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으으, 하고 파티션 너머로 이 사원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침부터 일이 안 풀리는지 내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고 있다. 오지랖 넓은 박 대리가 은근슬쩍 다가가서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도 어물쩍 넘기며 말을 삼켰다.
점심시간, 모처럼 부장과 주임 없이 오붓하게 셋이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한참을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이 사원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이에요.”
해림이 예의상 물었다. 박 대리도 이때다 싶어 거들었다. 이 사원이 머뭇거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여자친구하고 싸워서요.”
“왜. 뭔 일인지 몰라도 그냥 여자친구 말 들어 주지 그래. 여자 말을 잘 들어야 인생이 편해.”
“아니, 나보다 어리면서 자꾸 야라고 부르잖아요.”
이 사원이 무척이나 억울한 듯 눈썹을 비 맞은 지렁이처럼 구겼다. 겨우 그런 거 때문에 그러느냐고 박 대리가 애걔, 소리를 내며 비웃었다. 해림도 속으로 박 대리에게 동의했다. 사귀는 사이에 호칭이 큰 문제가 되던가.
“남자가 고작 그런 걸로 삐지면 어떡해.”
“고작이라뇨.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요. 집에서 매일 여동생한테 구박받는데 여자 친구한테도 야 소리 듣기는 싫단 말이에요. 오빠라고 불러 주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애인한테 그런 소리 해 본 적 없다고 반말하고.”
제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이 사원이 퍽 억울한지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놨다. 마침 음식이 나와 잠시 대화가 끊겼다. 이 사원은 음식을 앞에 두고도 문자로 티격태격하고 있는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박 대리가 어리석다, 어리석어 혼잣말을 하며 쯧쯧 혀를 찼다.
“그러다가 여자친구가 정말 화내면 어쩌려고. 나는 우리 부인님이 나보다 어려도 매일 존댓말 한다. 부인님은 나한테 반말 써도 돼.”
박 대리는 애처가로 회사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거래처에서 실수를 저질러 박 대리가 불같이 화를 내다가, 부인의 전화를 받고 한 마리 양처럼 온순하게 변한 일을 사무실에 있는 모두가 목격했었다. 이 사원은 공처가는 못될는지 계속 볼멘소리였다.
“다른 건 괜찮은데 야, 너 소리는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 최소한 자기야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 해림 씨 애인 있다고 했죠. 둘이 서로 뭐라고 불러요?”
뜬금없이 이 사원이 해림에게 바통을 넘겼다. 해림이 밥을 한술 뜨다가 멈칫했다. 워낙 찰나에 지나가 앞에 앉은 두 사람이 눈치채지는 못했다.
뭐라고 부르냐니. 주신도는 저를 아직도 도련님이라고 불렀다. 가끔 정해림이라고 성을 붙여 부르기는 해도 딱딱한 느낌은 아니었다. 저 역시 예전 호칭 그대로 주신도를 사장님이라 불렀다. 저번에는 같이 들어간 가게에서 사장님, 하고 불렀다가 주신도와 가게 주인이 동시에 고개를 돌린 적도 있었다.
가끔 화가 나거나 말릴 때 당신이라고 부를 때도 있지만. 지금 와서 호칭을 주신도 씨, 신도 씨 등으로 바꾸기엔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저가 주신도를 신도 씨, 하고 부르는 모습을 상상했다가 해림이 입술을 합죽 물었다. 호칭 하나 바꾸는 게 무어 큰일이라고, 별거 아닌 걸 아는데도 은근히 부끄러웠다.
시선이 부담스럽다. 해림이 표정을 정리하고 덤덤하게 고개를 들었다. 저번 주신도가 난데없이 등장해 박 주임의 멱살을 쥐었던 사태처럼, 월요일 날 둘에게 질문 폭탄을 받았을 때처럼 구렁이가 담 타듯 넘기면 된다.
그때 뭐라고 했더라. 같이 사는 룸메이트라고, 저와 박 주임이 싸우는 줄 알아서 달려들었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그 사람 조폭 아니에요? 어후, 나 그렇게 살벌한 사람 처음 봤어요. 김 주임 그날 초상 치르는 줄 알았다니까.」
「아니에요. 그냥…….」
「싸움 잘하는 친구 같던데.」
「……운동을 좀 해서.」
정작 멱살을 잡혔던 김 주임은 필름이 끊겼는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한연동에서 주신도가 종종 보여 줬던 그 모습의 티끌 정도만 목격한 박대리가, 운동하는 사람 중에 거친 사람들이 많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림은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아 일부러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며 얼굴을 가렸더란다. 불법적인 일은 그만뒀다고 했고, 더는 사람도 안 패려고 노력하고, 운동하는 것도 완전히 거짓은 아니라 해림이 양심의 가책을 덜었다.
“저희는 그냥 이름으로 불러요.”
“아, 동갑이에요?”
해림이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 보니 주신도의 나이가 몇인지 해림은 알지 못했다. 그간 묻지도 않았거니와 흔한 신분증 한 번 못 봤다. 무심해서 넘어간 게 아니라, 존대와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입에 붙었다는 게 이유였다.
“나랑 내 부인은 세 살 차이야.”
박 대리가 틈을 놓치지 않고 자랑스레 제 이야기를 꺼냈다. 해림에겐 잘된 일이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해림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숟가락을 놓았다. 한번 꽂히니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사라지질 않았다.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을 때면 천진난만한 소년 같다가도, 가끔씩 엿보이는 무뚝뚝한 얼굴이나 한연동에서의 기억을 반추하면 저와 비슷한 나이대나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이기도 한다. 머리를 올리면 원숙해 보이고 머리를 내리면 갓 소년티를 벗은 청년 같기도 해 얼굴만으로 나이를 가늠하긴 어려웠다.
자연스레 이름을 부르는 걸 보면 저보다 나이가 많거니 싶은데.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해림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목을 축였다. 옆에서는 아직도 나이와 호칭에 관한 설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 저는 꼰대여도 좋으니까 오빠 소리 듣고 싶다고요!”
식당을 나오면서도 이 사원이 한 맺힌 듯 울부짖었다. 저거 저러다가는 결혼도 못 할 거라며, 박 대리가 답 없는 인간 보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 *
@@냥냥웅@@공금 갠소
그깟 나이,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어쩐지 번번이 까먹기 일쑤였다. 누가 지우개로 일부러 지운 듯이 하루 종일 잊고 있다가 잠들기 전에나 퍼뜩 떠올랐다. 졸려서 다음 날 아침을 기약해 보지만, 해가 뜨면 또 까맣게 지워졌다. 하여 차일피일 다음으로 미루다가 기어이 오늘이었다.
주신도의 나이를 알 기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해림이 물끄러미 테이블 위를 바라봤다. 까맣고 반질반질한 지갑이 그 위에 있었다. 주신도가 사용하는 지갑이었다.
물어보면 그만이라고, 남의 지갑 함부로 열어 보는 거 아니라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려 했으나, 한번 호기심이 드니 쉽사리 잦아들지가 않는다. 신분증에 넣은 사진이 어떨지도 궁금했다. 제보다 젯밥이라, 나이보단 사진을 보고 싶었다.
해림이 욕실을 흘끗 쳐다봤다. 물소리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주신도가 씻고 나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듯싶었다. 완전 범죄를 만들기엔 충분한 여유가 있는 셈이다.
양심이 체통을 지키라고 호통을 쳤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해림이 슬금슬금 지갑을 손에 쥐었다. 돈을 훔치는 것도 아니고, 신분증만 한번 보고 닫을 건데 그게 무슨 대단한 범죄라고. 합리화는 빨랐다. 해림이 고민 끝에 지갑을 열었다. 꽂혀 있는 신분증을 망설이지 않고 뽑았다.
해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앳된 주신도가 거기에 있었다. 얼굴은 무표정하고 정면을 직시하는 시선은 날카롭다. 불그스름한 빛이 도는 눈동자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머리는 길어 앞머리가 눈썹 아래까지 내려왔고, 입술은 송곳니를 감춘 듯 굳게도 닫혀 있었다.
손을 내밀면 이를 드러내다가 콱 물어 버릴 인상이었다. 경계심이 지극해 먹이를 줘도 쉽게 길들지 않을, 야생에서 살아가는 짐승 같았다.
해림이 시선을 옮겼다. 사진 옆에 숫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생년월일이 눈에 들어왔다. 해림의 입술이 슬쩍 벌어졌다. 눈을 깜박이고 다시 봤다. 가까이 끌어당겨도 숫자가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어릴 수도 있다고 짐작은 했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감상이 새롭다. 앞에 적힌 숫자로 미루어 볼 때 주신도는 해림보다 무려 세 살이나 어렸다.
지금껏 제 이름을 부르며 반말을 찍찍해 대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호칭 그깟 게 뭐라고, 겨우 그런 걸로 여자친구와 싸우던 이 사원에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제 경우가 되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은근한 배신감이 몰려왔다.
신분증에 시선을 빼앗겨 물소리가 그치고 욕실 문이 열린지도 몰랐다. 해림의 이마 위로 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해림이 허공으로 펄쩍 뛸 듯이 놀라며 몸을 돌렸다. 물기가 송골송골 맺힌 맨 가슴이 코앞이었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제 가슴에서 뛰는지, 코끝에 닿은 주신도의 가슴에서 들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도련님한테 새 취미가 생겼는지 몰랐는데. 남의 지갑은 왜 보고 있어.”
주신도가 팔을 뻗어 지갑을 뺏어 갔다. 남의 물건을 몰래 보고 있었던지라 할 말이 없었다. 해림이 꿀 먹은 양 입을 딱 다물고 눈동자만 다른 쪽으로 열심히 굴렸다.
나이만 확인하고 바로 집어넣을걸.
주신도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해림을 쳐다봤다. 알아서 자백하라고 눈빛으로 채근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해림이 애꿎은 의자 등받이를 손바닥으로 움켜쥐었다. 큰 죄도 아니라고 스스로 납득시켜 놓고는, 들키니 중범죄라도 저지른 듯이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도련님, 돈 필요해?”
주신도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해림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요.”
“그럼.”
“……몇 살인지 알고 싶어서.”
꼰대도 아니고, 나이에 집착하는 꼴이 수치스러워 해림이 고개를 홱 돌렸다. 드러난 목덜미에 빨갛게 색이 올랐다. 푸핫, 하고 주신도가 웃음을 터트렸다. 비웃는 듯한 기색에 해림의 귓바퀴도 얼룩덜룩 물들었다.
주신도가 지갑을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홱 던지고 해림의 머리 위에 입을 맞췄다. 아예 옆자리에 의자를 빼고 나란히 앉아 손에 턱을 괴고 해림을 쳐다봤다. 아직 촉촉한 머리카락이 이마를 가려서 그런지, 신분증에서 본 나이가 새삼스레 와닿았다.
“그래서. 나이 아니까 어때.”
차마 그동안 반말 듣고 살았던 기간이 억울하다고는 입에 올리지 못했다. 해림이 입술을 꾹 다물고만 있자 주신도가 뺨을 씰룩였다. 터지려는 웃음을 힘겹게 참는 투다. 해림이 울컥하기 전에, 주신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이참에 호칭 정리나 하자. 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사장님, 도련님 이러고 있어. 다른 좋은 말들 많잖아. 여보야, 자기야 같은 거.”
주신도 씨, 라고 부르는 것도 부끄럽건만 계단을 건너뛰어도 유분수지 이건 거의 로켓 발진 수준이다. 해림이 차마 주신도한테 그런 낯부끄러운 호칭은 붙일 수 없어서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얼굴이 터질 듯이 새빨개졌다.
“빨리.”
“못해요.”
“왜 못해. 말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어서.”
“싫다니까.”
해림이 벌떡 일어났다.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주신도가 어허, 못마땅한 투로 혀를 차고 해림을 따라 일어나 등을 와락 껴안았다. 해림이 도망가지 못하게 무게를 실어 매달리며 목덜미에 팔을 감았다.
“하면 놔줄게.”
“아, 진짜!”
해림이 품을 빠져나오려고 몸을 틀어도 주신도의 팔은 꽉꽉 묶은 매듭이었다. 해림의 허리가 반으로 접히게끔 누르고 귀에 빨리, 어서 하며 애처럼 재촉했다. 해림이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였다. 앞으로 가려 하면 주신도가 허리를 팔로 감고 위로 훌쩍 들었다. 허공에 대고 허무한 발길질만 했다.
“이거 놔요.”
“싫은데. 호칭부터 바꾸자니까. 나부터 해? 자기야.”
으윽, 하고 해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친구에게 징그러운 장난을 치듯이 아무렇지 않게 나온 말이 해림에겐 설탕을 잔뜩 넣고 졸인 시럽 같았다. 그 호칭엔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여보나, 자기나 이런 말은 거리가 멀어도 백만 광년쯤 멀었다. 팔뚝에 소름이 돋아서 해림이 진저리를 쳤다.
“아니면 형이라고 불러 줄까.”
주신도가 타협안을 내놨다. 해림이 눈에 띄게 움찔했다. 이전 호칭보다는 훨씬 가볍고 좋은데, 주신도의 입에서 형이라는 소리가 나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해림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주신도가 해림의 볼에 쪽 소리 나도록 입을 맞추고 귓가에 뺨을 들이밀었다.
“해림 형.”
목덜미에 스치는 숨결이 간지럽다. 해림이 허리에 감긴 팔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형, 하고 울림을 담은 저음이 다시 한번 귓속을 헤맸다. 습한 부름이 어딘지 모르게 야해서 허벅지가 바싹 오므라들었다. 등 뒤에 닿은 체온이 살결을 파고들고, 허리를 감싼 팔도 불 닿은 쇳덩이처럼 달아올랐다.
해림이 손등으로 입가를 꾹 눌렀다. 한 번 더 그 말을 들으면 아래가 곤란해질지도 모른다. 코끝을 스치는 샴푸 향과 스킨 향도 아랫배를 주무르는 듯싶다. 얼른 빠져나가고 싶건만, 주신도는 여전히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형, 형 하고 순진한 동생처럼 해림에게 매달렸다.
“그만해요.”
해림이 점잖게 말렸다. 들어 먹을 턱이 없다. 형이라는 말에 재미라도 붙였는지, 아니면 해림이 끙끙거리는 꼴이 재미있는지 주신도가 몸을 바짝 붙였다. 팔을 풀려고 아무리 용을 써도 힘으로는 주신도를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천년 묵은 바위처럼 묵직하게 깔고 있으니, 그걸 일반인의 힘으로 어찌 들을까.
참으려고 했는데, 귀에 닿는 입김과 허리를 슬근슬근 쓸어 대는 손길에 아랫도리에 결국 곤란한 상황이 닥쳤다. 해림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입을 닫았다. 헛된 시도였다. 읏, 하고 억눌린 신음이 잇새로 새어 나갔다. 주신도가 잠깐 멈칫했다가, 손을 바로 아래로 뻗었다. 해림이 황급히 두꺼운 손목을 잡았다. 소용없었다. 불거진 아랫도리가 손아귀에 잡혔다.
“형이란 소리가 그렇게 좋았어?”
주신도가 짓궂게 놀렸다. 키득거리며 손아귀를 말아 쥔다. 해림이 속수무책으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손목을 잡고 아등바등해 봤자 괜히 힘만 낭비하는 꼴이다.
“그런 게 아니라…….”
헐렁한 바지춤 사이로 주신도가 손을 쓱 미끄러트렸다. 맨살이 맨손에 닿는 느낌이 섬뜩했다. 해림의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시선을 피하느라 고개를 돌린 탓에 봉숭아 물을 들인 듯 곱게 익은 목덜미가 옷깃 사이로 드러났다. 거기에도 입술이 닿았다. 해림의 숨결이 좀 더 달아졌다.
눈을 보고 호소하면 마음을 바꿔 줄까, 해림이 수치심을 무릅쓰고 고개를 틀었다. 바로 뒤에 있는 주신도와 눈이 마주쳤다. 날카로운 눈매 속에 숨은 눈동자가 해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집요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해림의 눈매가 움찔하며 좁아졌다. 조금만 머리를 앞으로 빼도 입술이 닿을 거리였다.
눈길이 해림의 눈동자에서 콧잔등을 타고 내려가 입술에 닿았다. 맛보고 싶은 듯이 붉다란 혀끝이 아랫입술을 적시고 안으로 들어갔다. 해림의 입술도 버릇처럼 벌어졌다. 닿고 싶었다.
형, 하고 주신도가 공기를 뱉듯 쐐기를 박았다. 숨결에 코끝에 스쳤다. 해림의 눈꺼풀이 스르륵 내려가며 살포시 입술이 닿았다. 봄날에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잎 같았다. 닿은 그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주신도가 해림의 뒷머리를 움켜쥐었다. 입맞춤이 짙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침실까지 갈 여유도 없었다. 옷가지가 허공으로 휙휙 날아가더니 어느새 맨몸이었다. 갑작스레 노출된 살갗에 닭살이 돋을 틈도 없었다. 싸늘한 기운이 스치기 전에 주신도의 커다란 손이 냉기를 막았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가슴을, 입김이 스쳐 평소보다 도드라진 젖꼭지를, 하얗고 늘씬한 허리와 안으로 옴폭 들어간 배꼽에 손이 닿았다.
혀뿌리를 녹여 먹을 듯이 입을 맞추다가 쪽쪽거리며 귓불과 목덜미에 뽀뽀를 퍼부었다. 손은 더 아래로, 입술은 가슴께를 배회하다가 볼록 선 유두를 합 하고 장난처럼 삼켰다. 해림이 어깨를 퍼뜩 움츠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래 봤자 등 뒤가 식탁이라 멀리 물러나지는 못했다.
“입은 왜 막아, 형.”
잇새에 유두를 물어 발음이 야하게 흐무러졌다. 시선을 살짝 내렸다가 빤히 올려다보는 눈과 마주쳤다. 형, 하고 부르며 주신도가 혓바닥을 넓죽하게 펴서 젖꼭지를 핥아 올렸다. 작은 콩알 같은 살점이 혓바닥에 쓸려 위로 올라갔다가 튕기듯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가지고 놀다가 예고도 없이 아이가 온 힘을 다해 젖을 빨듯 빨아올렸다.
아, 하고 해림이 참았던 신음을 터트렸다. 뜨끔한 통증이 일면서 배가 지끈거렸다. 동시에 얇고 부드러운 터럭들이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해림이 신음이 새지 않도록 손마디를 물었다. 그런 해림을 나무라듯 주신도가 공기 없이 쭙쭙 빨아들였다.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듯 홀쭉해진 뺨이 시야에 스쳐 해림의 얼굴이 화끈하게 익었다.
“이거 봐. 좀만 더 빨면 젖도 나올 거 같은데, 형.”
손가락으로 통통하게 익은 젖꼭지를 튕기며 주신도가 귓가에 속삭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야하게 느껴져 해림이 허벅지를 웅크렸다. 아랫도리에 열이 몰렸다.
“형이라고 그만 불러요.”
“언제는 불러 달라며.”
“내가 언제.”
“왜, 형. 좋아하잖아. 나는 우리 형이 좋아하는 거 다 해 주는 착한 동생이고.”
항의해도 안 먹혔다. 주신도가 일부러 더 몸을 밀어붙이며 형이라고 노래를 했다. 형이라는 소리에 핏물이 다 타듯이 부끄러웠다. 어린애를 데리고 몹쓸 짓 하는 어른이 된 기분마저 들었다.
해림이 어떻게든 피하려고 고개를 자꾸만 다른 쪽으로 돌렸다. 주신도가 해림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입을 가린 손등이 강제로 내려가자 아무리 입술을 물어도 신음이 샜다.
정말 젖이라도 나오는지, 한쪽 유두가 퉁퉁 불도록 물었다가 빨면서 다른 손으로는 반대쪽을 찰흙처럼 조몰락거렸다. 혀끝이 누른 젖꼭지가 젖어서 번들번들했다. 반대쪽도 하도 쪼물거려 산딸기처럼 발갛게 익었다.
손가락이 가슴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아랫배로, 더 아래로 스리슬쩍 내려갔다. 긴장이 어린 허벅지를 쓸고 다리 사이로 뱀처럼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갔다. 해림이 흠칫했다. 입맞춤만으로도 바짝 선 아랫도리가 주신도의 커다란 손아귀에 쑥 숨어들었다.
“형이라고 부른 김에 서비스 좀 제대로 해 줘야지.”
“무슨…….”
짓을 하려고.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헉, 하고 해림이 숨을 삼켰다. 주신도가 손아귀로 엉덩이를 쥐고서 번쩍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몸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식탁 가에 엉덩이가 닿았다.
주신도가 해림의 허벅지를 넓게 벌리고 그 아래 무릎을 꿇었다. 해림이 식겁해서 주신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한발 늦었다. 길게 뺀 혀가 발끈한 아랫도리에 스쳤다.
“아니 그거 하지……! ……흐읍.”
다급하게 외쳤지만 주신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랫도리를 제 입술 사이로 쑥 밀어 넣었다. 따뜻하고 말캉한 혀가 기둥을 기어오르고, 끝까지 삼켰다가 뱉었다가, 다시 깊게도 빨아들였다. 열을 품은 뱀이 기둥을 조여 대는 오싹한 감각에 해림이 허리를 수그렸다.
“하지, 말라고 내가……, 하윽. 읏……”
검은 머리를 와락 껴안았다. 서툴기 짝이 없었다. 빨아올리다가 이가 닿고 혀끝이 요령 없이 대가리의 까만 구멍을 파고들었다. 거칠게 흡입하면 느끼기보다는 아래가 뽑힐지도 모르는 공포심이 먼저 들었다. 하지 말라고 머리카락을 아무리 잡아당겨도 주신도는 제 실력에 자부심이라도 느끼는지, 아니면 기어이 정액을 뽑아내겠단 심산인지 입을 떼지 않았다.
쾌락보다 통증이 차지하는 비율이 큰데도 아랫도리는 착실하게 일어서 있었다. 서툰 것도 좋다며 음낭은 부피를 줄이고 주신도를 껴안은 팔과 활짝 벌어진 허벅지는 거푸 움칫거렸다. 저도 모르게 엉덩이에 힘이 담뿍 들어가고 허리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조금만 더 하면, 그러면 절정이 올 거 같은데 여전히 뭔가가 부족하다. 해림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아래턱을 바르르 떨었다. 이거 말고, 혀 말고, 입 속의 뜨거운 동굴 같은 거 말고 더 거친 몸짓이 필요했다. 배 속이 근지러웠다. 손가락으로 배 뚜껑을 열고 긁고 싶을 만큼.
해림이 상체를 뒤로 물렸다.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 봉긋 솟았다. 주신도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흠뻑 젖은 입술이 지독하게도 야하다.
해림은 머리카락을 쥔 손을 놓지 못했다. 그 눈을 응시하면서, 주신도가 붉게 달아오른 허벅지 안쪽에 입을 맞췄다. 깊게 빨아들여 벌건 자국을 새겨놓고, 불시에 해림의 상체를 뒤로 밀었다.
두 오금이 잡고서 그대로 배 쪽으로 눌렀다. 해림의 눈이 휘둥그레 벌어졌다. 설마, 설마 하는데,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 그것만은 아니겠지 싶은 행위를 연상케 한다. 안 된다고 고개를 휙휙 저었다. 주신도가 해림의 손을 끌어당겨 반으로 굽은 오금에 갖다 댔다.
“이거 놓치면 형, 오늘 못 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신도가 고개를 숙였다. 믿을 수 없는 곳에 혀가 닿았다. 믿고 싶지도 않았다. 해림이 기겁을 하며 손을 풀었다. 주신도의 머리통을 잡고 밀다가 손목을 잡혔다. 허벅지 뒤쪽도 손자국이 남게끔 눌렸다. 몸부림을 쳐도 엉덩이만 흔들렸다. 철썩 소리가 나도록 얻어맞았다.
“오늘 안 자고 싶나 봐, 우리 형이.”
숨결이 둔덕을 스쳤다. 해림이 그만하라고, 하지 말라고 거의 울먹이며 애원했다. 혀끝이 민감한 살을 지나갈 때마다 해림의 온몸이 데운 가재처럼 익었다. 눈 아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까만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가락은 버들버들 떨렸다.
“아, 제발, 싫어요. 싫다고. 제발……!”
입술로 덮었을 때는, 해림은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삼킬 듯이 입을 합 벌려 회음부에서 그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젖은 혓바닥이 오갈 때는 상체가 뒤틀리고 아랫도리 끄트머리에 이슬이 매달렸다.
“이게 더 좋아?”
“아냐.”
“아니긴.”
고문은 더 이어졌다. 젖어서 골을 타고 침방울이 길게 늘어지는 감각이 생생했다. 해림의 발가락이 허공에서 펴졌다가 오므라들었다가, 벌어진 입술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머리카락 뿌리가 까맣게 타들어 갈 만큼 부끄러우면서 동시에 미칠 것만 같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줄줄 샐 거 같아 해림이 손목을 끌어다가 잇자국이 날 만큼 세게 깨물었다.
“흐으, 아……! 혀 넣지 마, 넣지 마요 제발, 제발 하지 마……!”
혀끝이 구멍을 파고들려고 툭툭 두드렸다가 결국 열고 들어갔다. 손목으로도 비명 같은 신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도망치고 싶어 팔을 뒤로 뻗었다가 식탁 끄트머리만 와락 움켜쥐었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 목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눈은 한껏 커지고 속눈썹에 눈물이 대롱대롱 매달렸다가 식탁 위로 툭툭 떨어졌다. 그렇게 말렸는데도 기어이 안을 헤집고 들어온 혀끝이 감각을 이리로 몰았다가 저리로 내치며 휘저었다.
“하지 말라고, 내가, 흐, 윽, 아아……! 주신도 이, 나쁜……, 아!”
몸이 흐물흐물 녹았다. 자지를 아랫구멍에 바로 집어넣어도 손색없을 만큼 녹진녹진했다. 손에서 힘이 빠져 아래로 툭 떨어졌다. 파르르 떨리는 아랫배가, 정액을 뱉지 않았는데도 절정을 맞은 듯이 흔들렸다.
혀끝이 구멍에서 음낭으로, 조금은 기운이 빠진 기둥을 지나 배꼽까지 올라왔다. 해림이 움찔거리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뭘 한 것도 없는데 숨이 턱까지 차고 눈물이 어려 시야가 어룽거렸다. 그 와중에도 주신도의 입술과 턱이 젖은 게 보여 더욱 수치스러웠다.
도저히 눈을 바라볼 수 없어 피하는데, 몸이 뒤로 홀딱 뒤집혔다. 배는 식탁에 닿고 다리는 바닥으로 내려갔다. 주신도가 몸을 바짝 붙였다. 엉덩이에 닿은 기둥이 있는 대로 성이 나 있었다. 마주 닿은 살갗으로 무섭게 엉킨 핏줄까지 느껴질 정도다.
기둥이 젖어서 미끈거리는 둔덕 사이를 오가다가, 그 사이를 비집고 구멍에 닿았다. 끝이 무딘 대가리가 천천히 밀고 들어왔다. 해림이 매끄러운 식탁 위로 손가락을 세웠다. 손톱 끝이 하얗게 질리게끔.
몸이 아무리 풀린다 한들 받기 버거운 크기였다. 구멍이 벌어지는 감각이 오싹하고 지끈거렸다. 둔통 또한 쾌락의 전조였다. 막무가내로 속살을 차지하고 짓누르고 찢듯이 깊게 들어갔다가 뭉갤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가파른 언덕 끝까지 올라갔다가 수직으로 하강하는 그 감각을 알고 있었다.
“……흡.”
애가 타도록 느리게 들어왔다. 해림의 뒤꿈치가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감질이 지나쳤다. 차라리 얼른 들어와 정신없이 몰아쳤으면 좋겠다. 발가락이 꿈틀거리고 입술이 말랐다. 반만 들어왔다가 나가고, 또 손가락 마디만큼 넣었다가 나가고. 애간장이 다 녹았다.
“그러지 말고…….”
사람이 너무 못됐다. 하지 말라고 울먹이며 애원하던 때는 까맣게 잊었다. 아쉬운 사람이 지는 법이라 해림이 손을 뒤로 뻗었다. 허리춤을 잡은 주신도의 손등에 제 손을 얹고서 손가락을 오므렸다. 아까는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 싶었건만, 지금은 제발 휘몰아쳤으면 하고 바랐다. 변덕이 극심했다.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해야지.”
“알잖아요. 아, 만지지 마.”
“모른다니까. 형이 말해 줘야지. 내가 아직 어려서 떡을 어떻게 치는지 잘 몰라요. 형이 알려 주세요. 그냥 다 박으면 되나. 형 구멍 지금도 찢어질 거 같은데 더 박아도 돼요? 다 넣으면 어디에 닿아요? 여기까지 닿나. 형 구멍이 너무 작고 좁아서.”
뻔뻔하게 농을 치며 주신도가 허리를 살살 돌려 댔다. 손으로는 배꼽 위를 더듬거렸다. 해림이 샐쭉해진 눈으로 주신도를 노려보다 상체를 세우려 식탁을 손으로 짚었다. 바로 목뒤를 잡혔다. 그대로 힘을 쓰며 바닥에 짓눌렀다. 뺨이 차가운 식탁 위에 뭉개졌다.
“우리 형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어쩔 수가 없네. 내가 알려 줄게요. 이럴 땐 그냥.”
기둥이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목뒤를 눌려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엉덩이와 속살에만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어떻게든 나가지 못하게 물려는데, 상대방은 자비가 없었다.
“박아 달라고 말해.”
귓바퀴에 이가 닿았다. 습한 목소리가 귓속 굴곡을 타고 뇌를 적시듯이 들어왔다. 읏, 하고 해림이 미간을 찌푸렸다. 허벅지가 달달 떨리며 손이 절로 아래로 내려갔다. 팔목이 잡혀 등 뒤에 결박됐다. 꽉 움켜쥔 손아귀가 밧줄처럼 거칠고 단단하다.
“정해림.”
꼭 이럴 때만. 해림이 입술을 물었다. 해소되지 않은 열기가 아랫배에 고여 들었다. 놔둔다고 자연스레 흩어질 정욕이 아니었다. 해림이 차가운 대리석에 이마를 문질렀다. 입을 떼기 어려웠다. 수치스러웠다.
머뭇거리는 해림을 벌주는 것처럼 손바닥이 엉덩이를 매섭게 내려쳤다. 철썩하며 물웅덩이를 내려치는 소리에 해림이 움찔하며 어깨를 옹송그렸다. 화끈한 통증도 열감에 풀무질을 더했다.
“……세요.”
결국, 해림이 백기를 들었다.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잘 안 들린다며 주신도가 등 뒤를 내리눌렀다. 가슴이 식탁에 눌려 해림이 헐떡거렸다.
박아 주세요, 라고 날개 뼈까지 벌게져서 웅얼거렸다. 칭찬처럼 목덜미에 입술이 닿았다. 잡힌 손목이 풀어지고 대신 허리가 커다란 손아귀에 들어갔다. 움찔대기 바빴던 구멍에 선단이 닿고, 묵직한 무게가 닫힌 속살을 비집고 자리를 잡았다.
아, 하고 해림이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전에는 사람 미치게끔 천천히 들어오더니, 이번엔 여유가 없었다. 전보다 두꺼워진 기둥이 단번에 안으로 푹 들어왔다. 해림의 허리가 둥글게 휘고 입술이 벌어졌다. 숨이 턱 막혀서 신음도 안 나왔다.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확인할 것처럼 주신도가 하체를 꾹꾹 누르며 밀어붙였다. 해림이 본능적으로 손을 앞으로 뻗고서 도망가려 했다. 주신도가 나비 날개에 침을 꽂듯이 해림의 날개뼈 사이를 손바닥으로 짓눌렀다.
“―아, 아!”
몸짓이 거세졌다. 해림의 몸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무릎이 굽어지다가 주신도의 손에 허리가 잡혀 뒤꿈치가 들렸다. 해림이 허우적거리다가 반대편 식탁 모서리를 잡았다.
식탁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퍽퍽 후려치는 힘에 유일하게 살집이 있는 엉덩이가 빨갛게 익었다. 튼튼한 식탁 다리가 바닥을 끽끽 긁으며 앞으로 밀려 나갔다.
“흐으, 아, 아으읏, 흐으, 아, 거기, 거기는……!”
“어디, 여기? 후……. 왜, 씹어 먹으려고 그래. 잘라서 평생 넣고 다니려고? 해림아, 정신 차려. 형.”
“아니, 거기만 계속, 당신이, 그만, 아으, 흐윽!” ㄴㄴㅇ
히익, 하고 해림의 고개가 바짝 들렸다. 속살이 푸들푸들 떨렸다. 기둥을 물었다가 풀어지고, 오물거렸다가 뱉었다. 더 부풀고 딱딱해진 기둥이 한층 깊게 파고들었다. 해림이 다리를 벌벌 떨었다. 발끝으로 버티다가 한쪽 발이 결국 허공으로 올라갔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고여 아랫입술이 축축하게 젖었다. 아랫도리도 그랬다. 투명한 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더 좁아진 길이었다. 뭉툭한 대가리가 좁아 들려는 통로를 억지로 열고, 핏줄과 힘줄이 엮인 기둥을 속살이 죄다 휘감았다. 빈틈이 없었다. 다 눌리고 짓뭉개졌다. 어디를 눌러서 좋고 아프고도 느낄 새가 없었다. 눈앞이 희끄무레해졌다가 등골에 전류가 흘렀다가, 새카매졌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래가 축축했다. 정액이 질질 새어서 식탁 아래로 투두둑 떨어졌다.
“벌써 싸면 어떡해.”
“아니, 아니. 나 그만…….”
그만둘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해림이 애걸했다. 주신도가 혀를 차며 해림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힘이 풀려 풀썩 쓰러지는 몸을 추슬러 제 허벅지 위에 자리 잡게 하고는, 곧추선 기둥을 잡아다가 아직 덜 닫힌 구멍에 맞췄다. 할딱거리며 숨을 고르느라 넋 놓은 해림을 그 위에 단숨에 내려 앉혔다.
“―!”
해림의 아랫도리에서 흰 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엉덩이를 손에 쥐고 위로 들었다가 아래로 푹 꽂자, 배꼽 주변의 뱃가죽이 불룩하게 솟았다. 해림이 주신도의 어깨를 잡고 손톱을 세웠다. 입은 물 밖으로 내쳐진 물고기처럼 벌어지고 눈 아래로 눈물이 굵직한 빗방울처럼 쏟아졌다. 부르르 떨리는 어깨가 오한이 돋은 듯 안으로 말려들어 갔다.
“안아.”
해림이 넋을 잃은 채 주신도의 어깨에 팔을 감았다. 사냥감과의 거리가 코앞으로 줄어든 맹수처럼 몰아치는 기세가 맹렬했다. 철퍽철퍽 살갗이 부딪치며 물기가 튀고 서로 스치는 숨소리도 격렬했다.
“너무, 너무 깊어. 나 죽을…… 거 같아. 아, 제발. 더 들어오지 마. 배, 배 터질 거 같아요. ……하, 읏, 아!”
“이름 불러. 내 이름 알잖아. 도련님. 해림아. 형, 얼른, 씨발……. 빨리!”
해림의 두 뺨을 손으로 잡고 주신도가 이를 드러냈다.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이대로 뜯어 먹을 것처럼 송곳니가 날카로웠다. 따르지 않고는 못 배길 목소리였다.
“주신도, 아, 하으…… 신도 씨. 아, 아윽!”
“더 불러. 정해림. 더. 내가 불렀던 만큼.”
“신도 씨, 신도…….”
이지를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주신도의 이름만 부르다가, 갑자기 해림이 허겁지겁 눈앞의 어깨를 밀었다. 열에 들뜬 눈빛에 난감함이 스쳤다. 오줌 마려운 애처럼 허벅지를 옴찔거리며 도망가려 했다.
주신도가 놓칠 리 없었다. 해림을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서 무게를 실었다. 해림의 몸이 위로 퍽퍽 밀려 올라가다 식탁 다리에 정수리가 닿았다. 주신도가 해림의 다리를 내리고 허리를 잡아다가 힘으로 끌어 올렸다.
허리가 둥글게 솟았다. 부딪치는 힘은 더 세지면 세졌지 약해지지 않았다. 해림이 주신도의 손목을 쥐어뜯으며 상체를 비틀었다. 이상했다. 배 속을 휘젓는 감각이 사정과 달랐다. 아랫도리 끝이 찌릿찌릿했다. 사정감과 배뇨감이 섞여서 기둥에 꽉꽉 들어찼다.
“제발 놔줘요. 아, 싫어. 이거, 읏, 그렇게 깊게 찌르지 마. 아으, 하……아!”
쾅, 하고 몸이 박혔다. 배 속이 얼얼했다. 굽어진 곳이 꿰뚫리고 짓찧어지다가 힘을 못 이겨 그 위까지 자리를 내어 준 듯싶었다. 정수리부터 배꼽 아래까지 일자로 번개가 내리꽂혔다. 음낭이 쪼그라들고, 설익은 열매처럼 발그스레한 색이 감도는 아랫도리에서 소변처럼 물줄기가 터졌다. 분수처럼 위로 솟아 해림의 가슴과 턱과 발갛게 상기된 얼굴 위로 쏟아졌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씩 줄줄 흘러나왔다.
“흐으…….”
몸에 떨림이 멎질 않았다. 모음으로만 이루어진 신음이 잡을 새 없이 새어 나오고, 배가 푸르르 떨리며 속살이 기둥을 야금야금 삼켰다. 해림의 허리를 굳세게 잡은 주신도의 팔에도 힘줄이 툭 불거졌다. 이가 뿌득 갈리는 소리가 나더니, 해림의 허리가 더 높은 허공으로 끌려 올라갔다.
아, 하고 해림이 가느다랗게 신음했다. 머리가 식탁 아래로 들어갔다. 다리는 있는 대로 벌어지고 구멍은 곧이라도 찢길 듯이 팽팽했다. 사정 직전에 다다른 기둥이 부풀 대로 부풀어 더는 못 들어갈 정도로 깊이 파고들었다. 해림이 두 손으로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뱃가죽이 판판해졌다가 불룩하게 솟는 간격이 짧았다.
“……!”
말도 못 하고 해림이 몸을 떨었다. 손에 잡힌 주신도의 팔목에도 진동이 일었다. 뜨뜻미지근한 정액이 속살을 적셨다. 내벽을 두드리는 감각이 등골을 훑자, 해림의 아랫도리에서도 아직 덜 뱉었다는 듯이 희끄무레한 물이 핏핏 터졌다.
쿵, 하고 도로 들이받으면 끝난 줄 알았던 정액이 더 깊은 곳까지 흘러 들어갔다. 몇 번이나 허리를 추어올리며 해림의 구멍 안쪽을 허옇게 물들이고 나서야 주신도가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많이 쏟아부었으면, 꽉 막힌 틈새로 흰 물이 질금질금 새어 나왔다.
머리 위에 까맣고 판판한 돌이 드리워져 있다 싶더니, 둘 다 식탁 아래까지 밀려와 있었다. 해림이 먼저 털썩 널브러졌다. 바닥이 차갑고 딱딱하고, 쓸린 등이 쓰라린 것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벌어진 구멍이 화끈거리고 여운은 몸을 요람처럼 흔들며, 아직 안에서 두근, 두근 맥이 뛰는 기둥만 느껴졌다.
눈이 껌벅껌벅 감기고 몸이 나른했다. 주신도가 해림 위로 상체를 눕히며 껴안았다. 몸은 땀에 젖어 미끈거리고 목덜미 위에서 흩어지는 호흡은 아직도 거칠다. 몸을 누르는 무게감은 저를 땅 아래로 가라앉힐 듯이 묵직하고, 아랫도리는 아직도 등나무 줄기처럼 엉켜있었다.
좀 전에 분명 정액도 아닌 투명한 액을 뱉어 낸 거 같은데, 특유의 톡 쏘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래도 주신도 앞에서 실례를 저지른 게 피가 끓도록 부끄러워 해림이 아래팔로 얼굴을 가렸다.
주신도가 비위도 좋게 해림의 뺨과 이마와 콧잔등에 달게 입맞춤을 퍼부었다. 혹시나 안 좋은 냄새가 날까 봐 어깨를 힘주어 밀어도 끈질기게 들러붙었다.
“뽀뽀 그만해요. 다 젖어서…….”
“싫어.”
끈질김이 사람이 되면 주신도였다. 해림이 제 풀에 지쳐 주신도의 등에 맥없이 팔을 감았다. 와 닿는 입맞춤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따사로웠다. 해림의 입가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잠깐.”
가만히 누워 입맞춤을 받던 해림이 눈을 반짝 떴다. 아래가 이상했다. 사정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속에 든 기둥이 다시금 단단하게 익고 있었다. 해림이 아연한 눈으로 주신도를 올려다봤다.
“아니죠?”
“뭐가.”
희망을 갖고 물었건만 아래는 꿈틀거리며 깨어날 준비를 한다. 해림이 하얗게 질려서 엉덩이를 슬슬 뒤로 뺐다. 주신도가 물러난 만큼 따라왔다. 허리도 어디 도망치지 못하게 잡았다.
“오늘은 그만해도…….”
에이, 하며 주신도가 씩 웃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해림을 식탁 밖으로 질질 끌고 나왔다. 해림이 다리를 버둥거렸으나 먹이 문 거미처럼 몸통을 잡은 손길이 우악스러웠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여기서 어떻게 그만해. 남자가 자지를 뽑았으면 적어도 세 번은 더 싸야지. 형도 아직 덜 쌌잖아. 두 번만 더 하자. 응? 딱 두 번. 그 이상은 안 할게.”
“아니에요. 당신 안 믿어. 그리고 나 충분해요. 그만, 좀……! ……아!”
“아까처럼 이름 부르면 일찍 끝내 주는 거 고려해 볼게. 진짜야. 왜 날 안 믿을까. 섭섭하네.”
주신도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늘어놨다. 해림이 그 뻔한 속내를 알면서도 주문처럼 주신도의 이름을 불렀다. 틀린 주문이었다. 그 밤이 다 지나고 푸릇한 새벽이 올 때까지 단 한 번도 들어 먹히지 않았다.
* * *
주말 내내 집에 박혀 나가지 못했다. 토요일은 집 온갖 곳을 굴러다니며 달달 볶이느라 그랬고, 일요일엔 두 발로 걸어 나갈 힘이 없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주신도의 수발을 받았음에도, 월요일인 오늘도 허리엔 뻐근함이 가시지 않았다. 하긴, 그 쇳덩이 같은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 냈으니 안 아플 리가.
해림이 지끈거리는 허리를 통통 두드리며 모니터에 코를 박았다.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몸이 노곤해서 그런지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차트를 뚫어지라 봐도 머릿속엔 오늘 아침에 봤던 주신도만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났다.
「오늘은 그냥 쉬지 그래.」
이게 다 누구 탓인데. 정작 범인인 주신도는 태연하게 해림에게 연차를 권했다. 해림이 우릿한 허리를 굽히며 신발을 신었다. 주신도가 어미 닭 쫓아가는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왔다.
「쉬라니까.」
「괜찮아요.」
「그럼 데려다줄게.」
예전에 끌고 왔던 부담스러운 차는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전보다는 평범해도 가격대는 충분히 높은 외제 차가 지하에 주차되어 있었다. 이 몸 상태로 오랜 시간 서서 가기는 어렵고, 고민 끝에 해림이 주신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주신도가 발랄하게 차 키를 손에 걸고 휘파람까지 불며 앞장섰다.
이른 시간에 출발해 회사까지 오는 길이 짧았다. 아쉬움을 삼키며 해림이 차 문고리를 손에 잡았다. 주신도가 해림의 턱을 불쑥 잡더니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쪽, 하고 입술이 부딪쳐 해림이 기겁하며 주신도를 밀었다.
「회사 앞에서 이러면 어떡해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주신도의 눈썹이 불만을 담고 일그러졌다. 아래턱도 꿈틀했다. 뺨과 뾰족하게 날 선 눈매도 불쾌를 여실히 드러냈다. 조금만 더 건들면 한바탕 난리를 부릴 듯이 감도는 기운이 흉흉했다.
「아예 회사 인간들 다 보게 나가서 해 줄까.」
겨우 입맞춤 한 번 거절했다고 이 모양이라니. 무섭기보다는 이 어린 양반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가도,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꿔 물어뜯을 듯이 으르렁거려 대니, 원.
이대로 두면 정말 멱살을 잡고 나가 회사 정문 앞에서 입맞춤을 퍼부을 듯싶다. 해림이 나직하게 한숨을 쉬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드물고, 창도 짙게 선팅되어 있어 코를 대고 들여다보지 않는 한 바깥에서 엿볼 일은 없었다.
해림이 재빨리 주신도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단단하게 경직된 뺨에 입술을 꾹 눌렀다 떨어졌다.
「다녀올게요.」
「…….」
이런 반응이 돌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주신도가 입술이 스쳐 간 뺨에 손을 대고 해림을 멍하니 쳐다봤다. 사탕을 한 바구니 가득 받은 어린애라도 되는 듯이 눈동자가 마냥 반짝반짝했다.
정신을 차리면 분명 더 해 달라고 달려들 게 뻔하다. 그 전에 해림이 후다닥 차 밖으로 뛰쳐나왔다. 주신도라면 능히 따라 나와 저를 끌고 못다 한 입맞춤을 할 수도 있어서 가는 걸음을 허둥허둥 서둘렀다.
오늘 아침 일을 회상하자 불현듯 사무실의 공기가 훅훅하게 달아올랐다. 파닥파닥 손부채질을 하며 해림이 고개를 숙였다. 순두부처럼 허연 목뒤가 순식간에 불그죽죽하게 물들었다.
“해림 씨!”
해림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 사원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해림의 앞에 커피를 한 잔 내려놨다. 입술이 즐거움을 숨기지 못하고 연신 헤벌쭉 늘어져 있다.
“저 여자 친구하고 합의 봤어요. 착한 일 하면 오빠라고 불러 주기로!”
“아, 잘됐네요.”
다소 딱딱한 대답에도 이 사원이 자랑스레 어깨를 쫙 폈다. 누가 보면 전쟁에서 승리라도 쟁취하고 온 장군이라고 착각할 만큼 의기양양했다.
“역시 호칭이 중요하긴 하더라고요. 오빠라고 불리니까 뭔가 하나라도 더 해 주고 싶고, 더 귀여워 보이고.”
해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다 멈칫했다. 귓가에서 주신도가 형, 해림이 형, 하고 불렀던 저음이 맴돌았다. 침대에 누워 고막이 녹아내리게끔 속삭였었다. 이따금 정해림, 하고 이름을 부르면 형이라고 부르던 소리가 은근히 아쉬웠다.
하나라도 더 해 주고 싶고, 조르면 못 이기는 척 해 주게 되고.
그렇게 한 번, 두 번 홀라당 넘어가 마지막 정사가 어땠는지는 기억에도 없었다. 정신을 놓기 바로 전에 뺨과 속눈썹에 정액이 엉겨 붙은 것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입 안으로 젖은 손가락이 들어오고, 떫은 감처럼 쓰고 약간은 달짝지근했던 맛이 혓바닥에 스쳤던 것도.
해림이 커피를 홀짝이며 입가를 가렸다. 눈 아래와 뺨에 불그스름한 빛이 돌았다.
“좀 그렇긴 하죠.”
“매일 불러 달라고 하고 싶은데 그건 안 될 거 같고……, 이 정도로 만족하려고요.”
그가 헤헤거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든 잘됐다니 다행이었다.
이 사원이 자리로 돌아가고 난 후, 해림이 옷깃을 잡고 펄럭거렸다. 열이 식지가 않았다. 아침만 해도 안개가 자욱하고 손등에 닿는 공기가 쌀쌀했건만, 해가 천천히 중천에 다가가서 그러는지 사무실에도 열기가 차츰차츰 쌓였다.
칸막이 너머로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봤더니, 박 대리가 의아한 시선으로 해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박 대리는 두툼한 카디건을 걸치고 몸을 옹송그리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자라처럼 목을 움츠린 게 어지간히 추운 듯싶다.
“왜 그래?”
“날이 더워서요.”
“아직 춥지 않아?”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실없는 대답에 박 대리가 푸에취, 기침을 하고 고개를 제자리로 돌렸다. 앞자리에서 이 사원은 혼자 봄 맞은 양 여전히 실실거리고 있었다.
사무실에 온 계절이 다 있었다. 해림은 봄에서 여름으로 향해 가는 변화를 느꼈다. 그게 마음의 변화인지, 피부에 닿는 바람의 변덕인지 정확히 판가름할 수는 없었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 여름은 봄 냄새를 닮았다. 춘풍처럼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