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딜러 줍는 힐러-2화 (2/130)

2화

[길드] 카젤: 늦다 벌꿀님

[길드] 벌꿀오소리: 하 씨.. 하필 엄마가 와서

[길드] 카젤: 어쩐지 접속 안 하더라ㅋㅋ 안 올 사람이 아닌데

[길드] 벌꿀오소리: 게임 하는 거 들키면 본가로 강제 소환이라...ㅎ 그나저나 서버 늦게 열렸다면서요?

[길드] 카젤: ㅇㅇ 새벽 5시쯤 열림

[길드] 벌꿀오소리: ㅋㅋㅋ오랜만의 3대 명검ㅋㅋㅋㅋㅋㅋ

[길드] 카젤: 하... 괜히 명검이 아닌 듯;

명검이라는 건 게임사에서 진행하는 서버 점검의 별명이었다. 점검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정기 점검, 임시 점검, 연장 점검, 긴급 점검.

이 중 몇 개를 연속으로 꺼내 들었느냐에 따라 3대 명검, 4대 명검으로 불렸다. 점검이 추가될수록 대기 시간도 늘어나는 법이라 유저들에게 명검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조기 오픈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정기 점검에서 끝나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었다.

[길드] 벌꿀오소리: 정기 점검이 이번에 여덟 시간이었던가?

[길드] 카젤: ㅇㅇ 확팩 오픈이니까 점검 시간은 좀 길었죠

[길드] 벌꿀오소리: 거기다 연장 점검에 긴급 점검까짘ㅋㅋㅋ

[길드] 카젤: ......

라나탈은 이번에 대규모 패치를 진행했기 때문에 긴 시간 정기 점검은 필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세 시간 연장 점검을 진행했고, 또 그걸로도 모자라서 긴급 점검까지 소환하고 말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서버가 열린 것은 새벽 5시였다. 대부분의 유저는 포기하고 잠을 청했지만, 하드 유저인 주하는 그 시간까지 기다려서 가장 먼저 접속했다.

[길드] 벌꿀오소리: 어쨌든 끈질기게 기다린 보람은 있는 듯 ㅋㅋ

[길드] 카젤: ...ㅋ 일퀘랑 평판은 못 참지

라나탈은 하루에 주어지는 퀘스트를 완료하고, 세력 평판을 여는 속도에 따라 다른 유저들과 격차가 생긴다.

더 빨리 아이템을 강화할 수 있고, 더 빨리 제작 아이템을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아이템 강화에선 운이 따라 줘야 하긴 하지만, 한 번 강화하는 것보다 두 번 강화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게다가 물약과 도핑도 평판과 연관되어 있다. 각 세력과 확고한 동맹을 찍어야만 최상급 도안을 얻고 사용할 수 있는데, 다른 유저가 만든 물약이나 아이템도 해당 평판을 올려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만약 평판을 우호까지만 올려두면 다른 유저가 만든 물약을 먹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가볍게 즐기는 라이트 유저라면 상관없지만, 랭킹에 진심인 하드 유저라면 필수 항목이었다. 레이드 퍼클3)을 노리는 데 하급 아이템과 하급 물약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라나탈은 콘텐츠가 빨리 소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가다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임이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평판을 빨리 열어서 일일 퀘스트와 주간 퀘스트를 진행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거기다 평판 말고도 업적이라든지, 재료 수집 콘텐츠도 있으니 확장팩 초반은 일분일초가 무척 소중했다.

보석술사 랭커인 주하에게도 이는 여지없이 통용되었다.

[길드] 벌꿀오소리: 그래서 오픈하자마자 계속하는 중?

[길드] 카젤: ㅇㅇ

[길드] 벌꿀오소리: 역시 썩은물의 위엄ㅋㅋㅋㅋㅋㅋ

3대 명검을 기다려서 가장 먼저 접속한 것은 그에겐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벌꿀오소리도 카젤 못지않은 유저였다.

[길드] 카젤: 원래대로라면 벌꿀님도 지금 내 옆에 있었을 텐데?

[길드] 벌꿀오소리: 당연하져ㅋ 전 동지가 자랑스러워서 칭찬한 거라고요 ^^ 안녕? 썩은물 친구?

길드원인 벌꿀오소리도 라나탈에서 알아주는 하드 유저였다. 라나텔을 망겜이라 욕하고, 썩은물 유저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게이머. 저놈이나 이놈이나 똑같았다.

[길드] 카젤: 잠깐? 청정수가 친구라고 한다고?

[길드] 벌꿀오소리: 헐??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인데? (ꐦ°꒫°)

[길드] 카젤: 썩은물이... 확팩을... 다섯 시간 지각할 수 있...나?

[길드] 벌꿀오소리: -_-

[길드] 카젤: 정수필터 스치고 와 놓고 양심도 없지^^

[길드] 벌꿀오소리: 반박할 수가 없어서 화가 난다.... ㅂㄷㅂㄷ

[길드] 카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상한 곳에서 급발진하는 벌꿀오소리였지만, 하드 유저에게 청정수라는 말은 자존심을 건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마법사 랭커 자존심이 있는데.

[길드] 카젤: 랭커값 합시다ㅋㅋ 빠르게ㄱㄱ

[길드] 벌꿀오소리: 걱정 니은 이미 대륙 넘어감 흉포하게 달릴 테니까 뒤통수 조심하셈

[길드] 카젤: 응? 쫓아올 생각을 한다고?

[길드] 벌꿀오소리: 다섯 시간쯤이야 근성으로 이겨 내지ㅋ

[길드] 카젤: 그럼 내기 콜?

[길드] 벌꿀오소리: ㅎㅎ......? 보석술사들은 양심 다 팔아먹었다고 하더니 틀린 말 하나 없네. 같은 보석술사 중에도 카젤님은 더 악질임

“악질이라니. 그 정도는 아닌데.”

필드에서 여러 마리의 몹을 모아서 광역4)으로 잡을 때 보석술사만큼 효율이 좋은 클래스는 없었다.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가 빠르고 CC기5)도 딜러 중에 가장 많고 광역딜이나 단일딜도 크게 떨어지는 클래스가 아니다.

카젤이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클래스 덕이 절반이었다.

[길드] 벌꿀오소리: 근데 그럼 뭐 하나. 그래 봤자 ‘보석술사’인걸 ^^

이렇게만 본다면 만능처럼 보이지만 보석술사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네 개의 스탠스6)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방 스킬, 도트 스킬, 광역 스킬, CC기로 나누어져 있어 스킬을 쓰려면 스탠스를 변경해야 했다.

남들은 스킬 창 하나만 외우면 되는데, 보석술사는 네 개나 외워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캐릭터 네 개를 동시에 운용하는 기분이랄까? 거기다 스킬 개수도 다른 클래스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많으니 진입 장벽이 높은 클래스 중 단연 으뜸이었다.

딜 사이클을 ‘제대로’만 돌린다면 마법사나 블래스터, 암살자만큼의 딜을 뽑아낼 수 있지만, ‘제대로’ 돌리는 게 쉽지 않은 클래스, 그게 바로 보석술사였다.

중간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상위권 랭커를 제외하곤 대부분 딜러 중 가장 약체로 손꼽혔다.

남들보다 손이 몇 배는 바쁘게 놀려야 1인분을 할 수 있다니. 그럴 바에야 좀 더 손쉽고 파티 구하기도 편한 클래스를 하고 말지. 유저들의 보석술사에 관한 인식은 그 정도였다.

[길드] 벌꿀오소리: 아! 물론 카젤님이 약체라는 건 아님.

[길드] 카젤: .......

[길드] 벌꿀오소리: 그저... 카젤님이 아무리 날뛰어도 미터기7) 1등은 제 것일 뿐! 후후

크리티컬을 맞은 주하의 입이 꾹 다물렸다. 1승 1패. 벌꿀오소리와 보이지 않는 대결을 펼친 결과는 무승부였다.

[길드] 벌꿀오소리: 그런데 왜 다른 길드원들은 안 보이지?

두 사람이 신나게 길드 채팅창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자진신고> 길드는 지난 시즌 레이드 랭킹 2위에 안착한 랭커 길드였다. 3대 명검으로 서버 오픈이 늦어졌다 치더라도 다섯 시간이 지난 지금, 이렇게 텅 비어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지난 시즌에 안타깝게 놓친 퍼클을 이번에야말로 따내겠다 다짐했던 길드원들이 아니었던가. 주하는 아무도 없는 길드창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와 다르게 조용한 오픈톡도 그렇고……. 이 이상 늦어지면 타격이 꽤 클 텐데. 무엇보다 평판에 있어서 많은 페널티를 받게 될 것이다.

상위권 레이드 팀을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빡빡하기 때문에 주하는 길드원들의 부재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길드원 베르메르 님이 접속했습니다.>

<길드원 천상검 님이 접속했습니다.>

<길드원 온별 님이 접속했습니다.>

<길드원 살금 님이 접속했습니다.>

그때, 갑작스럽게 길드원들의 단체 접속 알람이 떠올랐다. 주하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인사를 건넸다.

[길드] 카젤: 어서 오세요

[길드] 벌꿀오소리: ㅎㅇ 늦었네요

[길드] 천상검: ㅎㅇㅎㅇ 다 같이 만나서 겜방 왔어요ㅋㅋ

[길드] 온별: 아 씨... 여기 의자 이상해

[길드] 베르메르: 남은 자리 없어 그냥 앉아

[길드] 베르메르: 다들 ㅎㅇ 특히 꿀벌님은 더 반갑

[길드] 벌꿀오소리: 꿀벌 아니라고! 벌꿀!ㅋㅋ

[길드] 살금: ㅎㅇㅎㅇ

자진신고는 네 명의 실친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길드였다. 길드장이자 공대장8)인 탱커 천상검, 힐러인 온별, 딜러인 베르메르와 살금. 이렇게 네 명이 길드를 대표하는 유저였다.

그 이외 레이드 팀원들은 이들과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고, 또 그들의 지인들이 일반 길드원으로 활동했다.

저와 벌꿀오소리만 지난 시즌 마지막 레이드 던전이 나왔을 때 합류한 유저였다. 기껏해야 4개월쯤 되었을까. 뒤늦게 면접 보고 들어온 탓에 그들과의 친분은 그다지 두텁지 않았다.

[길드] 천상검: 아 맞다 오늘 신규 길원 들어옵니다

[길드] 카젤: 신규 길원이요?

[길드] 벌꿀오소리: 설마 뉴비인가요?

[길드] 천상검: 아뇨ㅎ 아쉽게도 올드비입니다

[길드] 벌꿀오소리: 다행이네요ㅋㅋ 확팩 초반이라 제대로 신경 써 주지 못하니 지금은 올드비가 나은 듯요ㅋㅋㅋㅋ

[길드] 천상검: ㅋㅋ 걱정하지 마세요

오랜만의 신규 길드원이었다.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유저가 저와 벌꿀오소리였으니 정말 간만의 뉴페이스였다.

주하는 아침과 달리 활발하게 올라가는 길드 채팅창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블랙체리 님이 자진신고 길드에 가입되었습니다.>

[길드] 벌꿀오소리: 엥?

[길드] 블랙체리: 처음 뵙겠습니다ㅎㅎ 잘 부탁드려요

[길드] 벌꿀오소리: 어서 오세요. 그런데 묘하게 익숙한 분인데?

[길드] 카젤: 어? 그러게요

벌꿀오소리와 마찬가지로 주하에게도 익숙한 아이디였다. 클래스를 보니 총기류를 사용하는 블래스터였다. 잠깐, 블래스터? 번뜩 떠오른 기억에 주하는 라나탈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왜 익숙한가 했는데 랭커잖아?”

블랙체리는 블래스터 랭킹 20위에 있는 유저였다.

3) 퍼스트 클리어의 줄임말. 던전 레이드를 가장 먼저 클리어 하는 것을 뜻한다.

4) 넓은 범위에 걸쳐 있는 다수의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광역 기술’의 줄임말이다.

5) CC기는 적의 이동에 제약을 걸거나 행동에 제약을 걸어 일정 시간 동안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로 만드는 기술을 뜻한다.

6) 무기나 태세에 따라 스킬 바가 바뀌는 것을 뜻한다.

7) 플레이어가 어느 정도의 딜을 했는지 알려 주는 기능. 힐러가 회복시킨 체력 수치나, 탱커가 얻은 어그로 수치 등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8) 게임 내 전투 집단이자 파티의 집합체인 ‘공격대’를 이끄는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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