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21/21)

5.

아침만 해도 한 치 앞이 안 보이도록 안개가 자욱하더니, 점심쯤 되어 화창하니 날이 맑아졌다. 봄 날씨란 그토록 변덕이 심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싸늘한 공기는 어느덧 온기를 품고서 해림의 뺨을 간질였다.

해림이 눈을 갸름하게 뜨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이 쪽빛이 쨍했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에는 흐드러진 벚꽃도 섞여 있었다. 아직 휘날릴 시기는 아닌지 나뭇가지 위에 만개해서 도로 위에 꽃그늘을 드리웠다.

마침 꽃잎 하나가 차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허공에서 하늘하늘 흔들리다가 운전대를 잡은 주신도의 허벅지에 자리를 잡았다. 해림이 무심결에 허벅지로 손을 뻗었다. 주신도가 움칫하며 돌아봤다.

“여기선 좀 곤란한데. 운전 중이잖아. 아니면 잠깐 쉬었다 갈까. 아, 난 운전하면서 받는 것도 좋아해. 도련님이 해 준다면야.”

주신도가 불거지려는 아랫도리를 흘끔 보며 김칫국을 거하게 들이마셨다. 마주친 시선이 엉큼하다. 더 착각을 심하게 했다가 국밥집도 차릴라, 해림이 집게로 꽃잎을 들었다. 주신도가 냉큼 낚아채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괜히 기대했네.”

정말 김이 샜는지 입술이 불퉁 튀어나왔다. 달래 줄까 하다가, 저런 어리광 한 번 받아 주면 끝이 없어서 해림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벚꽃 길의 끝이 저쪽에 보였다.

주말이라 집에서 편히 쉬려고 했거늘. 평일에 놀지 못한 보상이라도 받으려고 하는지 주신도가 해림의 덜미를 잡고 밖으로 질질 끌어냈다. 드라이브라도 가자고 조르는 통에, 오죽 답답했으면 그럴까, 강아지 산책시키는 기분으로 차에 올라탔다.

「어디 갈까요?」

「교외나 한번 갔다 올까. 꽃도 폈는데.」

주말에 꽃놀이라. 회사 가는 길에 벚꽃이 핀 건 봤지만 꽃이야 매년 똑같이 피지 않던가. 해림은 소풍이나 꽃놀이와는 친하지 않은 부류였다. 계절이 흘러도 자연의 경이로움과 소소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는 추위와 더위와 온기와 싸늘함을 먼저 느끼는 사람이었다.

옛날엔 그랬건만. 오늘은 은근히 기분이 상승곡선을 탔다. 불어오는 바람은 따스했고 간간이 휘날리는 분홍 꽃잎은 눈송이를 연상케 했다. 바람이 불면 만개한 꽃들이 물풀처럼 하늘하늘 흔들리며 달콤한 향을 내뿜는 듯싶었다.

손톱 같은 꽃잎 하나가 또 한 번 창문을 타고 넘어와 이번엔 주신도의 머리카락에 붙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분홍색이 꼭 어린아이들이 머리에 꽂는 예쁜 머리핀 같다. 해림이 설핏 웃으며 이번엔 떼지 않고 놔뒀다.

“왜 웃어?”

“아뇨. 그냥.”

“싱겁긴.”

벚꽃 길은 이윽고 끝나고 차가 유유하게 언덕을 올라갔다. 해림이 고개를 갸웃했다. 드라이브나 하자고 했지, 어디에 들를 건지는 주신도가 밝힌 적 없었다.

차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어느 한적한 평지에 도착했다. 희원 공원이라고 둥근 아치형 조각물에 새겨져 있었다. 카페나 식당이라고 보기엔 건물이 회색 바탕에 딱딱하다. 넓은 잔디밭에는 드문드문 조화가 보였다.

차를 주차하고 주신도가 먼저 내렸다. 해림이 따라 내렸다. 탁, 차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주신도가 그 옆에 삐딱하게 몸을 기댔다.

“들어가 봐.”

“여기가 어디예요?”

“들어가 보면 알아.”

“같이 안 가요?”

“응. 나오면 전화해.”

목소리가 덤덤했다. 눈빛도 차분했다. 이유를 물을 분위기가 아니라, 해림이 고개를 끄덕이고 건물로 향했다.

건물 안도 밖처럼 고요했다. 건물 안에 들어와서야 이곳이 어디인지 알았다. 희원과 공원 사이에 들어가는 글자가 ‘추모’였다. 천장에 닿을 듯한 보관함들이 길고 폭넓은 복도에 이어져 있었다.

가슴이 불쾌하게 두근거렸다. 무슨 기분인지 몰랐다. 경비에게 말을 걸기보다, 당장 발을 틀어 주신도에게 달려가고픈 충동이 강했다.

해림이 깊게 숨을 내쉬며 주먹을 쥐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주신도가 무슨 생각으로 저를 납골당까지 데려왔는지야 모를 일이나, 아주 짐작이 가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나이가 지긋한 경비가 꾸벅꾸벅 졸다가 해림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퍼뜩 깨어났다. 여기가 어딘지 깨달은 이상 물어볼 거야 하나였다.

“정용섭 씨, 뵈러 왔습니다.”

오랜만에 입에 올에 올리는 부친의 이름이 다른 이의 이름처럼 낯설다. 경비가 콧대 아래로 흘러내린 안경을 검지로 밀어 올렸다.

“관계가 어떻게 되슈.”

“아들입니다.”

경비는 더는 묻지도 않고 정용섭 씨, 정용섭 씨 중얼대며 느린 손길로 자판을 두드렸다.

“2층 B열에 1048번에 계십니다. 좋은 곳에 모셨네.”

효자 보듯 경비가 흐뭇하게도 웃었다. 해림이 고맙다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 계단을 올라갔다.

2층에 올라가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거나 누군가 참지 못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해림은 입을 꾹 다문 채 눈으로 B열을 찾았다. 사각형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볕이 쏟아지는 곳이 B열이었다.

보관함은 해림의 눈높이에 맞춰 있었다. 새하얀 도자기로 만든 유골함 두 개만 덩그러니 있는, 달리 보면 삭막한 보관함이었다. 흔한 조화 한 송이, 가족사진 하나 없었다.

부친의 이름이 적힌 함 옆엔 모친의 이름이 새겨진 함도 있었다. 모친을 모신 곳은 다른 곳이었는데 그건 또 어떻게 알고서. 이것도 분명 주신도의 작품이겠지.

해림은 가만히 보관함을 들여다봤다. 부친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만 하더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건만, 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저를 빚더미에 앉게 한 장본인이었으나 무작정 미워할 수는 없었다. 살아생전 초췌하고 노쇠했던 그 모습에, 비참했던 최후에 연민을 느낀 게 아니었다. 혈육이라서도 아니었다.

원망과 분노는 시간이 흐르며 차츰 흐려졌고, 남은 건 단편적인 기억과 미미한 아쉬움, 그리고 자박자박한 그리움이었다. 심지어 돌아가신 부모에게도 감정이 막힌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같으니, 제 가슴이 다른 이들보다 메마른 사막 같다는 건 알겠다.

“오랜만에 뵙네요.”

맞은편에 산 사람이 있다는 듯이 해림이 말을 건넸다. 걸어오며 들었던 소리도 아마 고인을 향한 혼잣말이었으리라.

“저는 잘 지내요.”

그간 겪은 일들을 말로 풀어 놓으려면 2박 3일이 모자랐다. 부친의 빚을 갚으라고 납치를 당하고, 전혀 몰랐던 세계를 알고, 거기서 주신도를 만나고, 알고 있다고 믿었던 감정이 깨지고 다시 정립됐다. 원체 무뚝뚝한 아들이라 모든 일을 한 마디에 욱여넣었다.

부친에게 지금 당신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몰아넣은 사람과 같이 지낸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고인에 대한 예의였다. 대신 해림이 묵직한 한숨을 쉬었다. 이 선택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따져 보는 건 옛적에 끝냈다.

없이 살 수 있는 것과 없이는 못 사는 것. 주신도는 후자였다.

“거기는 어때요.”

외롭고 쓸쓸하고 고통과 번민이 가득했던 부친의 이생이, 오랜 기간 지속적인 통증과 질병에 시달렸던 모친의 생이 보관함 안에서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당신들이 지금 지내는 세상에서는 그 어떤 세속적인 고통도 없기를 바랐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기에 해림은 제멋대로 생각했다. 그곳은 평안하리라. 못난 아들을 비난할 마음 따위는 조금도 샘솟지 않을 만큼.

“다음에 올 때는 꽃이라도 들고 올게요. 잘 지내세요.”

해림이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다시금 고개를 들었을 때는 오후의 따사로운 볕이 보관함 유리 위에 드리워 있었다. 유골함의 반질반질한 표면이 해림에게 잘 왔다고, 그리고 잘 가라고 인사하듯 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내 해림이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불경하다는 걸 알지만, 저를 기다릴 누군가가 몹시도 보고 싶었다.

두 대째였다. 주신도의 뺨이 움푹 팼다. 폐는 부풀어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위로 올려 보냈다. 내쉬는 숨에 씁쓸한 담배 연기가 굴뚝 연기처럼 흘러나왔다. 필터만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 넣고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려다가, 영 내키지 않아 손가락 사이에 걸고 팔을 내렸다.

이곳에 올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혹시 몰라 예의 지킨답시고 안치는 시켰는데, 해림을 데려오고자 하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괜히 옛 기억을 쑤석거려서 저에게 좋을 게 하등 없었다. 최악의 경우엔 정해림이 찔러도 바늘 하나 안 들어갈 예전 모습 보이며 등을 돌릴 수도 있었다. 등을 보인다 해도 놔줄 생각이야 추호도 없다지만.

자신감과 다른 문제였다. 다른 때는 팽팽하게 잘만 돌아가는 머리가 정해림을 앞두고는 천하의 멍청이가 된 듯이 삐걱거렸다. 어느 게 더 나은 판단인지, 저에게 유리한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인간적인 도리, 양심 그딴 건 주신도와 관계없었다. 저만 좋으면 장땡인 인생이었다. 이기(利己)가 근본이고 그게 없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지금껏 이 목숨을 질기게 유지한 이유도 남 생각을 눈곱만큼도 안 하고 살아서, 라고 주신도는 믿었다.

후우, 하고 연이은 한숨만 터졌다. 인생이 얄궂다. 당시엔 당연하다고 저지른 일이 후에 칼날이나 독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점이.

주신도가 손목을 걷어 시간을 확인했다. 정해림이 건물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천년만년 기다린 기분이었다. 얼른 나오길 고대하는 마음이 반, 천천히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반이었다.

여기 온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사람 감정은 믿을 게 못 된다. 오늘은 불어오는 바람처럼 따스하게 살랑거리다가도 내일 갑자기 동장군처럼 차갑게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지금이야 정해림이 단맛에 취한 듯이 저를 보지만, 과거가 생생해지는 어느 날에는 매몰차게 저를 거절할 수도 있었다.

“씨발.”

그런 미래가 있으면 수천 번, 수만 번이라도 고쳐서 다시 돌려놓고 말리라.

각설, 주신도는 밑밥을 깔아 놓기로 했다. 내가 비록 개차반인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네 부친의 장례는 잘 치러 줬다, 볕 좋은 곳에 놓고 모친도 같이 모셨다. 적어도 고인에 대한 예의는 지키는 인간적인 놈이다.

일부러 정용섭이 도박에 더욱 빠지도록 수를 쓴 거나 목에 사채 줄을 걸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세상에는 모르고 사는 게 약인 것도 있었다.

정해림이 언제나 따스한 눈으로 저를, 저만 봐 주었으면 좋겠다. 다른 연놈들에게 관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주지 않기를 바란다. 독점권은 평생 저 혼자 쥐고 있어도 모자랐다.

이게 무슨 세 살짜리 어린애 같은 마음이란 말인가. 스스로 떠올려놓고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담배 맛이 뚝 떨어졌다. 아직 멀쩡한 담배를 담뱃갑 안에 집어넣었다. 때마침 저쪽에서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었다. 자갈을 밟는 소리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 제 성격대로 조용하고 물 위를 걷는 듯이 사뿐사뿐했다. 주신도의 귀가 강아지 귀처럼 쫑긋거렸다.

“빨리 왔네.”

왜 이렇게 안 오느냐고 속으로 골백번 되뇌었으면서 주신도가 여유로운 척을 했다. 해림의 입꼬리가 살포시 올라갔다. 철벽같던 사람이라 그런지 조금만 웃어도 세상이 밝아졌다. 흡연실에 드리운 햇볕이 갑자기 강렬해진 느낌에 주신도가 눈살을 접었다.

해림이 가만히 다가와 주신도를 껴안았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런 접촉―재회 때는 워낙 정신이 없었으므로 예외로 하고―을 하는 게 드물어 주신도가 주춤했다. 해림이 주신도의 등에 팔을 둘렀다.

“고마워요.”

뭐가. 하고 되물을 뻔했다. 주신도가 가까스로 말을 삼켰다. 정해림이 고마워할 건 없었다. 뭐가 고마울까. 부친을 사지로 내몰고 저를 물건 취급하며 내다 팔려고 했던 사람한테. 그 착함에 주신도는 잠깐 말문을 잃었다.

“……뭘. 당연하지.”

하지만 주신도는 끝내 속내를 숨기고 해림의 등을 껴안았다. 평소처럼 뻔뻔하게 대답하며 머리카락에 입술을 갖다 댔다. 따스한 햇살 냄새가 났다.

“인사 잘하고 왔어?”

“네. 어머니도 계시던데요.”

“부부가 따로 있으면 보기 안 좋잖아. 모셔 왔어.”

“다음에는 같이 갈까요. 꽃도 사서.”

과연 정용섭이 저를 환영할까. 지옥에서 기어 올라와서라도 기어이 제 등에 칼을 꽂고 돌아갈 수도 있었다. 유골함 뚜껑을 덜걱거리며 분노를 표시할 수도 있겠지.

“그래.”

그럼에도 주신도는 흔쾌히 수락했다. 오늘 정해림 앞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것처럼, 유골함을 앞에 두고도 염치없게 저 왔다며 인사할 것이다. 귀신이 시퍼렇게 두 눈을 홉뜨고 노려봐도 싱글거리며 손을 흔들 테다. 정해림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래서 제 곁에 있기만 한다면.

“어머님 무슨 꽃 좋아하셔. 그걸로 사 가게.”

“코스모스요. 코스모스 조화가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없으면 주문하지, 뭐.”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건물에서 멀어졌다. 잔디밭을 밟다가, 주신도는 문득 건물을 뒤돌아보았다. 2층 유리창에 희끗한 그림자가 주신도를 바라보듯 어른거렸다가 사라졌다.

“정해림.”

유리창에서 시선을 돌려 앞서가던 정해림을 불렀다. 해림이 돌아봤다.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얇은 커튼처럼 나부꼈다. 단정한 눈썹, 그 아래 심해 같은 눈동자를 바라봤다.

“사랑해.”

주문이라도 거는 듯한 목소리였다. 누군가 옆에 붙어 옷자락을 쥐어뜯으며 흐느끼는 소리도 들린 성싶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주신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산 사람은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는 법이다. 죽은 사람은 입도 귀도 없기에 듣지도, 호소하지도 못한다.

해림의 귀 끝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햇빛이 달궈 놓은 자리 같다. 자두 사탕처럼 불그레한 색이 맛있어 보였다.

다음엔 어디를 갈지 정했다. 주신도가 해림의 손을 맞잡고 가는 걸음을 서둘렀다.

외전 Fin.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