤를 밀었다.

남자가 팔을 잡아채고서 묵직한 무게로 등을 눌렀다.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오목한 선에 얼굴을 대었다가 입에 넣고 쭙쭙 빨았다. 흠뻑 젖은 혓바닥이 목선을 핥고 올라가다가 오동통한 귓불을 물었다. 해림이 악, 비명을 질렀지만 실상 어디가 아픈지, 통증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맛 간 뇌는 분간을 하지 못했다.

“여기, 찌르면, 도련님이 싸는 거 알아? 이렇게, 깊이 박으면.”

“허윽, 윽. 흐으읏, 아, 하지, 싫, 그만……! 해요, 제발. 죽을, 거, 같, ……아!”

“난 도련님이 애원하면 좀 꼴리더라고.”

거웃이 닿고 그 아래 불알까지 닿을 만큼 깊게도 들어왔다. 아악, 하고 해림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내벽이 확 좁아지는 구간에 기둥의 끄트머리가 닿았다. 굽은 곳을 어떻게든 파고들 것처럼, 미꾸라지가 진흙 벽을 뚫는 것처럼 맹렬하게 꾹꾹 눌렀다.

눈앞이 깜박거렸다. 까매졌다가 환하게 밝아졌다가 밤과 낮이 한데 뒤엉켰다. 해림의 손에 잡힌 베개가 터질 듯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아래에서 이제는 색이 옅어져 희끄무레한 정액을 쏟아 냈다. 속살이 안에 든 기둥을 잘라먹을 듯이 조였다가 오물거리는데도 점막을 제집 삼은 듯 들러붙은 놈은 더 부풀기만 하지 물을 토해 낼 기세가 없었다.

“조금만 더.”

귓불 아래서 흩어지는 거친 호흡이, 낮은 목소리가, 신음이 열기를 부채질했다. 다리가 흔들다리 위에 선 듯이 후들거리다가 결국에 무너졌다.

나부죽이 엎어진 해림 위로 남자가 몸을 포갰다. 가슴이 턱 막히는 무게로 해림의 등 위에 올라가 하반신을 맞추었다. 해림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더, 도련님. 더. 조금만 더 버텨.”

“흐, 윽, 흡, 흐윽…….”

언제까지. 해림이 남자의 덩치에 죄다 가려지게 깔려 힉힉거리며 숨을 삼켰다. 남자가 해림의 엉덩잇살이 납작하게 짜부라지게끔 짓누르며 허리를 흔들었다. 엉덩이가 잘 익은 복숭아처럼 탱탱하게 솟았다가 하반신에 눌려 판판해지길 반복했다. 구멍은 도톰하게 부풀어서 남의 손목 같은 기둥을 먹고 뱉었다.

철퍽철퍽 물기 어린 소리가 빨라졌다. 밑에 깔린 해림도 물속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처럼 히끅거리고, 해림의 몸을 압사시킬 듯 올라탄 남자의 입에서도 낮게 신음이 샜다. 해림의 가슴 아래 양팔을 교차시켜 뱀처럼 휘감고는 남자가 온몸을 욱여넣을 듯이 하반신을 깊숙이 맞대었다.

숨을 참는 신음이 잇새로 터졌다. 속살이 옆으로 밀리며 내장이 쪼그라들었다. 어디까지 몸집을 부풀릴까 공포를 일으켰던 기둥이 오줌 줄기처럼 거세게 정액을 터트렸다. 속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더 깊은 곳으로, 수정이라도 할 듯이 왈칵왈칵 쏟아 냈다.

“하…….”

한 차례 쏟아 내고는 미끈한 구멍을 음미하는 듯 기둥이 구멍 속을 오갔다. 슬쩍 나갔다가 추위를 느낀 듯이 다시 파고들고, 그러면 정작 추위는 해림이 탄 듯이 바르르 떨었다.

“읏.”

남자가 몸을 일으키자 기둥이 구멍에서 스르륵 빠져나갔다. 그렇게 뱉어 내고도 아직 죽지 않아 구멍에서 나오자마자 터럭이 이어진 배꼽 위로 퉁 하고 솟았다. 엉덩이를 잡아 벌리자 옴찔거리며 입을 닫으려는 구멍에서 흰 줄기가 느른하게 흘러나왔다.

“이거 나쁘지 않네.”

해림이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약 기운은 아직도 남아 해림의 배를 들쑤셨다.

남자가 해림을 애처럼 홀딱 잡아 뒤집어엎고서 오금을 잡아 눌렀다. 아랫도리가 남자의 시야 아래 훤히 드러났다. 해림이 남자의 하복부를 밀려고 애쓰며 다른 팔로 눈을 가렸다.

“도련님, 정신 차려. 이제 시작인데 왜 그래.”

“그냥, 혼자서, 내가……아, 아!”

“어디서 개소리야.”

차라리 혼자 해결하겠다고, 해림이 애가 타서 고개를 저었으나 남자가 놓아주는 행운 따위는 오지 않았다. 엉덩이가 잡혀 끌려 올라갔다. 흰 물이 방울방울 흐르는 구멍을 약이 올라 벌게진 끄트머리가 막았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두 번째 막이 올랐다.

* * *

밤인지 낮인지도 몰랐다. 사방이 막혀 있었다. 빛이 들지 않아 시간을 가늠하지 못했다. 알았더라도 쓸모는 없었다. 주신도가 들러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약에 취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주신도 아래 깔려서 그랬는지 해림은 중간중간 기억이 없었다. 너무 피곤해서 바닥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든 날처럼, 눈앞이 까무룩 꺼졌다가 눈을 뜨면 주신도가 보였다.

「일어나. 자는 사람한테 박는 취미 없어.」

뺨을 툭툭 치며 정신을 차리라 하는데, 약 기운이 어느 정도 가신 후에는 주신도의 양심 없음에 치가 떨렸다. 암만 저가 먼저 원해서 달려들었다 해도 사람이 정도가 있지, 얼마나 해 댔는지 나중에는 아랫도리에 감각이 없었다.

인체는 신비로워서, 사정을 못 한다고 못 느끼는 건 또 아니었다. 아랫도리는 얼었다가 녹은 오징어처럼 흐물흐물 늘어졌는데 몸뚱이는 속살이 쑤셔질 때마다 좋아 죽었다. 감전된 사람처럼 파드득 떨다가 아랫배가 푸들푸들 흔들리고, 이러다 죽겠다고 주신도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가도 고개가 뒤로 바짝 젖혀졌다.

더는 싸지도 못하는 몸뚱이를 주신도는 오랫동안 가지고 놀았다. 남자는 질색이라던 인간은 저가 알던 주신도가 아니었던지, 엎었다 뒤집었다 세웠다 눕혔다, 종잇조각 다루듯이 해림을 주물럭거렸다.

해림은 세 살 애 손에 들어간 색종이처럼 둥글게 몸을 말았다가 쫙 펴졌다가, 온몸이 구깃구깃 구겨져 근육들이 더는 못 하겠다 비명을 지를 때서야 비로소 정신을 놓았다. 그러게 도련님, 요가 배우랬잖아, 하고 나무라는 소리가 멀어지는 정신 너머로 아련하게 들렸다.

절정에 갇힌 시간이었다. 탈출하려고 해도 도무지 그 출구가 보이질 않는. 그간 경험했던 정사는 정사라고 이름 붙이기엔 어린애 소꿉장난에 불과했다.

해림이 눈을 뜨고도 멍하니 끔벅거리며 천장을 쳐다봤다. 낯선 곳이었다. 게다가 환했다. 창문이 없는 곳이었는데. 흔들리며 봤던 사방에 창이 없어서 더욱 암울했더란다.

일어나려다가 허리를 부여잡으며 도로 쓰러졌다. 왜 이렇게 아픈지 순간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베개에 파묻고 지끈거리는 통증을 참아 내다가 한참 후에 떠올렸다.

두 오금이 눌려서 적나라하게 벌어진 아랫도리에 주신도의 하반신이 내리꽂혔다. 뇌를 송두리째 뽑아내는 쾌락에 울며불며 난리를 치느라 기억은 희미했으나, 그 키와 무게를 허리 하나로 받아 냈으니, 일어서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싶었다.

해림이 으으, 신음하며 머리를 쥐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안 아픈 구석이 없었다. 두통에 허기에 근육통에, 말 못 할 구멍과 목구멍도 아프고 목덜미와 젖꼭지는 따끔했다. 해림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슬쩍 들었다. 판판한 가슴팍에서 양쪽 젖꼭지만 벌겋게 퉁퉁 부어 두드러졌다. 빨리고 물리고 누가 잡아 비틀지 않으면 안 나올 모양이었다.

드문드문 끊겨도 그중 선명한 기억들도 남아 있었다. 없는 가슴살을 모아 쥐다가 젖꼭지를 잇새로 깨물고 뽑아낼 듯이 빨아 대는 주신도가 그랬다. 이쯤 되면 질려야 하는데, 낯은 반대로 뜨겁게 익었다.

심지어 배도 고팠다. 배가 고프다 못해 위장이 한순간 쪼그라든 것처럼 아팠다. 소와 말 한 마리를 당장 잡아 뼈째 삼켜도 해결되지 않을 만큼 허기졌다.

해림이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폭 몰아쉬었다. 몸은 아프지, 배는 고프지, 머리는 아직도 약에 취한 듯이 어지럽지, 하나도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당장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다. 등 뒤가 푹신하고 몸을 덮은 이불이 포근하니 감촉은 좋았으나 그게 더 무서웠다.

해림이 끙끙거리며 간신히 상체를 세웠다. 상체를 일으키는 일조차 한숨이 몇 번이나 터질 만큼 힘이 들었다.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침실이 넓디넓었다. 침대는 세 사람이 뒹굴어도 남을 만큼 커다랬는데, 희한하게도 침대 외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드넓은 창도, 반쯤 올라가 있는 블라인드도 잡지에서 나오는 사진을 고대로 옮겨온 듯 깔끔하기만 하다.

해림이 엉거주춤 일어났다가 무릎에서 힘이 풀려 쿵 소릴 내며 바닥에 꿇어앉았다. 시큰한 무릎은 둘째치고 충격이 허리로 몰려와 해림이 바닥에 손을 짚고 허리에 손을 댔다. 눈앞에서 별똥이 튀며 찌릿한 근육통이 사지를 작신작신 밟았다.

으으, 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데 저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느리고 여유로운 소리였다. 해림이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침대에 등을 기댔다. 엉덩이가 바닥에 닿았을 때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터트릴 뻔했으나 가까스로 삼켰다.

이불을 끌어 내려 알몸을 감추고 소리가 난 쪽을 쳐다봤다. 벽 너머에서 긴 다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편해 보이는 까만 면바지였다. 길쭉한 다리를 따라 시선을 쭉 들어 올리자 편한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널따란 가슴팍이 보였다. 헐렁한 티셔츠임에도 팔뚝과 가슴은 몸통이 조금만 움직여도 천이 근육 위로 팽팽하게 들러붙었다.

그 위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았다. 그래도 해림이 예의상 시선을 들었다. 막 커피를 홀짝이며 들어온 주신도와 눈이 마주쳤다. 다른 때와 달라 보여서 해림이 주신도를 빤히 쳐다봤다. 한참 후에야 아, 하고 깨달았다.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었다. 항상 깔끔하게 올리고는 했는데. 머리를 내린 주신도는 놀랍게도 저보다 어려 보였다.

“하루 종일 잘 줄 알았더니 일어났네. 바닥에는 왜 앉아 있어.”

하룻밤, 혹은 이틀을 지독하게 엉킨 사람치고는 건네는 말이 산뜻했다. 혹시 약에 취해 다른 사람과 뒹굴었던 걸 주신도와 했다고 착각한 걸까. 그런 것치고는 주신도의 얼굴이 기억에 또렷하니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착각하려야 착각할 수가 없는 외모였다.

“도련님, 배 엄청 고플 건데. 브라우니를 두 개나 먹었다며. 거기에 떨 들은 거 몰랐어?”

“떨이…….”

떨이 대체 뭔데. 해림이 말을 잇다가 쿨럭거렸다. 목은 바짝 말랐고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갈라져 나왔다.

“떨이 떨이지, 그럼……. 아, 대마. 마리화나라고 해야 아나, 도련님은.”

머리가 어지러운 이유가 있었다. 팟 브라우니야 나눠 먹는 걸 보긴 했으나 설마 저가 먹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해림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문지르며 눈살을 구겼다. 누굴 탓하랴. 준다고 무턱대고 받아먹은 저가 대역죄인이었다.

케이는 어떻게 됐는지, 환각 속에서 얻어맞은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고, 저는 지하에서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한 사항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나도 물을 수 없었다. 배 속이 꾸르륵거리며 요란하게 울었다. 주신도가 낄낄거리며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혼나는 건 나중에 하고. 일단 도련님 배부터 채우자. 배 안 고파?”

고프다 못해 눈앞에 있는 주신도도 잡아먹을 수 있었다. 주신도가 척척 다가오더니 허리를 굽혔다. 해림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걸 이불 채로 잡아다가 짐짝처럼 품에 안았다. 해림의 눈이 휘둥그레 벌어졌다.

“내가, 아니 제가. 내 발로.”

얼마나 당황했는지 문장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쇳소리 나는 목으로 오리처럼 꽥꽥거려도 다리는 바닥에 닿지 않았다. 주신도가 버둥거리는 해림을 애처럼 추켜올리며 두 팔로 부둥켜안았다.

“기절한 도련님을 누가 여기로 옮겼을 거 같아. 가만히 있어. 한 번 더 몸 흔들면 여기서 엎어 놓고 박을 거야.”

협박이 아주 훌륭했다. 해림의 발버둥이 곧바로 멎었다. 얌전해진 해림을 품에 안고서 주신도가 복도를 건넜다. 무슨 집이 이리 으리으리하고 커다란지, 복도를 건너고 응접실로 보이는 작은 거실을 건너자 또 다른 큰 거실이 나왔다. 소파가 있는 바닥은 안으로 움푹 파여 있었다. 전면은 유리창이라 바깥으로 푸른 숲이 한눈에 보였다.

어딜 봐도 펜트하우스였다. 해림이 주신도에게 안겨 둘레둘레 돌아보다가 테이블에 시선이 멎었다. 고소한 음식 냄새가 해림의 콧구멍을 폭 찌르고 넘어가 위장을 요동케 했다. 입에 금세 침이 고였다. 입술이 슬쩍 벌어져도 침이 흐를 성 고이기에 목울대를 꿀꺽 넘기자 주신도가 작게 키득거렸다.

폭신한 소파에 해림을 내려놓고 주신도가 바로 옆에 앉았다. 해림이 아픈 몸을 꾸물거리며 주신도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배가 고파 눈이 뒤집힐 지경임에도 주신도가 딱 달라붙어 있으면, 아직도 약 기운이 배 속을 떠돌며 욕망을 부추기는 느낌이라 불편했다.

“다 도련님 거야. 마음껏 먹어.”

머리를 내린 주신도는, 정장을 벗어 던진 주신도는 평소와 다른 차림 덕인지 굉장히 편해 보였다. 기분도 좋아 보였다. 크리스마스 날 저가 간절히 원하던 선물을 산타에게 받은 아이처럼 머리 위로 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보일 리 없는 음표가 해림의 눈에는 보였다.

“안 먹고 뭐 해.”

주신도가 백설 공주의 계모도 아니고, 눈앞의 진수성찬이 독 사과도 아니었다. 해림이 얌전히 눈치를 살피다가 허기를 못 참고 음식에 손을 뻗었다.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배를 채우는 게 급선무였다. 식은 피자를 야금야금 베어 물고 샌드위치도 손에 잡았다. 평소에는 한 판은커녕 두 조각만 먹어도 배가 찼건만, 지금은 여전히 속이 허했다.

“안 뺏어 먹어. 천천히.”

주신도가 친절하게 음료수도 건넸다. 해림이 냉큼 받아 꼴깍거리며 삼켰다. 게걸스럽다고 욕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만큼 배가 고팠다. 피자 한 판에 샌드위치 두 개, 상 가득 깔린 음식을 반 이상이나 비운 다음에야 허기가 가셨다.

해림이 그릇을 비우는 동안 주신도는 긴 다리를 겹친 채 발끝만 까닥였다.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햄스터 볼따구처럼 부푼 해림의 옆얼굴을 이따금씩 감상하며, 더 먹으라고 멀리 놓인 그릇을 갖다줄 뿐이었다.

배가 차고 나서야 해림이 머쓱하니 입가를 문질렀다. 손등에 기름기가 묻어났다. 주신도가 혀를 쯧쯧 차며 해림의 턱을 잡고 돌렸다. 해림이 기겁하며 고개를 뒤로 빼자 주신도가 손아귀에 힘을 주고서 엄지로 입술 주변을 문질렀다. 주신도의 엄지에 붉은 소스 자국이 옮겨 갔다.

“도련님은 해외에 있었다면서. 거기 애들이 떨은 더 자주 피우지 않나. 한 번도 안 해 봤어?”

“……예.”

입술이 뜨거워서 대답이 늦었다. 권하던 이는 종종 있었다. 연이은 시험이 고되어 눈 아래가 시컴시컴하게 물든 룸메이트나, 프로젝트에 치여 다 죽어 가는 동료가 해 볼래, 하고 줬더란다. 해림은 거절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것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릇된 호기심은 언젠가 분명 사람을 망친다.

“순진하게 살았네. 나 도련님 같은 사람 처음 봐.”

해림도 주신도 같은 인간은 처음인지라 피차일반이었다. 해림의 인생을 통틀어 봐도 주신도 같은 인물은 오로지 주신도뿐이었다. 법보다 불법이 가깝고 그게 일상인 사람은.

“사장님은 피워 봤어요?”

“아니. 장사꾼이 물건을 쓰면 안 되지. 가루 하나라도 더 팔아야지 그걸 왜 낭비해.”

주신도다운 대답이었다. 남이 중독되어 망가지든 말든, 저와는 일절 관계없다는 태도와 뻔뻔함을 갖췄다. 주신도가 저지르는 불법 행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포주에 마약 거래와 장기 밀매까지. 하는 일만 보면 세상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인간 쓰레기였다. 분리수거도 불가능했다.

객관적인 사실은 머리만 알았다. 감정은 조금 다른 말을 했다. 해림은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직은 귀 기울일 수 없었다.

“그래. 우리 도련님, 이제 배도 좀 찬 거 같고 몸도 좀 나아진 거 같으니 말 좀 해 봐. 지하는 왜 갔어. 아, 케이가 데려간 건 알아. 그 미친 또라이 새끼가 그런 짓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라. 근데 억지로 끌고 가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궁금해서요.”

브로커를 소개해 주겠다는 거짓부렁이를 넙죽 믿고서 결과가 이 꼬락서니였다. 보기 좋게 당했다. 의심도 안 하고 받아먹어 약에 취하고, 성폭행당할 뻔하고, 결국엔 주신도에게 매달려 살려 달라고 구걸하고. 한심도 이 정도면 병이었다.

“저번에 가서 보고 토했잖아. 뭐가 더 궁금해서.”

“케이가 거기서 오래 일했는데도 괜찮다고 해서요. 제가 본 거하고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궁금하면 나한테 데려가 달라고 하지 그랬어. 구석구석, 도련님이 원하는 곳은 다 보여 줬을 텐데.”

“사장님은 바쁘시니까요.”

“도련님에게 내줄 시간 정도는 있어.”

목이 탔다. 저에게 흔쾌히 시간을 내줄 수 있다는 주신도의 말이 참새 깃털처럼 귓속을 간질였다. 해림이 괜히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몸속에서 음식을 태우느라 그러는지, 손끝도 귓불도 불씨처럼 뜨끈뜨끈했다.

“내가 지하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도련님이 뽈뽈거리며 돌아다녀서. 원래는 방에 있어야 하는데.”

“위치 추적기?”

주신도가 커피만 홀짝였다. 하긴, 비 오던 그 밤 골목길을 헤매다 나갔는데도 바로 찾아온 걸 보면, 팔뚝에 위치 추적기를 박아 놓은 건 사실인 성싶었다. 이제는 상처의 흔적도 없는 팔뚝이 괜스레 아려오는 기분에 해림이 팔을 쓱쓱 문질렀다.

“케이는요.”

해림은 살면서 크게 화를 낸 적이 손에 꼽았다. 어릴 때부터 감정이 무뎠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화를 낼 일도 나중에 돌이켜보며 아, 그때 화를 냈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시간이 분노를 퇴색시킬 만큼 오래 흐른 후에서야.

케이의 일도 해림은 크게 화가 나지 않았다. 멋대로 자신에게 약을 권하고 다른 인간에게 팔아넘기는, 중간 포주 역을 했다는 게 화를 낼 일인 건 알아도 감정은 고요했다. 뭐, 얼굴을 보면 관례상 주먹을 한 대 날리기는 하겠어도.

“걔는 왜 찾아.”

“한 대 패 주려고요.”

“굳이 도련님이 안 패도 돼.”

설마. 해림이 고개를 돌려 주신도를 바라봤다. 주신도가 시선을 눈치챘는지 눈동자만 슬쩍 돌려 시선을 받아치고서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어디서 감히 내 물건을 중간에서 제멋대로 팔아 대. 그간 오냐오냐 봐줬더니 건방져서는.”

주신도가 짐승같이 이를 뿌득 갈았다. 케이가 어디에 처박혔는지 대충 짐작이 됐다. 불쌍하지 않았다. 인과응보에 자업자득이었다. 한편으로 저가 탈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까지 생각이 미쳤다가 금세 사라졌다. 제 탓을 하기엔 저 역시 당한 일이 쉽게 용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도련님은 어제 일이 아무렇지도 않나 봐.”

주신도가 해림의 부스스한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해림이 고양이처럼 고개를 돌리며 주신도의 손을 피했다. 큼지막한 손이 끝까지 쫓아와 해림의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빗질해 넘겼다.

“무슨 일이요.”

“나하고 떡 친 거 잊었어? 그럴 리가.”

덧붙인 말에서 숨길 수 없는 자신감이 드러났다. 해림이 곤란한 듯 딴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꽁꽁 싸맨 이불 틈으로 드러난 목덜미가 눈 깜짝할 사이에 벌그레 달아올랐다.

그 일을 어찌 잊으랴. 세상을 마감하는 그 날 눈을 감아도 주신도와 보낸 밤은 절대 잊히지 않으리라. 주신도의 태도가 워낙 태연자약해 해림도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머리 한구석에서 자꾸만 재생되는 필름을 억지로 멈추기만 몇 번이었다. 그만큼 강렬하고 파괴적인 경험은 해림의 인생에 처음이었다.

옴짝달싹 못 하게 잡혀 몸이 열렸다. 생소한 곳이 축축하게 젖어서 푹 꿰뚫리고, 약 기운 탓인지 아니면 그간 주신도가 열심히 괴롭혀 놓은 덕인지 안에 들어와 뒤흔들고 갈 때마다 눈앞과 등 위에서 폭죽이 터지는 감각이 작열했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난잡하고 음탕하기 짝이 없었다.

뱃가죽이 등가죽에 들러붙는 공복을 핑계로 색이 선명한 기억을 뒤로 미뤄 두고 있었건만.

“도련님이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좀 섭섭해지려고 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거기까지 말하고는 해림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 굳이 끄집어낼 기억이 아니라고, 불가항력으로 벌어진 하룻밤의 실수라고, 서로 잊고 지나가자고, 제법 괜찮은 대꾸가 줄지어 떠올랐다.

“근데 도련님, 진짜 못하더라.”

“예?”

누가 할 소릴. 황당한 나머지 고개가 절로 주신도 쪽으로 돌아갔다. 쾌감이야 약에 취한 상태였으니 몸뚱이가 미쳐 날뛰어 그랬다 치고,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보여 줬으면서 못한다고 운운하니 기가 막혔다. 별점으로 따지자면 주신도는 반 개도 못 받았다. 재차 강조하지만 쾌감은 별개였다.

“내가 그렇게 없는 시간 빼서 교육을 시켰는데도 그 모양이면, 도련님은 답이 없는 거야. 상대를 만족시켜야지 저만 홀딱 싸고 기절하면 손님은 뭐가 돼. 적어도 손님이 코 골며 잘 때까지는 악을 쓰고 버텨야지. 픽 하면 쓰러지고. 유연성도 좆도 없고.”

점입가경이다. 몇 명을 한꺼번에 데려다 놔도 주신도를 만족시킬 수는 없노라고 해림은 단언할 수 있었다. 부딪치는 힘은 송아지 때부터 낙지와 보약만 먹여 키운 황소요, 아랫도리는 성기라는 말이 앙증맞게 느껴지는 흉기였다. 제 체구와 돌덩어리 같은 근육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모두 남 탓이었다. 해림도 할 말은 많았다.

“사장님이 좀 괴물 같다는 생각은 아예 안 합니까. 내가 그렇게 그만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한 번을 안 들어주고……!”

인생에 몇 번 안 되는 분노는 대부분 여기 와서 터졌다. 억울함이 사무쳐 해림의 눈매가 샐쭉하니 좁아졌다. 얼마나 속이 터지는지 심지어 눈물까지 차올랐다. 해림이 고개를 뒤로 젖혀 눈물을 안으로 밀어 넣고 고개를 바로 했다. 아무리 저가 먼저 달려들었다 해도 그만하라고 울면서 애원하면 봐줄 줄도 알아야지, 사람이 적당을 모르고 인정머리도 없었다. 악당 중의 악당이었다.

“뭘 그런 거 가지고 울어. 뚝. 뭐가 그렇게 억울하다고. 실력이 없으면 늘리면 되지.”

“그게 아니라―”

말문이 턱턱 막혔다. 속이 터질 듯이 답답해 해림의 눈꼬리에 미처 식지 않은 눈물방울이 둥그러니 매달렸다. 주신도가 혀를 차며 손을 뻗었다. 해림이 손등으로 내치자 바짝 달라붙어 끝끝내 눈물을 닦아 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위로하듯 어깨를 감싸고 이마를 맞댔다. 열이 이마까지 뻗쳤는지 마주 닿은 살갗이 후끈거렸다.

장난기가 가득 어린 검붉은 눈동자가 손가락 마디 하나 떨어진 거리에 놓이고, 우뚝한 코끝이 코끝에 닿았다. 해림이 고개를 조금만 앞으로 빼도 입술이 닿을락 말락 했다. 해림이 머리를 뒤로 빼려고 해도 주신도의 손아귀가 어느새 목뒤를 단단히 움켜쥐고 가로막았다.

“괜찮아. 나한테 배우면 돼. 지금까지 그랬잖아. 뭐, 도련님이 못하는 거야 타고났으니 어쩔 수는 없지만. 하다 보면 언젠가 늘겠지. 희망을 가져.”

개소리를 연이어 하는 듯한데, 코앞에 놓인 얼굴에 시선을 빼앗겨 제대로 듣지 못했다. 주신도가 눈을 내리깔았다. 상황에 맞지 않게 속눈썹이 길고 빼곡했다. 그 아래 숨은 검붉은 눈동자가 느리게 위로 올라왔다. 해림과 시선을 맞추고는 주신도가 슬며시 입술을 휘었다.

목뒤를 덮은 길고 곧은 손가락이, 굳은살 박인 딱딱한 손바닥이 기둥을 쓸 듯 올라와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머리를 들들 끓게 하던 열이 주신도가 손바닥으로 누른 목뒤로 몰려갔다. 거기가 인두로 지진 듯이 뜨거웠다.

해림이 주신도의 가슴팍을 퍽 소리가 나도록 세게 밀쳤다. 얼굴이 시뻘겠다. 이마며 뺨이며 눈 아래며 누가 분홍빛 분칠을 한 듯이 익었다. 벌떡 일어났다가 도톰한 거위 털 이불이 아래로 흘러내려 허겁지겁 손에 쥐었다. 이상한 장소라, 주신도와 단둘이 있어 저가 제정신을 잃어 가는 게 분명했다.

“옷 어디 있어요?”

“없어.”

“왜 없어요.”

“다 찢어진 걸 여기까지 왜 들고 와. 가게?”

“예.”

“어차피 오늘 출근은 글렀는데 그냥 여기서 쉬지? 아픈 사람 내쫓을 정도로 냉정한 사람 아니야, 나.”

“옷 좀 빌릴게요.”

무작정 간다고는 했으나 당장 드레스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방 찾겠다고 이 넓은 집을 쑤시고 돌아다니기엔 체력이 부족했다. 옷을 가져다 달라고 해도 안 줄 거고. 해림이 궁리 끝에 입을 열었다.

“드레스룸 어디에요.”

“밥 먹었더니 도련님이 힘이 남아도나 봐. 제 발로 걸어가려고 하고. 그 힘으로 우리 예쁜 도련님, 교육이나 받을까?”

“오늘 쉬라면서요.”

해림이 잇새로 뱉으며 손아귀에 힘을 줬다. 이불이 구깃구깃 손아귀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주신도가 소파에 고양이처럼 늘어져 해림을 구경하다가 굽힌 허리를 느릿느릿 펴며 일어났다.

“그거야, 여기에서 쉴 때 이야기지. 기어 나갈 힘이 남았는데 뭐하러 쉬어. 사장실까지 가기도 귀찮잖아. 그냥 여기서 교육받자. 뭐부터 해야 하나. 그래. 우리 도련님 정말 일찍 싸더라. 조금만 찔러 줘도 싸고 그러면 쓰나. 손님이 만족할 때까지는 참아야지. 링이 어디에 있더라.”

주신도가 뭘 찾을 듯이 몸을 돌렸다. 뭐가 됐든 그게 저에게 이로울 건 아니었다. 해림이 팔을 뻗어 주신도의 옷자락을 바짝 움켜쥐었다.

“그냥, 제 방으로 돌아가면 안 됩니까. 얌전히 쉴게요.”

주신도가 눈동자를 옆으로 굴리며 후, 하고 짧게 탄식했다. 머리카락도 쓸어 올렸다. 해림을 비껴 났던 시선이 정면으로 돌아왔다. 해림이 이불을 손에 꽉 쥐고서 한 걸음 물러났다. 거리가 멀어지기 무섭게 주신도가 해림의 이불을 낚아채고 껍질 벗기듯 우악스레 잡아당겼다. 해림의 몸이 앞으로 비틀거리고, 이불이 주신도의 손에 잡혀 바닥에 떨어졌다.

나신이 따사로운 볕 아래 숨김없이 드러났다. 목덜미와 상체와 허벅지에도 꽃잎 같은 순흔이 점점이 남아 있었다. 볼똑 튀어나온 유두 주변과 옆구리에는 잇자국이, 허벅지 안쪽에 남은 잇자국 주변에는 노리끼리한 멍이 올라왔다.

정사보다는 격투장에서 구르고 온 몰골이었다. 빨리고 깨물리고 어디 얻어맞은 듯 울긋불긋한 부분이 피부 위에 넘쳐 났다. 동시에 뜨거운 밤의 흔적이었다. 주신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눈매 끝이 살을 폭 찌를 칼날처럼 길고 곧았다.

해림이 이불을 쥐려고 허리를 굽히기 전에 주신도가 팔목을 잡았다. 몸이 힘없이 딸려 갔다. 주신도의 가슴에 뺨이 부딪히고 상체가 닿았다. 하반신도 얽혔다. 해림이 움칫하며 주신도를 올려다봤다.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허벅지가 해림의 복부에 바투 닿았다. 그 부분이 뜨끈하고 두툼하게 부풀었다.

“나갈 거야?”

다른 손이 등에 닿았다. 목뒤에서 날개 뼈 사이를, 움푹 팬 등골을 내리긋다가 봉긋한 엉덩이를 손에 쥐었다. 포동포동한 엉덩잇살이 굵다란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봉긋 솟았다.

해림이 허벅지를 움츠렸다. 아랫배가 지끈거리며 힘이 들어갔다. 굳은살 박인 엄지와 검지 사이에 사정없이 짓눌리던 젖꼭지가 기억을 상기한 듯이 뾰족하게 섰다.

“도련님이 결정해.”

귓가에 입술이 닿았다. 하얗고 매끈한 치아 사이에 유월 앵두처럼 익은 귓불이 물렸다. 축축하게 젖은 혀끝이 귓불을 가지고 놀 듯 휘감았다. 해림이 어깨를 뒤틀었다. 순간을 모면하고자 마음을 부침개 뒤집듯이 뒤집었다.

“안, 가요. 안 갈 테니 이것 좀.”

얼굴은 떨어졌다. 하체는 여전히 틈 없이 붙었다. 해림의 양 뺨을 손바닥에 쥐고서 주신도가 내려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어쩐 일인지 허벅지가 더욱 크게 부푼 성싶다.

“근데 도련님, 좀 늦었어. 처음에 좋은 말 할 때 받아들였어야지.”

해림이 보고 싶지 않은 걸 볼 수밖에 없는 사람처럼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제 하복부에 붙은 허벅지가 이제는 모른 척하려야 할 수 없을 만큼 팽팽하니 성이 나 있었다.

“못 해요. 지금은.”

“드레스룸에 걸어갈 힘은 있고? 그 정도면 충분해.”

그 일을 또 하라고. 해림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밀어도 주신도는 벽처럼 끄떡없었다. 허리가 달랑 잡혀 소파에 처박혔다. 윽, 하는 신음이 절로 터졌다.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소파 등받이를 쥐고 몸을 일으켰으나 주신도가 등 뒤에 바짝 붙었다. 골반을 움켜쥐는 손이 절대 안 놓아줄 조임쇠처럼 단단했다.

“정말 못해요. 아프다고!”

“원래 처음엔 다들 그래. 익숙해져야지. 언제까지 아프다고 징징거릴 건데.”

“차라리 입으로 할게요. 손, 제발.”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던 손이 둔덕 사이를 파고들었다. 물기 없는 구멍과 그 아래의 도톰한 살갗을 누르듯이 문질렀다. 해림이 주신도의 손목을 쥐고 제발 하지 말라며 애원했다.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몸이 옴찔옴찔 위로 튀었다.

여기서 그 밤처럼 주신도를 받으면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질지도 모른다. 약에 취한 상태와 제정신인 지금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커다란 데다가, 아직 걸음조차 힘겨운 몸으로 정사는 개복 수술한 다음 날 마라톤 뛰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리였다.

“입으로, 해 준다니까. 그만…….”

해림이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꿈틀거리자 주신도가 상체를 굽히며 등에 무게를 실었다. 해림의 어깨에 턱을 괴고서 뺨에 얼굴을 문질렀다. 해림의 볼살이 찌그러진 만두처럼 구겨지게끔 누르고, 삐죽삐죽 돋은 턱수염으로 해림의 목덜미를 벌겋게 쓸고 지나갔다.

“입보다 구멍이 더 나아.”

“사장님 호모 아니라면서.”

“누가 호모래?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은 구멍이란 걸 깨달은 거지.”

“아파요. 정말. 진짜……. 나 못 해.”

등받이와 주신도 사이에 끼어 숨이 막혔다. 할딱거리며 해림이 이마를 등받이 위에 댔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이 정신도 약하게 만들었는지 눈물이 찔끔 고였다.

쯧, 하고 혀 차는 소리 귀 바로 옆에서 들리고서는 주신도가 상체를 세웠다. 주신도가 마음을 돌린 줄 알고 해림이 흘끗 돌아봤다. 표정에 불만이 가득했다. 찌푸린 눈매과 찡그린 입매엔 초조함이 묻었다. 맞붙은 주신도의 아랫도리는 아직도 건재해서 해림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리 예쁜 도련님은 엄살도 많고, 앙탈도 심하고. 정말 손이 많이 가.”

골반을 틀어쥔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해림의 허벅지 양쪽을 힘주어 붙여 놓고 주신도가 다른 손으로 제 바지를 끌어 내렸다. 해림이 허옇게 질려서 버둥거리는 걸 누르고서, 뻣뻣하게 대가리를 치켜든 기둥을 맞붙은 허벅지 사이로 밀어 넣었다. 마주 붙은 살집이 구멍처럼 기둥을 먹었다.

“흐윽!”

해림이 짧게 신음을 토해 내며 등받이에 이마를 묻었다. 얌전히 누운 성기와 동그란 음낭을 찌르며 기둥이 허벅지 안으로 들어왔다. 뻑뻑하게 맞물려 움직임이 쉽지 않은지 주신도가 욕을 하며 테이블에 놓인 생수를 들어 해림의 엉덩이 위에 부었다. 차갑고 축축해 해림이 어깨를 움츠렸다. 매끈한 팔뚝에 오돌토돌 소름이 돋으며 솜털이 곤두섰다.

“봐준다, 내가.”

미끈한 허벅지 사이 깊숙이 기둥이 박혔다. 물기에 힘입어 쓱 빠져나갔다가 매끄럽게 파고들었다. 퍽, 퍽 올려 치는 허릿심은 허벅지가 아니라 구멍을 범하는 듯이 거세다.

박히는 것보다, 입으로 빨아 대는 것보다, 이 정도라면 버틸 수 있다. 해림이 소파 등받이를 쥐어뜯을 듯이 움켜쥐며 허벅지를 오므렸다. 배 속을 후끈하게 휘저으며 저도 같이 타오르려는 열기를 애써 외면하고,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거푸 터지는 신음을 손등으로 틀어막으며 버티고, 또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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